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사일러스는 늙은 등대지기였다.
사일러스는 눈이 나빴다. 그러나 그는 아무리 바다가 사나워도 그 파도들을 자신의 주름처럼 알고 있었고, 또한 곧지만 희끗한 등대의 불빛 아래에서 그는 어차피 매일 더디게 책을 읽었다.
눈이 나쁜 등대지기 사일러스는 천천히 미간을 구기며 창밖을 내다보았다. 먼 어둠 바깥에서는 폭풍이 불고 있었고, 그는 책을 계속 읽는 대신 손가락으로 길고 붉은 책갈피를 감았다 풀고 있었다. 그는 눈앞의 바다를 보며 이전에 그가 보았던 모든 바다를 생각하고 있었다.
등대의 거대한 불빛은 간간이 끼릭거리는 소리를 내며 돌아가고 있었다.
그 빛이 확성기처럼 사일러스가 앉아있는 바닥을 비추며 사라질 때마다 그는 눈을 깜박거렸다. 그는 등대의 불빛이 바닥에 어떤 모양을 그리는지, 몇 초간 머물렀다가 사라지는지 알고 있었다. 독서도 그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등대의 소리는 고장난 기계처럼 반복되어 왔고, 그의 눈 역시 천천히 움직여왔다. 그는 매일 밤 책을 더디게 읽었다. - 만일 모든 미래가 언젠가 기록된 바 있다면, 그것은 모든 문장 위에 적혔을 것이다.
바다는 잿빛으로 흔들리고 있었고, 그는 조그만 형체가 그 위를 떠다니고 있음을 볼 수 있었다. 사일러스는 읽던 부분을 덮어버리고 몸을 일으켜 얼룩지고 굴곡진 창으로 다가갔다. 폭풍이 불고 있었으나 바다도 다르지 않았다. 만일 모든 미래가 언젠가 기록된 바 있다면 그것은 문장 위에 …
둔한 머릿속으로 중얼거리면서도, 사일러스는 물론 배인 것으로 보이는 무언가가 바다 위에 떠 있음을 알아보았다. 그러나 그가 창에 더 가까이 다가선 것은 그 형체를 자세히 보기 위한 것은 아니었다. 그의 코가 창에 밀착될 만큼 가까워지자, 그의 입술에서 빠져나오는 숨 때문에 창에 김이 서렸다. 김은 점점 두꺼워지면서 그 크기를 넓혀갔다. 그러나 사일러스가 시선을 붙박은 빛은 창에 서린 김에 전혀 흐려지거나 가려지지 않는 듯했다. 빛은 배에서 나오는 것으로 보였으며, 아주 차분한 속도로 깜박거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 빛은 강하고 곧은 등대의 빛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선명했다. 등대의 빛은 직선으로 뻗어나가는 반면, 그것은 어떠한 특정한 방향성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또한 사일러스는, 마치 자신이 저것의 코앞에 간다 해도 그 크기나 밝기가 몇 배나 멀리 떨어진 지금 바라보는 것과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점차 뿌옇게 된 창에도 그것이 똑같이 보이는 것처럼.
사일러스는 손을 더듬어 망원경을 눈앞에 가져다 댔다. 그의 늙고 희끗한 눈이 유리를 통해 초점을 맞추면서, 그는 곧 그 형체를 선명하게 볼 수 있게 되었다. 과연 그것은 그가 예상한 대로 배였다. 다소간 낡고 작아보이긴 해도 그것은 틀림없이 바다 위에 떠 있는 배였으나, 사일러스가 상상한 모양은 아니었다. 배의 갑판, 몸체를 이루는 금속, 기계 장치, 모든 부품들은 우르렁거리는 물결 위에서 분해되고 있었다. 그것들은 마치 부드러운 힘을 받는 것처럼 파도 위에서 서로 멀어졌다가, 똑같은 부드러운 힘에 의해서인 듯 다시 가까워졌다.
빛은 그 모든 것의 가운데에서 어떠한 박동처럼 천천히 깜박이고 있었다.
