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살아야 ‘仁’에 부합하다는 인정을 받는가?

‘仁’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 사람이 부족한 것을 모르는 자들에게.

by 발검무적
子張問曰: “令尹子文, 三仕爲令尹, 無喜色, 三已之, 無慍色, 舊令尹之政, 必以告新令尹, 何如?” 子曰: “忠矣.” 曰: “仁矣乎?” 曰: “未知, 焉得仁?” “崔子弑齊君, 陳文子有馬十乘, 棄而違之, 至於他邦, 則曰: ‘猶吾大夫崔子也,’ 違之; 之一邦, 則又曰: ‘猶吾大夫崔子也,’ 違之, 何如?” 子曰: “淸矣.” 曰: “仁矣乎?” 曰: “未知, 焉得仁?”


자장(子張)이 묻기를 “영윤(令尹)인 자문(子文)이 세 번 벼슬하여 영윤(令尹)이 되었으되 기뻐하는 기색이 없었고, 세 번 벼슬을 그만두면서도 서운해하는 기색이 없어서 옛날 자신이 맡아보던 영윤(令尹)의 정사를 반드시 새로 부임해온 영윤(令尹)에게 일러주었으니, 어떻습니까?” 하자, 공자께서 “충성스럽다.”라고 대답하셨다. “仁이라고 할 만합니까?” 하고 다시 묻자, “모르겠다. 어찌 仁이 될 수 있겠는가.”라 하셨다.

“최자(崔子)가 제(齊)나라의 임금을 시해하자, 진문자(陳文子)는 말 10승(乘)을 소유하고 있었는데, 이것을 버리고 그곳을 떠나 다른 나라에 이르러 말하기를, ‘이 사람도 우리나라 대부 최자(崔子)와 같다’하고 그곳을 떠났으며, 또 한 나라에 이르러서도 또 말하기를 ‘이 사람 역시 우리나라 대부 최자(崔子)와 같다.’하고 떠나갔으니, 어떻습니까?”하고 묻자, 공자께서 “청백하다.”하고 대답하셨다. “仁이라고 할 만합니까?”하고 다시 묻자, “모르겠다. 어찌 仁이 될 수 있겠는가?”하셨다.
자장(子張)의 초상

이번 장에서는 자장(子張)이 한꺼번에 두 사람의 인물(子文과 陳文子)에 대한 평가를 스승에게 묻는다. 그냥 묻는 것이 아니라 같은 기준으로, 그 어렵다는 仁의 기준을 확인하고자 함이다.


두 사람의 한 행동에 당대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았다는 점에서 그 정도면 仁하다고 볼 수 있는지를 묻고 비교 확인하는 방식이라, 두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한 장에 담겨 있어 분량이 다른 장에 비해 좀 많긴 하다. 하지만, 그 가르침은 결국 하나임을 확인할 수 있다.


그 비하인드 스토리를 모르면 왜 이런 대화와 평가가 오갔는지 이해하기가 어려우니 한 사람씩 어떤 일을 두고 그리 평가하였는지 확인해보기로 하자.


먼저 언급된 자문(子文)은, 영윤(令尹) 벼슬을 했던 이로, 초(楚) 나라의 가장 높은 벼슬에 해당하는 상경(上卿)으로 정권을 잡았던 사람이다. 子文의 성은 투(鬪), 이름은 누(穀), 자는 오도(於菟) 또는 자문(子文). 초나라 귀족 투백비(鬪伯比)의 사생아로 어릴 때 들판에 버려졌는데 호랑이가 젖을 먹여서 길렀다고 한다. 초나라 말로 젖을 먹이는 것을 ‘누’라 하고 호랑이를 ‘오도’라고 했기 때문에 초나라 사람들이 그를 이렇게 불렀다고 전한다. 참고로, ‘영윤(令尹)’이라는 벼슬자리는 초나라 당시에 군권을 장악한 상당히 높은 벼슬자리에 해당한다.


여기 두 사람이 언급하는 내용의 사건은 <좌전> ‘장공 30년(B.C. 664년)’에, 누오도가 초나라 영윤(令尹)에 오르게 된 사건을 이야기하는 것인데 그 기록은 다음과 같다.

초(楚)나라의 공자이며 영윤(令尹)이던 자원(子元)이 정(鄭)나라를 징벌하는 일을 마치고 돌아와 왕궁에 머물면서 문공의 부인인 식규(息嬀)를 유혹하려 하였다. 그러자 투사사가 그에게 그러지 말라고 충고하였는데 오히려 그는 투사사를 잡아 손에 칼을 채우는 형벌을 가했다. 가을에 신(申) 고을의 공이었던 투반(鬪班)이 영윤 자원(子元)을 죽여버렸다. 그리고 투누오도가 영윤이 되었다.


