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는 까치가 고양이 밥을 먹는 것을 본 적이 있다.
꼭 그 일로 인해서는 아니고, 가는 원래부터 까치를 좋아하지 않았다. 가는 통통 튀며 날듯 말듯한 까치를 쫓아가기는 하지만, 까치가 운다고 해서 반가운 손님이 올 것 같은 기분이 들지는 않는다.
가가 까치가 고양이 밥을 먹는 것을 본 것은 어느 여름 날이다. 가는 짤막한 카키색 바지를 입고 난간에 기대 있다. 가의 입안에는 레몬 사탕이 들어 있다. 레몬과 여름에 대한 글이 나오기 수년이나 전이고, 사실 가는 노란색 레몬보다 초록색 여름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다. 가의 사방에 어지러운 여름이 가득하다. 가는 친구들을 기다리고 있다. 유난히 유연한 손목과 발목을 가진 친구들과 가는 어디든 주저앉아서 깔깔거린다. 그들이 제일 좋아하는 장소는 창이 일렬로 나 있는 복도를 쭉 달리는 발걸음이며, 아파트 산책로 가운데에 있는 나무 정자이다.
가는 뭐가 됐든 오랫동안 먹지 않는다. 친구들과 엇비슷하게 밥을 먹지만 친구들보다 맛있게 먹어치우고, 음료 안에 든 얼음은 녹기 전에 와작와작 깨물어 먹는다. 멍하니 혀를 굴리던 가는 레몬 사탕도 씹어먹는다. 가의 턱이 멈췄을 때 가의 시선은 다시 고양이 밥으로 향한다. 까치들은 어디론가 사라져 있고 가의 눈은 다시 흐려진다.
이 즈음 가의 머릿속에는 문장들이 떠다닌다. 가는 그것을 저주라고 생각하기를 좋아한다.
다는 땀에 젖은 채로 걷고 있다.
다는 더위를 많이 타고, 흐린 하늘에서는 말도 안 되는 더위가 내려앉고 있다. 다는 어느 허름한 건물 안으로 들어가고, 직원은 키를 찾으러 안쪽으로 들어간다. 정면에 있는 커다란 거울 앞에 서서 다는 근사한 옷을 입은 자신을 바라본다. 땀에 젖은 채로 돌아다니기에는 어울리지 않는 옷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다는 거울에 비친 모습을 찍는다.
다는 고전적인 모양의 열쇠로 2층의 문 하나를 연다. 밀도 높은 공기가 들이닥치는 방 안에는 퇴색한 벽지가 가득하고, 가구들은 낡은 흰색 나무로 되어 있다. 다는 소파에 수놓인 핑크빛과 녹빛 자수를 바라본다. 어찌 됐든 이곳은 다가 오래 전 상상해본 곳이고, 산타 마리아 델레 그라치에 위로 새들이 나는 곳이다. 그러나 그와 무관하게 다는 방이 마음에 든다.
밀도 높은 공기는 곧 달콤하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지하철을 싫어한다.
정확히 말하면 나는 3호선과 경의중앙선을 싫어한다. 나는 알바를 많이 하고 있다. 시간이 부족할 정도는 아니면서도 풍족하게 (가끔은 지나치게) 쓸 수 있을 만큼의 돈을 번다. 그러나 이 무렵의 나는 그것을 잘 알지 못하며, 별로 알고 싶어하지도 않는다. 나가 매일 생각하는 일은 대개 3호선의 죽음 같은 주황과 경의중앙선의 텅 빈 열차이다. 나는 오후를 좋아하지 않고, 나는 새벽도 좋아하지 않는다. 나는 자신이 무엇을 안 좋아하며 어떤 것을 견디려고 하는지 정확히 하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나에게는 많은 것들이 떠도는 열병처럼 분명하지 않다.
나는 지하철이 지하에 있다는 사실을 좋아하지 않지만, 거대한 왕십리역은 반드시 들르려고 한다. 역 안에는 빵집이 있고, 나는 왕십리역에서 열차를 갈아탈 때면 싸게 파는 빵을 하나 산다. 비닐봉지 안에 담긴 빵 냄새를 나는 내내 상상하면서 지하철 안에서 덜컹거린다.
