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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중 물들다 16화

적당히

요령껏, 대충 잘 산다는 것

by 양심냉장고

‘적당하다’는 말,

원래는 '들어맞고 어울린다'는 의미로

참 괜찮은 말이었다.

조화를 이루고 균형을 잡는, 그런 뜻으로 쓰이던 말이었다.


그런데 사람들은 달리 말한다.
“적당히 살아라.”

이 말은 긍정적인 의미와는 사뭇 다르다.
여기서 ‘적당히’는 그저 대충 통할 만큼만,
요령 있게, 무리 없이 살아가라는 어조로 쓰인다.


평균적으로, 가운데에서 치우지지 아니하고.


흥미로운 건 그 ‘대충’이나 ‘요령’이라는 말도
본래는 '사물의 가장 긴요한 골자',

'핵심을 꿰뚫는 탁월한 지혜'의 뜻이었다는 사실이다.

그런 말들이 어느새 잔꾀나 어정쩡함을 뜻하는 말로
변질된 까닭이 궁금했다.


언어의 현상에는 사회의 이면이 숨겨져 있기 때문이다.


나는 그것이 이 땅의 격랑을 버텨온
대중이든, 민중이든, 국민이든, 백성이든, 인민이든 ....

뭐라 부르든 대충 그게 그뜻일텐데,

말 하나 고르는 것도 쉽지 않은,

우리네 삶과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남과 달리 살아보겠다고, 목소리를 높일수록
피곤하고, 심지어 불행하게 살아야 했던 사람들의 시대,

그것이 역사의 현실이었다.


전국 곳곳에 퍼진 아기장수 설화.
반골의 기상을 지닌 자는 비범한 능력에도 불구하고
다른 이도 아닌, 부모에게 죽임을 당해 땅에 묻히거나,

그나마 전설의 바윗돌이 되었다.

이는 비범하지만 불순한 반골은 주변 사람까지 불행하게 만든다는
두려움이 배어 있는 전설의 이야기이다.

홍길동처럼 신분을 뛰어넘고,

자신의 억울함과 한을 마음껏 펼치고도 살아남은 이는
영웅소설 속에서나 보는 신화같은 이야기였다.


‘모난 돌이 정을 맞는다’는 속담은
우리 마음 깊이, 나의 뇌리에 박혀서
생각과 행동이 남과 달라서는 안 된다는
철저한 훈련으로 나의 생각과 언어를 구조화했다.


그래서 결국, 우리 소시민에게
인생의 가장 중요한 '요령'이란, 삶의 탁월한 지혜란

‘나서지 않는 것’이 되었고,
내 일이 아닌 것은, 아무리 진실한 일일지라도
모른 척하는 것이 현명하고 무난한 삶의 방식이 되었다.


이것은 권력이 강요한 삶이었는지,
사람들이 스스로 택한 생존의 기술이었는지
더는 단정하기 어렵다. 왜냐하면,

나 역시, 대충, 요령껏 적당히 사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알고 있으니까.


바람이 불면 가장 빨리 누웠다가, 천천히 일어나 잘 살아갈 것이다.

그게 잡초같은 나와 같은 소시민으로서는 가장 적당한 삶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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