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팔자

by 김인영



오늘로 당분간 이별이다. 봄 학기 마지막 이야길 아이들에게 들려주며 이야기했다.

9월에 다시 만나자고 여름을 잘 지내고 건강한 모습으로 보자고 할머닌 그 사이 더 재미있는 이야기를 많이 준비하겠다고 말하며 짧은 이별을 고했다. 오늘 들려준 이야기는 주인을 구한 강아지 이야기였다. 수업을 시작하며 도입부에 강아지도 마음이 있겠느냐고 물었다 어떤 아이는 분명히 있을 것 같다고 하고 또 몇몇의 어린이는 마음이 없다고 했다. 오늘의 이야기는 강아지 덕이가 가족처럼 대해주던 주인인 할아버지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 빗속을 달려가 할아버지를 구하지만 덕이는 결국 기운이 소진되어 죽음을 맞게 되는 줄거리였다. 얼마나 감정을 몰입하였는지 한 여자아이는 눈물까지 보이고 숨도 쉬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모두 강아지도 마음이 있다고 확신하고 은혜를 기억하라는 보은에 관한 수업을 마치고 나왔다. 학급 선생님들과도 수업에 관한 이야기를 잠시 나누고 다음 학기에 다시 뵙자며 등을 돌리려는데 한 선생님이 내게 방학 중 무슨 계획이 있느냐고 물었다. 난 무심코 한 달 여행을 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행선지를 묻기에 미국이라고 답했다. 갑자기 다른 선생님들도 우리의 대화에 급 관심을 보인다. 급기야 난 두 딸을 두었고 그들을 만나러 가고 난 이 시간을 많이 기다렸다고 고백을 했다.

문득 여행 중인 친구가 생각났다. 지난봄 미국을 다녀오더니 지난달에 다시 남편과 미국을 들어가 자주 친구들 방에 사진을 보내온다. 덕분에 알래스카의 여름을 받아보고 메인주의 아름다운 등대에 나의 가슴을 부풀리기도 한다. 평소에 등대를 좋아하는 나인지라 어느 때고 등대만 보면 설렌다.

오늘 계획보다 며칠 늦는다고 전해온 메일에 난 팔자 좋은 친구라고 써서 보냈다. 잠시 후 친구는 또 또 ~ 너도 상팔자잖아라고 내게 답을 해왔다.

난 웃음이 나왔다. 그리고 조금 부끄러웠다. 혹시라도 내가 친구를 많이 부러워한다고 생각했을까? 아님 친구는 조금 멋 적었을까? 생각해보니 지난번 소식에 남편과 함께 활짝 웃는 모습을 보고 난 팔자 좋은 친구라고 써서 보냈던 것 같다. 친구가 팔자가 좋으니까 좋다고 쓴 것이라고 답을 하곤 조금은 답답했다. 문자 그 이상의 뜻은 없고 느낀 대로 솔직히 표현했다. 소통한다는 것은 때로 참 어려운 일이다.

난 별로 욕심부리고 살지 않으니 사는데 ~척하지 않고 산다고 나름 자부한다. 잘난 척 있는 척할 것도 별로 없지만 척하고 사는 것이 인생에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정도는 진작 깨우치고 사는 탓이다. 하지만 모른 척하고 살고 싶다. 너의 잘못을 알아도 눈 감고 사는 마음의 여유를 갖고 싶다.


제법 긴 제목의 가요가 있단다. 당신은 천사와 커피를 마셔 본 적 있습니까? 나의 바람이다. 내가 천사가 되고 싶다. 나와 함께 커피를 마시면 각기 다른 개성과 삶의 사연을 가진 이들이 장마의 후덥지근함을 벗어나 답답한 현실과 아픔을 잊고 하루가 주어진 것이 가슴 떨리는 일로 생각하면서 커피의 향에만 몰입하는 그런 시간을 갖게 되는 천사로 살고 싶다. 누군가 커피를 마실 때 자꾸 생각나는 내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어느 시인의 말처럼 적어도 내가 사랑하는 주위의 사람 만이라도 내가 준 것은 잊어버리고 주지 못한 것만 생각하는 그런 사람이면 얼마나 아름답겠는가.

팔자가 좋다는 것이 그런 것이었으면 좋겠다. 남이 누리지 못하는 것을 갖고 누리는 것 말고 좋은 사람과 한 잔의 커피를 충분히 느끼면서 마실 수 있고 한 권의 책을 나누어 읽고 서로 느낌을 말하고 멋진 영화를 찾아가 보고 아주 가끔 뮤지컬도 무릎을 맞대고 고르고 연극도 만나서 보고 멋진 브런치도 즐기며 행복을 느끼고 싶다. 자연이 그리우면 김밥을 들고 숲으로 나서는 것이다. 멀리 간다고 더욱 행복한 것은 아니다. 그리고 나의 아이의 아이의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보고 싶고 웃음소리를 듣고 싶다. 내가 원하는 좋은 팔자는 그런 것이다. 관심 없던 우주의 탄생에 관심을 갖고 지질학자가 멋있어 보인다고 말할 때 웃으며 들어주는 이가 곁에 있다는 것도 행복할 조건이다.

나는 오늘 작은 실천을 했다. 그리운 친구에게 벼르던 책과 그녀가 두르면 어울릴 것 같은 스카프를 소포로 부치고 돌아오니 아직 북으로 도착하지 않은 장맛비가 바람을 부르고 있었다. 그녀가 두른 스카프에 고운 미소가 얹힐 것이 상상되어 행복하니 난 팔자 좋은 여인인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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