나는 매일 핸드폰 메모장을 쓴다. 이 순간의 나 역시 음악을 들으면서 메모장을 보고 있다. 나는 자신이 적어둔 어떤 작가의 글을 읽고 있다. 지금까지 나는 자신에게 한 곳에 깊게 파고드는 자질이 없다고 말하고, 또 생각해왔다. 나는 연예인을 좋아하는 친구들, 혹은 무엇이 됐든 특정한 장르를 좋아하는 친구들을 동경하고 있다. (그럼에도인지 그래서인지) 이 즈음 나는 한 작가에 빠졌다. 나는 그의 모든 글을 읽고 어떤 것들은 그대로 따라 적어, 글자 수와 배열, 단어의 조합을 공부한다. 나는 이상한 생각을 한다. 나가 이 작가를 직접 보지 않는 이상 인생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을 거라는 생각이다.
다는 굳이 걷는다.
다가 사는 곳에서 몰에 있는 큰 마트를 가려면 두 정거장, 그리고 15분을 걸어야 한다. 다는 가끔 굳이 그 모든 길을 다 걸어간다. 그렇게 하면 다의 걸음으로는 장을 보고 오는 데 1시간이 걸린다. 그러나 에어팟만 충전되어 있으면 다는 아무래도 좋다고 생각한다.
가는 길에 다가 반드시 보게 되는 몇 가지 것들이 있다. 첫 번째는 낡은 벽돌 건물에 그려진 모자이크의 배열이다. 두 번째는 가판대에 읽을 수 없는 언어로 쓰여진 어느 공연의 포스터이다. 세 번째는 그 포스터의 왼쪽 위 벽에 그려진 유니콘 모양의 낙서이다. 다는 그것에서 분필 냄새를 느낀다. 네 번째는 길 위를 걸어다니는 까마귀들이다.
그 날 다는 보라색 티셔츠에 회색 청바지를 입었다. 가는 길에 다는 그 모든 것들을 보았는데, 다만 까마귀만은 보지 못했다. 꼭 그 일로 인해서는 아니지만, 다는 이상한 현기증을 느끼고 있다. 그것은 혼몽 같은 상태인데, 물론 (감각이 둔한) 다는 자신을 의심한다 ㅡ 아마도 보라색 티셔츠가 조금 두꺼워서 더위를 느끼고 있을 뿐이라고. 그러나 다의 시야는 영화 장면처럼 하얗게 밝아졌다가 다시 돌아온다.
다의 눈안에서 하양과 초록이 점멸한다. 다의 다리가 움직인다.
다는 과거를 걷고 있다고 느낀다.
나는 벌써 삼십분째 오래된 놀이터에 서 있다.
나는 누군가와 전화를 하고 있다. 누군가는 나를 아끼는 사람이고, 나는 우산을 들고 있다. 나의 손은 우산의 손잡이를 조금 짧고 세게 잡고 있다. 나는 15분 전에 가벼운 비웃음과 고함을 듣고 나왔다. 나가 우산을 쓰고 있는 이유는 비가 오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눈이 오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우산을 접을까 말까를 고민한다. 전화기 너머에서 누군가는 망설임 없이 정확한 다정으로 말한다 ㅡ괜찮아 나, 너를 사랑해, 나 여기 있어. 나는 그 말을 듣고 조금 운다. 안타깝게도 나는 아직은 능숙하게 울음으로 떨리는 목소리를 차분하게 가장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나가 들어야 하는 말이 아니다.
가는 곧잘 가벼운 경멸을 한다.
그러나 이 무렵의 가는 경멸과 사랑을 뚜렷하게 느끼지 않는다. 가에게 경멸은 그름에 가깝고 사랑은 완전에 가깝다.
사람이 거의 오지 않는 구석, 가는 아주 어린애처럼 그네를 타면서 바람을 느끼는 일을 좋아한다. 고개를 한껏 뒤로 꺾어, 하늘과 나무가 뒤집혀 빠르게 쐐액 사라지고 나타나는 것을 몇 번이고 본다. 가는 그런 것을 자신의 감각이자 긍지로 안다. 물밖에서는 보이지 않는 아름다운 산호와 물고기를 보듯이 가는 자주 그 같은 시간을 보낸다.
그러나 가는 또한 물에 젖은 몸으로 걷는다. 가는 나무의 초록과 하늘로부터 내려와 놀이터를 벗어난다. 익숙한 그늘과 지하 주차장을 걸어 집으로 돌아갈 때, 가는 이상하게도 너무 무거운 몸을 느낀다. 가의 몸에는 늘 얇고 우스운 절망이 햇빛처럼 붙어 있고, 가는 늘 무언가를 경멸하고 있다. 그럴 때 가는 종종 우울을 생각하다가 죽음을 떠올린다. 그러나 횡단보도 앞에 설 때 가는 늘 자신이 느끼는 것이 그런 것들이 아님을 느끼고 만다. 가는 겁이 너무 많고 생을 너무 좋아한다.
