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모노』.2

1편에 이어, 남은 이야기들에 대한 생각들

by 양심냉장고

3. 혼모노


'혼모노(本物, ほんもの)'는 '진짜'를 뜻하는 일본어라고 한다.


이 소설의 서술자는 '장수할멈'을 모시는 '강신무'이다. 그런데 그에게 어느 날부터 문제가 생긴다. 장수할멈이 '신애기'에게 옮겨갔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무리 용을 써도 '장수할멈'은 대답이 없다. 이후 신당에는 파리가 날린다. 그는 접신하지 못하는 '니시모노 강신무'가 된 것이다.


반면, 자신의 집 앞에다가 신애기가 차린 신당에는 사람들이 붐빈다. 심지어 '황보'라는 정치인, 그동안 형님 동생으로 지냈던 이도 신애기에게 굿을 맡겼다.


소설을 읽어나가면서, 장수할멈이 '서술자(강신무)'를 떠난 건 강신무가 초심을 잃었기 때문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니 강신무가 다시 장수할멈을 모셔오고자 애쓰는 내용이 이어질 것으로 생각했다.


아니면, 장수할멈이 떠난 강신무는 친구의 주선에 따라 적당히 '오늘의 운세'나 내면서 밥벌이를 할 수도 있었다. 학습무가 되어, 강신무 흉내를 내면서 그럭저럭은 살 수도 있었을 것이다. 신령님은 못 모셔도 적당히 손님을 모시며 말이다. 하지만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스토리의 전개와 결말은 의외였다.


그는 자신을 버리고 풋내기 신애기에게 간 '장수할멈'을 납득할 수 없었다. 그리고 '신애기'를 의심하며 질투한다. 또한 '황보'에게서는 인간적인 배신감을 느꼈다. 그리고 그런 감정들은 점차로 고조되어 처절한 승부욕으로 드러났다.


마지막에 신애기와 굿판에서 벌이는 대결은, 돌아올 힘을 남겨두지 않는 목숨을 건 대결이었다. 피를 철철 흘리면서도 작두 위에서 내려오지 않는 그의 광기는, 장수할멈이 접신한 것 이상의 힘을 내뿜기 시작했다.


결국 '장수할멈'과 접신했다는 신애기가 먼저 나가 떨어진다.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작두에서 내려오지 않던 신애기가 아연실색하며 나가 떨어진다. 그 애는 바닥에 주저 않자 휘둥그런 눈으로 나를 올려다본다. 황보와 그의 기족도 기도를 멈추고 나를 올려본다. 할멈도 이 장관을 다 지켜보고 있겠지. 어떤가 이제 당신도 알겠는가.

하기야 존나 흉내만 내는 놈이 뭘 알겠냐만. 큭큭 큭큭 큭큭 책 P. 154


소설의 마지막 구절은 누구의 목소리인지 모호하다. 신애기의 소리일까? 장수할멈의 소리일까? 강신무의 목소리일까? 난해하다. 하지만 그것이 바로 성해나 소설의 재미이다.


우리는 사랑받고, 인정받고 싶어한다. 그렇기에 인정받아야 할 대상에게 버림받거나 배신당했다고 생각되면 엄청난 감정의 소용돌이에 휘말린다. 그때 사람들은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할 것이다. 다시 인정받기 위해 자존심을 내려놓거나, 아니면 나를 버린 대상이 후회하도록 만들어 버리는 것이다. 강신무는 후자의 길을 택했다.


소설 속의 서술자는 버림받음이나 배신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던 사람일 것이다. 그러니 자신을 버린 장수할멈을 납득하지 못하고 신애기를 질투하고, 배신한 황보의 굿판에 다짜고짜 들이닥치는 것이다.


그리고 말한다. '당신이 감히 나를 버려? 그리고 저 젖비린내 '신애기'에게 갔다고? 그래 어디 한번 해봅시다!' 누가 진짜 혼모노인지 내가 한번 보여드리고 말테니까. 후회하지 마쇼!' 세상에 이런 사람들 의외로 많다.


인간의 광기(狂氣)가 때로는 신기(神氣)보다 더 무섭게 보일 때가 있는 것 같다.


4. 구의 집 : 갈월동 98번지


이 작품 역시 생각할 거리가 많은 소설이었다. 7개의 소설 중에서 가장 완성도가 높은 작품을 하나 뽑으라면 이 작품을 고를 것 같다.


이 소설을 읽으며, 최근 일어난 계엄 상황을 떠올렸다. 대통령의 명령에 따라 계엄에 참여한 군인들, 전 대통령은 승진을 미끼로 그들을 끌어들였다고 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들이 계엄에 동참한 것은, 단순히 승진만이 목적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들도 처음에는 승진이라는 미끼를 물었겠지만, 이후에는 자신들을 인정해 준 대통령, 그리고 국가와 민족에 대한 충성과 헌신이라는 마음으로 참여했을지 모른다.


