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 사무실에 고용되기 전에 관공서의 공무원 법률과장을 오래 지냈던 황 변호사는 그녀의 방어기제가 작동하는 것을 모두 예상한 것처럼 조근조근 속삭이듯 말을 이어나갔다.
“이 쪽에 자료가 분명히 있다는 거지요?”
그의 부드러운 반응이 어리숙해 보였는지 그녀가 다시 강한 표정을 지어 보이며 공세로 태도를 전환했다.
“그렇지만 법원이랑 똑같습니다. 우리는 직접적으로 그 조사보고서나 증거를 당신에게 제공할 수 없어요. 우리가 그 자료를 나중에 법원에 보내면, 당신이 법원의 명령을 통해서 받아가던가 신청해야 하는 것이고 그렇게 하지 않으면 우리는 지금 직접 내줄 수 없어요.”
“우리가 파악한 바에 따르면, 내 변호사가 행정절차상 정당한 내 변호를 위해 필요하다고 요청할 경우에는 복사본을 우리에게 제공해야 한다고 하는데요.”
“아니요, 아니요. 그건 안 됩니다. 우리는 현장에서 보여주는 거는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미 사법절차가 진행 중이잖아요? 보여줄 수 있는 있어도 제공할 수는 없습니다. 법원의 명령을 받아 가지고 오세요.”
“그러니까 우리가 지금 요청하는 거 아닙니까? 나 개인이 요청하는 게 아니라 내 법률대리인이 학교에서 진행되는 행정절차의 내 변호를 위해 자료가 필요하다고 하면 요청할 수 있는 거 아닙니까?”
“여기서 보여주는 것도 정식으로 신청하고 그게 통과되어야만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성평회의 조사보고서에 대한 것도 묻지요. 그것에 대한 복사본은 왜 제공하지 않고 열람만 가능하다는 말도 안 되는 코미디 같은 이유로 아까 단과대 회의 직전에 5분만 보여준다는 짓을 하더군요. 심지어 옆에서 감시하고 복사도 안 된다고 하면서, 사진 찍는 것도 안 된다고 절대 내어주지 않는 거지요?”
“아! 이 분들이 이해를 못하시네. 내가 지금 가서 성평회 관련법을 가지고 와서 보여줄게요.”
말은 성평회 관련법을 찾으러 간다고 했지만 그녀가 황급히 누군가에게 상의를 하기 위해 자리를 피한다는 것쯤은 박 교수와 황 변호사도 짐작할 수 있었다. 잠시 그녀가 자리를 피하자, 박 교수가 핸드폰을 들어 보이며 황 변호사에게 말했다.
“지금 이 대화를 모두 녹음 중입니다. 저 여자가 함부로 아무런 말이나 하면서 이 상황을 모면하려고 들 경우 불법적 요소가 있다면 증거로 활용할 수 있겠지요?”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구체적인 사항들을 지금 물은 겁니다.”
황 변호사도 둔한 생김새와는 달리 눈치가 빠른 스타일이었다.
“왜 저 여자가 화내는 줄 모르지요? 랴오츠리엔의 통화 녹음 사건 때문입니다.”
그녀가 신경질적으로 반응하는 이유에 대해 박 교수가 설명을 시작했다.
“네?
“전에 조사과정에 대한 녹취록을 확인하고 서명하라고 하는 자리에서 자료를 정리하면서, 문제의 랴오츠리엔의 통화 녹음이 본래 28분인데 6분 정도만 악의적으로 부분 발췌되었다고 따지면서 화를 냈거든요. 그랬더니 저 여자가 세 사람의 조사위원들이 성희롱이 성립한다고 한 주요한 이유는 그 녹음과는 아무런 영향이 없다면서 버젓이 그 녹음은 증거로서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않았다고 하는 거예요. 황 변호사는 알고 있겠지만 학교나 관련자들이 하도 거짓말을 하두 많이 해서 내가 모든 통화와 대화를 녹취하고 있거든요. 내가 저 여자와의 그간 대화를 모두 녹취했거든요. 그런데 오늘 우리가 봤지만 전에 학과 교평회에서 이상한 문건을 보면서 한 무식한 대만 교수가 통화내용에 대한 걸로 시비를 걸길래 이상해서 이 여자한테 따지러 왔었어요. ‘너 전에 나랑 얘기할 때 그 녹취 건은 결과에 영향을 끼치지 않았다고 하지 않았냐?’라고 따졌더니, ‘내가 언제 그런 얘기를 했다고 그러냐?’라고 하잖아요. 그래서 바로 ‘니가 그렇게 말한 거 다 녹음되어 있어.’라고 했더니 갑자기 막 화를 내면서 왜 녹음을 했냐고 말을 바꾸더라구요. 그래서 ‘니가 말을 맨날 바꾸니까 니가 거짓말하는 것을 증명하려고 그러는 거다.’라고 했더니 아무 대꾸도 못하더라구요. 그래서 나와 전화하거나 만나는 것 자체가 저 여자에게는 굉장히 부담스러운 일이 된 거예요. 그런데 지금 저 여자가 한 설명도 앞뒤가 안 맞지 않아요?”
