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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검무적 Jul 19. 2021

신을 내 편으로 만들어서라도

내가 졌다고 인정하고 포기하지 않는 한, 신은 내 편이다.

1960년 브라질의 철물점 주인집 장남으로 태어났다.

지금은 조금 우스울 수 있겠지만 당시 브라질의 철물점 주인은 어엿한 가게를 운영하는 부자였다.

그래서 부족한 것 없이 자랐다고 한다.

무엇보다 4살 때부터 카트로 운전을 시작했다는 점이 그 부분을 증명한다. 

그의 아버지가 손수 만들어준 단순한 카트가 '시작'이었다.


12세부터 본격적으로 카트 레이싱에 뛰어들었고

1977년 고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입학했지만

재미없다는 이유로 3개월 만에 중퇴를 한다.

더 재미있는 것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같은 해 남미 카트 그랑프리에서 우승을 했고

이후 매년 카팅 월드 챔피언쉽 (Karting World Championship)에 출전해 좋은 성적을 거뒀다.

흔히 말하는 'F1', 정식 명칭 '포뮬러 원'의 레전드.

1984년 데뷔해 1994년까지 활동한 F1 드라이버.


요절했음에도 불구하고 역대 최고의 F1 드라이버를 논할 때마다

반드시 거론되는 인물로,

특히 동료와 후배 드라이버들 절대다수가

그를 가장 위대한 드라이버로 꼽는다는 점에서 그의 위대함을 짐작할 수 있다.


F1에서 월드 챔피언을 3회 획득했으며,

이싱 드라이버들이 어떤 열정과 철학을 가져야 하는지 직접 가치관을 제시하고 실천해 후대 레이싱 드라이버들과 모터스포츠 팬들에게 큰 영감을 주었다.


If you no longer go for a gap that exists, you're no longer a racing driver, because we are competing.
만약 당신이 틈새가 생겼을 때 파고들지 않는다면, 당신은 더 이상 레이싱 드라이버가 아닙니다. 그건 바로 우리가 경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엄청난 승부욕과 과감한 스타일로, 결국 1994년 경기 도중 충돌사고로 유명을 달리한,

아일톤 세나 다 실바(Ayrton Senna da Silva)의 말이다.

엔진 소리가 울리기 시작한 서킷 위에 당신이 서 본 적이 있다면, 굳이 당신이 포뮬러 원의 마니아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그 강렬한 경험을 결코 잊을 수 없게 될 것이다.


그가 브라질의 국민들에게 축구황제 펠레와 동급으로 취급될 정도의 인물이라고 설명하면 언뜻 와닿지 않을 수도 있다. 1994년 월드컵에서 브라질이 4번째 우승을 했을 당시,

브라질 대표팀은 그의 죽음을 추모하는 플래카드를 들고 세리머니를 할 정도였으며 결국 그의 장례는 국장으로 치러졌다.


그에게 어떤 시련이 있었는지,

박진감 넘쳤던 1988년 일본 그랑프리 결승전이 있던 서킷으로 들어가 보자.


어김없이 우승후보로 지목되었던 그는 자동차 안에서 헬멧을 쓰고 긴장된 표정으로

출발 사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출발 총성이 울린 직후, 그의 차가 엔진 상태 불량으로 그 자리에 멈춰버리고 만다.

중계석은 물론이고 현장에서 이미 출발하기 시작한 다른 자동차를 보며 관객들이 절망의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겨우 수습하고 다시 출발했지만, 몇백 분의 1초를 다루는 자동차 경주에서 그의 늦은 출발은

이미 결승전의 우승이 멀찍이 날아가버렸음을 의미했다.

중계석에서는 물론, 모든 다른 팀의 엔지니어들마저도 그 해의 우승에서 세나는 제외되었다고 생각됐다.

그때 그의 차가 질주하기 시작했다.

관중석의 절망 섞인 한숨이, 웅성거림으로 그리고 이내 환성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한 바퀴를 돌 즈음, 그의 차가 앞서 출발했던 가장 마지막 그룹의 차를 추월한 것이었다.

그의 차만이 특별한 장치가 되어 있지 않다는 것은 모든 이들이 알고 있었다.