이 사건은 공자가 태어나기 무려 113년 전의 벌어진 일이다.

누오도는 자기 집 재산을 모두 내어 초나라의 재정적 문제와 정치적 파국을 해결하게 된다. 그리고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이 나라를 평온케 하려는 것이다. 대저 공을 세운 자에게 귀한 벼슬자리를 주지 않는다면, 조용히 있을 자가 과연 몇 명이나 있겠소?”

정치에 종사하는 사람은 반드시 백성을 비호하는 것을 급선무로 삼아야 한다. 대부분의 백성들이 빈털터리로 살고 있는데, 나 혼자만 부를 취하려 한다면, 이것은 백성을 근면케 하는 척하면서 나 혼자만의 배를 불리고 앉아 있는 셈이 되는 것이다.


이 내용을 토대로 자공(子貢)은 이러한 훌륭한 행동을 보인 사람이라면 스승이 제시하는 仁이라는 기준에 통과할만 한 것인지를 돌려서 물은 것이다. 그러나 공자는 그가 충성스러웠던 것은 맞다고 허여(인정)해주면서도 그것이 仁의 기준까지 부합한 것이라고 인정받을만한 것은 되지 못한다고 평가한다. 주자는 공자가 왜 그런 평가를 했는지에 대해 다음과 같이 해설한다.

“(子文의) 그 사람됨은 기뻐함과 노여움을 드러내지 않고, 남과 자기 사이에 간격이 없어 국가가 있음만을 알고 자신이 있음을 알지 못하였으니, 그의 충성이 대단하다. 그러므로 자장(子張)이 仁인가 하고 의심한 것이다. 그러나, 그가 세 번 벼슬하였다가 세 번 그만두고 물러나면서 새로 부임해온 영윤(令尹)에게 옛 정사를 말해준 것이 모두 천리(天理)에서 우러나와 인욕(人慾)의 사사로움이 없었는지 알 수 없다. 이 때문에 부자(夫子)께서 다만 그의 충(忠)만을 허여하시고 그의 仁은 허여하지 않으신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인욕의 사사로움’이라는 것은 앞서 우리가 공부했던, ‘仁’이 과연 무엇인가에 대해 살펴본 내용에 근거하여 나온 말이다. 즉, 어떤 이유에서건 자신이 그렇게 보이고 싶거나 이름이 남고 싶어 의도적으로 하는 행위는 결코 자연스럽게 우러나오는 ‘천리(天理)’에 의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仁’의 경지에 부합된다고 허여(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자칫, 공자의 ‘仁’에 대한 기준이 너무 높기 때문에 그것에 부합할 수 있는 이가 도대체 누가 있을 수 있겠냐고 자조적인 의문을 가질 수 있겠으나, 실제로 앞서 살펴봤던 자산이나 안영의 경우를 극찬한 것을 보면, 도저히 이를 수 없는 경지로 기준을 높인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게다가, 앞서 두 사람을 칭찬하면서도 ‘仁’에 이르렀다고 하는 허여(인정)를 받기 위한 조건이, 단순히 하나의 사건이나 하나의 일만으로 평가되는 것이 아님을 강조한 것은, 이 장에서도 당연히 연장선상에서 적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때문에, ‘충(忠)’에 대한 것은 분명하게 인정할만하다고 한 것이다. 물론, 칭찬을 한 것인지, 그의 한계를 지적한 것인지 애매모호하고 의미심장한 것은 공자 특유의 스타일에서 묻어 나오는 것에 다름 아니다.


그렇다면 그 방식을 확인할 수 있는 다음 인물에 대한 평가를 살펴보자.

최자(崔子)의 초상

최자(崔子)는 제(齊)나라 대부로 이름은 저(杼)이다. 그는 제(齊)나라 군주였던 장공(莊公)이 자기 아내 강씨(姜氏)와 간통한 데 격분하여 장공(莊公)을 죽였다. 진(陳)나라 문자(文子) 또한 제(齊)나라 大夫였던 이로, 이름은 순무(須無)이다. 본문에서 승(乘)이란, 당시의 수레를 뜻하는데, 하나의 수레를 말 4마리가 끌었기 때문에, 10乘은 40필의 말을 의미한다.


