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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역 목사 아동학대 사건 – 39

두 번째 고소(아동학대 재수사) - 2

by 발검무적

지난 이야기.

https://brunch.co.kr/@ahura/2158

이 소설은 100% 실화에 근거한 이야기임을 밝혀둡니다.


다짜고짜 경찰서장을 찾는 전화에 황당한 상대는 교수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대개 이렇게 점잖은 말투로 말하는 사람들은 함부로 대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경무과의 경험상 잘 알고 있었다.


“아동학대 사건으로 경찰서 홈페이지의 ‘서장에게 바란다’로 면담요청을 했는데, 열흘이 지나도록 아무런 소식이 없네요. 홈페이지에 그걸 만든 건 서장이 직접 보겠다고 해서 한 거 아닌가요?”


“아, 네. 그렇죠. 아, 아동학대요?”


정인이 사건으로 양천경찰서의 서장이 대기발령으로 실질적인 경질이 되는 상황을 알고 있던 경찰관들은 저마다 ‘아동학대 사건’에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었다. 비슷한 사건으로 사건이 덮였거나 제대로 처리하지 않은 건이 나오기라도 하는 날엔, 또 서울의 어떤 경찰서장이 갑자기 출세 행보에 마침표를 찍을지 모를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여보세요. 서장 좀 바꿔달라고 했는데요. 안 들리시나요?”


“아, 네. 그게 사실은 저희 서장님이 총경에서 경무관으로 승진을 하셔서 2주 후에 서울청에 과장님으로 내정되셨거든요. 그래서 지금 이동 준비하느라 정신이 없으셔서요.”


“승진이 내정되면 자기 지금 서장 임무에 이런 식으로 내팽개치고 적당히 다음 자리 갈 준비로 일을 태만하게 해도 되나 보죠?”


교수가 비비 꼬인 말투로 아무렇지도 않게 폭탄을 만지작거리는 말투로 물었다. 그의 말속이 이런 작태를 언제고 언론에 제보하거나 문제를 삼아도 괜찮겠느냐는 폭탄성 협박이 들어가 있다고 느낀 것은 전화를 받는 경무과 경찰관의 괜한 우려만은 아니었다.


“아닙니다. 그래서는 안되죠. 저희가 알아보고 다시 연락드려도 괜찮을까요?”


“그러세요.”


“네. 알겠습니다.”


“내 연락처는 묻지도 않고 그냥 전화 끊을 건가요?”


“아, 번호가 찍혀서요. 이 번호로 연락드리면 되겠지요?”


“네. 그럼 연락 기다리겠습니다. 너무 오래 기다리지는 못하겠습니다. 벌써 열흘이 넘게 기다리고 있어서요. 아시다시피 지금 홈페이지의 ‘서장에게 바란다’로 보낸 기록은 인터넷에도 있겠지만 따로 캡처 해두었습니다.”


“네? 아, 네. 알겠습니다.”


그렇게 전화를 끊고 기다렸지만, 경무과에서도 서장실에서도 연락은 오지 않았다.



서장실에 전화를 넣었던 3일째 되던 날, 교수는 도저히 그대로 넘어갈 수 없었다. 그래서 경찰청 본청의 여청과(여성청소년과)에 직접 물어물어 항의 전화를 넣었다.


“여보세요. 경찰청 본청 여청과입니다.”


“안녕하세요. 아동학대 사건 관련에서 문의를 좀 하려고 전화를 했는데요.”


“네?”


정인이 사건이 이후 경찰들에게 ‘아동학대’는 일종의 역린(逆鱗)이자 금기어와도 같았다.


“아동학대 사건이 발생한 건가요?”


자신을 경감이라고 소개한 경찰대 출신의 젊은 경찰이 잔뜩 긴장한 목소리로 물었다.