겨우 한 대의 차를 추월했지만,

관중들이 하나둘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두 바퀴를 돌 즈음에 다시 한 대를 추월하며 세나의 차가 거침없이 드리프팅을 했다.

그렇게 한 바퀴를 돌 때마다 한 두대씩 차들을 추월하기 시작하자

관중들은 미친 듯이 환호하기 시작했다.


마치 핸디캡 매치를 하듯 가장 마지막에 출발한 그의 차가 하나 둘 경쟁자들을 추월하고

앞서 나가기 시작한 기적이 눈앞에 펼쳐진 것이었다.


결국 선두를 달리는 한 대가 남았을 때 관중들과 엔지니어들은 이미 한 몸이 되었다.

심지어 선두를 지키고 있던 선수팀의 스태프들마저도 손에 땀을 쥐기 시작했다.

그 말도 안 되는 기적은 기어코 일어났다.

선두였던 자동차를 추월하고도 13초 차이를 앞서 달려버리며 세나는 그 경기의 우승컵을 거머쥐게 된다.

스즈카에서 선두였던 라이벌 프로스트를 추월하는 세나

경기 후 인터뷰에서 세나는 "신을 봤다"라는 전설적인 멘트를 남기게 된다.


인생을 경주에 비유하곤 한다.

자동차 경주, 특히 F1은 격렬한 경기로 유명하다.

그런데 경주에 비유된 인생은 그것보다 몇백 배 더 치열하다.

당신이 만약 세나의 입장이었다면,

모두가 우승후보라고 여기고 있는 입장인데

자동차의 엔진이 고장 나서 촉각을 다투는 시점에

나만 출발하지 못하고 몇 초나 까먹는다면,

당신은 그래도 차를 고치고 달릴 수 있겠는가?


조금 오버해서 말하자면,

인생은 당신이 원하는 대로 되는 것은 하나도 없다.

계획한 대로 되지도 않을 것이고

예상치 못한 변수들은 여기저기서 터질 것이다.

그것이 인생이기 때문이다.


자동차 경주가 인생의 축소판이라면

엔진의 이상이 생긴 드라이버는 대개

경주를 포기하기 마련이다.

'내 잘못이 아니니까, 차가 그런 걸 어쩌겠어.

이건 뭐 신이 아닌 다음에야 어쩔 수 없잖아.'


모두 자신의 실패를 합리화하려는 생각들이다.

주변의 누가 그렇게 얘기해주며 위로해주는 척 할지는 몰라도

최소한 당신은, 그것이 당신의 책임이라는 것을 안다.


세나는 단순히 승부욕이 강했던 선수라서 모두에게

기억되는 것이 아니다.

자동차 시합 중에 머신에서 내려

다른 부상자를 돕겠다는 것은

거의 자살행위에 가깝다.


그럼에도 그는 1992년 벨기에 GP 당시,

위험을 무릅쓰고 사고가 난 다른 레이서를 도와준다.

단 한 번이 아닌 몇 번이나 그런 일은 있었다.

그가 그저 승부사였다면 감히 목숨을 내놓고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그는 전설로 칭송된다.


그 역시 수많은 경기에서 졌고,

수많은 경기에서 실패했다.

하지만 더 많은 경기에서 우승했고,

결국 서킷 위에서 달리다가 죽음을 맞았다.


세나의 자동차가 엔진 고장으로 출발하지 못했을 때, 사람들은 세나의 자동차가 달릴 것이라고 기대하며 응원하지 못했다.

그럴 수 없을 것이라고 단정 지었기 때문이었다.

오직 세나만이,

그리고 그의 팀만이

그라면 해낼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세나가 그날 일본에서 보여준 것은

기적이 아니었다.


신은 그것을 이겨내려는 자만의 편을 든다.

어쩌다 우연히 가만히 있어도

신의 그런 이의 편을 들어주고 기적을 일으켜주는 경우가 있었다는 역사를 단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


모두가 안된다고,

포기할 만하다고,

그건 당신이 해낼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그들은 그렇게 말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당신이 그렇지 않다고 여기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을 때,

신은 당신의 어깨 위로 천사를 내려보낸다.

기적은 그렇게 만들어진다.

당신의 의지로부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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