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서칭:나를 찾아서
선택은 무엇인가? 번뇌의 소멸이며, 존재의 고통에서 벗어나는 일이며, 지혜의 증득이며, 세상사람들에게 쉼과 깸을 주는 일이다. 수행의 목적이다. 그런데 단순하지만 묘한 이치는, 이런 선택과 함께 반드시 포기해야 할 것이 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하자면 포기하지 않으면, 지고한 선택은 결코 선택되지 않고 탈락한다는 점이다. 무엇을 버릴 것인가?
-법인 스님(일지암 암주)
누구에게나 그렇듯 고민을 하는 순간만큼 아무것도 아닌 문제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크게 다가온다.
3주 전, 나는 회사에 사직서를 제출하고 퇴사했다. 이번 퇴사는 이전의 것과 매우 달랐다. 계약만료, 비즈니스 악화 등 외부적 이유가 아닌, 타의를 빙자한 내면의 동기에 의한 퇴사였다.
나는 마케팅 팀에 캠페인(마케팅 캠페인은 기업이 특정 기간 동안 제품 또는 목표를 홍보하고 판매 또는 인지도 제고를 위한 종합적인 전략)을 기획하고 실행하는 매니저로써 입사를 하게 됐다. 재직 18개월이 지났을 무렵, 회사는 연 매출이 10억이 안나 올 정도로 비즈니스 적으로 매우 힘든 상황이었다.
대학 졸업 후 바로 창업을 했던 경영자들은 외부에서 들려오는 ‘이거 해라 저거 해라’ 조언에 갈대 같이 흔들렸다. 비즈니스의 우선순위가 1-2주면 바뀌다 보니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직원들의 커뮤니케이션이 잘 될 리가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마케팅 부서장의 퇴사로 우리 팀이 허공에 흩뿌려졌고, 마케팅 기획자였던 나는 사업의 특성상 영업팀 소속으로 부서 이동됐다. 처음엔 마케팅-영업이 함께 협업할 수 있게 되어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불행의 시작이었다.
당시 영업 부서장은 굉장한 나르시시스트였는데, 유일하게 직무가 달랐던 난 그의 공격 대상이었다. 동료 직원에게 내 험담을 서슴없이 하거나, 영업-마케팅 미팅을 빙자하여 영업의 모든 일을 나에게 떠맡겼다. 불합리한 업무 분장에 대해 해결을 요청했지만 오히려 내 성격을 탓하며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때부터, 그는 모든 미팅과 업무에서 나를 배제하기 시작했다. 부당한 업무 지시, 그리고 권력을 이용한 갑질, 그럼에도 그를 도와 일한 성과를 인정하지 않는 등 그의 행동은 결국 나 자신을 상처받게 만들었다.
퇴사 직전 6년 차 직장인이었던 나는 스스로의 경계가 자꾸 침범당하는 경험을 하면서 내 삶에 대한 주체성을 잃어갔다. 30대 중반, 생각지도 못했던 위기를 맞이하면서 매일 같이 인생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됐다.
회사는 나의 안녕을 보장해 주는가?
내가 잘하는 것은 무엇인가?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이 되고 싶은가?
그리고 나는 행복한가?
난 내 일을 그 누구보다 열심히 했고, 언젠가는 그것을 알아봐 주는 이가 나타날 것이라 굳게 믿으며 내 자리에서 묵묵히 할 수 있는 것들을 하며 버텼다. 하지만, 회사는 더 이상 나를 보호해주지 않았다. 자아를 발견하고 성장할 수 있는 환경에서 점점 멀어져 가고 있었다.
회사에서는 그럼에도 유일하게 내가 존경하던 리더가 있었다. 그는 타 팀을 이끌고 계셨음에도 불구하고, 마케팅 팀장이 퇴사한 날부터 내가 영업 업무를 도맡아 하는 그 순간까지 행여나 내가 길고 방황할까 매일 아침이면 찾아와 안부 인사를 건네시던 분이었다. 내 능력을 알아봐 주시고 이것이 최대한 발휘될 수 있도록 멘토로서 함께 고민하여 나아갈 길을 제시하는 분이셨다.
그러던 어느 날, 정말 갑작스럽게 그는 나에게 커피 한잔 너머로 마지막 말씀을 남기고 퇴사를 하셨다.
"넌 정말 재능이 있어. 그런데 너만 그걸 모르는 것 같아. 그게 너무 마음이 아파. 그러니, 스스로를 조금 더 믿으면 좋겠어. 남들이 뭐라 해도, 네 의견에 대한 확신을 가지면 넌 크게 성공할 거야!"
그날 이후로, 나는 이곳에서 완전한 희망을 잃었다. 유적지 위에 쌓아 올린 레고랜드처럼 그의 리더십이 유일한 배움의 터전이자 내가 생각한 회사에서의 미래였지만, 개인의 이익을 사수하기 위해 자신들만의 리그를 형성하는 정치판으로 회사는 급속히 변해갔다.
처음 입사했을 때 내가 찾던 회사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결국, 내가 할 일은 나 자신을 위해 결정을 내리는 것이었다. 나는 그곳에서 더는 시간을 허비해서는 안 된다고 결심했다.
다만, 그 시기를 언제로 볼 것인가 그것이 나에게 남겨진 숙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