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덕 이야기
장마가 잠시 비켜간 오후 5시. 초복을 지난 한 여름인데 바람이 가끔씩 향내를 뿌리며 다녀간다. 나는 동영상 위에 퍼지는 음악을 눈으로 귀로 감상하며 박수를 보낸다. 그들은 강 위에 놓인 제법 넓은 다리 위에서 연주를 하고 있다. 바이올린과 피아노 그리고 기타와 첼로와 더불어 커다란 북을 치기도 하며 플루트를 연주하기도 한다. 독주하며 행복해하고 합주하며 열정을 불태운다. 유튜브의 영상은 어느새 그들을 더 이상 달리지 않는 철길 위. 흰 구름 둥둥 떠가는 산을 배경으로 옮겨지고 연주자들은 더욱 환한 모습으로 날개 없는 천사가 되어 잠시 지상에 머무는 모습으로 내게 다가온다.
‘perfect’ 완전함 그랬다. 나는 적어도 4분 13초 동안은 완벽한 행복을 경험했다. 초집중의 상태였다는 뜻이다. 그들의 연주하는 길로 나도 발을 함께 내딛으며 호흡을 함께 하고 있었다. 긴 여운을 남기며 구름이 더 이상 화면에 남아 있지 않을 때 나도 다시 부조화와 불합리의 현실로 떨어졌다.
최근 두 분의 인생이 마감됐다. 특히 이탈리아의 거장 엔리오 모리코네의 생의 마지막 편지가 되어버린 글이 기억에 남는다. 그의 유서에서 그는 더 살아내야 할 생 자체에 대한 특별한 아쉬움은 없다고 했으나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들을 향한 진한 애정이 담긴 글을 남겼다고 한다. 나는 가족의 이름을 한 번 더 부르고 싶은 갈망으로 이제 곧 허공에 놓쳐 버릴 것이 안타깝고 너무나 소중한 것으로 기억되는 이름을 또박또박 적어 내려갔을 순간의 그의 마음이 그려져 가슴이 아팠다. 더욱이 부인에게 전하는 작별인사를 어찌 끝낼 수 있었을까 생각하면 그것은 나의 슬픔이 되었다. 그는 아내에게 부부의 연으로 하나로 묶어준 것을 이제는 포기하며 특별한 사랑을 다시 전한다고 말했단다. 그렇다. 부부의 연은 특별한 사랑이다.
얼마 전 스스럼없는 친구들의 모임에서 나누었던 대화가 문득 떠오른다.
반평생을 함께 살았어도 아집과 이기심으로 늘 상대보다 나를 먼저 생각하게 되는 것이 보통 부부의 그림이 아닌 가 싶다. 진정한 사랑은 상대가 어떤 선택을 하던 그이 그녀의 선택을 존중하는 것이라 했건만 내가 더 사랑을 받고 싶다 그리고 나의 선택을 그이가 존중해주길 원한다. 그래서 외롭고 아프다. 어느 날 우리의 친구는 남편에게 제안을 했단다. 혹시라도 배우자로 인하여 상처를 입거나 마음이 상하여 분이 올라오면 ‘화덕’이라고 말하기로 약속했단다. 언제일지 모르나 가까운 그 어느 날에 작별의 순간이 오는 것을 기억 하지는 뜻인 줄 모를 이가 있겠는가. 그날이 오면 더 이상의 후회가 무슨 소용이 있으며 배려할 대상을 어디에서 찾는단 말인가. 분명 깜짝 놀랄 강력한 한 방이다.
난 이제 화덕 피자가 싫어졌다. 탄두리 화덕에서 구운 치킨과 난 또한 멀리 할 것이다. 여름이 아직 맹렬한 위세를 떨치지 않고 있는 오늘을 잘 지내면서도 역대급 더위가 올 것이라는 보도를 접하며 불안을 떨칠 수 없는데 반복되는 일상에서 화덕의 뜨거움을 상상하며 산다는 것은 가슴 철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자연 속에서 음악을 연주하며 하모니로 완벽한 조화를 이루듯이 우리 그렇게 살 수는 없을까. 그동안 많이 아쉬웠던 것 잊어버리고, 받지 못해 억울했던 것도 흘려보내고 나의 의견에 동조하지 않아 화로 뭉쳤던 가슴도 쓸어내리자. 화덕은 잠시 잊고 쉬어가는 이 아름다운 곳에서 당신이 젤로 귀하다고 말하자. 돌아올 수 없는 길을 떠나며 혼자 가는 것이 걸리고 더 이상 돕지 못해 아쉽고 마음이 안 놓여 자꾸 돌아보는 날을 기억하자. 지금 이 순간 이름을 부르기 가장 힘든 사람이 당신이라고 고백하며 돌아가는 준비를 하고 함께 살 수는 없는 것일까. 그저 고맙고 미안하고 많이 사랑한다고 말하며 서로의 눈을 바라볼 수는 없는가. 아름다운 화양연화의 순간을 기억하자. 오늘 지금 이 순간 우리는 특별한 사랑을 할 상대를 만나 살고 있는 것이다.
2020년 7월 엔리오 모리코네 부고를 접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