사일러스는 얼굴에서 망원경을 내리고는, 다시 자리로 돌아가 읽던 책 위에 내려놓았다. 그는 망원경이 그의 손에서 떠나 책 위에 부딪칠 때의 작고 둔탁한 진동을 느꼈다. 동시에 늙은 등대지기 사일러스는 몸을 돌려 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의 신발의 두꺼운 밑창이 철로 된 발판을 두드렸고, 머리 위에서는 등대의 끼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는 자신의 두 발이 차례로 움직여 나선형으로 된 계단을 내려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만일 하나의 미래가 언젠가 기록된 바 있다면 … 이번에 사일러스는 무언가 질긴 것을 씹듯이 속으로 웅얼거렸는데, 그런데도 그는 등대의 소리와 자신의 발소리가 메아리치는 소리가 모두 그 빛을 흉내내고 있는 것만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그가 마침내 계단의 마지막 발판을 밟을 때, 그의 눈앞에는 무거운 나무 문에 난 작은 반원 모양의 창이 있었다. 창 너머로는 먼 바다에서 소용돌이치는 바람의 움직임이 보였다. 사일러스는 오른손을 울로 된 스웨터에 문지르고는 문의 두꺼운 손잡이를 잡았다. 그리고 그는 씹던 것을 벌컥 삼키듯이 문을 열어젖혔는데, 그만 돌계단을 굴러 그대로 축축한 땅 위에 엎어지고 말았다. 사일러스는 개구리처럼 넘어지고서도 잠깐 동안 일어서지 못했는데, 그것은 바람이 너무 강해서가 아니라 바람이 전혀 없어서였다. 그는 물론 손 아래의 축축한 풀을 느꼈고, 몸을 일으키고 움직일 때마다 어둑한 길 위의 자갈 소리를 들을 수 있었으며, 또한 먼 바다는 분명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그러나 그가 무릎을 짚고 마침내 일어났을 때, 그의 머리 위와 몸에는 그 어떤 바람도 스치지 않았다. 사일러스는 뚜렷하고 고요한 한밤중의 공기 속에 서 있었다.
늙은 사일러스는 아주 조심스럽게 귀를 기울였는데, 그제야 그는 희미하게 들려오는 파도의 마찰음, 부서지는 바람 소리 따위를 알아챌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소리로 인하여 비로소 그의 눈앞에서 험하게 울렁거리는 잿빛 바다가 인식되는 것 같았다. 그러나 사방이 바다였음에도, 그것은 아주 멀리서 들려오는 듯한 희미한 소리였고,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금세 의식 저편으로 사라져버렸다.
그래서 사일러스는 바다 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그가 걸음을 옮기자 처음에는 풀을 밟는 소리가 조용히 시작되었고, 그 다음에는 자갈길을 따라 걸으면서 돌을 밟는 소리가 울렸다. 고요 속에서 그것은 곧 유일한 소리가 되었다. 사일러스는 계속해서 걸었다. 그러나 아무리 걸어도 그의 발밑에서 나는 덜그럭거리는 소리에 가려 먼 바다의 희미한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그래서 사일러스는 바다 쪽으로 계속해서 걸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가 바로 발 아래에 잿빛 바다를 두었을 때, 사일러스는 멈췄다. 그러나 만일 모든 것이 그대로였다면 그는 계속해서 걸었을 것이다. 만일 그가 물속으로 계속 걸어가, 부츠와 바지가 물에 잠겨서 그의 몸으로 감겨들어왔다면 자신이 멈추었을 것인가를 그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사일러스는 그렇게 되기 이전에 걸음을 멈추었고, 그것은 다만 빛 때문이었다.
먼 바다 위에서 심장이 뛰듯 수축하고 이완하는 배의 중앙에서 깜박거리던 빛은 사일러스가 걷는 내내 일정하게 박동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가 걸음을 멈췄을 때, 빛은 물 아래로 사라졌다. 그것은 마치 부표가 바다 아래로 가라앉듯이, 혹은 찌가 용수철처럼 잠기듯이 순식간에 수면 아래로 내려갔다. 그래서 사일러스가 바다 바로 앞에서 멈추었을 때, 그는 이제 먼 수면 아래에서 빛나는 그것을 분명하게 볼 수 있었다. 빛은 배의 바로 밑에 머물러 있는 것처럼 보였는데, 다만 그것은 점차 넓어지기 시작했다. 입김이 창에 서려 김이 더 넓고 강해지듯이, 빛은 물 아래에서 점차 넓어지며 확장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배의 밑바닥이 빛을 발하는 것처럼 보일 정도로 작았던 그것은 점점 배의 그림자처럼 길어지기 시작했고, 순식간에 배가 빠져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넓어졌다. 그리고 그것은 여전히 일정하게 박동하고 있었다.
