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제품 출시전 반드시 거쳐야하는 테스트베드(Test-Bed)
우리는 앞서 [차별화된 컨셉팅 8원칙]에 대해 알아보았다. 기업들의 다양한 사례를 통해 매력적인 컨셉을 만드는 원리에 대해 살펴보았다면, 이제는 좀더 방법론을 파보아야 할 때이다. 이 파트부터는 기업이 컨셉을 만드는 '컨셉팅' 전후에 실제로 어떤 과정을 거치는지, 실무적인 관점으로 보다 자세히 살펴보겠다.
기업이 컨셉을 만드는 과정을 알아보기 전에, 컨셉의 역할에 대해 한번 더 짚고 넘어가고자 한다. 기업경영의 목적은 [수익성]과 [영속성] 두가지로 요약된다. 쉽게 말해, 기업의 근본적인 목적은 돈을 버는 것이고(=수익성), 돈을 벌어야 기업이 계속 유지될 수(=영속성) 있기 때문에 기업경영의 개념이 존재하는 것이다.
한편 현재의 기업경영 환경은 각종 기술발달의 가속화 속에서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고 한다. 새로운 브랜드/제품/서비스를 개발하고 사업을 하기 더욱 쉬워지는 세상이 되어 경쟁은 더 치열해졌고, 저성장/고비용 시대에 기업은 더욱 효율적인 자원관리에 힘을 쏟고 있다. 그 와중에 국내 기업들은 인구구조와 노동인식 변화 속에서 생산성을 더욱 끌어올려야만 하고, 국내를 벗어나 쟁쟁한 글로벌 브랜드들과 동일한 조건에서 경쟁까지 해야 한다. 때문에 기업은 쉬지 않고 수익성 있는 성장을 하기 위한 새로운 동력을 개발해 나가야 한다. 여기서 등장하는 ‘새로운 동력’이 바로 신제품이다.
쏟아져 나오는 신제품들 속에서 더욱 희박해지는 생존확률을 높이기 위해서, 규모를 갖춘 기업들은 NPD(New Product Development)라는 신제품 개발 프로세스를 운영하기도 한다. NPD(New Product Development)란, 신제품 출시를 위한 각 단계들을 절차화 시켜, 다양한 시각으로 검토하고 시뮬레이션 해보고, 객관적 지표로 수치화해 관리하는 기업의 업무 프로세스를 말한다. NPD는 일반적으로 (1)아이디어 단계, (2)컨셉 단계, (3)상품화 단계, (4)출시 후 사후관리 단계의 4단계 프로세스로 나눠지는데, 기업의 내부상황과 편의에 따라 2~5단계로 다르게 운영을 하기도 한다. 이 절차들은 (1)씨를 뿌리고, (2)뼈대를 잡고, (3)살을 붙여서, (4)출시하고 관리하는 과정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이런 신제품 출시과정의 핵심을 뼈대를 잡는 것에 비유하는 것처럼, 제품의 컨셉을 만드는 일은 생존여부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일이자, 담당자에게 가장 많은 스트레스를 주고, 또한 가장 치열한 토론이 이뤄지는 단계이다. 일반적으로 이 단계에서 신제품 출시를 위한 다양한 환경분석, 전략설정, 새로 만든 신제품의 컨셉, 소비자 조사결과를 통한 컨셉의 수용도와 리뷰, 활용되는 브랜드, 출시일정, 제품 출시에 따른 매출/비용과 손익까지 검토가 되기 때문이다. 기업은 신제품의 전체적인 뼈대를 만들고 유관부서들과 소통하여 기초공사를 다지기 위해 '컨셉보드'라는 방법을 활용 한다.
컨셉보드(Concept Board)란 제품/서비스의 핵심적인 컨셉과 특징, 소비자혜택, 각종 정보를 함축적으로 표현해 기술한 보드형태의 문서이다. 앞에서도 계속 강조했던 제품/서비스가 소비자에게 제안하고자 하는 혜택(Benefit)과 정보들을 단어/문장/사진/이미지 등의 형태로 제시하는 것을 의미한다.
일반적으로 마케팅 부서가 (1)다양한 현황분석을 통해 도출한 새로운 제품/서비스의 핵심전략을 수립하고, (2)’컨셉보드’라는 문서를 통해 신제품의 컨셉을 구현화하여 기업내 다양한 부서들과 공유하고, (3)'컨셉조사'라고 불리는 정량적 소비자 조사를 통해 객관적/합리적으로 검증하고 수정하여, 경영진에게 개발진행에 대한 의사결정을 받는 용도로 활용된다.