이 무렵의 가는 경멸과 사랑을 뚜렷하게 느끼지 못하고 있다. 가는 많은 것을 어항 속에 들어와 있는 것처럼 감각하고, 숨을 참듯이 인식한다. 그래서 가는 어떻게 하면 그런 기분을 떨쳐낼 수 있을까 고민한다.
가는 그와 같은 시간을 보낸 뒤 집으로 가는 길에는 늘 가벼운 음악을 들었다. 그리고 그것들은 가가 가장 많이 듣는 노래들은 아니었다.
다는 한 번도 자신의 안경을 좋아해본 적이 없다.
기억하는 한 다는 항상 안경을 쓰고 있었다. 때로 그것은 빨간 안경이, 때로는 검은색 둥근 안경이 되었고, 이 즈음의 다는 투명한 테의 안경을 쓰고 있다. 다는 자주 자신의 안경을 이유 없이 벗은 뒤 그 위로 입김을 불고는 내려놓는다.
그러나 어느 어색한 자리, 다는 자신이 안경을 쓰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렸다. 다는 사방에서 자꾸 마주치는 시선들에 평소보다 조금 더 자주 웃어보였는데 (그 날 마신 커다랗고 둥근 잔에 가득 담긴 술은 그걸 조금 쉽게 해주었고)
그 때 앞에 앉은 누군가에게서 어떠한 말을 듣게 된다.
그것은 지금까지 다가 들은 문장 중 가장 짧은 문장이었다. 그러나 다가 그날로부터 자신의 안경을 좋아하게 되었다거나 마음껏 웃는 법을 배웠다거나 한 것은 아니었다. 다는 그날 그 누군가가 하고 있던 커다란 반지와 진한 눈썹을 똑같이 칭찬해주지도 못했다.
그러나 이제 다의 목에는 매일 서로 다른 종류의 가는 목걸이가 세 개 정도 걸려 있다. 이제 다는 어떤 말은 잘 잊어버리고, 어떤 말은 더욱 잘 믿는다.
나는 아름다움에 대해서 생각한다.
나는 어떤 강의에서 교수님이 지식의 제국주의에 대해서 설명하는 것을 듣고 있다. 그것은 그 교수님이 사용하는 일종의 비유로,
더 알고 싶어하는 것, 더 많은 것을 알고 싶어하는 것, 더 많은 것을 깊게 알고 싶어하는 것,
모든 것을 알고 싶어하는 것 ㅡ 식민지를 넓혀가는 것처럼 인간은 제국주의의 탐욕으로 지식을 넓혀 간다.
나는 생각한다. 언젠가는 모든 것을 아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하는 날이 올 것이며, 어떤 것을 탐하고 취하고 집착할지 결정하게 될 것이라고. 그러나 사실 일단은 나의 제국주의는 그리 넓은 영역에 걸쳐 있지는 않다. 나가 무척 아끼는 시선을 주는 것들은 지금 그 주변에 있는 몇 사람들이다.
나는 언젠가 가로등의 낭떠러지에서 춤을 추다가 '제멋대로 해야지, 뭐든! 그게 여자의 특권인걸!' 하고 불쑥 나의 어깨를 돌려대던 손을 기억한다. 나는 그의 제멋대로가 아무도 해치지 않음을 알았다. 하지만 애인의 실패한 서프라이즈를 사랑하듯이, 나는 어쩌면 그때 그가 무언가를 해치더라도 크게 신경 쓰지 않았을 것이다.
또한 나는 누군가의 겨울 같이 짧은 머리카락을 기억한다. 젊고 무른 그의 덧니, 깨끗한 손가락 마디, 오랫동안 이야기하는 그의 도발적인 눈동자에는 공부의 냄새가 묻어 있었다. 나가 그를 아름다워하게 되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더욱 얼마 안 되어, 나아가 나는 그 냄새를 사랑하게 된다.
오만하게 세상의 모든 손가락들이 자신을 읽기를 기다리는, 단어의 나열만으로 온 세계를 만지는, 지식의 제국주의의 냄새.
강의가 끝나고 나는 펼쳐져 있던 물건들을 챙겨서 나간다. 나의 아이보리색 천가방에는 며칠 전 나가 흘린 몇 방울의 커피 얼룩이 묻어 있다.
가는 나를 만난다.
가는 나보다 한 걸음 앞서 에스컬레이터를 탄다. 에스컬레이터 계단이 실어 올리는 가의 눈빛을 나는 올려다본다.
