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영무자(寧無子)는 나라에 도가 있으면 지혜롭고, 나라에 도가 없을 때에는 어리석었으니, 그 지혜는 따를 수 있으나 그 어리석음은 따를 수 없다.”
이번엔 영무자(寗武子)라는 이에 대한 평가이다. 칭찬을 하는 것 같기는 한데, 표현이 묘하다. 나라에 도가 있을 때는 지혜롭던 사람이 왜 나라에 도가 없을 때는 어리석다고 평가한 것일까? 또한, 지혜로운 것을 따를 수 있다고 하면서 왜 그 어리석음을 따를 수 없다고 한 것일까?
먼저, 영무자(寗武子)라는 인물이 누구인지 알아볼 필요가 있겠다.
영무자(寗武子)는 춘추시대 초기, 공자보다 약 1세기를 앞선 진문공(晉文公)시대의 위(衛)나라 대부로, 이름은 유(兪)라고 하였다.
진문공(晉文公)은 제환공(齊桓公)의 뒤를 이어 패자(覇者)가 된 사람으로 19년의 기나긴 유랑생활 끝에 군위(君位)에 오른 헌공의 아들 공자 중이(重耳)이다.
이때 위(衛)나라는 북방의 진(晉)나라와 남방의 초(楚)나라가 패권을 다투는 사이에서 고민하던 작은 나라였는데, 위(衛)나라의 국내 사정도 양 대국에 붙은 이들로 나뉘어 싸우는 통에, 군주였던 성공(成公)은 국외로 망명했다가 또다시 복귀하는 등 매우 어지러운 형국이었고, 정변이 끊이질 않았고, 영무자(寗武子)는 이러한 상황에서 대부(大夫)로서 나라와 군주를 지키고자 동분서주했던 인물이었다.
주자는 이 장에 대해 이렇게 해설하고 있다.
<春秋傳>을 상고해보면 영무자(寗武子)가 위(衛)나라에서 벼슬할 시기는 文公과 成公 때에 해당되는데, 文公은 도(道)가 있었으나 영무자(寗武子)는 볼만한 일이 없었으니, 이것이 그의 지혜를 따를 수 있다는 것이다. 成公은 無道하여 나라를 잃는 지경에 이르렀는데, 영무자(寗武子)는 그 사이에서 주선하여 몸과 마음을 다 바쳐서 어렵고 험난함을 피하지 않았다. 모든 그의 처세한 바는 지혜롭고 재주 있는 사람들은 모두 깊이 피하고 하려 하지 않는 것이었는데, 영무자(寗武子)는 마침내 자기 몸을 보전하고 그 임금을 구제하였으니, 이것이 그의 어리석음을 따를 수 없다는 것이다.
공자도 그러하였고, 주자 역시 <春秋傳>의 역사적 사실을 토대로 당대가 아닌 훨씬 윗세대의 일을 기록으로 살펴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의 해설에 따르면, 영무자(寗武子)는 두 임금을 섬겼는데, 첫 번째 임금인 文公때에는 도(道)가 있어 나라가 안정적이었고, 영무자(寗武子)의 역할을 찾아볼 만한 것이 역사서에도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고 설명한다.
그런데 文公 다음으로 섬겼던 成公때에는 無道하여 나라를 잃는 지경에 이르렀는데, 지혜롭고 재주 있다고 하는 자들은 모두 제 안위를 챙기느라 하지 않을 위험하고 어려운 일에 스스로 자진하여 나서 일을 처리하고 임금을 구제하였으니 그것을 ‘어리석음’이라 지칭한 공자의 설명을 풀었다.
즉, 원문의 공자가 말한 지혜로움과 어리석음의 기준은 공자의 기준이 아니라 세상 사람들의 기준이었던 것이다.