사일러스는 그것의 크기가 배의 곱절을 넘어섰을 때 발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사일러스는 자신의 발이 기계적으로 뒷걸음질 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뒤를 돌아 똑바로 걷지 않았는데, 그것은 그의 눈이 줄곧 빛에 고정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어떠한 경탄에서 비롯된 것이라기보다, 늙은 그의 부릅뜬 눈에 가까운 것이었다. 과연 사일러스는 이상할 정도로 빛에서 눈을 뗄 수 없었는데, 그 이유는 두 가지였다. 첫째는 일정하고 천천히 움직이는 그것의 속도 때문이었다. 그 빛은 일정하게 깜박거리는 한편, 침착하게 영역을 넓혀가고 있었다. 그러나 사일러스는 내내 그것을 보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매순간 언제 저렇게 커지고 밝아졌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것은 마치 순식간에 해가 수평선 아래로 내려가며 사라지는 것을 볼 때의 이상함 같은 것이었다. 두 번째는 그 빛의 밝기 때문이었다. 그것이 수면 아래에서 밝아짐에 따라 사일러스는 수천의 반딧불을 녹인 것처럼 바다가 물드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빛은 바다의 표면을 밝히는 것에 그치지 않고 하늘까지 번지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누군가 영화를 찍으려고 숲 한가운데에 인공적인 조명을 설치했을 때의 기이함이었다.
사일러스는 그것에 눈을 붙박은 채로 뒷걸음질 치면서 자신이 죄수를 감시하는 간수가 된 듯이 느꼈다. 그러나 다음 순간, 그는 완전히 반대로 어두운 골목에서 간수의 강렬한 불빛을 보는 죄수가 된 착각에 빠졌다. 그는 계속해서 뒤로 물러났다. 그의 발은 낮은 둔덕의 경사를 타고 올랐고, 발밑에서는 돌들이 밟히고 부딪치는 소리가 울렸다. 그러는 동안에도 빛은 계속해서 넓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늙은 사일러스의 등에 거칠고 둔탁한 등대의 벽이 부딪혔을 때, 그는 걸음을 멈추었다. 그 즈음에는 하늘의 아래쪽 절반이 물들어 있었고, 바다는 이미 광활하고 밝게 빛나고 있었다. 사일러스는 그제야 뒤를 돌아 등대의 무거운 나무 문을 열어젖히고는, 휘몰아치듯이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는 그대로 문을 닫고 등을 기댄 채로 서 있었다.
사일러스의 머리카락은 물기로 달라붙어 있었고, 스웨터 사이사이에는 추위가 빼곡히 차 있었다. 그가 머릿속의 진동을 느낄 동안 그는 숨을 골랐다. 차츰 그는 시야에 들어오는 것들을 모두 자신의 인식 아래 둘 수 있었다. 사일러스는 마치 흡수하거나 검사하듯이 흐릿한 어둠 아래 놓인 사물들을 하나하나 보았다. 그의 다갈색 부츠, 그 부츠 위의 흙이 튀어 말라붙은 얼룩, 발 아래의 회색빛 바닥, 눈앞의 짤막한 빗자루와 쇠로 된 파이프 두 개, 오른편에 나선형 계단의 둥근 난간, 위로 향하는 철계단의 발판들, 발판 위의 울퉁불퉁한 격자.
