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을 불러내는
마법 같은 음식

네가 좋아하는 음식, 갈비찜 2

by 윤십이월

기억을 불러내는 마법 같은 음식

네가 좋아하는 음식, 갈비찜 2



아들, 엄마가 너희들을 키우면서 알게 된 사실은 아이들도 자주 과거를 돌이켜 보고 옛 이야기 하기를 좋아한다는 거야.

“엄마, 엄마, 우리 9층 살 때 말이야. ……”

“9층 살 때가 정말 좋았어.”

네가 대여섯 살 때 달고 살던 말이야. 그때 우리는 잠깐 시흥에서 살고 있었는데, 그전에 살던 분당 아파트가 9층이었어. 네가 아주 어렸을 때는 집과 할머니 댁을 오가면서 지내다가 완전히 우리 집에서만 지내게 된 것이 대충 네 살 때쯤이야. 마침 그때 엄마가 한가한 편이라 같이 놀아주고 문화센터 수업이나 수영장 등에 데리고 다니기도 했지. 가까이에 있는 외가에 또래 사촌들이 있어서 같이 어린이집도 다니고 놀이터에서 놀기도 해서 그것도 좋았을 거고. 이런저런 이유 때문에 ‘9층 살 때’, 즉 4살 때의 몇 달은 너의 ‘요순시대’였어.

그렇게 알고 있었어. 그것도 잘못 안 건 아닌데 나중에 다시 생각해 보니 ‘요순시대’에 대한 그리움에는 동생 없이 네가 엄마, 아빠의 관심과 사랑을 독차지하던 시절에 대한 향수도 섞여 있었던 것 같아. 동생이 엄마 뱃속에 있을 때부터 너는 아우를 탔고 그걸 9층 살 때가 좋았다는 말로 에둘러 표현했던 거지.

어찌 됐든 너의 ‘나 때 ~’는 다섯 살 무렵부터 시작된 거야. 과거를 기억하고 언어로 표현할 수 있게 된 게 그 나이쯤이었다고 볼 수도 있고, 자기 정체성이 확실해진 나이라고 볼 수도 있을 거야. 기억은 그 사람의 정체성이니, 추억을 얘기한다는 것은 정체성을 확인하는 것일 수도 있을 테니까.

그리고 추억을 공유한다는 것은 서로가 서로의 정체성의 일부가 된다는 거지. 사람뿐 아니라 공간과 사물과 날씨나 하늘 같은 자연까지도. 그중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음식이야.


마르셀 프루스트는 미각에 대해 ‘그것(추억)과 동시에 태어나 그것과 떨어질 수 없는 동반자’이라고 했어. 미각이라고 했지만 거기에는 음식의 냄새를 감각하는 후각과 질감을 느끼는 촉각 등이 모두 포함되어 있을 거야.

어떤 냄새를 맡는 순간, 특정 기억이 떠오르는 것을 프루스트 효과라고 부르는지. 프루스트가 쓴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라는 길고 긴 소설의 맨 앞부분에서 주인공은 ‘마들렌 조각이 섞인 홍차 한 모금이 입천장에 닿는 순간, 그 음식의 맛과 관련이 있으면서도 성질이 다른 어떤 감미로운 기쁨이 자신을 사로잡으며 고립시켰다’고 했어. 그리고 그 뒤로 4페이지(북리더 화면 기준) 정도를 그것의 정체를 생각해 내는데 할애하고 있어. 그러니까 어떤 냄새를 맡았다고 해리포터의 포트키처럼 그 순간에 즉각 특정 기억이 기계적으로 떠오르는 것이 아니라 처음에는 어떤 벅찬 감정으로 시작해서, 어렵게 어렵게 끌어올려지는 거지.

프루스트는 감미로운 기쁨이라고 했는데, 내 경우는 좋은 기억이든 나쁜 기억이든 ‘깊은 심연에 닻을 내린 그 어떤 것이 꿈틀 하며 위로 올라오려는’ 것을 느낄 때면 늘 가슴이 쿵 내려앉곤 해. 뒤따라 목이 메어오는 것 같기도 하고, 가슴 한 구석이 저릿하게 아파 오는 것 같기도 한 슬픔과 그리움이 온몸으로 퍼지지. 서서히 구체적 기억들로 형체를 갖추고 나면 별 것 아닌 경우도 많은 데 처음 그것이 불려 나오는 순간만큼은 늘 그래. 때로는 구체적인 기억은 끝내 떠오르지 않은 채 막연한 분위기로만 밀려왔다 순식간에 사라져 버리는 경우도 있는데, 그럴 때도 마찬가지야. 아마도 이런 차이는 사람마다 갖고 있는 정조(情調)의 차이일 수도 있고 엄마가 늙었기 때문일 수도 있을 것 같아.


감미로운 기쁨이 아닌 슬픔과 그리움에서 시작하더라도 도달하는 기억은 화사하고 따뜻한 것일 때도 있어. 어떤 냄새는 늘 정확히 같은 범주의 다양한 장면들을 상기시키기도 하는데, 내 경우에 갖은양념과 육향이 배어 있는 달고 짭조름한 간장 냄새는 유년 시절 명절이나 잔치의 분위기를 떠올려 줘. 아무 일 없는 평범한 저녁에도 갈비찜 같은 간장 양념의 고기 요리를 하면 마법처럼 순식간에 집안 가득 잔치의 분위기가 들어차는 거지. 그때그때 떠오르는 구체적 기억의 조각은 조금씩 달라. 어렸을 때 설 명절의 한 장면일 때도 있고, 누군가의 생신 잔치일 때도 있고. 이 모든 장면들은 갈비찜이라는 해시태그를 달고서 내 머릿속에 저장되어 있는 모양이야.