세상에 도(道)가 행해져 정치가 바르게 돌아갈 때, 진정 능력을 갖추고 똑똑한 인재는 그 모습과 진면목을 드러내지 않는다. 아니, 그럴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세상이 무도하여 혼란스럽고 언제 나라가 없어질지 모르는 상황에서는 똑똑한 자들은 저마다 제 목숨 하나 챙기겠다고 그 와중에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 자기 배를 불리겠다고 하는데, 정작 임금을 보필하고 그 난세를 구해내겠다고 하는 자는, 세상 사람들의 눈에는 어리석기 그지없는 것이다.
많이 읽고 공부해도 문을 못 열면 의미가 있을까?
자신의 목숨이 언제 날아갈지 모르는데 그 위험을 감수하고 바른말을 하고, 잘못된 것을 바로잡겠다고 하는 것이 그들의 눈에는 어리석기 그지없다는 것이다. 그 어리석음을 어느 누가 감히 따라잡을 수 있겠는가?
주자의 해석과는 다른 관점으로 이 장을 해석한 석학도 있었다. 정자(伊川)는 주자의 의견과는 약간 다른 예외를 언급하며 공자의 가르침을 조금 다르게 다음과 같이 해설한다.
“나라에 도가 없을 때에 자신을 드러내지 않아 화를 면하였다. 그러므로 따를 수 없다고 하신 것이다. 또한 어리석어서는 안 될 경우가 있으니, 비간(比干)이 이 경우이다.”
정자(程子)의 의견이 나온 배경은, 은(殷)나라 마지막 30대 주왕(紂王)의 숙부였던 비간(比干)의 이야기이다. 목불인견(目不忍見)의 학정(虐政)을 거듭하는 주군이자 조카의 모습을 본 비간(比干)이 죽음을 무릅쓰고 간(諫)하였던 이야기와 비교하여, 영무자(寗武子)가 전면에 나서지 않고 혼란했던 시기의 成公의 뒤에 잘못된 나라를 바로잡고 자신의 안위도 보전하였던 것에 비교하여 오히려, 그것은 정말로 어리석음이라 공자가 그 어리석은 따를 수 없다고 해설한 것이다.
정자(程子)가 어떤 생각에서 그렇게 주자와 다른 의견을 냈는지는 알겠으나, 만약 그렇다면 앞서 비교한 지혜로움에 대한 개념과의 대조가 명확하게 서지 않는다. 때문에 정자(程子)의 의견에서 말하고자 하는 예외의 상황을 인정하되, 전체적인 대의는 주자가 바로 새긴 것으로, 나는 받아들인다.
그리 멀지 않은 과거, 일제에게 나라를 빼앗겼던 시기에 우리는 이미 그러한 상황을 명확하게 확인한 바 있다. 우리나라가 세워졌다고 하는 그 고대부터 어느 한 때 태평성대가 있었겠는가 싶을 정도로 늘 시끄럽고 타민족의 침략과 내부에서의 분열로 시끄럽고 피비린내가 진동하긴 하였으나, 근대에 들어 가장 치욕스러운 것은 역시 일제 식민지 시대를 들 것이다.
그 시대에 제대로 임금을 보필하고 나라를 바로 세워 일제를 물리칠 수 있는 이들이 과연 조정에 있었는가? 가장 먼저 강대국에 붙어 저마다 자신의 이욕을 채우고 제 목숨 하나 보전하겠다고 하는 이들뿐이었다. 만약 신하 된 자로서, 그 난세에 전면에 나서 임금을 바로 세우고 나라를 바로 세우고 일제를 내쫓은 이가 있었다면 그가 새로운 대한민국을 열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삼국시대, 고려시대, 조선시대를 거치면서도 언제든 그렇게 타민족에게 굴욕적인 꼴을 당할 것을 알면서도 미연에 방지하고 준비하여 우리가 다른 나라를 치지는 못하더라도 어느 나라도 우리나라를, 우리 민족을 멋대로 유린할 수 없게 할 기회가 있었지만, 위정자들이라는 임금의 주변에 있던 것들 중에서 어느 한 명도 결국 그것을 이루지 못하였다.
