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학대 그 세 번째 수사(아동학대 특별수사팀) - 5
지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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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100% 실화에 근거한 이야기임을 밝혀둡니다.
“경찰 조직에서 인사이동이 정기인사만 있는 건 아니니까요.”
“네?”
교수가 어이가 없는 그녀의 당당한 대꾸에 말꼬리가 날카롭게 올라갔다.
“그러면 두 달이 넘도록 수사는 어떻게 되었나요? 거의 종결된 건가요?”
“아니요.”
대답은 짧았다.
“아니라니요? 어떤 사건인지 안다는 투로 말하네요?”
교수가 툭하고 쨉을 날렸다. 날름거리며 대답을 냉큼 내뱉던 그녀가 주춤하며 대답을 못했다.
“네?”
“아니, 내가 누군지 어떤 사건인지 아직 말해주지 않았는데 내가 누군지, 사건이 어떤 사건인지 잘 알고 있다는 식으로 말하잖아요, 장 경위가 맡았던 사건이 내 사건 하나뿐일 리도 없는데 말이죠.”
“아, 저는 일반적인 상황을 말씀드린 거구요. 지금 전화주신 선생님의 사건이 어떤 사건인지 알고 있어서 말씀드린 것은 아닙니다.”
갑작스럽게 납작 엎드려 태도를 공손하게 바꾼 그녀가 조심스럽게 김 교수의 눈치를 살폈다.
“입건된 지 두 달이나 지난 사건을 아예 손대지 않는 경우가 다반사인가 보지요?”
빈틈을 결코 모른 척 넘어가 주지 않는 교수의 날카로운 훅이 묵직하게 그녀의 가장 아픈 부위에 가서 꽂혔다.
“아니, 그게, 그러니까....”
“아동학대 ‘특. 별.’ 수사팀 아니던가요?”
특별하다는 의미를 부각하며 그녀의 허술함을 후벼 파듯 교수의 악센트가 ‘특별’이라는 단어에 방점을 찍듯 수화기에 울렸다.
“네. 맞습니다. 뭘 말씀하고 싶으신 거죠?”
걸걸한 걸 크러시를 떠오르게 하는 선머슴 같은 여자 경사의 목소리가 걸걸하게 맞서 나왔다.
“일반 경찰서에서도 사건을 처리하는데 사건 처리 기한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특별수사팀에서 사건을 조사하고 입건을 결정한 후에 두 달이 지났는데 수사를 종결하지 않았다고 하니 당연히 이상해서 묻는 말입니다.”
“특별수사팀이라고 해서 수사를 빨리 하거나 하는 건 아니구요. 저희도 일이 워낙 많기 때문에...”
“그런데 담당이 바뀌었는데도 연락을 미리 안 주고 그러나보죠?”
교수의 연이은 묵직한 훅이 그녀의 급소 여기저기 꽂히며 그녀를 정신 못 차리게 했다.
“아니요. 제가 이제 찬찬히 맡은 사건을 파악하면서 인수인계받아서 연락을 드리려고 했죠.”
“언제 인사 발령이 나서 오신 거죠?”
“네? 아니 그것까지 제가 선생님에게 말씀드릴 이유는 없을 것 같구요.”
걸걸한 목소리의 걸 크러시 그녀도 아마도 특별수사팀에 새로 발령받은 지 몇 주는 족히 되었다고 당당히 말할 수는 없는 듯했다.
“그러면 전화가 연결된 김에 사건에 대해 확인 좀 부탁하겠습니다. 최소한 수사가 어느 정도는 진행되었겠죠. 요청할 자료도 많다고 장 경위가 얘기해서 혹시라도 채근하는 것처럼 보일까 싶어서 연락도 안 하고 기다리고 기다리다가 연락한 건데, 더 늦게 연락했더라면 아예 처음부터 다시 수사한다는 말을 들을 뻔했네요.”
“지금 입건된 이후에 아무런 수사도 진행되지 않았습니다.”
“네? 내가 누군지, 사건이 어떤 사건인지 아는군요?”
“네?”
그녀는 이미 교수가 누구인지 그리고 어떤 사건인지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내내 잘 모르고 일반론적으로 대답하는 것이라는 멍청한 거짓말을 하기에는 앞뒤가 맞지 않는 말들을 너무 많이 내뱉어버린 후였다.
“저어, 그게 경찰에 대한 진정서를 함께 내신 분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녀는 그제야 순순히 전화를 받는 것만으로도 번호를 확인하며 교수가 누구고 왜 연락을 했는지 긴장하고 기다리고 있었음을 순순히 인정하듯 말했다.
“다시 묻죠. 거기가 일반 경찰서인가요? 아니면 ‘아. 동. 학. 대’ 특별수사팀인가요?”
이번에 김 교수는 아동학대에 하나하나 악센트를 찍으며 그녀가 뜬금없이 경찰의 직무유기에 대해 지적한 것을 언급한 것에 잘못된 부분을 집었다.