따라서 컨셉보드에는 감성적인 광고 카피나, 자극적인 이미지, 애매하고 간접적인 표현이 쓰일 수 없다. 반복해서 얘기하지만(그만큼 중요하다) 컨셉은 소비자에게 주는 차별화된 혜택을 의미하므로, 제품의 특징/사용원료/기능/가격 등의 정보를 ‘객관적으로’ 전달해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제품을 만들기 전 제품에 대한 구상인 만큼, 기업 내부의 생산/연구/영업/구매/디자인/광고 등 다양한 부서들에게도 명확하고 일관된 정보로 전달되어야 한다.
종종 광고/디자인/인테리어 컨셉에는 감성적이고 간접적인 문구와 느낌(Feel)에 기인한 표현이 쓰이기도 하는데, 일반적인 신제품 컨셉의 영역에서는 객관적인 설명으로 정확하게 전달해야 소비자의 수용도를 파악하고 출시에 대한 시장성을 판단해볼 수 있다. 보통은 제품을 가장 잘 함축적으로 설명하는 문장과 소비자의 인사이트, 사용된 재료/원료/기술, 제품의 종류, 사용 방법, 포장, 용량이나 크기, 가격 등의 정보를 게재한다. 아래에서 컨셉보드를 구성하는 요소에 대해 더 자세히 살펴보자.
자, 이제 본격적으로 컨셉 보드에 반드시 들어가야 하는 주요 요소와 컨셉 보드 작성기법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자.
컨셉보드는 4가지 구성요소를 필수로 한다. (1) 제목/헤드라인, (2) 소비자 인사이트, (3)소비자혜택, (4) RTB(신뢰요소)가 그것인데, 각각의 요소에 대해서는 아래에서 자세히 다뤄보겠다.
헤드라인은 내 제품이 소비자들을 위해 어떤 혜택을 줄 수 있는지(Benefit)에 대해 핵심 요약한 문장이다. 따라서 컨셉의 제목/헤드라인을 작성할 땐 소비자의 불편함이나 출시목적, 핵심 기술 등의 내용보다는 소비자의 혜택을 중심으로 작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경우에 따라 컨셉을 나타내는 제품명을 함께 표기하거나, 소비자 조사 방법에 따라 브랜드명을 붙이기도 한다.
당연한 얘기지만 전문적인 제조사/업계의 이야기가 아니라 소비자 언어를 사용하여 이해하기 쉽게 작성해야 한다. 단, 여기서 ‘소비자의 언어’를 활용한답시고 소비자의 관심을 끌기 위해 감각적인 워딩이나 창의적인 카피를 사용해서는 안된다. 또한, 헤드라인은 보드의 중간에 나오는 다양한 제품의 특징과 신뢰요소(RTB) 들을 포괄하는 개념으로 작성되어야 하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보드를 완성하는 가장 마지막에 정리된다.
인사이트는 우리(제조사)가 왜 이런 제품을 소비자에게 내 놓으려고 하는지에 대한 배경 설명이며 '컨셉의 존재이유'이다. 소비자의 불편한 상황(Un-met Needs)에 대한 공감대(Relevance)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에, 소비자 구매의향과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컨셉 관련 조사에 따르면, 소비자의 구매 의향이 낮은 제품의 컨셉들은 소비자 인사이트 부분에서부터 낮게 평가된다. 이는 제품을 필요로 하는 상황에 대한 공감대 형성이 되지 않아 구매 의향이 저하되었다고 해석할 수 있다. 따라서 소비자 인사이트에서는 이 제품이 왜 필요한지에 대한 맥락과 스토리를 잘 설정하여 그들과의 공감대를 형성해야 한다.
소비자 인사이트는 단순히 소비자의 입장 뿐만 아니라, 기업 내부 차원에서 출시하려는 해당 제품의 역할과 목적을 규정하기도 한다. 소비자의 새로운 수요를 발굴하는 목적인지, 기존 경쟁사 제품의 불편점을 공략하는 목적인지, 완전히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고 선도하려는 목적인지 등 기업 비즈니스 전략에 따라 신제품의 역할을 규정하는 것이다.
