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많은 것들이 멈춰있었다. 학교의 교육활동과 체험활동도 멈췄고 마을의 다채로움도 잠시 숨죽여 있던 시간들. 그럼에도 살아 꿈틀거리는 마을은 한걸음 내딛기 위한 길을 찾고 있었다.
마을교육공동체의 걸어온 길,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을 찾는 마을교육 포럼이 열였다. 마을교육 포럼에는 그동안 치열하게 마을교육공동체를 운영했던 마을 활동가들의 발제가 중심이 되었다. 마을교육 포럼을 준비하면서 정작 학생들의 목소리가 빠져있음을 생각하고 학생들의 목소리를 들려줄 학생을 추천해 달라는 요청이 왔다. 아이들이 원하는 마을교육은 무엇인지, 어떤 교육을 준비하면 좋을지, 아이들이 마을에 기대하는 것은 무엇인지 등을 들려주면 마을교육의 방향을 수립하고 구체적인 실천 방안을 찾을 수 있었기에 매우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 분명했다.
희망하는 학생을 찾았다. 선뜻 나서지 않았다. 마을에서의 경험이 많은 친구들이라 마을교육 포럼에서 학생들의 목소리를 들려주는 것이 필요한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어른들 틈에 끼여 학생들의 목소리를 들려주는 것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그중에 망설이는 표정이 있었다. 그 표정을 놓치지 않고 그 아이에게 조용히 다가가 함께 할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자신이 학생들의 목소리를 대표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한번 해보겠노라고 했다. 어떤 이야기를 해야 하는지 묻기에 마을은 나에게 어떤 의미인가, 마을이 청소년의 성장에 어떤 경험을 주었나, 마을에 제안하고 싶은 말 등등 하고 싶은 말은 맘껏 하라고 했었다.
마을교육 포럼이 있는 날, 인원 제한이 있어 친구들도 없는 마을 커뮤니티 공간에 혼자서 참석했다. 물론 그 자리엔 나도 있고 초등학교 선생님도 있었고 엄마도 있었지만 어른들 틈에 중학생 혼자 있는 일은 어렵고 떨리는 일이었으리라.
마을교육의 길을 발제하는 사람은 8명이었다. 마을 활동가들의 이야기가 펼쳐졌다. 폐교 위기의 학교를 살리기 위해 마을 주민과 학교 선생님들이 모여 교육과정을 함께 운영하여 마을에 아이들 소리가 많아진 마을이 되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청년이 마을에 머물고 청소년들이 성장하여 건강한 마을 시민으로 뿌리내릴 수 있는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것이 마을의 목표이다. 그 길에 필요한 제안, 학부모들의 소통, 청년과 청소년이 머물 공간 확보 등 다양한 발제가 이어졌다. 아이들이 경쟁 사회의 구조에 편입되지 않고 건강한 시민으로 자라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어느새 아이들을 학원으로 내몰고 있다며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 것인가 묵직한 성찰도 담았다. 마을활동가들의 이야기들은 삶에서의 경험이 묻어나 다양한 분야에서 필요한 제안들이 담겨있었다.
어른들 틈에 앉아있는 아이는 긴장한 표정이 역력했다. 조용히 어른들의 이야기를 경청하면서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고 자신이 들려줄 이야기를 골똘하게 생각하는 눈치였다.
드디어 청소년의 목소리를 듣는 순서. 어른들의 관심이 남달랐다. 마을교육 포럼에서 처음으로 학생의 목소리를 듣는 일이니 사랑스러움과 가대감이 그대로 드러나곤 했다. 그 기대감과 관심이 친구에게는 그만큼 부담으로 다가왔으리라. 마스크 위로도 보이는 빨개진 볼이 보일 정도였다. 나도 함께 긴장되었다. 긴장했지만 부드러우면서도 야무진 아이의 이야기는 단단하게 들렸다. 살짝 떨리는 목소리는 친구의 이야기에 더 몰입하게 만들었다.