여럿이 모여 시끌시끌 부산하고 음식이 풍성하고 …… 따지고 보면 별 것 아니고, 사춘기 이후로는 피곤하고 부담스럽게만 느껴졌는데 그럼에도 어릴 적 잔치의 그 들뜬 분위기는 내 머릿속 한구석에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나 봐.

아들, 너도 그러니? 너에게도 어떤 좋은 음식 냄새가 마법처럼 불러내 줄 그런 화사한 분위기의 기억들이 남아 있으면 좋겠다. 엄마가 그런 기억들을 남겨준 거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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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미래의 네 가족들의 추억과 같이 태어나 그것의 동반자가 되어줄 갈비찜을 이어서 만들어 보자.


핏물을 충분히 제거한 갈비는 찬물에 씻어서 물기를 빼 줘. 지방이 너무 많이 붙어 있으면 제거하고, 지나치게 살집이 두툼한 것은 잔칼질을 해주기도 하는데 어지간한 크기의 고기 덩어리는 잘 끓이기만 해도 충분히 부드러워지니까 걱정할 필요 없어.


다음은 갈비찜 양념을 만들 차례야. 양념장은 집집마다 다 다르겠지만 크게 나눠 봤을 때 간장에 부재료를 넣고 함께 끓여서 맑게 만드는 것과 간장에 부재료를 갈아 넣고 섞어서 걸쭉하게 만드는 것으로 나눠볼 수 있을 것 같아. 맑은 간장 양념은 음식이 깔끔한데 비해 걸쭉한 간장 양념은 갈비에 양념이 잘 붙어 있는 장점이 있어.

우리 집 갈비찜은 후자의 양념장을 사용해. 진간장에 양파, 배, 마늘을 갈아 넣고, 설탕, 생강가루, 통후추, 매실청, 청주 등을 넣어서 만들어. 여기까지가 기본 재료인데 만약 배가 없으면 배 음료수를 조금 넣어도 되고 사과를 대신 갈아 넣어도 괜찮아. 파인애플이나 키위 같은 과일을 넣을 수도 있는데 이런 과일들은 연육 작용을 너무 심하게 하니까 조금만 넣어야 해. 원하면 넛맥 같은 향신료를 살짝 넣어도 좋아.

양념장은 따로 숙성시킬 필요 없고 잘 섞어주기만 해. 따로 물을 붓지 않고 이것만으로 조리할 거니까 갈비에 부었을 때 잠길 정도의 양이 돼야 해. 그러니까 간은 찍어 먹어 봤을 때 약간 싱거워야 하고, 마지막에 물엿 추가할 거니까 달지 않다 싶은 정도라야 해.

양념장에 갈비를 잘 버무린 다음에 준비해 둔 대추와 월계수 잎 몇 장을 얹어서 냉장고에서 하룻밤 정도 숙성시켜. 대추는 끓일 때 넣어도 되지만 잊어버리니까 미리 넣어 두는 거야. 중간에 몇 번 뒤적여 주는 것도 잊지 말고.


가열은 일반 냄비로 할 수도 있고 압력솥으로 할 수도 있는데 일반 냄비를 사용하더라도 바닥이 두꺼운 것이라야 해. 일반 냄비로 끓일 때는 강불에서 시작해 끓기 시작하면 중간 불로 줄여서 20분 정도 끓이고 약불로 줄여 다시 20분 정도 뜸 들이면 돼. 젓가락을 고기에 꽂았다 뺏을 때 핏물이 나오지 않으면 다 익은 거야. 압력솥은 압력추가 돌아가는 시간 기준으로 15분~20분 정도 끓이면 되는데, 엄마는 압력솥은 추천하지 않아. 조리가 잘못됐을 때 수습하기가 쉽지 않거든. 일반 냄비로 끓이더라도 좋은 재료로 잘 끓이면 충분히 부드럽게 익힐 수 있을까 굳이 압력솥 안 써도 돼.


이렇게 끓이고 나면 국물이 꽤 흥건한 갈비찜이 될 거야. 한 김 나가고 나면 고기를 다 건저내고 국물만 다른 그릇에 따라서 냉장고에서 식혀 줘. 이때 월계수 잎이나 통후추는 건져내고.

완전히 식으면 기름이 굳어서 마치 빙하처럼 떠오를 거야. 그걸 거둬서 버리고 남은 국물에 건져둔 고기를 넣고 다시 한번 끓여야 해.

이번에는 준비해 놓은 밤을 넣고 대파도 썰어 넣고 끓여 줘. 오래 끓일 필요 없이 중불에서 10분 정도만 끓이면 돼. 끓이면서 물엿과 후추를 추가하고, 간을 보아가며 필요하면 간장을 추가해. 밤이 익으면 다 된 거야.

이제 불을 끄고 참기름을 살짝 둘러주고 은행, 잣을 얹으면 완성!


냄새를 맡아봐. 할머니와 엄마가 해주던 바로 그 갈비찜 냄새가 나니? 그러면 성공한 거야.




*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 - 스완네 집 쪽으로』 마르셀 프루스트 저 / 민음사 / 전자책 최종 업데이트 2022년 인용

* 인용문 중 일부는 요약된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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