“네. 이미 발생해서 당시에는 협박죄로 고소를 했는데, 서울 중양 경찰서에서 그 사건을 덮고 그래서 경찰서장에게 면담을 요청했는데, 승진해서 서울청의 높은 자리로 간다고 연락을 씹고 뭉개려고 드네요. 그래서 도움을 받으려고 전화했습니다.”


“네?”


거침없는 교수의 표현에 경감이 긴장하며 연이은 의문사를 내뿜었다.


“언제 그런 일이 생긴 거죠?”


그때부터 교수는 경감에게 그간 있었던 일과 중양 경찰서의 경제 1팀에서 초동 수사관이 사건을 덮은 것, 그리고 서울청에 수사이의제기를 했음에도 묵살당한 것, 그리고 무엇보다 최근 중양 경찰서장에게 연락을 취했음에도 열흘이 넘도록 연락이 없고, 그 이후에 경무과 직원과 통화했음에도 중양 경찰서장에게서 아무런 연락도 없는 것까지 하나하나 일목요연하게 설명했다. 게다가 추 목사가 자신의 죄에 대해 면피한 것도 모자라 김 교수를 명예훼손으로 성립시킨 용인 동북경찰서 건까지 설명하자, 경감은 사이사이 한숨과 탄식을 뱉어내가며 뭐라 대답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교수의 설명 속에서 이어지는 어이없는 그 상황들에 경찰청 본청에서 중간 간부로 일하는 경감의 입장에서는 차마 뭐라고 대답을 하기도 민망한 상황들이었다.


“정말 답답하고 억울하고 속상하셨겠네요.”


“이 지루하고 짜증 나는 얘기를 다 듣고 이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런데, 이제 어떻게 할까요? 제가 그간 녹취한 자료들을 모두 전해 달라는 사회부 기자들은 줄을 서 있는데, 내 목적이 상관이 없는, 이제 막 출세 일로에 올라선 사법고시 패스하여 경찰 짓을 하는 서장의 출세 행보에 마침표를 찍겠다는 게 아닌데 말이죠.”


교수는 자신의 솔직한 심정을 경감에게 토로했다.


“그렇죠. 사실 처음 초동 수사관이 제대로만 대처했어도 이렇게까지 올 일도 아니었을 텐데...”


경감이 자신도 모르게 이야기의 맥락 속에서 처음 단추가 잘못 끼워지며 일이 꼬이고 꼬인 것에 대해 진한 아쉬움을 토로했다.


“저도 마찬가지 생각입니다. 처음 고소하기 전에 그날 그런 짓을 하지 않고 그냥 마블 대리석에 대한 300만 원 배상하겠다는 약속을 송금하고 보내고 사과했으면 이렇게까지 되지 않았을 텐데, 결국 그 목사는 자신이 보증금을 다 받았다는 얘기를 확인하자마자 그런 바닥을 보인 겁니다.”


“그러게 말입니다. 정말 말씀대로 아예 그때 약속까지 다 했으면서 겨우 300만 원 아끼겠다고 그런 짓을 하는 바람에 일이 이렇게까지 커질 거라고... 게다가 지금 말도 안 되는 사건을 검찰에까지 송치시킨 게 제 입장에서도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물론 교수님의 말씀만 듣고서 판단할 것은 아니겠으나 지금 말씀을 들어보면 현직 목사라는 사람이 자기 아기를, 그런 짓을 한다는 게 정말로...”


경감이 차마 뭐라고 제대로 말을 잇지 못했다.


“그래도 경감님 같은 분이 있어서 다행이네요. 제가 이걸 어떻게 처리하는 게 좋을까요?”


“사실 제가 여청과이긴 한데, 아동학대 분과는 따로 있습니다. 그쪽 계장님이 어차피 사무실이 바로 옆이니까, 지금 저녁 식사들 하러 가셨는데 한번 이야기를 나눠보겠습니다. 그래서 일단 어떤 식으로든 피드백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중양 경찰서장처럼은 하지 않을 테니 조금만 기다려주시면 제가 피드백 연락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이건 절대 어쭙잖은 협박 같은 게 아니니 오해하지 말고 들어주십시오. 마지막이라고 생각해서 경찰청 본청 여청과에 연락을 한 겁니다. 만약 이번에도 경찰 측에서 아무런 반응이 없다면 저는 이 자료를 언론에 뿌리는 수밖에 없을 듯합니다.”


