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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검무적 Aug 31. 2021

21살에 지독한 고통과 함께 시한부 선고를 받았더라도

나는 기꺼이 내게 주어진 인생을 즐겁게 살아가고야 말 것이다.

1942년 영국의 옥스퍼드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모는 모두 옥스퍼드 대학교를 졸업한 인재였고, 그의 아버지는 그가 8살 때 국립의료원의 기생충 교실 과장을 맡았다.


식사를 할 때 한 명씩 조용하게 책을 읽은 뒤에 밥을 먹는 적이 많았다고 한다. 특이하게도 그는 세인트 앨번스 소녀 학교를 다녔는데, 이 학교는 여학교였지만 소년들이 10살까지 다닐 수 있던 학교였다고 한다.


그는 1959년에 17세의 나이로 옥스퍼드 대학교에 입학한다. 사실 옥스퍼드에 입학할 정도로 등수가 뛰어나지 않았지만 물리학 시험성적이 워낙 뛰어나 시험관을 놀라게 한 덕에 입학할 수 있었다고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물리학보다 수학을 좋아해서 수학을 전공으로 삼고 싶어 했다.


그렇지만 그가 수학교수가 없는 옥스퍼드 대학의 유니버시티 칼리지로부터 장학금을 받아서 입학했기 때문에 수학을 전공할 수 없었고, 대안으로 물리학을 선택하게 된다. 그는 다른 학생들에 비해서 어렸고 왜소했으며 내성적이었기 때문에 친구들이 거의 없었다. 첫 1년 반 동안 그는 대부분의 시간을 '아싸'로 대학생활을 했다.


그렇지만 2학년 중반 이후에 다른 친구들과 어울리기 위해 노력했고, 이런 노력은 특히 그가 옥스퍼드 조정 팀에 키잡이로 들어가면서 결실을 보았다. 조정 팀은 보통 체격이 좋은 선수들로 구성되어 있지만, 키잡이는 노를 젓지 않기 때문에 왜소한 학생을 원했고, 그는 팀 리더와도 비슷한 키잡이 역할을 아주 잘 수행했다. 그는 조정 팀과 연습을 할 때 하루 여섯 시간씩 보트를 탔고, 물리학 실험을 빼먹기 일쑤였다.

그는 옥스퍼드에서 자연과학 분야의 최우등 학위를 받고 대학을 졸업한 뒤에, 1962년 10월에 케임브리지 대학의 스키아마(Dennis Sciama, 1926~1999) 교수와 우주론과 일반 상대성을 공부하기 위해 케임브리지 대학원에 진학했다.


옥스퍼드 대학교의 졸업반이었을 때 그는 계단에서 굴러 떨어지는  어이없는 사고를 경험하기 시작했는데, 이런 사고는 케임브리지에 와서 더 심해졌다. 그의 어머니는 의사찾았고, 의사는 그에게 흔히 '루게릭병'이라고 불리는, '근위축성 측색 경화증(Amyotrophic Lateral Sclerosis, ALS)'이라는 희귀병에 걸린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때 그의 나이가 21살이었는데, 의사는 그가 길어야 2년 정도의 시한부 삶을 살 것이라고 예견했다. 그렇지만 그는 좌절하기는커녕 삶에 더 적극적이 되어갔다. 병으로 인해 근육이 점점 마비되어 책 한 장조차 넘기기 힘들고 줄의 공식조차 써 내려갈 수 없는 상태가 되었지만 암산으로 수식을 푸는 등 혼신의 노력을 쏟아부어 결국 박사 학위를 따냈다.

젊은 시절의 스티븐 호킹

병이 병인지라 병원비가 부족해져서 경제적 곤란을 겪었지만, 때마침 그의 저서 <시간의 역사>가 대성공을 거둬 돈걱정을 하지 않아도 될 정도의 스타덤에 오르게 된다. 그는 당시까지 자세히 밝혀지지 않았던 블랙홀의 특징들에 대해 정리하고, 우주에 관련된 일련의 논문들을 연이어 발표하며 일약 세계적인 물리학자가 되었다.

영국의 물리학자로 세부 전공은 우주론과 천체물리학이었던 케임브리지 대학교의 석좌교수이자 아인슈타인 이후 가장 유명한 물리학자로 손꼽히는 스티븐 윌리암 호킹(Stephen William Hawking)의 이야기이다.


일반인에게는 다소 생소했던 물리학을 대중적으로 알리는데 가장 큰 공헌을 남긴 강연자이며, 대표적인 저서로는 <시간의 역사>와 <위대한 설계> 등이 있다. 특히, <시간의 역사>는 전 세계적으로 천만 부 이상이 팔린 초 베스트셀러이다. 책을 산 사람은 많지만 끝까지 다 읽은 사람은 얼마 없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교양서 치고는 레벨이 상당히 높은 편이다. 그의 저술 이후 나오는 상대성이론이나 양자역학과 관련된 책들의 서술은 거의 그의 서술방식을 답습하고 있다.