정리하자면 우리의 타겟이 겪는 불편함/문제점/이슈를 찾고, 소비자의 감정, 행동과 의사결정 패턴을 활용해 어떤 니즈(Needs)와 욕구(Desire)가 있는지를 확인하여 작성해야 한다. 보통은 소비자가 제품을 소비하지 않는 상황, 기존 사용상의 불편함,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 숨겨진 욕구/바람, 해결되지 않은 이슈 상황 등을 써주는 것이 일반적이다.
소비자 인사이트는 제품이 전달하려고 하는 소비자 혜택과 반드시 논리적으로 연결되어야 한다. 여기서 주의해야 할 점은, 소비자 인사이트에서 설명하는 소비자들의 상황이 소비자의 행동이나 태도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져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소비자 자신의 행동/태도에 대해 부정적인 감정을 유발하는 것은, 그들을 무시하는 것으로 받아드릴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너무 좁고 한정적인 상황만을 얘기하거나, 소비자가 아무런 문제를 느끼지 못하는 상황을 강요하거나, 제품과 상관없는 상황을 보여주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소비자 혜택(Benefit)은 우리의 제품을 통해 소비자에게 전달하려 하는 핵심적인 혜택과 가치를 제안하고 약속하는 과정이다. 여기서는 우리의 제품에 어떤 기능적/감성적 혜택이 있는지를 기존 경쟁/대체재들과 차별화된 방법으로 명확하게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 기능적/감성적 혜택에 대한 설명을 덧붙이자면 다음과 같은데, 기능적 혜택(Functional Benefit)은 제품 자체가 제공하는 실질적이고 객관적인, 이성적 혜택을 의미한다. (한마디로 표현하면 '소비자가 무엇을 얻는가'와 관련되어 있다.) 반대로 감성적 혜택(Emotional Benefit)은 제품의 소비에서 오는 감성적이고 주관적, 무형의 혜택을 의미한다. (한마디로 표현하면 '소비자가 어떻게 느끼는가'와 관련된다.)
또한 앞선 ‘제목/헤드라인’과 ‘소비자 인사이트’와 논리적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된 솔루션을 제시해야 한다. 솔루션을 제시할 때는, 제품 자체의 특징을 쓰는 게 아니라 제품을 사용하며 얻는 혜택이 소비자 니즈를 충족시키는 부분에 집중해야 한다. 말그대로 ‘혜택’이기 때문에 단순히 제품의 특징들을 불필요하게 나열하지 말고, 인사이트에 대한 답을 줄 수 있는 내용을 중심으로 써야 한다. 또한 제품이 소비자에게 줄 수 있는 가치를 과장하지 말고(Over Promise), 객관적인 사실을 기반으로 명확하게 전달해야 한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또 하나 명심해야 할 건, 기존 대체재나 시장내 경쟁 플레이어들과 똑같은 얘기를 한다면 컨셉의 의미 자체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사실이다. 우리가 배웠던 <차별화된 컨셉팅 원칙>을 활용하여 소비자들에게 새로운 가치를 제공해야 남들과는 다른 이야기를 할 수 있고, 그것이 컨셉의 근본적인 목적이기 때문이다.
RTB(Reason To Believe)는 앞서 제안한 혜택과 가치를 구체적으로 뒷받침할 수 있는 근거이며, 소비자가 혜택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믿음을 주는 요소가 되기도 한다. 크게는 (1)제품이 약속하고 있는 혜택에 대한 확신이나, (2)다른 혜택을 주는 기존 제품과의 차별화된 제공방법으로 구분된다.
‘RTB’의 유형으로는 제품의 기능/특징(Product Features), 제품 관련 다양한 Spec/Fact(제조방식, 설비, 원료, 재료, 외형/외관, 소리, 향, 디자인, 질감 등), 히스토리, 스토리, 브랜드, 창업자, 사용방식 등이 있다. 이렇게 다양한 유형 중에 우리의 제품과 서비스가 소비자에게 제공하는 혜택을 뒷받침해줄 수 있는 적절한 근거를 선택해야 한다.
RTB는 소비자의 혜택에 대한 논리이자 근거이기 때문에 단순하고, 객관적이고, 신뢰 있는 설명으로 전달되어야 하는데, RTB를 전달할 때 주의할 점들은 다음과 같다. 우선, 소비자 혜택과 마찬가지로 다양한 특징을 단순히 나열하거나 짬뽕하지 말고, 혜택과 직접적으로 관련되어 그것을 지지할 수 있는 차별화된 특성에 집중해야 한다. 혜택과 근거(RTB)가 논리적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되지 않는다면 소비자는 그 혜택을 신뢰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또한 절대 어렵고, 이해하기 힘든 제조사의 단어는 피해야 한다. 업계 종사자라면 공공연히 쓰는 단어라 너무나 익숙하겠지만, 소비자에게는 필요 없는 의문을 야기하고, 무시당하는 듯한 부정적인 감정을 줄 수 있다.