“네. 무슨 말씀이신지 알겠습니다. 조금만 기다려주십시오.”


그렇게 전화를 끊고, 만 하루가 채 지나지 않은 다음 날 오전에 모르는 번호로 전화벨이 울렸다.


“여보세요.”


“네. 안녕하십니까? 김 교수님 되시나요?”


“네. 맞습니다. 실례지만 누구시죠?”


모르는 목소리의 남자는 단번에 듣기에도 경찰이라는 느낌이 드는 딱딱한 말투로 우물쭈물하는 듯하다가 자신의 소개를 했다.


“저는 서울 중양 경찰서의 여청과 과장 송기주 경정이라고 합니다. 교수님이 아동학대 건으로 저희 경찰서에 문제가 있으셨다는 이야기를 경찰청을 통해서 듣고 이렇게 연락드립니다. 경찰서장실에도 연락 주셨었다는 말씀 듣고 확인했는데, 경무과에서 뭔가 착오가 있었던가 봅니다.”


“착오요?”


교수가 까칠하게 되물었다. 경찰업무를 하면서 경정이라는 간부 자리에 오른 송 과장의 입장에서는 교수가 경찰청 본청 여청과에까지 난리를 친 것과 이미 사건 당일의 녹취는 물론이고 여러 가지 객관적인 증거를 모두 확보하고 있다는 정보를 받은 터라 함부로 다루기에는 조심스럽기 그지없는 부분이 분명히 있었다.


“네. 제가 모시고 있는 분이긴 하지만, 저희 서장님이 결코 그렇게 사건을 묵과하시고 그런 분이 아니신데, 지금 워낙 중요한 자리로 가는 것이 내정된 상황이라...”


“서장이 서울청의 높으신 자리로 승진해서 가면 그 사이에 벌어진 자기 책임 관할의 서에서 벌어진 아동학대 사건에 대해 언론에 터져도 상관이 없나 보죠?”


교수의 배배 꼬인 비아냥거림은 과장이 가장 우려하는, 서장에게 절대 그런 일은 없어야 한다고 몇 번이나 지적을 들었던 그 부분에 칼로 베고 소금을 뿌려버렸다.


“아닙니다. 서장님이 경황이 없으셔서 그러신 것이었을 뿐입니다. 그래서 여청과에서 처리해야 할 사건인지라 제가 이렇게 실무 책임자 입장에서 연락을 드린 겁니다.”


“서장에게 이미 보고가 되었다는 뜻인가요?”


“아, 그렇습니다. 아시는 것처럼 이제 다음 주면 서울청쪽에 출근하셔야 되는 입장이라 지금 정신이 없으셔서 연락을 못 드린 것 같습니다. 그 점은 제가 대신 사과드리겠습니다.”


“왜 책임자인 서장이 연락을 안 하나요? 바쁘다는 핑계로?”


교수가 계속해서 그에 대해 시비를 걸었다. 교수에게는 책임자인 서장과 이야기를 나눠 확실한 확답을 받는 것이 아무리 간부라고 하는 하지만 경정 따위와의 약속만 못했다.


“제가 다시 한번 서장님께 전화드려서 교수님에게 간단하게 사과 전화라고 하실 의향이 없는지는 여쭤보겠습니다.”


