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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검무적 Jun 22. 2021

내 실수로 내 동생을 죽이게 된다면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을 잃고 그가 얻은 것

아버지는 이미 뛰어난 화학자이자 공학자이고 발명가였다.

는 원래의 고향이던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좀 더 넓은 시장을 펼치고자 러시아의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이주하여 공장을 세운다.

그의 예상과 투자는 적중하였고, 그의 능력과 감각은 폭약이라는 특화된 시장에서 능력을 발휘했다.

가족들은 모두 아버지가 있는 러시아로 이주하여 부유한 생활을 누렸다.

아버지에게 발명가로서의 DNA는 물론 기본적인 공학적 지식을 이미 10대에 마스터한 아들은 16세에 유능한 화학자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모국어인 스웨덴어는 물론 영어·프랑스어·독일어·러시아어에도 능통하게 된다.

심지어 아들은 1850년 러시아를 떠나 파리에서 1년간 화학을 공부한 후 다시 미국으로 건너가 장갑함 모니터호(號)를 만든 존 에릭슨 밑에 들어가 4년간이나 일한다.

기본적인 공부에 최첨단 기술을 배우기 위한 유학까지 아들의 지식과 경험은 이미 풍부해졌다. 그 후 상트페테르부르크로 돌아온 아들은 크림 전쟁에 군수품을 만들어 납품하던 아버지의 공장에서 일하게 된다.


하지만,

1856년 전쟁이 끝나자, 회사는 증기선 부품 제작에 손을 댔으나 경영난에 시달리다 1859년 파산하기에 이른다.


여기까지 그의 생애를 보면, 마치 여러 고난을 겪은 성공한 사업가 서장 정도로 보일 수 있다.

아버지의 공장이 파산하고 풍비박산이 난 이후 그와 그의 기족은 어떻게 그 고난을 극복했을까?


고향인 스웨덴에 빈손이 되어 돌아온 그는, 폭탄 제조 실험실을 조그맣게 만들고 연구와 실험을 통해 제대로 된 폭탄을 만들기 위해 매진한다.

그는 다시 모험에 뛰어든다.

모두가 위험하여 제대로 손대지 못하던 액체 폭탄인 니트로글리세린을 제조하기 위해 공장을 세우는 한편, 니트로글리세린의 약점인 이상 폭발을 제어하는 방법을 찾기 위해 연구를 시작한다.


그 결과 1863년 그는 금속용기에 니트로글리세린을 채운 다음 목제 점화 플러그를 끼워 넣는 방식을 사용해 실용적인 뇌관을 만드는 데 성공한다.

이 뇌관의 발명으로 그는 이제 그의 이름을 날리기 시작한다.

이것이 다이너마이트의 발명으로 가는 첫 시발점이었다.

 알프레드 노벨.


지난 이야기에서 퓰리처의 실패를 소개하며, '상'이야기를 했었다.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하고 권위가 있는 상.

평생에 한 번 받아도 전 세계에 국가적 명예를 가져다주는 상.

그 노벨상의 주인공 노벨이 이번 이야기의 주인공이다.


1865년 노벨은 일보 전진해 '폭발성 캡슐'(blasting cap)이라는 뇌관을 발명한다. 폭발성 캡슐은 충격이나 적당한 열을 가하면 폭발하는 뇌산수은을 소형 금속용기에 채워 만든 뇌관으로, 이의 발명과 함께 고성능 폭탄 시대가 열렸다.


신이 났다.

돈이 들어왔고, 이름을 날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니트로글리세린의 운반과 취급은 여전히 난제로 남아 있었다.

그만큼 니트로글리세린은 위험한 물질이었다.

1864년 노벨의 니트로글리세린 공장에서 일어난 폭발사고는 막냇동생 에밀을 포함해 여러 명의 인명을 앗아가 버리고 말았다.


많은 그의 일대기를 기록한 글에서는,

'그러나 노벨은 이에 굴하지 않고' 라며 행간에 있었을 그의 고뇌와 슬픔을 설명하지 않는다.


가족을 잃은 사람의 아픔은,

그 상실의 슬픔은 그렇게 간단히 극복되고 할 만한 것이 아니다.


노벨은 원래 총 8명의 형제가 있었다.

시대적 특성상 어려서 절반이 죽었고,

알프레드와 3명의 남동생만이 남았다.


다른 남동생이 러시아에 남아 아버지의 사업을 정리한다고 했을 때도 막냇동생인 에밀은 스웨덴으로 함께 돌아와 형을 도왔다.

그런 막냇동생이 자신이 만들려던 폭탄이 터져 사고로 유명을 달리한 것이다.


자신이 운전을 잘못하여 사고가 나서 동승했던 형제가 죽음을 맞이해도 제대로 된 삶으로 돌아오는 데는 꽤 많은 시간과 치유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 트라우마에서 온전히 벗어나지 못해 고통스러워하는 이들도 있다.

모든 것이 내 책임이라고 자책하고 또 자책하게 된다.

노벨은 평생 결혼을 하지 않고 연애도 하지 않고 독신으로 살았다.

짐작컨대, 이 사건은 그에게 스스로 내린 형벌의 계기와도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왜냐하면,

그는 그가 얻은 엄청난 부와 명예가 자신의 생전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호사스럽게 누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마도 스스로에게 주는 제약과도 같은 것이 그에게 검약한 생활을 강요하지 않았을까 조심스럽게 짐작해본다.