“일단 지금 저 여자의 설명을 들어보고, 그간의 대화를 다 녹음해뒀으니까 이상한 부분이 있는지는 나중에 천천히 살펴보시지요.”
“실제로 지금 외교대 성평회의 담당 직원은 유일하게 저 여자 한 명뿐이에요. 저 여자가 유일한 성평회의 직원이란 말이죠. 심지어 조사보고서에 기재된 것처럼 저 여자도 ‘위원’이라고 되어 있어요. 심지어 저 여자가 나에게 그렇게까지 권했어요. 결과가 나오기 전에 다른 학교로 옮겨버리면 아무런 문제 될 거 없으니까 그 방법도 생각해보라고. 그래서 저 여자는 내가 모두 녹음하고 자기가 거짓말한 것이 걸린 것 때문에 화를 내고 거리를 두는 거예요.”
“그렇군요.”
“지금 저 여자뿐만 아니라 학교 직원들이 모두 그래요.”
두 사람의 밀담을 끊으며 얼굴이 벌게진 여자가 돌아왔다.
“변호사님 이름이 뭐지요?”
“네. 황 변호사라고 합니다. 오늘 회의에 제 서명이 들어갔으니 단과대 학장실을 통해 확인하시면 될 겁니다.”
“알았어요. 자, 이게 학교 성평회 관련 규정입니다. 살펴보세요.”
아마도 누군가에게 다시 코치를 받고 어떻게 응대하라는 지시를 받고 왔을 터였다.
“여기 순서를 보면, 조사를 먼저 합니다. 사실이 무엇인지 보는 거죠. 그러고 나서 학과, 단과대학, 교수총회의 그렇게 3단계의 회의에서 결정을 하는 거죠.”
“이미 알고 있는 뻔한 내용은 다시 설명할 필요 없어요.”
박 교수의 단호한 설명에 그녀가 다시 박 교수를 기분 나쁘게 째려보고는 말을 돌렸다.
“그러니까 아직 조사가 완전히 끝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는 제공할 수가 없는 겁니다.”
조사가 다 끝나고 교평회의에 넘긴다고 설명한 지 3초도 지나지 않아 그녀는 조사가 완전히 끝난 것이 아닌 진행 중이라는 식으로 말을 바꿨다. 그러자 황 변호사가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처럼 물었다.
“외교대학교 성평회 관련 법령을 살펴보면 여기 25조에 조사보고서에 대해서 사건 당사자들에게 조사보고서는 반드시 제공하도록 규정되어 있습니다.”
“우리 규정에 그렇게 되어 있을 리가 없습니다.”
황 변호사의 아무렇지도 않은 지적에 그녀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코치받은 내용에 이런 공격이 올 것이라는 내용은 없었을 것이라고 박 교수는 이해했다.
“한번 보세요. 25조입니다.”
황 변호사는 관련 페이지를 거꾸로 펼쳐 보이며 그녀에게 내밀면서 확인사살을 하듯 한 마디를 덧붙였다.
“심지어는 ‘션푸’(申復; 이의신청)와도 관련이 되어 있습니다.”
그가 이의신청이라는 단어를 꺼내자 그녀가 기계적으로 반발하듯 외쳤다.
“당신들은 아직 션푸를 신청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녀의 대답을 듣는 동시에 박 교수와 황 변호사가 동시에 반발하듯 소리쳤다.
“여기서 말하는 션푸는 행정처리 결과에 대한 션푸(이의신청)가 아닙니다. 조사보고서가 문제가 있는 것에 대한 션푸인 것이지요.”
마치 서로 대본이라도 받은 것처럼 토씨도 하나 틀리지 않고 중국어로 한국인 교수와 대만인 변호사가 말하는 모습에 그녀가 약간 주눅이 든 표정으로 다시 서 있는 두 사람에게 의자를 권했다.
“아, 앉읍시다. 션푸면 션푸인 거지, 뭐가 그렇게 다르다고 또 다른 션푸라는 거죠? 우리는 사실관계를 다 알아보고 확인한 다음에 그렇게 진행하고 있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에는 황 변호사가 그녀의 말을 중간에 끊어버렸다.
“난 당신이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도저히 이해를 못 하겠군요. 잘 들으세요. 이미 조사위원회에서 조사보고서를 작성했다면 그것을 교수회의에 넘길 때 완성되었다는 것을 말하는 겁니다. 그러면 그것을 당사자에게 똑같이 전달해주지 않으면 그것은 불공정한 조사를 진행하겠다는 의도를 드러내는 것밖에 되지 않아요.”