사일러스는 그 모든 것들을 다시 한눈에 보면서, 시야의 모든 것들이 얌전하고 정상적으로 자신의 인식 아래 있음을 느꼈다. 그는 잠깐 눈을 감았다. 그의 호흡이 완전히 가라앉자 머리 위에서는 나직한 소리가 들려왔는데, 그것은 등대가 돌아가면서 나는 끼릭거리는 소리였다. 사일러스는 걸음을 옮겨 계단을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는 자신의 두 발이 나선형 계단을 밟고 올라가는 모습을 내려다보았다. 그는 신발 밑창이 철로 된 발판을 두드리는 것을 느꼈고, 끼릭거리는 규칙적인 소리가 차츰 가까워지는 것을 느꼈다. 늙은 등대지기 사일러스는 생각했다. 만일 모든 미래가 언젠가 기록된 바 있다면 그것은 위에 …
사일러스가 마침내 꼭대기에 다다랐을 때, 그는 눈앞이 도는 듯한 현기증에 바닥에 미끄러지듯 앉았다. 그는 손가락으로 눈을 가리면서, 다른 한 손을 뻗어 읽던 책을 더듬어 찾았다. 그가 손가락에 걸리는 책을 집어들고 내려다보았을 때, 그는 그 길고 붉은 책갈피가 사라져있음을 깨달았다. 이어서 고개를 든 사일러스가 그 다음으로 깨달은 것은, 창밖으로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다만 아찔하게 강한 빛으로 가득차 있다는 것이었다. 사일러스는 충격인지 현기증인지 구별이 되지 않는 채로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눈이 나쁜 등대지기 사일러스는 미간을 구기며 창밖을 내다보려고 했다. 그는 눈앞을 채운 빛을 바라보면서, 이전에 그가 보았던 모든 바다를 생각하고 있었다. 등대의 거대한 불빛은 그의 등 뒤에서 간간이 끼릭거리는 소리를 내며 돌아가고 있었다. 그 빛이 확성기처럼 사일러스가 앉아있는 바닥을 비추며 사라질 때마다 그는 고통을 느끼는 것처럼 눈을 깜박거렸다.
사일러스는 아주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그는 등대의 불빛이 점점 강해지는 것 같이 느꼈다. 그리고 그가 뒤를 돌아보았을 때, 과연 그 거대하나 희끗하던 등은 점점 강하게 빛나고 있었다. 등대의 빛이 강해지면서 등대 안은 창밖과 다를 바 없을 정도로 환해지고 있었는데, 그 때문에 사일러스는 폭력적으로 환해지는 등대의 불빛을 보면서 빛이 바깥의 그것을 따라 밝아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마침내 안의 빛과 바깥의 빛이 거의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동일하게 강해지자, 사일러스는 있는 힘을 다해 눈을 세게 감았다. 이제 그는 빛이 어디에서 오는지, 어디서부터 강해지는지 알 수 없을 지경이 되어 궁지에 몰린 채로 도망치듯이 눈을 점점 힘주어 감았다. 그러나 마치 해를 바라본 채로 눈을 감은 것처럼, 결국에는 그의 눈안까지 붉고 환하게 물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사일러스의 눈꺼풀 안이 등대 안처럼 환해지다 못해 희게 되었을 때, 일순 모든 것이 새까만 어둠에 잠겼다. 그것은 너무나 빈틈없고 갑작스러운 어둠이었기 때문에, 사일러스는 처음에는 자신이 눈을 뜨고 있는지 감고 있는지조차 분간할 수 없었다. 그러다 그가 비로소 눈앞을 채웠던 빛을 떠올렸을 때 사일러스는 떨어져 나갈 듯한 눈꺼풀을 들어올려 눈을 떴으나 사방은 변함없이 새까맸다. 그는 처음에는 조심스럽게 팔을 뻗다가, 점점 더 자주, 그리고 넓게 팔을 휘둘렀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 탓에 그는 지금 자신이 어디쯤 있는지 알 수 없었고, 최소한 계단으로 굴러떨어지는 일은 막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얼마 간의 시간 끝에 그의 손에 무언가가 닿았을 때 사일러스는 그것을 놓치지 않고 움켜쥐었는데, 그것은 길고 부드러운 새틴 같은 무언가였다. 사일러스는 일순 그것이 사라졌던 그 길고 붉은 책갈피임을 깨달았다. 다만 그것은 아주 길고 거대해져 있었고, 또한 책에 그러하듯이 어딘가에 고정되어 있었다.
사일러스는 그것을 잡고 당기면서 나아가기 시작했다. 칠흑 속에서 그것은 방향을 알 수 있는 유일한 것이었지만, 그는 아무리 걸어도 계속되는 끈과 어둠에 이상한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그가 어느 쪽으로 걸었는지는 알 수 없어도, 그는 쭉 평지를 걷고 있었다. 그는 아래로 내려간 적도 없고, 방향을 튼 적도 없었다. 다시 말해 그는 계단을 내려가지도, 벽에 부딪히지도 않고 그저 계속해서 앞으로 걷고 있었다. 게다가 그가 거리를 가늠하기 위해 책갈피를 당겨볼 때마다 그것은 어딘가에 고정되어 부드러운 탄성과 함께 당겨졌는데, 사일러스가 한참을 걸어도 그 감각은 변함없이 유지되었다.