대개 사랑하는 가족의 희생의 위에 부와 명예를 쌓은 사람들은

그것을 마음 놓고 누리고 행복해하는 것을 죄스럽게 여기는 심리가 작용하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막냇동생의 죽음,

그것도 내가 만들려고 했던 폭탄으로 인한 죽음.

막냇동생 이외에도 수많은 공장의 직원들이 그 폭발과 함께 죽었다.

좌절하고 포효하고 쓰러지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며칠간의 슬픔 속에서

다시 마음을 잡고

스스로에게 족쇄와 같은 제약을 걸고

미친 듯이, '완전하게 안전성을 보장할 수 있는 폭약'을 만드는 것에 매진한다.

 


노벨은 니트로글리세린을 투과성이 높은 규산이 함유된 규조토에 스며들게 해 말리면 사용과 취급이 훨씬 용이하고 편리하다는 사실을 '우연히' 발견하고는 이 새 제품에 다이너마이트('힘'을 뜻하는 그리스어 '디나미스'에서 따온 말)라는 이름을 붙여 영국(1867)과 미국(1868)에서 특허를 받았다.


여기서 '우연히'하는 단어에 방점을 박은 것은 그 의미가 슬쩍 대강 얻은 것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발명가에게 있어 무언가 '우연히' 발견되었다는 표현을 쓰기까지는,

엄청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그것을 위해 온종일 정신을 쏟아붓고 그것만 생각하고 있어야만

겨우겨우 얻을 수 있는 '우연히'이기 때문이다.

일반인들이 사용하는 그 단어와 똑같이 쓰지만 무게가 다른 언어인 셈이다.



다이너마이트는 노벨에게 세계적인 명성을 가져다 주었을 뿐만 아니라 굴착공사, 수로 발파, 철도 및 도로 건설에도 곧바로 사용되었다.


한편, 노벨의 나머지 두 남동생, 루드비그와 로베르트는 카스피 해 주변의 바쿠(옛날에는 러시아령이었으나 지금은 아제르바이잔령) 근처에서 새로 발견된 유전을 개발해 갑부가 된다. 러시아에 있는 남동생들 회사에 대한 자기 몫의 지분과 전 세계에서 거두어들이는 폭탄 판매 수입액은 노벨에게 막대한 부를 안겨준다.

그 후 1893년 노벨은 스웨덴의 군수산업에 뛰어들어 그다음 해인 1894년에는 베름란드 근처에 있는 보포르스의 제철공장을 사들인다. 뿐만 아니라 폭탄 외에도 인조 비단이나 가죽과 같은 물건들을 발명해 전 세계적으로 총 350개 이상의 특허권을 따냈다.


노벨상이 왜 그의 이름으로 지정되었는지에 대한 추정 중에 이런 것이 있다.

1888년에 노벨의 남동생 유전 재벌 루드비그가 그 해 프랑스 칸느에 머물다 사망하게 된다.

당시 프랑스 신문들은 루드비그의 사망을 보도했지만, 그와 알프레드를 혼동한 어느 신문에서 '죽음의 상인, 사망하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내보냈다. 노벨은 자신이 죽게 되었을 때 사람들이 자신을 어떻게 기억할지에 대해 그 사건을 통해 유추하게 된다.


폭탄을 발명하고 그것 때문에 동생이 죽고, 그 폭탄으로 전쟁이 터져 더 많은 사람이 죽었다.

그에게 이것은 연쇄적 자괴감을 불러일으킬 충분한 트라우마가 된 것이다.

그가 노벨상을 제정하고 재산의 대부분을 기부한 것에는 그가 먼저 간 동생을 위한

그리고 자신의 폭탄으로 죽었을 이들에 대한 속죄가 담겨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저 유명한 '평화상'분야의 지정도,

오스트리아 출신의 걸출한 평화주의자인 베르타 폰 주트너와의 교류로 인한 영향이라고 말하기 이전에

그의 삶이 가진 상실의 슬픔이 차지한 부분을

생각해보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내가 원하는 것을 모두 얻는 삶은 없다.

세상의 모든 이치는

기브 앤 테이크일지도 모른다.

무언가를 얻기 위해서는

등가 법칙에 의거하여

무언가를 내놓아야만 한다.

그것이

뼈를 깎는 노력이나

개인적 시간에 대한 희생이라면

그나마 나을지도 모르겠다.


도저히 상관없는 것이라고 생각되는

소중한 것을,

신은 아무런 감정 없이

내게서 앗아가버리곤 한다.


그때 인간은 선택을 해야 한다.

그 슬픔에 좌절하고 내 삶을 황폐하게 할지

그 희생과 슬픔을 삼키고

내가 할 수 있는 것 이상의

무언가를 해내서

그들의 희생을 헛되이 하지 않을 지에 대해


떠난 이는 다시는 내게 돌아올 수 없다.

사랑하던 막냇동생을 생각하며

행복을 누리는 것이

죄스럽다고 여겨 자신의 삶에 제약을 두고

미친 듯이 일에 빠졌던

노벨에게

일에 빠져 말년 내내 협심증으로 고생하다가

뇌출혈로 생을 마감해야 했던

그에게


천국으로 가는 계단에서 만난

막냇동생 에밀은

따스하게 웃어주었을까?


당신도 당신의 삶보다

당신의 죽음을 다른 이들이

어떻게 기억할지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라.


미안하고 아프고 괴로워서

죽을 것만 같아도

결국 사람은 살아진다.


이제 문제는,

어떻게 남은 당신의 삶을

살 것인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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