“아동학대 특별 수사팀 맞습니다. 왜 자꾸 그렇게 똑같은 질문을 하시는 거죠?”
그녀는 김 교수의 질문이 왜 아픈지조차 이해를 잘 못하고 있는 티를 냈다.
“아동학대에 대한 수사를 묻는데, 왜 경찰에 대해 진정서 낸 걸 말하느냐고 묻는 겁니다.”
“네? 아, 그게...”
일일이 설명을 해주고 나서야 그녀는 자신이 맞은 곳이 왜 아픈지 그곳이 왜 급소였는지를 뒤늦게 이해하는 티를 또다시 냈다.
“원래 경위가 맡던 일은 경위 직급의 담당자가 맡지 않나요?”
“반드시 그렇지는 않습니다. 제가 경사라고 불편하신가요?”
그녀 역시 성깔이 있다는 듯이 한 마디도 지지 않겠다는 기세로 다시 교수에게 맞섰다.
“아니요. 직급보다는 제대로 수사를 했다는 설명을 좀 듣고 싶어서요.”
“제가 맡았고, 사실 사건이 워낙 많아서 그 사건에 대해서는 다시 시작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네? 다시요?”
농담처럼 ‘다시 시작하는 것은 아니겠지요?’라고 물을 판이었는데 그녀가 대놓고 먼저 그렇게 말하니 교수는 어이가 없었다.
“사건이 워낙 복잡하고, 이게 일사부재리에 해당하는 사건을 입건한 게 아닌가 하는 부분도 있어서 제가 재검토를 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이 사건에 대해 이미 검토를 했군요?”
그녀는 입을 열 때마다 자신이 뭘 숨기고 있고, 그녀와 그녀의 상관이 어떤 작전으로 이 사건을 덮고 있었는지를 낱낱이 알려주기로 작정한 사람처럼 진실을 줄줄 흘렸다.
“내가 좋게 이해를 하려고 해도 도저히 이해가 안 되네요. 입건을 한 사람이 다른 부서로 가면 수사를 완전히 다시 합니까? 입건이 되었다는 건 수사를 진행하겠다고 결정했다는 건데, 지금 다시 일사부재리가 어떻고 하면서 그 부분까지 다시 재검토를 하겠다는 저의가 뭡니까?”
“선생님. 너무 흥분하지 마시구요. 저의 같은 건 없구요. 저희는 원칙적으로 일을 처리할 뿐입니다.”
그녀가 득의양양한 갑의 입장을 누리듯 여유 있는 말투로 돌아와 김 교수를 달래듯 말했다.
“원칙적으로 입건된 사건이 두 달이 넘도록 수사조차 진행되지 않은 것도 이상한데 갑자기 담당자가 특별 수사팀에서 배제되어 다른 부서로 이동했다는 것도 그렇고, 지금 새로 사건을 배당받았다는 담당자가 사건을 조사하기 전에 ‘원칙적으로’ 고소인이나 고발인에게 담당이 바뀌었음을 고지해야 하는데 그것도 하지 않은 사람의 입에서 나온 ‘원칙대로 수사를 처리한다’는 말을 지금 나더러 믿으라는 거잖아요?”
아주 잠시 자신이 우위라고 착각했던 그녀는 다시 말문이 막혔다.
“지금 전임자인 장 경위가 잘못 입건했다고 경사인 전화받는 사람이 다시 검토하겠다는 게 경찰의 원칙적인 수사방식이라는 거냐고 묻고 있습니다.”
“다른 건 모르겠고, 저희는 공정하게 수사할 뿐이고, 원칙대로 처리할 뿐입니다. 그게 지금 말씀드릴 수 있는 전부입니다.”
“묻는 말에 답을 제대로 해줘요, 쓸데없는 소리로 이야기를 회피하지 말구요.”
“회피한 적 없구요. 제가 지금 검토 중이고요. 이렇게 전화를 주셨으니 간략하게 몇 가지 그럼 요청을 드리겠습니다.”
“요청이요?”
“네. 일단 지금 제출하신 현직 경찰이 재수사를 하는 과정에서 사건을 왜곡했다는 선생님의 주장에 대해서 정식으로 형사 고소를 하시는 게 아니라면 일반 탄원서나 진정서의 형태로 한다는 확인서를 써주셔야 하겠습니다.”
“직무유기로 형사고소를 하려면요?”
그녀가 왜 그런 소리를 하는지 이미 의도를 읽고 있던 교수가 속에서 천불이 일어나며 그대로 이들이 원하는 대로 해주는 것이 의미가 없겠다고 생각하여 수류탄을 먼저 던졌다.
“네?”
“정식으로 직무유기로 고소장을 제출하면 되겠습니까?”
