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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로키 - 캔모어

2025/02/21

by Stellar Feb 22. 2025
브런치 글 이미지 1


2019년 여름에 왔었으니 5년 반 만이다. 캐나다 워크퍼밋을 만료되기 전에 받아 두어야 해서 어느 지역으로 갈지 고민하다 결국 아름다운 기억이 남아있던 캔모어와 밴프로 결정했다.


어제저녁 캘거리에서 숙소가 있는 캔모어로 데려다준 셔틀버스기사는 승객들에게 너희는 운이 참 좋게 따뜻한 날에 왔다며 어제는 영하 30도였다고 했다. 그렇지 않아도 어제 공항으로 떠나기 전 항공사에서 받은 메일에 캐나다 동부지역의 눈폭풍으로 인한 여객기사고 수습 및 기상악화로 대부분의 항공편이 취소되거나 지연됐으니 출항스케줄을 확인하라고 안내되어 있었다. 활주로에 쌓인 눈에 미끄러져 전복된 여객기사고에 사망자가 발생하지 않았다는 것과 토론토로 가려던 마음을 바꾼 것에 안도하며 비행기가 착륙할 때 활주로 주변으로 하얗게 쌓인 눈을 바라보았다.


인구밀도가 낮아서일까 역시 캐나다 사람들은 활달하고 친절하다. 급한 마음에 셔틀버스시간을 잘못 예약했는데 기꺼이 이미 예약이 마감된 빠른 차편에 나를 태워준 여행사 직원과 저녁 늦게 먹을거리를 찾으러 들어갔던 아시안마트의 점원, 로밍이 되어있지 않은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지 못해 체크인을 못하고 있는데 기꺼이 도와준 호텔 식당의 직원까지 먼저 말을 걸고 사람과 대화하는데 불편함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다. 아무리 같은 서비스직 노동자라도 예의 바르고 수줍은 런더너들과는 풍기는 분위기가 다르다.


2019년에 내가 묵었던 숙소가 맞는지 긴가민가 했는데 아침에 밖에 나와서 보는 거리의 풍경이 그때와 같다. 그때의 그 산과 그때의 그 작은 책방과 그때는 없었던 거리에 쌓인 하얀 눈. 며칠 전에 완독 한 한강의 ‘작별하지 않는다’를 읽는 내내 나를 잠식해 온 온통 눈에 덮인 길과 얼어붙은 강기슭의 풍경으로 반나절 만에 들어왔다. 아직 만들어지지 않은, 검은 나무들이 가득 서있는 경하와 인선의 다큐멘터리가 내 상상 속에서 반복재생되고 있는 탓인지 눈이 쌓인 기슭 사이를 빠른 유속으로 흐르는 빙하수를 보는데 영화 ‘존 오브 인터레스트’의 악인 아돌프가 아들과 강에서 물놀이를 하다가 물속에 유령처럼 떠돌던 아우슈비츠 희생자의 얼굴뼈를 발견하고는 황급히 집으로 달려와 피부를 벅벅 씻어내던 장면이 떠오른다. 기후변화로 빙하가 녹아내리면 물이 된 얼음을 타고 어두운 비밀들이 흘러올 것처럼 눈앞의 강물을 노려본다. 용서받을 수 없는 악을 행하는 인간에 어떻게 맞서야 하는가.


이곳저곳을 여행하며 살다 보면 자잘하거나 치명적인 인종차별과 말로 다 전할 수 없는 감사를 동시에 받게 된다. 편견이 무너지기도 하지만 때론 벽을 쌓기도 한다. 영하 30도로 우습게 떨어지는 겨울 속에 수 없이 많은 야생동물들이 살고 있다. 따뜻하고 살기 좋은 곳엔 인간이 살아야 하니까. 나와 세상을 동시에 아끼는 것은 정말로 어려운 일이다. 그럼에도, 그럼에도 모순 속에서 균형을 알기 위해선 사람도 고이지 말고 흘러야 한다. 묻혀있던 뼈들을 들춰내고 숨어있는 고통을 마주하면서. 손가락이 부서질 듯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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