“지금 내가 그 알량한 사과 한 마디 듣겠다고 이러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지금 이 사건이 불거지면 서울청에 승진한 것과 상관없이 양천경찰서장처럼 낙인찍히고 그 책임을 져야 하는 거 아닌가요? 양천경찰서장은 뭐 자기가 잘못해서 그런 경질을 당한 겁니까? 그 사람이 얼마나 능력이 있어서 검찰이랑 수사권 조정하면서 얼마나 총망받던 사람인지 나도 알고 경정님도 아는 거 아닌가요? 그런데 지금 경찰대 출신도 아니면서 출세길을 달리게 되셨다고 중양서 경찰서장이라는 사람이 이런 식으로 굴어도 되는 겁니까? 괜찮대요, 일이 더 커져도?”


“그건....”


“아니냐구요!”


교수의 다그치는 목소리에 경정이 궁색하게 대답했다.


“말씀하신 대로입니다. 그런데, 교수님. 제가 이야기 듣기로도 그렇고 지금 이렇게 이야기를 나눠봐도 저희 경찰에 대해서 내부 사정도 잘 아시는 듯하고, 무엇보다 언론에 터트리실 생각이셨으면 벌써 터트리셨을 텐데, 그렇게 하지 않으시고 이렇게 경찰 내부에서 정리하기를 종용하시고 기회를 주시는 걸 보면 저희들에 대한 애정도 분명히 있으신 분이라고 느꼈습니다. 그러니 이번 한 번만 저희가 이 사건에 대해서 확실하게 재수사해서 잘못한 피의자에 대해서 확실하게 처벌받을 수 있도록 제대로 처리할 테니 한 번만 기회를 좀 주십시오.”


“후우!”


예의를 갖추고 잘못했다며 양해를 구하는 사람을 더 다그칠 수가 없던 교수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럼 어떻게 처리하실 건지 좀 들어봐도 되겠습니까?”


교수가 그에게 물었다. 그는 교수의 누그러진 태도에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바로 준비된 멘트를 읊기 시작했다.


“제가 이 사건을 저희 여청과의 강력수사팀 팀장에게 직접 배당해서 재수사하도록 하겠습니다. 워낙 베테랑이니 확실하게 수사하고 마무리할 겁니다.”


“그러면 내가 과장님 말을 믿고 재수사로 확실하게 진실을 밝힐 수 있을 거라고 믿어도 되겠습니까?”


교수의 순진한 질문에 과장이 그제서야 편안한 웃음을 터트리며 목소리에 힘을 주며 말했다.


“저도 이번 인사이동에 인사 대상자입니다. 그러니 조용히 저희가 내사사건으로 처리해서 잘못한 자가 확실하게 처벌받을 수 있도록 처리하겠습니다. 그러니 믿고 맡겨주십시오. 다시는 앞에서 겪으신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단단히 조치해두도록 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러면 내가 뭘 어떻게 협조하면 재수사가 조속히 처리가 되겠습니까?”


“특별히 하실 것도 없게 그저 참고인 조사 한번 나오셔서 진술해주시면 되겠습니다. 제가 팀장 통해서 바로 교수님의 사건을 최우선으로 재수사하여 마무리 짓도록 지시해두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렇게 이해해주셔서. 저희 경찰 조직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이렇게 일을 크게 벌이지 않으시고 기회를 주신 것도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서장 말인데요...”


교수가 다시 서장에 대해 언급하자 과장이 신나 하던 목소리에서 움찔했다.


“네.”


“최소한 자기가 무관하지 않은 총괄 책임자면 홈페이지 통해서 기록까지 남겨가며 면담을 요청했는데, 어쨌거나 그 사람이 서장을 하던 시기에 벌어진 직무유기 사건 아닙니까? 그러면 최소한 들여다보고 뭔가 조치를 했어야지, 이렇게 부하를 시켜서 대강 넘어가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제가 다시 한번 우리 과장님, 아니 서장님에게 연락 넣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최대한 빨리 진술조사 날짜 잡고 교수님에게 연락드리도록 팀장에게 조치해두도록 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교수가 가만히 전화를 끊으며 ‘통화 녹음이 저장되었습니다.’라는 글을 보았다.


다음 편은 여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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