사실, 호킹이 유명해지기 시작한 계기는, 1964년에 있던 공개 강연에서 케임브리지 대학교의 저명한 천체물리학자인 프레드 호일(Fred Hoyle, 1915~2001)을 공개적으로 비판한 사건부터였다. 그는 블랙홀에 적용되던 특이점(singularity, 블랙홀의 중심에 있는 밀도가 무한대인 점)을 우주 전체에 적용해서, 우주가 팽창하고 일반 상대성 이론이 참이라면, 이 우주 전체가 하나의 특이점에서 탄생해야 한다는 이론을 수학적으로 증명하는 논문을 발표했다. 그는 이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이후 몇 년 동안에 이 주제에 대한 연구를 더 발전시켰다. 호킹의 연구에 따르면 우주는 빅뱅으로 시작해서, 블랙홀로 종말을 맞는다는 결론을 가지고 있었다.  

병이 발병하기 전의 건강했던 그의 모습

호킹은 1975년에 케임브리지 대학교의 응용 수학 및 이론 물리학과의 교수가 되었고, 1979년에 명예로운 루카스(Lucas) 좌 석좌교수 자리까지 오르게 된다. 이 자리는 뉴턴을 비롯해서 쟁쟁한 수학자, 물리학자들이 거쳐 간 바로 그 자리였다. 그렇지만 비슷한 시기에 호킹의 건강은 다시 악화되었고, 집에 상주하는 간호사까지 둬야 할 상황이 된다.


호킹은 21세기에도 꾸준히 저술활동과 전 세계를 도는 강연 활동을 통해 정력적으로 활동했다. 그의 한마디 한마디는 미디어의 주목을 받았는데, 2011년에 '현대 사회에서 철학은 죽었다.'라고 선언하면서, 과거에 철학이 했던 일의 대부분은 과학에 의해서 질문되며 답을 얻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같은 해에 호킹은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것을 믿을 자유가 있다. 그리고 내 관점에 의하면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가장 단순한 설명이다.”라고 자신의 종교관을 피력했고, 이는 유신론자들을 분노케 했다. 그는 2008년에는 “우주의 광활함을 고려했을 때, 우주 어딘가에 원시적인 형태의 외계인이 살고 있을 가능성이 충분하며, 지적 생명체의 존재 또한 가능하다.”라고 했으며, 2015년에는 인간보다 똑똑한 인공지능의 개발은 인류의 멸망을 초래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그렇게 점점 악화되는 육체를 활용하기 위해 신체를 기계에 의지한 채 꿋꿋이 살아오며 물리학, 천문학계에 혁신을 가져온 호킹 박사는 2018년 3월 14일, 케임브리지에 있는 자택에서 사망했다. 21세에 1~2년 정도 살 거라는 사망선고를 받고도 무려 55년이나 더 산 것을 보면 그야말로 기적이라고 의학계에서 칭할 정도였다.

건강함을 유지했던 스티븐 호킹의 결혼 당시 사진

그는 루게릭병을 진단받기 직전, 여동생의 친구인 제인 와일드(Jane Wilde)라는 문학도였던 여성을 파티에서 만나서 사랑에 빠진다. 이들은 호킹이 루게릭병을 진단받은 뒤인 1964년에 약혼을 했고, 그 이듬해에 결혼했다. 그녀는 호킹을 병원이 아닌 집에서 치료해야 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으며, 호킹의 증세가 점점 더 나빠질 때도 옆에서 간호하면서 그를 격려했다. 스티븐 호킹과 제인 와일드 호킹 부부는 세 자녀를 두었다. (25년간의 결혼생활 끝에 이혼하고 바로 다른 여자와 재혼한 사실은 별론으로 하자. 25년 사는 동안만큼은 사랑했을 테니)

스티븐 호킹의 단란했던 가족사진

길어도 2년을 넘을 수 없었다던 시한부 인생을 55년이나 기계의 힘을 빌면서까지 76세의 생으로 이끌었던 그의 기적은 어디에서 비롯되었을까?

엄청나게 내성적인 성격이었던 그는 운동을 하기 시작하면서 적극적이고 유머러스한 성격으로 '아싸'를 벗어났다고 한다. 그리고 오히려 병이 생기고 나서 더욱 유머러스함이 격을 더해갔다고 전한다.