한나 아렌트는 '악의 평범성'을 이야기한다. 우리 주변에 널린 악의 모습은, 처음부터 절대악의 모습으로 나타나지 않는다고 한다. 그것은 너무나 평범한 우리들 주변에서 언제든 표면화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잘 나가는 K 대 공과대학 교수로 인정받는 건축가 '여재화'. 그는 남영동 대공분실 설계를 의뢰받는다. 그곳은 군사독재시절, 인간을 고문하는 취조실이다. 설계를 할수록 내면에서 올라오는 일말의 양심으로 괴로워하던 여재화는, 가장 만만하고 야심이 없는 것 같은 '구보승'을 자신의 일을 도와줄 적임자로 선발한다.

남영동대공분실.jpeg 남영동 대공분실, 고문실의 창문은 10분 남짓 햇빛이 들게 설계되었다.


이 상황에서 구보승은, 여재화의 진짜 저의를 모른 채, 자신을 알아봐 준, 고마운 스승님을 위해 온몸과 마음을 바쳐 일하겠다는 충성 맹세를 한다. 그리고 정말 미친 사람처럼 열정을 쏟아붇는다. 자신의 일이 인간을 위한 것이라고 합리화를 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여재화는 그런 구보승이 낯설고 이해되지 않는다. 물론 '여재화'라는 인물의 삶도 긍정적이지는 않다. 일말의 양심으로 괴로워하는 모습이 보이지만, 자신의 책임을 남에게 전가하는 전형적인 소시민의 표본일 것이다.


그리고 구보승을 향한 거리감은 돈봉투를 건네는 것으로 마무리 한다.

여재화는 수고했다는 말과 함께 구보승에게 두툼한 봉투 하나를 건넸다. 열어보니 안에 오십만원이 들어 있었다.
연이 이렇게 쉽게 정리되는구나.
실망 대신 감사를 표하며 구보승은 봉투를 받아들었다. 대화가 끊기고 정적이 흘렀다. 구보승이 자리를 뜨려 할 때 여재화가 느닷없이 그를 붙잡아 세웠다. 입술을 달싹이며 한참 뜸을 들이던 여재화가 나지막이 물었다.
자네는 아직도 그곳이 인간을 위한 공간이라고 생각하나? (중략)
허나 오기 때문인지 객기 때문인지 구보승은 여재화 앞에서 끝내 단언하고 말았다.
어떤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저는 '인간을 위한 공간'이라고 생각합니다.

(책 P. 201)

한편, 위 장면에서 구보승의 심리는 '인지부조화'로 설명할 수 있다. 그는 자신의 열정이 돈이나 인정받기 위한 목적으로 설계를 한 것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는 자신의 일을 합리화하고 있는 것이다. 스승이라는 한 사람을 위해서 일한 것이 아니며, 더더욱 돈을 위해 일한 것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이다.


본인은 진짜 인간을 위한다는 신념으로 일한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고문실에서는 조금이라도 더 빨리 희망을 포기하도록 만드는 것이야말로 가장 인간적이라는 생각을 했는지 모른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그 건물의 설계자는 '구보승'의 것으로 역사에 남았다.


우리는 언제든지, 악한 행동을 선으로 합리화할 수 있는 소시민이 될 수 있는 것이다.


5. 우호적 감정


이 소설은 공동체 안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갈등을 보여준다. 현재 대한민국 안에 만연한 세대간, 남녀간, 도시와 농촌 간의 여러 갈등의 양상을 담담하게 그려낸다.


그런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사람들은 다양한 시도를 하지만, 말처럼 갈등이 쉽게 해결되는 일은 없다. 하지만 사람들은 평소에는 적당히 잘 참고, 억지 웃음을 지으면서 나름대로 별 일 없다는 듯이 지낸다. 사소한 갈등 정도는 허허 한 번 웃으면서 좀 참으면 된다. 그러면 대체로 별일 없이 지나간다.


다만, 서로 간에 이권이 걸리면, 가라앉았던 갈등이 포면화되어 '갑분싸'를 만드는 상황이 생긴다. 하지만 그런 문제조차도 대개는 시간이 지나면 다시 가라앉는다. 그 사이에 누군가는 떠나고 누군가는 남아서 견디면 되는 것이다.