마지막으로, RTB 영역에 소비자의 혜택을 적는 실수를 범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RTB와 혜택이 섞여서 기재가 되면 컨셉보드 작성 후 ‘컨셉조사’*라는 소비자조사를 진행할 때 결과해석이 어려워질 수 있다. (*컨셉조사는 다음 편에서 더 상세히 다룰 예정이다.) 소비자들의 제품 컨셉에 대한 수용도 조사 시, 그들이 선택한 어떤 RTB가 소비자 혜택과 선택에 영향을 미쳤는지 결과 해석이 모호해지기 때문이다.
앞서 얘기한 4가지 핵심요소 외에도 필요에 따라 추가적인 제품요소가 컨셉보드에 들어가기도 한다. 제품의 형태, 용량, 포장, 디자인, 사용방법, 그림/이미지(추후 소비자조사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상세한 사진은 위험하다.), 보관방법, 가격(정상가, 할인가), 판매채널, 레시피 등이 그것이다. 여기서 특히, 가격은 소비자의 기대하는 가치를 지불하고 교환하는(Exchange) 핵심요소인 만큼 소비자 조사를 통해 수용도를 확인하기도 한다. 이는 소비자들이 예측한 제품의 가격대가 어느 정도인지, 소비자가 수용할 수 있는 제품의 가격대가 어느 정도인지 등 다양한 지표를 통해 적절한 가격을 책정하는데 쓰인다. 소비자조사에 대한 상세 내용은 다음 편에서 다루겠다.
앞서 컨셉보드의 필요성과 역할에 대해서 계속 강조했듯이, 컨셉보드는 기업이 새로운 사업/제품/서비스를 개발하고 출시하면서 투자하는 막대한 자원에 대한 의사결정을 할 때 필요한 테스트 베드(Test-Bed)이자 예방주사 같은 역할을 한다.
새로운 사업/제품/서비스를 론칭하기 위해서는 종종 기업의 존폐여부를 결정할 만큼 막대한 비용이 들어가기도 한다. 작게는 제품개발과 관련된 유관부서의 인건비부터, 개발비와 제품의 원가/재고/원재료, 크게는 때로 수십억에서 수백억이 들기도 하는 설비관련 투자나 광고/매체/프로모션 비용까지 막대한 자원이 투입된다. 잘못된 신제품을 론칭했을 땐, 이미 제품의 투자와 발주가 결정된 상황에서 그간 투입된 많은 자원이 손실로 직결되게 되며, 광고나 프로모션 등의 일부 휘발성 비용들은 공중으로 사라져 버리기도 한다. 따라서 기업은 이런 막대한 경영자원의 실패 리스크를 막기 위해 엄청나게 신중한 검토를 거칠 수밖에 없고, 컨셉보드 등의 장치를 통해 최소한의 시장성과 소비자 수용도를 검증하는 역할로 활용한다.
물론 작위적으로 만들어진 상황(=소비자 조사)에서 검증하기 때문에, 소비자가 남긴 답변과 현실에서의 행동이 일치할지 확신할 순 없다. 그렇다 할지라도 최소한 기업에서 생각하는 방향이 소비자에게 전혀 공감을 살 수 없거나, 기존에 기업이 모르고 있던 경쟁/대체재가 있었거나, 소비자에게 전혀 필요하지 않은 특징들은 발라낼 수 있는 효과가 있기 때문에, 컨셉보드로 시장성과 소비자 수용도를 검증하는 일은 많은 비용이 들어가는 신제품 출시 전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제품을 출시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소비자의 불편한 상황(소비자 인사이트)에 대한 솔루션(소비자 혜택)을 주는 것이다. 소비자 인식 속에 우리 제품을 확실하게 각인시키려면, [소비자 인사이트]를 바탕으로 [소비자 혜택]과 [RTB(신뢰요소)]를 담아, [제목/헤드라인]으로 간결하고 명확하게 전달해야 한다. 이 일련의 과정을 담은 것이 컨셉보드이고, 컨셉보드는 제품 출시 전 전체 시장과 소비자의 인식 속에서 제품이 어느 정도로 자리잡을 수 있을지 확인할 수 있는 Test-Bed로서, 신제품 개발 시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임을 명심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