여기서 평가의 대상인 진문자는 공자와 그리 멀지 않은 시대의 사람이다. <좌전>에는 양공 22년, 그러니까 공자가 태어난 해로부터 양공 28년, 즉 공자가 7세가 되는 시기까지 거의 매년 진문자에 대한 기사가 언급되고 있으니 같은 시대에 살았던 한 세대 정도 위의 인물이라 할 수 있겠다.

최자가 죽였다는 망나니 장공은 제나라를 제패했던 환공의 현손(玄孫)이었다. 그러나 이미 정권은 궁중을 떠나 중신인 최저의 손아귀에 있었다. 장공이라는 인물 자체가 그의 아버지 영공(靈公)의 유언을 무시하고 최저가 옹립한 군주였던 것이다. 그런 최저가 자신이 세웠던 군주를 죽여버리자 진문자는 미련 없이 자리를 버리고 떠났고, 그런 상황과 그런 군주라는 느낌이 있다면 똑같은 경우라고 판단하고 결코 섬길 수 없다고 스스로 판단하고 벼슬을 하지 않고 떠났던 것이다. 자공이 생각하기엔 이 정도 되면 ‘仁’에 부합하지 않을까 하고 물을 것이다.


공자가 진문자에게 내린 평가에 대해, 주자는 다음과 같이 해설한다.

“文子는 몸을 깨끗이 하고 어지러운 나라를 떠났으니, 청백하다고 이를 만하다. 그러나, 그의 마음이 과연 의리의 당연함을 보고 훌훌 벗어버려 얽매이는 바가 없었는지, 아니면 이해의 사사로움에 마지못한 것이어서 아직도 원망과 후회를 면치 못한 것이었는지 알 수 없다. 이 때문에 夫子께서 다만 그의 청백함만을 허여하시고 그의 仁은 허여하지 않으신 것이다.”

주자는 공자의 일관된 기준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즉, 진문자가 최저를 도저히 군주로 삼을 수 없다고 했던 청백함까지는 허여(인정)하지만, 과연 그렇게 판단을 내린 근거가 의리의 당연함에 인한 것이라면 인정할만하겠으나, 혹여 사사로운 감정이나 이해관계 때문에 그런 판단을 내렸다면 그래서 원망과 후회라는 감정이 개입되어 있었던 거라면, 그것은 ‘仁’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결코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게 판단한 근거는 내가 추정컨대, 가는 곳마다 최자의 이름을 언급하며 같은 상황이라고 말한 것의 행간을 읽은 것으로 보인다. 만약 제대로 된 도가 아니었다면 그저 도가 행해지지 않는 것이라고 표현하면 되었을 것을, 굳이, ‘우리나라의 최자와 같다.’라는 감정 섞인 폄하를 할 필요가 있었는지의 미묘한 차이를 읽어낸 것이라, 나는 읽는다.

그래서 주자는 다음과 같이 이 장을 정리한다.

“내가 선생께 들으니 “이치에 합당하고 사심이 없으면 仁이다.”하셨다. 이제 이 말씀을 가지고 두 사람의 일을 관찰해보면 그 행실의 높음은 따라갈 수 없을 것 같다. 그러나 모두 그것이 꼭 이치에 합당하고 참으로 사심이 없었는지를 볼 수 없다. 자장(子張)이 仁의 본체를 알지 못하고 어려운 일을 구차하게 해내는 것만을 좋아하여 끝내 작은 것을 큰 것으로 믿었으니, 夫子께서 허여하지 않으심이 당연하다. 독자는 이에 대해서 다시 이전 장의 “그가 인한지는 내가 알지 못하겠다.”하신 말씀과 뒤편[헌문편]의 “그가 仁한지는 내가 알지 못하겠다”하신 말씀과 아울러 (‘微子편’의) 三仁과 백이(伯夷), 숙제(夷齊)의 일을 가지고 본다면 저것과 이것이 서로 다하여 仁의 의의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지금 다른 책을 가지고 살펴보면, 子文이 초나라를 도울 적에 획책한 것은 모두 왕(天子)을 참칭하고 중국(夏)을 어지럽히는 일 아님이 없었으며, 진문자는 제나라에 벼슬할 때에 이미 임금을 올바르게 인도하고 역적을 토벌하는 의리를 잃었고, 또 몇 년이 못되어 다시 제나라로 돌아갔으니, 그 仁하지 못함을 또한 볼 수 있다.”

