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리난리 대만여행(5), 왜 우리의 여행은 난리난리가 되었나?
드디어 기대하던 지우펀에 도착했다.
우리가 도착했을 때는 비가 내려도 아직 어둠이 내리지 않은 시간이었다.
가이드의 설명에 따르면 지우펀은 워낙 고지대라 해가 일찍 진다며 5시 반에서 6시 사이면 홍등이 켜지기
시작한다고 설명해 주었다.
대신 좁고 얽힌 골목길은 쉽게 길을 잃을 수 있으니 번지수를 잘 보고 올라가야 한단다.
155번 번지!
지금도 잊을 수 없는 그 번지수를 찾아 한 골목으로 쭉~ 올라가면
우리가 바라고 바라는 지우펀의 풍경을 만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건 봐야지.
이걸 위한 지우펀이 아닌가.
본격적인 지우펀 관광의 시작 전 쇼핑이 먼저 시작되었다.
대만에서 꼭 사야 한다는 누카크래커부터 펑리수, 우롱차 그리고 오카리나까지.
다양한 쇼핑거리들은 하나씩 훑으면서 올라가기 시작했다.
먼저 가게를 소개해주고 알아서 쇼핑 자유시간 동안 지우펀을 즐기다 버스정류장에서 만나기.
대신 여기서는 일찍 나오지 말 것을 강조했다.
버스가 제시간에 들어온단다.
오 여유 있는데!
지우펀을 넉넉히 즐길 수 있겠다는 생각에 조금 신이 났지만, 이때는 몰랐다.
이 여유가 만든 사태를.
가이드가 먼저 자리를 떠나고 우리의 시간이 시작되었다.
다음날 자유관광으로 융캉제를 갈 계획이었던 터라 누가 크래커를 그곳에서 사려고 생각했다.
하지만, 여러 개 사려면 이곳이 편하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행사도 행사였지만, 잔뜩 산 짐을 보관해 주니 들고 다닐 필요도 없다.
역시 여행의 즐거움 중 하나는 쇼핑에 있다.
쇼핑을 마치고
본격적인 관광은 비와 함께 시작되었다.
비가 잦아드나 싶었는데 아주 본격적으로 내리기 시작한다.
우비를 입었지만 우비를 뚫을 기세로 내리는 비에 두들겨 맞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진과스까지 멀쩡했던 신발이 그 비를 맞으며 걷는 동안 작은 웅덩이가 되어있었다.
질퍽한 그 느낌.
거기에 우산을 쓴 사람들에게 밀리고 찔리고 하면서 걷는 동안 정신은 혼미해졌다.
그 순간 저절로 이 말이 터져 나왔다.
“아주 난리다 난리.
6.25 때 난리는 난리도 아니야!"
이때 나왔다.
우리의 대만여행이 난리난리가 되었던 슬픈 이야기가.
번지수를 확인하며 골목을 오르는 사이 홍등이 하나둘 불을 밝혔다.
비에 젖은 공기 속에서 더욱 선명하게 빛나는 붉은 등이 거리를 물들이기 시작했다.
그 풍경은 묘하게 마음을 울렸다.
하지만 동시에 어디선가 풍겨오는 취두부 냄새에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아.. 정말 한번 맡고 나니 어디서든 그 냄새가 코를 자극한다.
기억 어딘가에 각인되어 있는 느낌이다.
아름다운 홍등 거리에서 감탄과 곤혹스러움이 한꺼번에 스쳐가는 순간이었다.
대만을 오기 전, 지우펀은 센과 치히로의 배경이 아니라는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기사를 보았지만,
분위기만큼은 애니 속 한 장면과 닮아 있었다.
특히나, 그 난리난리를 헤치고 도착한 155번지의 찻집의 풍경은 더더욱 그런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내리는 비에 온전한 전경을 볼 수는 없었지만, 일부만으로도 충분히 특별했다.
다만, 원하는 예쁜 사진은 찍을 수 없었다.
예류부터 우리의 콘셉트를 코믹이다.
예쁨을 기대하고 온 날, 끝까지 코믹이 된 지우펀.
그럼에도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게 했다.
그래, 이걸 보고 싶었던 거야.
그래도 맑은 날, 홍등 아래 찻집에 앉아 전경을 내려다보고 싶다는 마음은 끝내 지울 수 없었다.
지우펀은 해발 600~1000미터 사이에 자리하고 있어 일 년 중 아홉 달은 비가 내린다고 한다.
그날처럼 쏟아지는 폭우가 아니더라도 안개비는 흩뿌려질 때가 많다고.
언제가 좋냐는 말에 가이드 분도 확답을 못하시더라는..
아무리 날이 서늘해도 대만은 기본적으로 습기가 충만한 나라다.
미스트가 따로 필요 없는.
그래서 이 옴팡 젖어버린 신발을 내일 신을 수 있을까?
여행오기 전 하나 더 준비할까 하다가 가방무게 늘리지 말자는 생각에 포기했던 과거의 내가 원망스러웠다.
어떻게 하지?
그런 고민의 시간, 가이드분의 명쾌한 답을 들었다.
"신발이 젖었다면 그냥 하나 사세요.
드라이기등으로 말리다 괜히 냄새만 나고 그리고 잘 마르지도 않아요."
쇼핑 리스트가 하나 추가된 순간이었다.
아쉬움이 가득했지만, 그럼에도 눈에 담을 수 있었던 풍경들에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날씨가 좋았다면 더없이 좋았겠지만, 그렇지 않다고 해서 여행이 주는 즐거움이 사라지지는 않았다.
새로운 것을 보고, 원하던 장면을 만났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미 기분이 채워졌다.
예쁘게 찍은 사진은 남지 않았지만, 그 순간을 즐기는 우리 모습이 사진 속에 담겼다.
결국 여행에서 오래 남는 건 풍경보다 함께 웃었던 시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같이 여행한 언니가 “오늘 콘셉트는 예쁨이야!”라고 말했지만,
결국 코믹이 되어버린 날,
비 때문에 입은 핑크색 우비를 입고 화려한 핑크 언니가 되었던 추억의 날로 떠올리면
웃음이 나오는 날이 되었다.
사실 이날의 계획은 원대했다.
어차피 저녁은 자유 시간이니, 지우펀에서 오래 머물러 밤 풍경을 즐기고 오자 했던 것.
“우리끼리 갔다가 우리끼리 돌아오면 되지!”라며 아무렇지 않게 생각했지만,
날씨는 전혀 고려하지 않았던 이 계획을 가이드분께 미리 발설하지 않았던 것에 가슴을 쓸어내렸다.
얼마나 다행인지!
7시에도 이미 어둠이 쫙 깔려서 버스 타러 가는 길이 얼마나 스산한지.
넉넉하다고 좋아했던 시간이 이렇게 많을 이유가 있었나 싶게 얼마나 길게 느껴지던지.
하지만, 문득 이런 질문을 서로에게 던졌다.
“이렇게 비를 맞아본 적 있나 요즘?”
한국이었다면 분명 집이나 카페에 앉아 따뜻한 차를 마시며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굳이 하지 않았을 경험, 굳이 겪을 필요 없는 상황이었지만,
다른 나라였기에 오히려 기꺼이 해볼 수 있었던 일이었다.
지나고 보니 아주 나쁜 경험만은 아니었다.
최악의 날씨 속에서도 웃을 수 있었으니까.
여행의 묘미란 이런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