“하지만 24조를 보세요. 변호사님. 이건 당연한 과정인 겁니다.”
“여기서 말하는 조사과정과 진행과정의 이 두 가지는 다른 두 가지의 과정을 말합니다.”
“네?”
“처리한 결과에 대한 것에, 사실관계에 대해 확인해야 하는 과정이 남아 있는데 당신들은 그것들을 정해진 법령에 의거해서 진행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일련의 과정의 공정성을 담보하고 당사자가 교평회의에서 자신의 권익을 변호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당사자의 변호를 위해 조사보고서를 제공해야 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당신들은 지금 학과회의에서도 그렇고 교평회 측에는 그 자료를 제공하면서 정작 당사자인 박 교수님에게는 절대 보여주지 않으려고 하고 있어요.”
“31조를 살펴보세요. 성평회 조사가 모두 끝나면 서면으로 주관기관인 교육부에 보내는 거지요. 그게 완전히 끝난 게 아니라는 거예요.”
그녀는 이제 자신이 무슨 설명을 하고 있는지조차 알아듣지 못하는 유체이탈 화법을 쓰고 있는 듯했다.
“당신이 무슨 말은 하고 싶어 하는지는 알겠지만, 그건 당신만의 설명일 뿐 전혀 법률이나 규정에 의거한 것이 아닙니다.”
내내 기다리다 참다못한 박 교수가 다시 포문을 열었다.
“이봐요, 당신 말 다 끝났어요? 내가 다시 설명하도록 하지요. 지금 황 변호사 말고 내가 고용한 법률사무소의 책임 변호사도 있는데 그의 법률적 의견에 따르면 조사가 완전히 끝나는 시점이 언제냐 아니냐를 떠나서, 결정을 내리는 교평회의 교수들에게는 제공을 하면서 정작 당사자인 나에게는 제공하지 않는 것 자체가 불공정하다는 것에 대한 정식 이의신청이고 문제제기인 겁니다. 당신들은 이미 교평회의 교수들에게 성평회 조사위원회의 의견이라는 걸 조사보고서의 형태로 제공했어요. 그게 완전한 것이든 아니든 말입니다.”
“이건 내 의견이 아니라 교육부에서도 이렇게 보는 의견입니다. 3등급의 세 단계 회의에 제공하는 건 우리는 상관없다고 보는 거지요.”
“그러니까 우리가 뭔가 증명하거나 반박하기 위해서는 의뢰인의 변호를 위해서도 변호인이 그 자료가 필요할 거 아닙니까? 그래야 그 자료에 대해 서면자료를 작성하든 뭐든 할 거 아니냐구요?”
“아니요. 제공은 안 되는 겁니다. 열람만 가능합니다. 열람하고 나서 변호에 필요한 부분이 있다면 서면으로 제출하거나 회의에 참석해서 구두로 변호하라는 거지요. 이미 교평회에서 그렇게 결정하고 지정한 사항입니다.”
마지막 그녀의 입에서 교평회의라는 말이 나오자 황변호사의 눈이 잠시였지만 반짝거렸다.
“그러면 제공할 수 없다는 사안을 교평회에서 결정하는 거라는 겁니까?”
“네. 보여주고 말고 하는 결정에 대해서는, 우리 성평회에서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교평회에서 결정하는 거예요.”
그녀는 다시 한번 자신의 말이 무슨 뜻인지 설명했다.
“당신의 말이 이제 무슨 의도인지 확실히 알아듣겠습니다.”
뭔가 핵심적인 사안을 얻어냈다는 듯한 표정의 황 변호사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당신들이 이렇게 갑자기 연락도 없이 불쑥 찾아오거나 이런 식으로 나를 찾는 것은 저에게 굉장한 스트레스이고 귀찮은 일입니다. 성평회의 처리와는 상관없이 이제 따로 사법처리가 시작되었으니 이렇게까지 복잡하게 귀찮게 하지 말아 주세요.”
“그러니까 학교 교평회에서 모든 것을 결정하고 지금 제공하지 말라고 시켰다는 거지요? 그걸 제공하고 아니고의 결정 문제에 대해서도 성평회는 관여하지 않는다는 거지요?”
눈치를 채라고 종용하는 사람처럼 황 변호사가 핵심이 무엇인지 알려주려는 듯 다시 강조하듯 물었다.
“성평회의 최종 결정만을 보내면 된다는 거지요? 우리의 이해와는 완전히 다릅니다만 어쨌거나 당신의 그 터무니없는 설명이 어떤 의도인지는 이해를 했습니다.”
영문을 모르는 것인지 알아차리지 못한 것인지 그녀는 그저 다시 대답을 반복할 뿐이었다.
“나도 성평회의 한 위원일 뿐입니다. 현장에서 보는 것은 상관이 없지만 절대 그 자료를 제공하지는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