주자의 정리에 의하면, 자공(子貢)이 이 두 사람에 대해 仁의 경지에 올랐는가를 의심한 것을 보면 그는 그 때까지도 仁의 정수를 이해하지 못했다는 평가이다. 맞는 말이다. 혹여 사람들이 공자의 仁이 터무니없이 높게만 여기며 그렇다면 仁을 이뤘다고 공자가 인정한 사람이 과연 있단 말인가? 라고 할 것을 이미 생각하고 그 변호에 해당하는 해설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백이(伯夷)·숙제(夷齊)

공자가 仁을 이루었다고 인정한 구체적인 세 사람을 언급하며 그 기준을 명확하게 다시 설명해준다. ‘三仁과 백이(伯夷)·숙제(夷齊)의 일(三仁夷齊之事)’에서, ‘三仁’은 세 仁者로 微子, 箕子, 比干을 가리키는 바, 뒤의 ‘微子篇’ 1장에 “미자(微子)는 은나라를 떠나가고, 기자(箕子)는 종이 되고, 비간(比干)은 간하다가 죽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은나라에 세 仁者가 있었다.”라고 언급한 부분을 의미하고, 백이·숙제에 관한 일은 뒤의 ‘述而篇’ 14장에 “자공이 들어가서 ‘백이와 숙제는 어떠한 사람입니까?’하고 묻지 공자께서 ‘옛날의 현인이시다’ 하고 대답하였다. ‘후회하셨습니까?’하고 묻자, ‘仁을 구하여 仁을 얻었으니 어찌 후회하였겠는가.’라고 대답하셨다.”라고 한 부분을 언급한 것이다.


종합적이고 유기적인 설명을 위해 여러 장의 내용을 발췌하여 언급한 주자의 치밀함에 경의를 표하며, 이 글을 공부하는 독자들에게는 언급된 장구들이 나올 때 다시 설명하기로 하고 일단 이런 내용이 있었다는 정도로만 이해하면 되겠다.

주자의 이 정리 글에서 방점은, 마지막에 있다. 주자는 공자의 가르침에 따라 다른 문헌을 통해 과연 공자가 역사적 기록의 행간에서 찾은 미세한 콜드리딩(COLD READING)을 검증하고 있다. 진문자가 과연 그런 행동을 하고나서 평생에 걸친 다른 행동들이 어떠했는지를 검증하여, 이전의 행동이 갖는 진위를 파악한 것이다. 그리고 공자의 미세한 행간 읽기가 정확했음을 증빙한다.


공자는 단정적으로 자신이 읽어낸 미세한 콜드리딩(COLD READING)을 가지고서 진문자를 폄하하지 않았다. 단지, 그가 ‘仁하다고 볼 수 없다.’라고 유여한 것이다. 仁을 이루었다고 보기에는 다양한 삶의 족적이 그것을 증빙해야 하는데 그럴 만하지 못하다고 평가했던 것이다. 단순히, 막연하고 어렵게만 이해하고 일반인이 결코 이룰 수 없는 것이라며 ‘仁’을 묘한 개념으로만 바꾸려는 공부가 덜 된 자들에 대한 일침에 다름 아니다.

주자가 말했던 것처럼, 이 장에서 언급된 두 사람의 행동도 칭찬받을만한 것은 맞다. 그렇기 때문에 그 부분에 대해서는 분명히 공자도 칭찬하고 허여(인정)해주었다. 다만, ‘仁’은 부분적이거나 단편적인 것이 아닌 복합적이고 삶의 온 궤적을 통해 일관된 천리를 보여줄 수 있어야 이룰 수 있는 부분이라는 것을 통해 과연 ‘仁’이 어떤 개념인가에 대해 다시 한번 만져보고 느껴볼 수 있게 해주는 내용이라 하겠다.


참으로 아쉽게도, ‘仁’까지는 이르지 못하였으나, 부분적이나마 충성스럽고 청렴하였다는 평가를 받았던 두 사람이 모습조차 최근 우리의 주변에서는 찾아보기 어렵다.


자신보다 국가를 먼저 생각하고 살신성인하는 자를 본 것은 그 옛날 위인전에서 본 것이 다이고, 높은 벼슬을 하고 있다가도 자신이 그것이 도리가 아니라고 판단하여 스스로 자리에서 물러나 그런 군주를 섬길 수 없다고 하는 청렴한 이를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우리는 그저, 정치적 중립이 매우 중요시되는 검찰의 수장 자리와 감사원의 수장 자리를 하던 자들이 지들 멋대로 하다가 결국 나라를 구합네라는 헛소리를 해대며 한 나라의 대통령이 되겠다며 자리를 박차고 나오는 꼴만 봤을 뿐이다.

