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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는사람 Feb 17. 2024

[방황일기] 내가 보는 나 : 정신 건강적 시선

ADHD와 우울과 관련된 증상들



 나는 서울 시내 큰 정신과로 병원을 옮겼다. 첫 병원에서 그저 약처방만 하는 시간이 한달동안 계속 되었었고 약의 효과도 없었기 때문이다. 옮긴 병원에서 몇주간의 자세한 상담과 관찰을 받았고 그 결과 나의 ADHD는 엄청 심각한 수준은 아니라는 결과가 나왔다. ADHD는 스펙트럼이다. 스펙트럼이라는 말은 정도나 범위가 있다는 것이다. 처음 ADHD의 가능성이 높다는 진단을 받았을때 지금까지 나의 부스러기들에게 핑계가 주어졌다. 내가 그렇게 행동했던 이유가 있구나. 


 하지만 우울과 불안은 여전히 큰 문제였다. 보통 ADHD와 우울은 같이 동반한다고 한다. 그렇게 나에게 맞는 ADHD 약의 복용량을 찾았고 항우울제와 수면약을 추가하기로 했다. 안타깝게도 약을 먹는다고 우울과 ADHD 증상이 약을 먹고 뿅하고 없어지는것은 아니었다. 나는 여전히 덤벙거렸고 나 스스로를 괴롭혔다. 병원에서는 나는 긴 훈련이 필요하고 ADHD를 위한 인지 행동 치료를 해야한다고 하셨다. 인지행동 치료에 앞서 그럼 내가 보는 나의 모습은 어떤지 궁금해졌고 아래와 같이 정리를 하였다 



몽상가

나는 쉽게 다른생각에 빠진다. 그리고 상상의 날개를 펼쳐 아예 새로운 세상으로 빠진다. 수업시간은 좋은 몽상 시간이었고 상상력은 풍부하지만 학업성적은 좋지 못한 학생이었다. 사람들의 말이 퓨즈가 끊기듯 뚝뚝 끊겼다. 계속 티키타카가 오가는 대화는 그나마 나았지만 조금이라도 오래 듣고있어야 하는 입장이되면 상대방의 이야기가 갑자기 들리지 않다. 그리고 나는 내가 ADHD 라고 생각하기 전까지 그렇게 말이 끊기고 들리지 않는다는것도 잘 인식을 하지 못했다. 그리고 채널 바뀌듯이 다른 생각이 확확 떠올랐다. 인터넷 팝업 창이 끊임없이 열리고 다 다른 채널이 켜져있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나는 가만히 앉은 채로 공상을 하며 시간을 보낼수있는 능력을 가졌다. 수업시간에 눈은 칠판을 보지만 머릿속에서는 이미 우주여행을 하고 돌아온 뒤였다. 사실 이러한 몽상가적 측면은 창작활동에서 도움이 된다. 글을 쓰고 사진 촬영을 위해서는 이러한 창의력과 상상력은 필수적인 요소일 수 있다. 하지만 집중해서 업무나 공부를 해야하는 상황에서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 



감정 조절, 극단성

나는 극단적이다. 모아니면 도 그게 나다. 우울함은 기본값으로 가지고 있지만 외부 자극에 쉽게 오르내린다. 이것 또한 내가 정신과에 가게된 이유 중 하나다. 감정 조절은 지금도 내가 아주 힘들고 예민한 부분으로 정신과 치료에서 신경쓰는 점 이다. 밖에서는 잘 지내다가도 집에 오면 우울함을 감당 할 수 없어진다. 또 어느날은 잘 지내다가 조금만 하려던것이 틀어지면 우울함이 나를 삼켜버린다. 그렇게 나는 감정 조절은 커녕 감정에 따라 휩쓸려 살고있다. 나에게 감정이란 늘 감당 할 수 없고 내 삶의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다. 삶이 힘들거나 우울하면 그것을 이겨내기 위해 자신만의 방법으로 해소하는 친구들이 신기했다. 나는 우울하면 그냥 우울에게 잡아 먹히고 있다. 어떠한 문제가 있으면 그 문제가 완전히 해결될때까지 불안함을 느끼다가 해결이 되면 그제서야 잠을 자고 언제 그랬냐는 듯 신나게 뛰어다녔다. 이렇게  아주 작은 자극에도 천국과 지옥을 시간 단위로 오가니 나도 모르게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지금도 이 이런 감정조절 부분은 정신과 방문, 상담에 신경쓰는 부분 중 하나이다. 


충동성

ADHD 증상 중 하나는 충동성이다. 나는 일하다가 모바일 쇼핑으로 충동 구매를 하고 갑자기 머리를 자르고 갑자기 학원을 등록하기도 한다.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을 그냥 바로 적용할 뿐이다. 그리고 그 머릿속에는 정작 해야할 일들이 매우 많이 밀려있다가 2달 뒤 갑자기 외출 준비 하다말고 해치우고 한다. 어릴때 부터 크고 작은 충동성이 있었고 거기다 나는 감정 기복도 심하다 보니 충동성은 높아졌다. 그렇게 쌓인 충동성은 들이 20대 후반이 되어 터져버렸다. 우울감이 커질수록 수록 충동성도 같이 커졌다. 감정기복과 충동성이 점점 높아지더니 어느 기억 안나는 날 나는 스스로 상처를 입혔다. 정신과에 가야겠다고 마음먹은 결정적 사건이 되었다. 그렇다고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는 지금도 충동성이 아주 사라진것은 아니다. 지금도 충동구매로 갑자기 비행기표를 끊으며 머리를 자른다. 