소통과 화합이 제일이다! 줄여서 소화제. 어때요?
...... 그럴까요?
맥스도, 직원들도 영 내키지 않는 기색이었지만 진의 추진으로 함께 그 낡은 멘트를 외쳤다. 소화 ........제. 잔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중략) 정이 흘러넘치고 우호적인 분위기가 감도는 그 안에서, 나는 뜨거운 딤섬을 차마 삼키지도 뱉지도 못한 채, 그대로 머금고 있었다. (책. P. 240)

사람들은 자신의 이권이 걸리지 않은 상황에서는, 서로에게 좋게 보이려고 사람 좋은 미소를 짓지만, 이권이 걸린 문제 앞에서는 얼굴을 붉히고 싸운다. 그건 좋은 사람, 나쁜 사람의 문제가 아니다.


적당한 위선, 그냥 인간의 속성이 그런 것 같다.


6. 잉태기


'잉태기'라는 소설은 제목이 같은 어감과는 달리 완전히 처절하다. 이 소설은 평창동에 사는 상류층 사람들의 이야기지만, 전혀 고상하거나 품위 있는 이들의 이야기가 아니다.


자신들의 집착 대상인 '서진'의 원정 출산을 놓고, 공항에서 개싸움을 벌이는 며느리와 시부(媤父)의 애정 쟁탈전은 광기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그들은 미친 것이다. 그들은 그렇게 처절하게 싸우며, 정작 자신이 그렇게나 사랑한다는 대상의 목소리는 듣지 못했다.

나는 아버님 대신 '당신'이라는 비칭으로 그를 부르고, 그는 '야'와 '너'를 섞어 가며 나를 헐뜯는다. 체통도 교양도 없이. 주변 시선 따위 개의치 않은 채 시부와 삿된 언쟁을 벌인다. (중략)

야 복이. 복이 어디 갔냐? 그제야 정신이 돌아온다. 시야가 또렷해진다. (중략)

시부가 말한다. 복아. 저 말을 들을 필요 없다. 묵정동으로 가자. 우리집은 다 거기서 낳았다. 거기서 낳는 게 맞아. 서진의 양팔을 잡고 시부와 나는 제각기 외친다.
괌행 비행기 출국 알림 방송이 들여온다. 시부와 나 사이에서 서진은 무슨 말인가 한다. 연갈색 눈을 굴리며, 아주 작게. 기운이 다 빠진 소리로, 힘겹게, 하지만 나는 그 말을 제대로 듣지 못한다. 그리고 당신도. (책. P. 297)


그렇다면 왜 그들은 저토록 미친 사람처럼 행동하는가? 왜 사랑과 집착을 구분하지 못하고 저러한 광기가 드러나게 되었을까? 왜 모든 것을 다 책임져주고 문제를 해결해 주는 것을 사랑이라고 여기게 되었을까?


그것은 바로 다음과 같은 시모(媤母)의 말에 잘 드러난다. 두 사람은 어릴 때의 결핍이 원인이 되어 무엇인가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특징을 갖게 된 것이었다.

저 양반도 일생 부모 정 못 받고 살아온 사람이야. 너도 그랬다고 하지 않았니? 아가. 난 말이다. 결핍이 집착이 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애정도 적절히 내어줄 줄 알아야 해. ( 책 P.273)

이 소설은 지난 번에 소개한 김경일 공저의『적절한 좌절』이라는 심리학 책을 떠올리게 한다. 자녀를 사랑하는 것은 아무 좌절도 경험하지 않도록 지상 천국에서 키우는 것이 아니다.


꽃은 흔들리며 피는 것이다.


7. 메탈


마지막 소설은 '메탈'이다. 그렇다. '헤비메탈' 할 때의 그 메탈이다. 이 소설은 세 명의 고등학생들이 주인공이다. 음악에 대한 순수한 열정이 있지만, 성장하는 과정 앞에 닥친 현실 앞에서 하나 둘 꿈을 잊어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소설을 읽고서, 대학생 때 불렀던 노래들을 찾아보았다. 그리고 조용히 들었다. 나에게도 새파랗게 젊었던 날이 있었음을 추억하면서 말이다. 친구들과 노래방을 다니며 불렀던 노래들이 있었고, 학교 합창단에서 공연을 위해 한 학기 내내 연습하던 시간도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엄청나게 낭만에 젖거나 슬퍼하지는 않았다. 나의 젊은 시절은 평범한 꿈을 꾸기에는 조금 여유가 없었던 것도 사실이기 때문이다.


다만 추억은 슬펐던 것조차 아름답게 만드는 마법이 있다.


소설은 힘이 세다!


어떤 사람들은 왜 소설을 읽는지 모르겠다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소설이야말로 가장 실용적인 자기 성찰의 도구이자 자기계발서가 될 수 있다. 그걸 증명한 것이 이번에 읽은 성해나의 '혼모노'였다. 누구에게나 같은 감동으로 다가오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한번 차분이 읽어도 좋은, 정말 나에게는 좋은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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