의아할 것이다. 당신이 읽었던 수많은 우리 위인들 중에서 임금을 보필한 훌륭한 정승들이 얼마나 많은데, 우리가 쓰는 돈에도 박혀 있는데...당신이 어린 시절 읽은 위인전에, 국사시간에 배운 내용에는 그렇게 쓰여있었는지 모르겠지만, 단 한 번도 금서인 적이 없었으니 당신이 기회가 되면 <조선왕조실록>의 그들이 말한 회의록과 그들이 올린 정치적 색이 가득한 문건을 읽어보라. 그들을 위인전에 올리는 것이 정말 맞는 일인지...
그 전통은, 작금의 현대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친일파가 청산되지 못하고 그 자손들에게 부와 권력이 계승되고 지금의 정치하는 명문대가 출신에 교수니 판검사를 하는 것들을 역으로 올라가 보라. 지금 나라의 어른이라고 할만한 이가 있는지. 어쩌다 그렇게 되었느냐고?
아주 쉬운 최근에 벌어진 사례로 머리에 쏙쏙 들어갈 수 있게 간단히 설명해주마.
대한민국에 최근 시끄러웠던 ‘환경부’라는 정부부처가 있다. 2017년에 국정감사 때, 당시 야당이라고 하는 여자 국회의원이 당시 환경부 장관을 질책하며 호되게 물었다.
관피아에 대해 어떻게 정리할 거냐고, 당시(뭐 지금도 여전하지만) 존재하던 환경부 산하기관의 장이 왜 환경부 OB들로 그득 차 있는가 하는 것과 사원복지를 나랏돈 퍼주는 정도가 심하다며 호되게 질책했다.
그 산하기관 이사장의 연봉은 무려 2억이 훌쩍 넘어, 국무총리나 환경부 장관보다 더 많았다.
그 국정감사 내용을 유심히 보았던 사람이라면 저런 야당 여자 국회의원이라면 제대로 국정을 감시하고 국회의원일을 제대로 해서 나랏일을 한다고 인정할만하다고 하겠다며 감탄했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그 여자 국회의원은 자신의 국정 업적에 그 일을 자랑스럽게 자신의 국회의원 홍보에까지 올렸었다. 그런데 정말 그녀에게 기회가 왔다. 그녀가 올 1월에 환경부 장관에 취임하게 된 것이다.
환경부를 감시하던 국회의원 일을 하던 그녀가 그 부처의 장관이 되었으니, 이제 환경부만큼은 그 썩어빠진 전관 관피아의 관행들이 일거에 일소될 것이라, 4년 전의 국정감사를 봤던 이들이라며 기대했을 것이다.
그녀가 환경부 장관이 되고 나서 어떻게 되었을 것 같은가?
바뀐 것은 하나도 없다. 오히려 돈을 퍼다가 쓰는 산하기관은 더 늘어났고, 그곳의 직원과 수장은 다시 환경부 OB들로 채워졌다.
최근 이뤄진 관피아 전관 정황
정년퇴직은 , 그가 아직도 현역으로 훨씬 현역의 후배들보다 일을 더 잘하는데 그저 생리적 나이가 찼으니 나가라는 의미가 아니다. 실제로 그 나이가 되었을 즈음에 그의 업무 능력이나 능률이 그만큼 떨어지기 때문에 그리 하는 것이다. 그 근거로 업무 능률이라면 칼같이 차갑기로 유명한 사기업, 그 대기업들은 능력이 있는 자들을 결코 정년퇴직시키지 않는다. 다만 능력이 없으면 나이와 상관없이 명예퇴직으로 갈아버린다.
그런데 공직에 있는 자들만이 엄청나게 능력이 있는데 아쉽게 나이 때문에 나가라고 하고, 그 능력이 워낙 출중하여 나랏돈으로 운영되는 산하기관을 만들어 그들에게 현직에 있을 때보다 훨씬 더 많은 돈을 준다고 생각하는가?
LH 사태가 한국을 뒤흔든 지 얼마 되지도 않았지만, 그 결과로 얼마나 많은 LH의 전현직 간부나 OB들이 수갑을 차고 감옥에 보내졌는가?