그런데 멀리 그들의 삶의 행적을 다른 기록을 찾아 대조해볼 필요도 없이, 그들의 추잡하고 조악함은 지금 실시간으로 아주 적나라하게 모든 국민들에게 드러났다. 그들이 정말로 구하고자 했던 것이 나라였는지, 아니면 자기만족이고 자기 욕심이고 사리사욕 그 자체였는지가 이리도 빨리 실시간으로 중계될 줄은 정작 당사자인 그들만 몰랐지, 모든 사람들은 이미 예견하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일부만이라도 인정받았던 그 항목에조차 부합하지 못하는데, 거기에 대고 무슨 ‘仁’을 말하고, ‘천리(天理)’에 의한 것인지 ‘인욕(人慾)’에 의한 것인지를 따지겠는가!


나 스스로에게도 매일 새벽 논어를 다시 읽으며 되묻는다.

내가 지금 아무리 돈을 받으며, 혹은 어떤 유명세를 바라며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고 하면서도, 스스로 사람들이, 사회가 바뀌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펜을 들었다고 하면서도 나 역시 나도 모르는 사이에 뭔가 사특한 마음이 끼어들어 부러 뭔가 하겠다는 공명심이라도 들어간 것이 아닌가 하고 말이다.

당신은 어떠한가?

그런 거 말할 위치도, 처지도 아니라고 말하고 싶은가?

처자식을 먹여 살리느라 아침에 나가 늦은 밤 귀가하느라 ‘仁’은 고사하고 먹고살기 그 자체로 허덕인다고 말하고 외면하고 싶은가?

남편과 아이들 챙겨서 아침에 보내고 집안일하는 주부가 무슨 그런 대단한 형이상학적인 것을 논할 수 있겠냐고 손사래 치고 싶은가?


아니다. 누차 말하지만 당신들이 없으면 사회가 없고 국가가 없다.

백성이, 대중이, 국민이 없으면 정치라는 행위는 존재 의미 자체를 찾을 수가 없다.

뭐하러 내 뜻을 대신 전하라고 국회의원이란 자를 뽑고, 나라를 대표하는 대통령을 뽑는가? 그들을 누가 뽑는가? 바로 당신들 아닌가 말이다.


먹고살기 힘들고 바쁘다고?

그거 제대로 하려고 먹고사는 것이 팍팍하지 않으려고 정치가 있는 것이고, 그것이 제대로 되면 백성들이, 국민들이 삶에 치여, 생계에 치여 헐떡거리지 않게 된다.


생활고에 시달려 자살했다는 국회의원이나 대통령을 본 적이 있는가?


왜 그들을 뽑아준 이들 중에서는 심심치 않게 그런 이들이 나오는데 정작 그들을 대의하는 이들은 단 한 번도 먹고 사느라 힘겹다는 말이 나오지 않을까?

국민을 대신해서 나간 국회의사당에서 심심하다며 벗은 여자의 사진을 보다가 걸리질 않나, 졸다가 걸리는 것은 그나마 양반이고, 국정감사 중에도 핸드폰 게임을 하다가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걸린 자가, 버젓이 TV에 나와서 국정을 입에 담는 코미디 천국이 이루어지게 해서는 결코 안된단 말이다.

술 먹고 운전대를 잡으면 살인이라며 국회에서 법을 만들자고 소리쳤던 검사 출신의 국회의원이라는 자가 술 먹고 운전하다가 걸려 개망신을 당하고 국민의 외면을 받고 선거에 떨어져 놓고서는 다시 그들만의 리그로 구성된 케이블 TV에 얼굴을 들이밀고 그 느끼한 사투리로 슬그머니 다시 정치에 발을 들여놓으려고 하면 추상같은 일갈로 다시는 그런 자들이 언감생심 헛된 사리사욕을 달성하게끔 해서는 안된단 말이다.


당신들, 바로 당신들을 대신하라고 뽑는 것이 선거이고, 그것이 대의민주주의의 기본이다.

하라는 도둑놈들 감시는 하지 않는, 국회의원, 검찰, 법원, 감사원, 복지부동 공무원, 경찰 따위의 것들이 하지 않는다면 온 사회 구석구석 위치하고 있는 당신들이 하면 된다.


그것이 쌓이고 삶의 궤적이 되면 ‘仁’을 이뤘다고 이를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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