어둠과 끈 이외에 사일러스가 최초로 느낀 것은 어떤 축축함이었다. 그 뒤로도 한참을 걷던 그는 별안간 부츠와 바지가 물에 잠겨서 그의 몸으로 감겨들어오는 것을 느꼈다. 물은 아주 차갑고 축축했는데, 사일러스는 걸을수록 물이 깊어져 그의 발목에서 무릎까지, 그리고 계속해서 허벅지에서 허리까지 차오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한기가 그의 스웨터까지 파고들었고, 사일러스는 책갈피가 길이 되는 것처럼 두 손으로 쥐고 계속 걸었다. 그가 마침내 책갈피가 고정되어 있는 곳을 찾았을 때 그는 머리끝까지 완전히 물에 잠겨 있었다. 사일러스는 어두운 물 속에서 손을 더듬어 책갈피의 끝을 만져보았다. 끈은 어떠한 단단하고 차가운 표면에 동여매어져 있었다. 그것은 잘 다듬어 부드러운 곡선을 이루고 있는 철 같았는데, 그 사이에 작은 틈이 나 있었다. 사일러스는 그 틈으로 손을 비집어 넣어 보았다. 틈은 물결에 따라 흔들리면서 마치 숨구멍 같이 일정하게 커졌다 작아지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그리고 사일러스는 그것이 바다에 떠 있던 그 배라는 사실을 알았다.
만일 모든 미래가 … 하나의 미래가 …
그때 등대의 불빛이 그가 잠겨 있는 쪽으로 빛을 드리우고 지나갔다. 늙은 등대지기 사일러스의 머릿속은 고장난 레코드처럼 단어들을 주워섬기고 있었는데, 그것은 지금까지 그의 머리가 했던 일과 다르지 않았다. 다만 달랐던 것은 그가 그렇게 중얼거리는 자기 자신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는 것이었다. 일정하게 지나가는 등대의 빛 아래에서 사일러스의 눈은 분리된 채로 물속을 둥둥 떠다니면서, 위로 떠올라 배의 밑부분에 닿는 자신의 몸통을, 물결에 흔들려 멀어지는 자신의 오른쪽 다리, 꾸물거리며 움직이는 손을 모두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은 사일러스의 눈이 바라보는 가운데 서로 멀어졌다가 다시 응집되듯 가까워지기를 반복했다. 사일러스의 머리는 생각했다. 만일 하나의 미래가 언젠가 기록된 바 있다면 그것은 문장 위에 …
배가 그러했던 것처럼 사일러스는 계속해서 분해되었다가 합쳐지고 있었다. 그것들은 마치 부드러운 힘을 받는 것처럼 파도 위에서 서로 멀어졌다가, 똑같은 부드러운 힘에 의해서인 듯 다시 가까워졌다.
그 위를 빛이 넓게 지나갔다.
그리고 또 한 차례, 멀리서부터 넓고 강한 빛이 사일러스를 스치고 지나갈 때 사일러스는 수면 위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사일러스는 일정하게 박동하는 배 아래까지 떠올랐고, 그 배를 지나 배의 갑판 위, 그리고 그 위의 허공에까지 떠올랐다. 사일러스는 밤의 공기 위로 계속해서 떠올랐는데, 다만 사일러스는 그것이 자신의 어떤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마침내 떠오르던 사일러스를 등대의 빛이 비추었을 때, 사일러스는 그것이 자신의 목소리임을 깨달았다. 사일러스의 목소리는 검은 바다 위의 허공에 뜬 채로 머물러 있었다. 목소리는 빛이 지나갈 때마다 몸과 같은 어떠한 형체를 갖추려고 노력했다. 사일러스의 목소리는 사일러스의 머리에서 온 단어들 중에서 사일러스의 박동을 불러일으킨 단어들로 형체를 갖추고자 했다. 만일 언젠가 나의 문장 위에 하나의 미래가 기록된 바 있다면 …
한밤중, 물결에 흔들려 늙은 등대지기 사일러스가 분해되어 수축하고 이완하는 동안 빛이 닿을 때마다 목소리는 박동을 찾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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