없다. 그저 피라미들 적당히 자르고 그렇게 유지된다. 세월호 사태로 책임을 묻겠다며 없애겠다던 해경은 지금도 포부 당당하게 조직을 강화한다며 그 밥에 그 나물에 있던 놈들 그대로 간부직을 유지하고 승진하고 연금 받아먹고 산다.
문재인 정권 초기 여성 장관 시대를 연다면 뽑았던 최장기 장관이자, 외교부 지침을 어기는 교수인 남편의 고집도 못 꺾는다는 흰머리 통역출신 여자 장관은 어땠을 것 같은가? 나랏돈을 자기네 비싼 점심값으로 쓰다가 걸려도 그 문제를 덮기 위한 회의랍시고 또 업무비로 비싼 점심을 먹는 곳으로 유명한 그 외교부 말이다. 그녀가 수장으로 있다고 그 밑을 지키던 어느 한 명도 사정의 칼에 목이 달아나지도, 인사적 불이익도 받지 않았다.
그들이 당신과 다른, 유리된 세계에 산다고 생각하는가?
당신의 친구 아버지, 당신의 고모부, 당신의 이모가 그곳의 공무원이라며 일하는 자들이다.
그런 자들이 허수아비 여자 장관이 하나 새로 왔다고, 물론 그녀들이 사정의 칼을 뽑아 든 적조차도 없지만, 어차피 정권이 바뀌고 장관이 바뀐다고 그 밑의 실무진이, 실세들이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비아냥거리듯 말하는 것이 그 국장이고, 부장이고, 과장이다.
그런데 그 밑에 있는 이제 5급 6급, 한창 현장에서 일을 맡고 있는 7,8,9급들이 뭘 보고 뭘 배우겠는가? 그들이 그렇게 올라가서 당신의 세금을 축내고 있는 것이다.(심지어 내가 그런 한심한 여자 공무원에게 내 세금을 축내지 말라고 일갈했더니, 그녀가 거침없이 ‘나도 세금 냅니다!’라고 대들더라.)
아무도 줄을 서라고 하지 않아도 누군가 앞에 두 명정도만 줄을 서도 사람들은 눈치를 보며 그 뒤로 줄을 선다. 전 세계 공통이다.
사람의 심리가 그렇단 말이다. 그런데, 먼저 들어가려고 뭔가 먼저 받으려고 새치기가 벌어지고 누군가 열을 이탈하거나 뛰어들기 시작하면 그 열은, 그렇게 자연스럽게 만들어졌던 줄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무너져버린다.
내가 굳이 관피아를 예로 들고 법비(法匪)들의 전관예우를 사례로 들지 않은 것은, 그 얘기는 너무도 일반적이며 이제는 서민들까지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도무지 실무율의 범위가 너무 높아져 이제 아무런 자극조차 느끼지 않기 때문이다.
모두가 열을 이탈해서 뛰어들고 달려들어 제 몫을 챙기겠다고 하는 상황에서 줄을 지키고 있는 자는 어리석다 할 것이다. 매번 바뀌지도 않는 경찰과 검찰에 민원을 제기하고 그들이 잘못된 것을 바로잡아달라고 그 도둑들과 한패이면서 ‘감사실’이라는 명패를 달고 있는 또 다른 도둑들에게 내가 고함을 치고 또 치는 것은, 내가 진상이고 변태이기 때문이 아니다.
그 도둑들은 말한다. 우리 조직을 보호하는 것이고, 이게 뭐 그렇게 대단하게 큰 일이라고 이런 일을 문제 삼아 우리 식구의 밥그릇을 차 버리고, 아니면, 인사고과에 흠집을 내시려고 그러는 거냐고, 그냥 큰 문제 아니고 사람 죽은 것도 아니고, 엄청난 금괴 상자를 해먹은 것도 아니니까 넘어가자고 한다.
그 작자들이 국회의원이나 법비들이 뉴스에 나오는 것을 보며 욕한다.
당신이라면 당신과 함께 밥 먹고, 차 마시고, 이야기 나누는 그들의 이웃이고 가족이라며 맞장구치며 편을 들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