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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검무적 Jun 23. 2021

내가 무엇이 될 상인가?

관상을 정식으로 공부하고 자신이 빌어먹을 상임을 알게 된 자의 변신

태어날 때부터 체구가 너무 커서 어머니의 생명이 위험한 정도의 난산 끝에 태어났다.

기억도 하지 못하는 집안의 조상이 역적이라 했다.

그 누군지도 모르는 할아버지 때문에 분명 양반 가문임에도 불구하고 상민으로 완전하게 신분을 세탁하여 양반에게 갖은 멸시를 다 받으며 자랐다.

천진난만이 도가 지나쳐 엄청난 개구쟁이로 자랐다.

애들이 곰보라고 놀리자 식칼을 들고 뛰어오고, 빨래하는 개울에 물감을 풀고, 아버지 수저랑 곰방대를 팔아서 엿 바꿔 먹고, 아버지가 아랫목에 숨겨둔 돈 20냥을 훔쳐서 떡을 사 먹으러 가다가 집안 할아버지에게 걸려 결국은 대들보에 묶여 아버지에게 매를 맞고, 남의 밭에서 서리하고 안 해본 장난이 없었고. 매 맞는 게 일과였던 아이였다.


친척 아저씨가 아들의 혼례에 쓸 갓을 사러 갔다가 양반도 아닌 놈이 갓을 쓴다고 심한 폭언, 욕설에 폭행까지 당했다는 말에 발끈하여 아버지에게 그런 꼴을 당하게 할 수는 없다고 다짐하고 과거시험에 돌입한다.


조선말 과거시험의 막바지 답안지를 사고팔고 관리직을 사고판다는 이야기를 듣고 아예 시험도 쳐보기도 전에 시험 준비를 덮었다. 그즈음 자연스레 과거제도 자체가 없어져버렸다.


아버지에게 고하고 풍수와 관상 공부를 해보겠다고 시작했다.

<마의상서(麻衣相書)>를 빌려서 석 달 동안 독방에 처박혀 혼자서 공부했다.

자기 얼굴을 천천히 뜯어보니 귀상이 아니고 외려 천격, 빈격, 흉격뿐이었다.

그렇게 자신의 인생은 시궁창으로 굴러 떨어질 것이 정해진 것임을 거울을 보며 한탄했다.

그런데, 던져버리려던 그 책의 한 구석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었다.


相好不如身好 身好不如心好
좋은 관상이 좋은 몸만 못하고 좋은 몸이 좋은 정신만 못하니라


그 구절을 위안삼아 관상,풍수 공부를 때려치우고 <손자>, <육도>, <삼략> 등 병법서를 읽었다.

180센티미터가 넘는 기골이 장대한 청년이 되던 18세에 동학에 입문하여 농민전쟁에 나섰다.


동학군이 연전연패하는 동안 몸을 피할 때 안중근의 아버지 안태훈이라는 인연을 만나게 된다.

안태훈은 진압하는 쪽이었지만 그를 거뒀다.

그 집에 숨어, 1년 더부살이를 하는 동안 안태훈의 식객인 유학 고능선에게 학문을 처음 배웠다. 고능선은 척화파의 대표 집단인 화서학파의 제자로, 그에게 척사와 국가관을 심어줬다. 청나라에 가서 의병을 일으키라는 가르침도 받고 실제로 스승과 백두산과 남만주 일대를 구경하고 돌아온다.


이후 21살에 '국모를 시해한 일본인'을 살해하여 원수를 갚고자 했다며 일본인을 죽여 감옥에 갇혀 수감생활을 하게 된다.

사형을 선고받지만, 고종의 선처 전화 한 통으로 그는 목숨을 부지하게 된다.


2년간의 수감생활 끝에 탈옥을 하게 되고, 그 길로 산에 숨어 불교에 귀의하여 스님으로 지낸다.

1년을 채 채우지 못하고 다시 환속한 그는, 고향으로 돌아와 서당에서 훈장도 했다.

그때 부친이 세상을 떠나고 그는 훈장일도 봐주면서 둘째 큰아버지의 농사일을 도우며 살고 있었다.

그러다가 훈장질을 걷어치우고 신교육을 해야겠다는 결심으로 이사를 하고 종교도 감리교로 바꾼다.

신교육에 매진하던 그는 때때로 평양으로 가 평양 예수교 사범 강습소에서 재교육을 받는다.

그렇게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국권회복운동에 참여한다.

결국 다시 사건과 연루되어 15년형을 받고 감옥에 수감되는 고초를 겪게 된다.

5년이나 수감생활을 하던 그는 전과자라는 이유로 교원 생활도 할 수 없게 되어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 농장일을 하게 된다.


여기까지 살펴보면, 그가 과연 위인이라고 할만한 사람인가 의문이 들 수 있다.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물었을 때, 독보적인 존경할만한 독립운동가 1위

김구 선생의 삶이 바로 그의 삶이다.


"네 소원이 무엇이냐?"하고 하늘님이 내게 물으시면, 나는 서슴지 않고, "내 소원은 대한 독립이오." 하고 대답할 것이다. "그다음 소원은 무엇이냐?" 하면, 나는 또 "우리나라의 독립이오." 할 것이오, 또 "그다음 소원이 무엇이냐?" 하는 셋째 번 물음에도 나는 더욱 소리를 높여서, "나의 소원은 우리나라 대한의 완전한 자주독립이오." 하고 대답할 것이다.

그를 '국부'라고 말하는 것에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그는 모든 독립운동가들의 모범이었고 대한민국 임시정부 그 자체였다.

그가 칠순이 넘는 삶을 살면서 국가를 위해 살았다고 한 것은 결코 거짓이 아니었다.

하지만 위에 적은 그의 삶의 궤적을 보면,

그가 민족을 위해 나라를 위해 어려서부터 아이의 아빠가 될 때까지

어떤 일을 했는지 알 수 없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의 인생에 어느 하나

버릴 것이 있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가 국부로 추앙받기까지

어떤 특별한 계기가 갑작스럽게 생긴 것이 아니란 뜻이다.

그는 그렇게 삶을 살아왔고

그 치열한 삶 속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했다.


운명을 본다고 자신의 관상을

석 달 동안 공부하고 얻은 결론은

자신의 운명이 빌어먹을 관상이라는 것이었다.

뭘 해도 안됐고

제대로 되는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었다.

그렇게 좌절하였지만 결코 포기하지 않았고

그렇게 열심히 하루하루를

견디며 살았다.


그리고 그는 국부가 되었다.

그가 온 민족에게 추앙받을 수 있는 존재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다른 어떤 특별한 이유가 아니다.

그가 포기하고 좌절하지 않았던

그 하나만으로

묵묵히 하루하루를 견뎌내며

자신의 삶을

살았던 것만으로도

그는 위인이 되었다.


그리고 그가 바란 문화강국의 대한민국은 지금 전 세계에 한류의 기치를 드날리고 있다.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남의 침략에 가슴이 아팠으니, 내 나라가 남을 침략하는 것을 원치 아니한다. 우리의 부력(富力)은 우리의 생활을 풍족히 할 만하고, 우리의 강력(强力)은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겠기 때문이다."



당신이 어떻게 무엇이 될지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

스스로 당신의 한계를 긋지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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