손가락으로 자유롭게 대화할 수 있던 시절에는 보조자의 도움으로 식사를 하는 동안 손으로 열심히 마우스를 움직여 온갖 개그를 구사해 옆에서 같이 밥 먹던 동료 학자들을 격뿜시켰다는 증언도 있고, 심지어는 강연 도중 자신의 음성합성기의 음원 제공자가 미국인인 MIT 물리학 교수의 목소리라서 자신의 고급스러운 영국식 발음이 제대로 표현되지 않아 유감스럽다는 식의 애드리브까지 구사해서 수강자들을 그야말로 빵 터뜨렸다는 일화도 있다.

"삶이 웃기지 않았더라면 비극이었을 것이다."

태어나서부터 장애를 가지고 있는 이와 청장년기에 사고로 인해 장애를 얻은 사람에게는 큰 차이가 있다.

자신이 건강했던 시기를 기억한다는 것은 어떤 점에서는 좌절이 훨씬 더 크다.

자신이 했던 것, 자신이 봤던 것, 자신이 누렸던 것을 제대로 할 수 없다는 것은 그것을 해보지도 못한 사람의 좌절과는 또 다른 의미에서, 단어 그대로 '좌절'이라는 것을 느낄 수밖에 없게 한다.

그런데 호킹의 삶을 차분히 들여다보면, 그는 병의 진단을 받은 다음 해에 약혼을 하고 병의 고통이 시작되던 그 이듬해에 과감히(?) 사랑에 빠졌던 여자와 결혼을 했다.

학계의 거두로 불리던 인물의 공개 강연에서 폭탄발언을 하며 강연자를 전면적으로 비판했던 그 해가 그가 루게릭병을 진단받은 직후였다는 것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아마도 이 글을 읽는 당신은 장애를 가지고 있을 확률이 매우 낮을 것이라 생각된다.

장애를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이 글을 읽고 이해하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으니 상관없긴 하다.

굳이 학자로서 잘 나가기 직전, 박사학위를 완성하기 직전의 그가 제대로 글 한 줄 쓸 수조차 없는 지경의 고통을 받던 병으로 장애를 얻게 되었다는 것은 그에게 있어서만이 아닌 일반적으로 절망에 가까웠을 것이다.

그리고 말 그대로 앞으로 남은 생이 1~2년 정도라는 시한부 사형선고까지 받게 되면 웬만한 사람은 박사학위니 결혼 따위는 꿈도 꿔보지 못하고 좌절과 절망에 휩싸여 죽음을 맞이하였을 것이다.


그런데 그는 결국 그것들을 모두 극복해냈고,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스타작가이자 물리학자로 전 세계로 강연을 다녔으며, 세계적인 석학만이 차지한다는 케임브리지대학의 석좌 교수직에 올랐고, 시한부 선고를 받고서도 3명의 자녀를 낳고, 55년이나 되는 인생을 살다가 76세에 영면하였다.


당신이라면 가능했겠는가?

그가 일반 사람들과 달리, 아기였을 때 클립톤 행성에서 지구로 날아온 슈퍼맨이었다고 생각하는가?

물론, 그의 부모가 석학이었고, 어려서부터 제대로 된 가정교육과 훌륭한 교육을 받은 것도 무시할 수는 없다.

밥상머리 교육이 위인을 만든다는 사실은 수천 년 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불변의 사실이니까.

그러나 그것만으로 그가 누구보다 강한 철인의 삶을 살았던 것을 모두 설명할 수는 없다.

그는 고통을 유머로 승화시킬 줄 알았고, 오히려 딱한 동정의 시선을 보내던 이들을 위로했다.


지금 당신이 겪고 있는 그 어떤 고통도 그가 스물하나에 맞았을 시한부 선고와 시간이 더해가면서 가해졌던, 뼈를 에이는 통증만 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내가 장담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당신은 힘들어 죽겠다고,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며 칭얼거리고 있는 거다.

그렇기 때문에 당신은 우연히 읽게 되었을 이 글을 통해 당신의 실패에 앞서, 당신 자신에 대해 관조할 필요가 있다.


호킹이 가지고 있었지만

당신은 가지고 있지 않은 것.

그가 정면으로 응시하였지만

당신은 외면하였던 바로 그것.


당신이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

당신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왜 살아야 하는지,

그 강한 의지와 더불어

결코 하찮은 운명의 장난 따위에 놀아나지 않겠다는 강한 자신감과 피나는 노력만이

당신의 삶을 지금의 나락에서 끄집어내어 저 꼭대기로 올려줄 수 있을 것이다.


그는 그 고통을 웃으며 이겨냈고

자신보다 더 고통스러워하며 자신을 지켜봐야만 했던  사랑하는 이들을 웃겨가면서 이겨냈다.


당신이 못할 이유가 없다.

나는 당신이 그보다 더 잘 당신의 인생을 살아낼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내가 당신을 믿고,

당신이 사랑하는 이들이 당신을 믿는다.

그런데 당신이 당신을 못 미더워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일어나라.

당신은 반드시 해낼 수 있는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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