가는 어제 만난 친구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가와 친구는 가의 집에서 만났다.
ㅡ핸드폰 플래시를 켜고 물잔을 올리면 천장에 무늬가 생기거든요. 그렇게 해 놓고 불 꺼놓고 그냥 얘기하는 거예요.
이야기하면서 가는 나를 내려다본다.
나는 짙은 하늘색 셔츠에 작은 팔찌를 하고 있다. 가는 나가 입고 있는 옷의 색깔이 마음에 든다. 나의 눈빛이 자신과 비슷하다는 생각도 한다. 그러나 가는 익숙하게 흑색 에스컬레이터 손잡이를 잡고 있는 나가 어디까지 마모되어 있는지를 끊임없이 궁금해하고 있다. 가는 가만하고 조금 열없게 눈을 낮추고 나를 살피면서도, 여러 가지 문장들을 머릿속에서 끌어올렸다가 가라앉히고 있다. 어쩌면 이따가 집에 가면서 그런 것들을 메모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한다.
나는 가의 말을 듣고 있다.
가는 친구와 봄의 우울함에 대해서 이야기한 것에 대해 말하고 있다. 나는 가의 단어들이 어딘가 사진이나 공상 같다고 생각한다. 봄의 더운 햇빛 아래 목련 잎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가는 계속해서 올라간다. 가의 시선은 자주 지하철의 사물들을 스쳤다가 돌아온다. 나는 가에게서 끊임없이 무언가를 잡고 날려보내기를 반복하는 인상을 받는다.
가는 이야기하다가 에스컬레이터에서 발을 조금 헛디디고 자세를 고쳐잡는다. 따라 올라온 나는 바닥을 보며 자신의 발이 밀착되어 내디뎌지는 것을 내려다본다. 가는 계속해서 걷고 나는 어딘가 익숙하면서도 이상한 불쾌함을 느낀다.
다는 가를 만난다.
다와 가는 어느 큰 빌딩 앞에 앉아 있다.
둘 앞으로 고양이가 한 마리 지나간다. 다는 가에게 어느 나무들 사이에서 본 커다랗고 검은 고양이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3월 초, 다가 숲속에서 본 그 고양이는 선뜻 무언가인지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크고 검었다. 그것은 나무와 바위들 사이에 우뚝 서 있었으며, 햇빛이 들어오는 아래로 윤곽을 빛내고 있었다. 다가 일견 그 고양이를 거대하고 신령스럽게 느꼈다는 이야기를 하자, 가는 이름을 부르면 오는 자신의 길고양이들을 떠올린다. 가에게 고양이들은 가장 가까운 동물이지만 사실 다에게 고양이는 토끼를 잡아먹는 동물이다. 다와 가가 떠올린 고양이의 털은 다른 윤기를 가지고 있다. 그래도 다와 가는 고양이에 대해서 생각한다.
가는 다를 편안하게 느낀다.
가는 다가 말을 능숙하고 차분하게 하는 사람임을 느낀다. 다의 얼굴은 자연스럽고 부드럽지만, 분명한 면이 있다. 연애를 하고 있을 것 같긴 하지만, 알고 보면 삼 년이나 오 년 넘게 사귀고 있는 애인이 있을 것 같은 느낌이라고 곰곰 생각한다. 토요일 저녁이면 함께 조용히 담요를 덮고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의 노래와 어려운 책을 읽을 것 같다고. 가는 다가 했던 말들 중 신령스럽다는 표현에서 인상을 받는다. 그 단어는 가에게 어떤 노래를 떠올리게 한다. '나쁜 꿈' 이라는 노래다.
다는 가를 묘하게 느낀다.
가의 단어들은 수줍고 조금 모호하지만, 그 안에는 벼락의 고집 같은 명확함이 있다. 다는 만일 가를 그린다면 어떠한 도형으로 완벽하게 그릴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한다. 다는 가가 절대 하지 않는 생각이 무엇인지, 가장 많이 하는 생각이 무엇인지 궁금하다. 가는 모호한 명확함 안에서 산만한 눈빛을 가지고 있다. 다는 가의 긍지와 혐오, 공상이 어떻게 가를 가두는지, 또는 가답게 하는지에 대해서 조금 쓰고 답답한 마음으로 헤아린다.
가는 아파트 산책로의 고양이에 대해서 말하다가 요즈음 가장 많이 듣는 노래라면서 '나쁜 꿈'의 가사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노래에서 느껴지는 달과 바위, 숲과 춤, 어두움과 바스락거리는 소리에 대해 들으면서 다는 좀 더 분명하게 가의 좁은 세계를 이해한다.