지루함에 대한 공포

나는 새로운것을 시작하는것을 참 좋아한다. 이것을 역설하자면 금방 질리고 늘 새로운것을 찾는것이다.  그렇다 나는 정착하는것을 무서워 한다. 한군데 계속 평생 있어야 한다는 생각은 나에겐 안정감이 아닌  폐쇄감이다. 미국에 가게 된 계기도 한곳에 오래 있지 못하고 새로운 것을 갈망하는 성향과 충동성이 만든 대환장 콜라보레이션이었다. 어느 생일날 30대 생일도 한 직장에서 보낼 수 없다 생각 하고 나는 바로 미국행을 알아보고 미국으로 떠났다. 아니 누가 지루하고 우울하다고 미국으로 떠나버릴 생각을 한단 말인가. 그럴정도로 나에게 한군데 오래 있는것은 힘든일이다. 그렇게 간 미국에서도 시간이 지나니 다른 나라에서도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으니 말이다.

계속 새로움을 갈망고 충동적이니 시작은 매우 잘한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단점은 무엇을 제대로 끝내본적이 많이 없다. 운동이던 취미던 참여에 의미를 두었고 그냥 했다는것에 만족했다. 그렇게 나는 이도저도 잘하는것 없는 애매한 취미들만 늘어났다. (다행히 장비병은 없어서 취미를 시작할때 장비에 돈을 쓰진 않았다)  남들이 보기엔 멋있어 보일지 몰라도 충동적으로 시작하니 어영부영 하다 올림픽 마냥 참여에 의미를 두었다. 나는 이러한 성향이 아주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내가 그 순간 즐거웠고 보람을 느꼈으면 좋다고 생각했다. 이것 또한 adhd의 증상이 줄 누가 알았겠는가. 



우울감, 불안감 

ADHD는 높은 확률로 우울증을 동반하기도 한다. 게다가 기본적으로 우울감과 불안감은 태생적으로 높은 편이다. 아동으로 분류되던 어린 시절부터 각종 걱정을 했던 기억이 아직도 남아있다. 세상이 멸망하면 어떻게 하지, 친구들이 나를 싫어하면 어떻게 하지 하는 해결할 수 없는 걱정을 초등학생때 부터 했던것같다. 불안도가 높으니 우울감도 자연스럽게 높았다. 이러한 감정은 20년넘게 지속돼 오고 있다. 나는 지금도 이유없이 늘 불안하고 우울하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뿐 행복한 순간이 와도 그도 잠시 오래 가지 못하고 만성적인 우울과 불안이 항상 전제되어있었다. 지금도 정도와 종류의 차이만 있을뿐 우울감과 불안감은 내 가장 친한 친구로 늘 곁에 있다. 지금도 내가 실수를 하면 어떻게 하지 저 사람이 나를 싫어하면 어떻게 하지 라는 생각은 거의 늘 하는것같다. 이렇게 높은 불안감은 나를 늘 긴장 상태로 만들었고 긴장하고 하려던 일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결국 나의 실수와 불안감은 악순환이 되었다. 지금도 내가 실수를 하면 어쩌지 하는 생각에 갑자기 심장이 쿵쿵 내려앉기도 하였다. 그리고 그 걱정은 실제로 이어졌고 낮은 자존감으로 이어졌다. 


자존감

 나의 자존감은 어느 분야냐에 따라 달라졌다. 먼저 공부머리, 일머리는 꽝인 나는 사회인으로써 자존감은 박살난지 이미 오래다. 특히나 자본주의 사회에서 필요한 일잘하고 돈 잘버는 구성원이 되는건 이미 포기한지 오래되었다. 가장 성과를 못내 곳이 직장이다 보니 나는 직업과 관련된 일들에 가장 자존감이 낮다. 안타깝게도 직업, 직장은 인간의 삶에 큰 부분을 차지하고있어서 직장 생활을 시작한 뒤 나의 자존감은 바닥을 쳤다.  업무 성과가 좋지 못하니 자존감과 우울감을 계속 떨어졌다. 직장인을 소재로 한 TV , 영화, 유튜브 등을 볼때면 마음이 불편했고 피했다. 주로 일을 잘하는 캐릭터가 선한 주인공이고 일을 못하는 민폐 캐릭터가 빌런이기 때문이다. 어쩌다 새로운 사람을 만날때 사람들이 나중에 나에게 실망하겠지 하는 생각까지 하게되었다. 

능력적인 부분에서 자존감이 낮으니 다른 곳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외모에 대해 신경을 더 썼고 사람들이 나를 싫어하지 않게 착하게 살려고 애쓰고 노력했다. 이 또한 독이되어 나에게 돌아왔다. 미움받지 않으려고 계속 억누르고 가까운 가족이나 나에게 상처를 주었다. 하지만 이제는 내가 그동안 다녔던 직장들이 나와 맞지 않았고 나의 정신상태와 함께 악순환만 가져올 뿐이라는 것을 알았다. 이 한줄을 깨닫는데 10년의 시간과 수 많은 상처가 있었지만 지금이라도 알았으니 다행이라고 생각하려 한다. 



정신과적 측면에서 바라본 나의 모습은 안타까운면이 많다. 나에 대한 부정적인 것을 드러내는것은 약점이 될수 있다는것을 알고있다. 하지만 나는 이러한 되돌아봄을 통해 나의 감정을 표출하고 정리하는것도 의미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보는 나의 모습은 앞으로 계속 변할 수 있다. 내가 이러한 과정 속에서 미칠듯이 우울했던 시간들이 언젠가 조금은 완화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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