“아니, 그러니까, 지금 원래는 고소장을 제출하지 않으셨잖아요. 저희는 아동학대 특별수사팀인데 이전 수사를 잘못한 사람에 대한 내용을 저희 측에 고소하시는 건 원칙적으로 잘못....”
“지금 나한테 묻지 않았나요, 정식으로 고소를 원하는 것이라면 고소장을 제출하라고 안내하려던 거 아니었나요?”
“아니, 그게....”
대개 정식으로 뭔가 서류를 낼 거냐고 강하게 경찰이 압박을 하면 일반인들은 그렇게까지 해본 경험이 없거나 그렇게 하는 것이 자신에게 득이 되지 않는다는 사인을 이해해서 뒤로 물러선다. 그녀는 이제까지 그렇게 해왔던 것처럼 김 교수도 그럴 것이라고 여겨서 똑같은 제스처로 압박을 가했던 것이었다. 그녀는 교수가 제출한 문건을 검토하고 읽으면서도 교수가 어떤 캐릭터의 어느 정도의 내공을 가진 자신보다 몇 수 위에 있는 사람이라는 것조차 읽지 못했다.
“하아! 그렇게까지 하셔야 하나요?”
뜬금없이 그녀의 입에서 탄식이 흘러나오며 사정을 하듯이 말투가 바뀌었다.
“양자택일하라고 설명한 거잖아요?”
교수는 그녀가 왜 당혹스러워하는지 그리고 그녀가 뭘 노렸는지 명확하게 흐름을 읽고 있었다. 상대가 어느 정도의 수준인지 그리고 지금 대화의 주도권을 누가 잡고 있는지 상대의 빈틈이 무엇인지조차 그녀는 읽어낼 수준조차 되지 않았다.
“그렇게 설명드린 것은 아니구요. 그렇게 들으셨다면 제가 잘못 설명드렸나 봅니다.”
“그리고 아까 일사부재리 얘기를 꺼냈는데, 일사부재리의 원칙에 대해서 제대로 알고 있기는 한건가요?”
“선생님. 그런 식으로 저를 무시하는 투로 말씀하시면 대화를 진행하기가 곤란합니다.”
“내가 지금 경사를 무시했나요?”
“제가 일사부재리의 원칙도 모르고 얘기를 했다는 식으로....”
“그러면 이미 자신의 소속된 특별수사팀에서 정식으로 경찰 시스템에 등록되어 입건된 사건에 대해 일사부재리를 검토해봐야겠다고 말하는 게 정상이라고 우기고 싶은 건가요?”
교수의 불쾌감이 대화의 날을 시퍼렇게 서도록 갈아 나온 칼날에 푸른빛마저 감도는 듯했다.
“그건...”
“장 경위가 그것 때문에 몇 시간이나 나와 통화를 하고 상관과 회의를 거쳐 입건한 겁니다. 그런데 지금 와서 담당 수사관이 바뀌었으니 입건 사실도 다시 뒤바꾸나요? 요즘 경찰에서는 그렇게 수사합니까?”
“아닙니다. 그렇게 안 합니다. 입건된 건은 수사합니다. 다만...”
“다만...?”
뭔가 토를 달 게 또 무엇이 있느냐며 교수가 그녀의 뒷말을 그대로 받았다.
“이 사건에서 핵심인 아이를 던지려고 했다는 사실에 대한 증명이나 증거가 어디에도 없지 않습니까?”
아까까지만 해도 사건에 대해 전혀 모른다던 그녀의 입에서 구체적인 사건의 핵심 사안까지 튀어나왔다.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나요?”
교수는 몇 년에 걸쳐 몇 번이나 이런 대화를 반복하다 보니 지금 그녀가 이 사안에 대해 제대로 전체 증거를 파악하지도 않고 상관을 통해 핵심 내용만을 전달해서 명령받았다는 확신이 들었다.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시죠?”
그녀도 교수의 핵심 찌르기가 정확하게 어디를 왜 찌르는지는 몰라도 느낌상 자신의 실수에 대해 여지없이 빈틈을 파고 들어온다는 것은 알았기에 조심스럽게 다시 되물으며 흐름을 파악하려 안간힘을 썼다.
“이게 세 번째 수사라는 건 알죠?”
“네.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 첫 번째 수사와 두 번째 수사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왜 세 번째 수사에서 장 경위가 이 사건을 정식으로 입건했는지부터 먼저 파악해야 하지 않나요?”
“그건....”
교수가 생각했던 대로 그녀는 서류를 통해 초동수사의 수사결과 통지서나 재수사를 하면서 무엇이 쟁점이었는지를 정리한 교수의 문건을 읽지 않은 듯했다.
“초동 수사관이 직접 작성한 수사결과 통지서라는 게 있어요.”
“예. 알고 있습니다.”
“알고 있으면 뭐라고 적혀 있는지 확실하게 확인하고 다시 전화 주세요. 내용이 그리 길지도 않아요. A4 3장입니다.”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