마을에서 많은 것을 경험하고 즐겁게 생활했다는 말로 시작한다. 초등학교 때 마을 어른들의 삶을 배우면서 우리 마을에 어떤 어른이 살고 어떤 과정을 거쳐 형성되었는지를 이해하게 되었다. 중학교에 올라와서는 교과 수업들이 많아지면서 마을과 연계된 수업들이 적어졌다. 그 점이 아쉽다. 그럼에도 마을의 경험이 중학교로 이어져 다양한 활동을 운영했다. 생활 협약, 스스로 기획한 다 함께 캠프, 체육대회, 축제, 현장 체험학습, 서로 협의하고 토론하는 문화 등을 통해 자발성을 길렀다. 자신들이 성장하는데 마을의 다양한 경험은 큰 힘이 될 것이라는 이야기를 야무지게 전달했다.
아이의 발언을 들으며 마을 어른들은 마음 벅찼다. 그동안의 시간과 고생이 헛되지 않았구나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이어진 아이의 발언.
‘선생님과 어른들은 인공지능이 우리 삶에 들어오고 빠르게 변하는 사회에서 성적이 더 이상 전부가 아니라는 말을 한다. 우리도 크게는 동의한다. 하지만 대학 수능 시험과 취업 등을 생각하면 우리들의 불안감은 없어지지 않는다. 고등학교 선택을 앞두고 영어, 수학 공부를 해야 하고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해서는 수능을 대비하는 준비를 해야 한다. 경쟁해야 할 현실이 스트레스로 다가와서 초조하고, 그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 시험공부에 매달리면서 학원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아이들의 현실적 고민인 동시에 어른들의 고민이기도 했다. 그리고 이어진 O의 말에 어른들은 숙연해졌다.
“우리가 좋은 대학과 사회적 성공이 중심이 되는 사회의 요구를 거슬러 갈 수 있도록, 우리가 원하는 것을 스스로 찾아갈 수 있도록 마을이 환경을 만들어 주었으면 한다.”
연대하고 함께 사는 사회를 만드는 일에 확신을 가질 수 있도록, 함께 하는 활동을 하면서 성취감을 느끼고 미래를 만들어갈 수 있도록, 불안해하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삶을 선택할 수 있도록, 그런 믿음과 확신이 설 수 있도록 마을에서 판을 만들어달라는 주문이었다. 그리고 발제할 내용을 준비하면서 이 마을이 얼마나 좋은지, 마을에서 자랄 수 있어서 얼마나 행복한지 생각하는 시간이 되었다는 소감을 전했다. “엄마의 딸로 태어나서 정말 고맙고 행복해.”라는 다정한 말을 전하는 아이가 얼마나 사랑스러웠는지 모른다. 아이의 엄마가 부러울 지경이었다.
아이가 상기된 표정으로 발언을 끝내자, 어른들의 터지는 박수와 환호가 공간을 가득 채웠다. 어른들의 박수는 야무지고 당찬 아이를 만든 마을이라는 뿌듯함이었고, 아이의 시간을 응원하는 환호였다. 뿌듯한 동시에 그 자리에 있던 어른들 모두 머리를 망치로 한 대 맞은 듯한 기분이었다. 아이가, 그리고 마을의 아이들이 던지는 묵직한 과제 때문이었다. 어른들의 고민이고, 사회의 고민이었지만 아이의 입에서 나오는 현실적인 고민을 들으니 그 무게가 더 크게 다가왔다.
마을은 아이의 이야기에 답할 준비를 해야 했다. 아이가 내준 숙제를 고민하면서 대안을 찾기 위해 모였다. 그리고 아이들의 불확실한 진로에 대한 고민을 함께 나눌 진로 교육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협의를 거쳐 탄생한 진로 탐색 활동이 ‘청청카페’와 ‘청청포럼’이다. 마을에서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나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찾아가는 청년들을 찾았다. 자기 삶을 찾아가는 청년들이 불확실한 미래로 흔들리는 청소년에게 자기 경험을 나누어주는 프로그램이었다.
마을에서 준 가르침을 잊지 않고 성장하는 아이들과, 아이가 던진 제안에 답을 찾는 마을이 있다. 송악마을의 가치가 돋보이는 지점이다. 내 아이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아이들이 행복한 세상을 위해 아이들의 목소리를 듣고 필요한 지원을 하는 마을에서 아이들은 배우고 성장한다. 송악마을의 건강함이 바이러스처럼 온 나라 곳곳에 퍼지기를 기대한다. 이 마을에서 희망을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