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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엔디 May 05. 2024

내용을 전하는 예술장식품

과정이 작품이다

작품명 : 사색(思索)하는 말(言)

주재료 : 각파이프, 유로폼 연결핀, 반생, 못

작가명 : 어느 용접공


  보통 새벽에 일찍 집을 나섭니다. 출근하는 길이 막혀서 도로에서 시간을 허비하는 것보다 조금 일찍 일어나서 부지런을 떨면 하루를 여유롭게 시작할 수 있습니다. 겨울철에는 동이 채 뜨기도 전에 주섬주섬 집을 나서기도 합니다. 그래도 공사현장에 도착해서 나만의 고요함을 느끼는 것이 좋습니다. 어제 작업자들이 일하다가 버려둔 공구들이랑 장비들, 사용하고 남은 자재들, 수고한 장갑들을 보노라면 "나뭇잎 배"라는 동요가 떠오릅니다.


낮에 놀다 두고 온 나뭇잎 배는

엄마 곁에 누워도 생각이 나요

푸른 달과 흰 구름 둥실 떠가는

연못에서 사알살 떠다니겠지


연못에다 띄워논 나뭇잎 배는

엄마 곁에 누워도 생각이 나요

살랑살랑 바람에 소곤거리는

갈잎 새를 혼자서 떠다니겠지


  차분하게 내려앉은 공기와 차가운 냉기가 몸을 감싸고, 분주했던 어제의 작업현장을 대하는 것은 마치 전쟁이 끝난 후 초연(硝煙)이 사라진 깊은 계곡을 보는 것과 같습니다. 어제 지시한 내용도 확인하고, 오늘 현장 상태를 점검도 하면서 작업자보다 한 발 앞서 이리저리 다니다 재미있는 "공작물(?)"을 발견했습니다. '어? 이거 뭐야? 말이잖아! ㅎㅎ' 어제 용접공이 쉬는 시간에 현장에 있는 자재를 이용해서 "말"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낮에 놀다 두고 온 나뭇잎처럼 이 말(馬)도 혹시 퇴근한 후에 밤새도록 초원을 달리다 새벽에 다시 돌아온 걸까요?

예전에 샌프란시스코 "금문교(골든게이트브리지 ; 1937년도 준공)"를 간 적이 있습니다. 걸어서 건너보기도 하고, 유람선을 타고 아래로도 지나가 보았습니다. 다리를 건너기 전에 공원이 있는데, 그곳에 교량을 지탱하고 있는 케이블을 절단된 실제 크기로 전시해 놓았습니다. 멀리서 보면 가느다란 선처럼 보이지만 직경이 92.4센티미터, 그 안에 모여 있는 와이어만도 27,572개입니다. 케이블의 와이어 길이도 130,000km로 지구 한 바퀴를 돌고도 남는 길이라고 합니다. 눈앞에서 만져볼 수도 있고 육안으로 확인하니 실감이 납니다.


  도심을 거닐다 보면 건물 전면에 예술 장식품을 간간히 보게 됩니다. 어마어마한 크기로 시야를 압도하는 것도 있고, 감성적인 아름다움을 가진 작은 조형물도 있습니다.

문화예술진흥법에 따라 연면적 1만 제곱미터 이상의 건축물을 신·증축하는 경우, 건축 비용의 일정 비율을 미술작품 설치를 해야 하는 규정이 있습니다. 시민들에게 예술적인 공간을 제공하고, 도시 환경에 문화적 이미지를 부여하며, 예술가들에게 창작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그 목적

이라고 합니다. 법률로 강제하지 않는다면 누가 그만한 비용을 들여 도시환경과 문화적 공공성을 확보하려고 할까요? 일견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법률에 의하지 않더라도 중소규모의 건물에서 나름 건축의 장소성과 역사성을 표현하는 의미의 조형물을 볼 때가 있습니다. 어떤 분은 구조안전확인을 받기 위해 현장에서 콘크리트 코아작업한 부산물로 화단을 만들어 놓은 건물도 있었고, 어떤 분은 신축하기 전 기존 건축물의 주춧돌을 보관했다가 신축건물 앞에 장식품으로 전시한 경우도 보았습니다. 또는 신축하면서 터파기 할 때 애를 먹었던 장애물 사진을 찍어 놓았다가 전시작품처럼 액자로 만들어 건축할 때 이런 일도 겪었다고 무용담처럼 기록을 보관하기도 합니다. 1937년도에 준공이난 "골든 게이트 브리지"도 현수교를 지탱하는 와이어를 전시하면서 "이거 한번 보세요. 대단하지요! 이렇게 대단한 일을 우리가 했답니다."하고 자랑하면서 그 역사적 이야기를 은근히 내비치는 것이죠.


  수천만 원짜리 예술가들의 작품도 필요하지만 과정 속에 생성된 다양한 이야기도 멋진 작품이 될 수 있다고 봅니다. 현장에서 누군가 무심코 만든 "용접된 말(馬) 한필"이 제겐 또 다른 "말(言)"이 된 것처럼, 새로운 건축을 꿈꾸고 있다면 나만의 공간스토리텔링(Space Storytelling)을 만들어 봄직 합니다.


"과정이 작품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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