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이 글을 쓰는가?
이민이란,
외국에서 영구적으로 오랜 기간 살 의도로
국가의 경계를 넘는 인구이동
누군가 지금 이민을 생각하거나, 준비하고 있다면 이 정의(definition)를 잘 이해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여기서 우리는 영구적으로 산다는 의미가 외국에서 영구적으로 오랜 시간 살기 위해 필요한 것들을 스스로 갖출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고, 국가의 경계를 넘는다는 것은 내가 한국에서 자유롭게 누리던 것들을 포기하고, 다른 나라에서 거주하며, 일을 하거나 공부를 하는 등의 모든 활동을 위해서는 필요한 자격을 갖춰 허락(permission)을 받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는 이 정의를 잘 알고, 준비를 철저히 해서 영국행 비행기를 탔을까? 나는 바로 “NO!”라고 대답할 것이다. 만약에 잘 준비해서 이민 생활을 시작했다면 이 글은 쓰이지 않았을 것 같다. 그렇다고 8살, 3살 어린 자녀들과 함께 타국에 가서 살 계획이었으니, 그 어떤 부모가 허술하게 준비를 하였을까? 하지만 다른 나라에서 살기 위한 계획을 한다는 것은 단지 몇 년간의 의식주를 해결할 수 있는 목돈을 준비하고, 부족한 영어는 현지에서 열심히 적응하며 배우겠다고 굳게 다짐해서 될 일은 아니었다.
국가의 경계를 넘어 삶의 터전을 다시 만드는 일은 갑자기 ‘갑을’ 관계에서 절대적으로 ‘을’이 되는 상황을 견디는 강한 멘탈과 새로운 문화를 현명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오픈된 마인드가 필요했고, 새로운 나라의 구성원으로 내가 독립적으로 살 수 있다는 능력을 증명함으로써, 법적으로도 보장받을 수 있는 자격을 갖추는 것이었다. 지금까지 나열한 이 모든 것이 이루었을 때, 우리는 ‘성공한 이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영국 이민은 미국, 캐나다, 호주 이민에 비해 많이 알려져 있지 않다. 게다가 우리 가족이 이민을 준비했던 2010년만 해도 지금처럼 온라인 세상이 발달하지 않아서, 인터넷상의 커뮤니티 카페에 질문을 올려 받은 답장들과 몇 권의 책이 전부였다. 그러다 보니 영국에서의 생활에 대해 자세히 아는 데는 한계가 있었는데, 어떻게 생각하면 잘 몰라서 용감하게 이민을 결정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후에 영국에서 살아가며 겪어야 할 어려움들은 생각보다 어렵고, 힘들었다. 한국에 비해 비싼 물가와 세금, 공공요금 등으로 생활비를 걱정하며 살아야 했고, 익숙지 않은 문화와 영어에 대한 두려움은 나를 소극적으로 만들었다. 그중에서 가장 어려웠던 것은 비자 연장 문제로 영국에서의 체류가 불확실했던 1년간의 시간이었는데,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걱정과 남의 나라에서 겪는 서러움에 정말 뜨거운 눈물을 쏟기도 했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가슴이 저릿하다.
지금까지의 이야기가 이민이라는 과정을 너무 어렵게 느껴지게 만들었다면, 이민에 대한 정확한 의미와 현실에 대해 정리하는 것은 누군가의 시행착오를 예방하기 위해서 꼭 필요한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이민 관련 정보를 찾아보면 대부분이 그 절차나 제도 및 영주권 또는 시민권을 취득하는 방법에 대한 정보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이민 후의 정착과정은 일반화된 제도와 절차로만 이야기할 수 없는 다양한 사람들의 삶의 스토리가 드라마같이 펼쳐진다. 왜냐하면 가족 중 누군가가 이민을 간다는 것은 한국을 떠나는 개인뿐만 아니라 한국에 남는 가족에게도 영향을 끼칠 수 있는 큰 변화이고, 그 과정과 결과는 예상하기 어렵다.