가는 '사랑하든 경멸하든 하나만 하긴 힘들 테다' 라고 하는 가사에서 매번 멈추게 된다고 말을 잇는다. 그리고 그것은 다가 집에 가는 내내 다를 조금 배에서 내려 땅을 밟았을 때처럼 미식거리게 한다. 다만 그것은 가가 아니라 이 즈음의 자신에 대해서이고, 다가 생각하는 것은 다시 배에 오르고 싶다는 것이다.
나는 다를 만난다.
나는 절대 에스프레소를 마시지 않지만, 다는 가끔 에스프레소를 마신다.
이 날 다는 카페 콘파나를 주문했다.
나가 ㅡ우와, 맛있어요? 라고 물을 때 다는 나의 동그란 눈에 있는 가벼운 우스움과 경멸을 읽을 수 있다. 다는 강요하거나 애쓰지 않고 웃는 법을, 그리고 ㅡ난 좋아해요. 라고 말하는 법을 안다. 그러나 또 그 어느 누군가는, 다가 조그맣고 하얀 컵과 그 위에 올라간 크림을 내려다볼 때의 가만한 얼굴에도 가벼운 우월과 경멸을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다의 손가락에 있는 반지를 바라본다.
다는 몇 손가락에 모두 다른 모양의 아홉 개 정도의 반지를 하고 있고, 맨 어깨를 조금 드러냈다. 또한 아래로는 하얀 천을 엮은 것 같은 옷을 길게 늘어뜨리고 있다. 나는 다에게 무엇부터 물어봐야 할지 잘 알지 못한다. 나는 다의 구불하고 긴 머리와 반지에서 질문의 필요성을 잃는다. 나가 좋아하는 것을 다는 이미 알고 있을 것이고, 다가 좋아하는 것을 나는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도 묻는다. 다는 나가 말하는 작가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나는 다를 조금 우스워하고, 또 조금 경멸한다.
다는 나의 눈동자를 본다.
다는 나가 지금 자신을 어느 선에 위치시키고 있을까가 궁금하다. 다는 나가 아름다워하는 범주에 들어갈까? 다는 젊음과 아름다움에 대해서 생각한다. 나는 자신이 얼마나 아름답다고 생각할까? 다는 가능한 젊을 때 모든 것을 알고 싶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곧 아름다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수천 개의 앎을 모두 알고 그 중 아홉 가지를 골라 몸을 이루듯이.
나는 다를 본다. 다가 가진 색깔들의 끝을 알기 어렵다. 다의 색깔들은 어디에서 왔으며, 얼마나 얄팍하고 깊은지 판단할 수 없다. 그러나 다는 나가 알지 못하는 것들을 아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동시에 나는 다가 알지 못하는 것들을 알고 있을까? 나는 다에게 질문하고 싶어진다, 역사에 대해서. 다가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나는 다가 자신이 마시는 것이 무슨 맛인지를 알고 있는지 궁금하다.
다는 나에게 의심에 대해서 말한다. 자주 의심하고, 자주 질문하라고. 그러나 다양한 방향으로 그렇게 하라고. 나가 언젠가 들은 사랑한다는 말에 마음이 미식거렸던 적에 대해 의심할 거라면, 언젠가 사랑한다고 말한 그 누군가의 그 오차 없는 다정에 대해서도 의심하라고.
왜 그 사랑이 그렇게 도망칠 곳 없이 완전하게 느껴졌는지, 그리고 왜 어떤 고함과 비웃음은 당연하고 가볍게 느껴졌는지.
다는 가능한 무모하게 (그것은 다가 배운 것이다) 말한다.
다에게만 정확한 말일지라도, 그리고 나에게는 완전하게 부정확한 말일지라도.
나, 우리가 가진 욕망은 너무 적어. 우리는 앞으로 몇십 년을 집착할 욕망을 가져야 해. 그러니까 넓어지자.
경멸하던 것도 사랑하고, 사랑하던 것도 경멸하고 ㅡ 그렇게 하고 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자. 끝내 아무것도 모를 거라고 생각하면서, 끝끝내는 모든 것을 경멸해보고 사랑해보았을 것이라고 생각하자.
그렇지만 무엇을 고르면서 무엇을 버릴 것이라고 예언하지 말고, 무엇을 버리면서 무엇을 안을 것이라고 예언하자, 끝내는. 그건 같은 말이 아니니까.
사랑하든 경멸하든 우리는 어쨌든 단어와 문장에 예민하니까, 아직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