나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35년간의 한국에서의 내 삶은 다른 사람들과 별반 차이가 없었던 시간들이었다. 평범한 학창 시절을 보냈고, 대학을 졸업한 후에는 간호사가 되어, 병원, 학교, 지역사회에서 안정적으로 커리어를 쌓아가고 있었으며, 결혼을 하고는 아내이자, 딸 하나, 아들 하나 둔 워킹맘으로 살았다. 그 시간들 속에서 희로애락을 느끼게 하는 일들이 있었지만, 요즘같이 학교에서의 경쟁이 심하고, 경제적 문제로 어쩔 수 없이 연애, 결혼과 출산을 포기한다는 이야기가 들리는 상황에 비하면 지난 나의 시간들은 참 평온했다고 생각한다. 또한 나는 어학연수 등의 경험도 없고, 평소에 다른 나라의 사람과 문화에 특별히 관심이 있지도 않아, 어쩌다 해외에 나갈 기회가 생기면 쇼핑하는 것이 가장 좋았다.
이민을 결심한 사람들 중에는 한국과는 다른 삶을 꿈꾸거나, 자신의 능력을 세계 속으로 확장하기 위해 일찍부터 오랜 기간 준비하기도 한다. 이에 반해 내가 영국으로의 이민을 결정한 것은 그렇게 오랜 시간 고민하거나 계획했던 일이 아니었다. 그로 인해 정면으로 불어오는 바람을 세게 맞는 날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가족과 함께 영국으로 이민 와서 지난 13년을 굳세게 버텼다.
그 결과, 2016년에는 이민 5년 만에 영주권을 취득하였고, 남편은 일과 삶의 균형이 지켜지는 일명 워라밸이 가능한 직장 생활을 하고 있다. 게다가 영어 알파벳도 모르고 영국에서 학교생활을 시작한 큰 아이는 세계적인 명문대학 ICL 임페리얼 컬리지 런던(Imperial College London) 의대에 입학하였고, 중학생인 작은 아이도 매년 입학시험의 높은 경쟁률로 유명한 Selective School을 다니고 있다. 또한 일과 가정에서 24시간이 부족한 워킹맘으로 살았던 나도 여전히 워킹맘이지만 저녁 식사 후에는 이렇게 여유롭게 글을 쓰고 있으니 우리 가족 모두의 삶은 많이 달라졌다.
이와 같은 변화들은 초기 이민 5년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었던 일들이고, 영국으로 이민 왔다고 자동적으로 얻어지는 것도 아닌 것 같다. 그렇다고 우리 가족의 특별한 능력으로 이뤄낸 성과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점은, 영국이라는 나라에서 생각하지도 못한 기회들을 갖게 되었고, 그 기회를 잘 활용하고자 최선의 노력을 다 한 것이 좋은 결과를 가져왔다는 것은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이것이 이민의 장점이자 매력이다.
한국의 성인남녀 중 70%가 한 번쯤은 이민을 고려해 봤다고 한다. 이들이 이민을 생각하는 이유는 여유로운 삶을 위해서(51.2%)가 제일 많았고, 다음으로는 자녀 교육, 선진국의 복지제도의 혜택과 한국의 사회제도와 문화에 대한 갈등의 순이었다. 이런 통계 결과들을 보면 많은 사람들이 이민을 통해 한국보다 더 나은 생활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경제적인 여유가 있어 투자이민을 하거나 이미 정착한 가족이 있는 곳으로 이민을 가는 경우는 다르겠지만, 일반 사람이 다른 나라에서 새롭게 삶의 터전을 만들고 여유로운 삶을 살게 되기까지의 과정은 쉽지 않고, 오랜 시간이 걸린다. 더욱이 교육이민에 대한 관심이 많은 우리나라에서 어린 자녀를 동반한 이민은 더 많은 책임과 위험성을 감수해야 한다. 그러므로 해외 이민 사례들을 통해 의미 있는 경험들이 많이 공유되는 것은 이민을 계획하거나 준비하는 사람에게는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에서 나의 글쓰기는 시작되었다.
지금부터 시작되는 우리 가족이 영국에서 보낸 지난 13년간의 이야기가 다른 나라에서 새로운 삶을 꿈꾸고 있거나, 이미 진행 중인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정말 좋겠다.
자, 시작해 볼까?
Let’s g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