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카의 소개로 '글이 작품이 되는 공간, 브런치'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브런치 작가로 등단된 지 이제 5개월이 지났다. 오늘 현재로 89편의 글을 발행했다. 돈이 되는 것도 아니고 밥이 나오는 것도 아닌데도 이 브런치에 푹 빠져있다. 불특정 다수와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이 바로 브런치다.
글을 쓰는 과정에서 엉켜있던 생각들이 정리되고 그것이 하나의 작품으로 탄생할 때 야릇한 쾌감을 느낀다. 글에 대한 전문성이나 문학성이 부족한 줄을 알기 때문에 부끄러운 마음을 밑바닥에 깔고 글을 쓰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단히 나의 글이조회되고 있다. 일면식도 없는 분들이 '라이킷'을 눌러주면 기분이 좋아진다.
[구독자 65명/ 누적 조회수 4만 회]
이것이 상대적으로 봤을 때, 좋은 성적표인지 조차 알 길이 없지만 내 글이 누군가의 눈과 맘을 통해서 읽히고 공감을 받는다는 것이 신기하다. 나의 브런치 '서랍' 속에 구상되어 있는 작품이 꽤 있다. 때가 되면 그 글들이 발행되어 온라인 속을 유유히 여행하듯 돌아다니게 될 것이다.종이책보다는 온라인 상에서의 읽을거리가 더 쉽게 독자에게 다가가는 시대인 것 같다. 이래저래 브런치는 내 취향에 맞다. 내가 브런치에 업로드할 글을 쓸 때 필요한 것은, 커피 한 잔, '이 솔로몬의 노래 모음' 배경 음악, 노트북 등이다.
구독자 중에 '녹수'라는 분이 있다. 의심 반푼 어치도 하지 않고 이 분은 장녹수나'장녹수'라는 노래를 좋아할 분일 것 같았다. 그래서 녹수님이 '라이킷'하는 알림이 뜰 때마다, 나는 습관처럼, "어이타, 녹수는 청산에 홀로 우는가?"라고 노래 한 소절을 불러 젖히곤 했다. 그분은유유자적하게 글을 읽거나 노래하며 딩가딩가 사는 분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 후에, 그분이 지인의 대학 동기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지인이 내 글의 링크를 녹수님께 보냈던 것이다. 그 사실을 안 후에도 녹수님에 대한 나의 선입견은 그대로였다. 녹수님은 알음알음으로 나의 공간, 브런치에 오셨고 나의 구독자가 된 분이었다.
대구, <별꽃 자리>에서 '녹수'님을 만나다
방학이 되자마자, 연가를 내어 2박 3일 일정으로 진주와 대구에 다녀오기로 계획을 세웠다. 노환으로 오늘내일하시는 어머니를 뵙기 위해서 진주에 가야 했다. 나선 김에, 대구에 사는 여동생에게도 가볼 참이었다. 이 코로나 시대에 겁도 없이 어마한 공사(브런치: "노아는 마른하늘 아래서 '방주'를 만들었고, ")를 시작했었는데 드디어 내부 인테리어가 마무리되었단다. 지난 5월부터는 카페를 오픈했다고 하니 꼭 한 번 가보고 싶다고 벼르고 있었다.
사는 게 뭔지, 이 상황 저 핑계로 동생의 사업장을 한 번도 들러본 적이 없었다. 지금 까지 해오던 사업에 또 하나의 사업으로 '베이커리 카페'를 한다고 하니 관심이 솔깃해졌다. 내가 대구에 간다는 말을 들은 그 지인은 대구에 살고 있기 때문에 녹수님과 함께 나를 만나러 나오겠다고 했다. 사실 그 지인과도 40년 만의 해후였다. 브런치를 통하여 아주 특이한 만남이 이루어지는 순간이었다. 내 동생의 카페, <별꽃 자리>에서 말이다. 브런치가 오작교 역할을 한 것이다.
동생이 묵묵히 완공한 그 건물은, <별꽃 자리>라는 예쁜 이름으로 단장되었다. 이미 블로거들은 이 카페에 들러 꼼꼼하게 사진을 찍은 후에 자신들의 블로그에 <별꽃 자리> 방문기를 앞다투어서 올리고 있었다.
가까이에 있다면 자주 방문해 보고 싶을 정도로 멋있었다. 그 공간을, 이 언니가 처음으로 브런치 구독자와 만날 수 있는 장소로 제공한 셈이다.사방의 뷰가 그림 같은 곳에서 녹수를 기다리는 시간은 설렘 그 자체였다.
[<별꽃 자리> 내부 및 루프탑 전경]
청산유수, 녹수님
드디어 <별꽃 자리>에서 녹수님을 만났다. 알프스 소녀 같은 모습으로 나타난 녹수님은 나이를 가늠할 수 없었다. 자리에 앉자마자,녹수님은 많은 이야기를 했다. 청산유수처럼 말을 잘하셨다. 나의 글을 다 읽으셨으니 이미 친밀감을 느끼고 있는 듯했다. 따지고 보면 녹수님과 나는 생면 부지한 관계다. 오랜만에 만난 지인과 또한 동행했던 남편까지 어우러져서 이런저런 이야기꽃을 피웠다. 온통 신기한 <별꽃 자리> 내부를 3층까지 오르내리며 인테리어를 구경하고 루프탑 카페에서 뷰를 만끽했다. 우리는 함께 사진을 찍으며 행복한 한 때를 보냈다.
"혹시 '장녹수'를 좋아하시나요? 아니면' 장녹수'라는 노래를 좋아하시나요?"
"아뇨, 아뇨, 전혀 아닙니다."
녹수님은 손사래를 치며 장녹수와 자신의 프로필 이름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고 했다.
"저렇게 푸르고 청청한 자연을 좋아해서 그 예명을 사용하고 있어요."
루프탑 카페에서 짙은 녹색의 산과 파란 하늘을 보니 녹수라는 단어가 구독자님과 제대로 어울렸다.
구독자와 라이킷 클릭자를 추앙하기로 다짐하다
아, 내가 얼마나 섣불리 구독자에 대하여 내 맘 속으로 이러한 사람일 것이라고 속단했던가? 뉘우치고 있었다. 녹수님은 고등학교에서 국어 교사를 하다가 명예퇴직을 한 후에 캄보디아에서 2년간 한국어 교사를 한 이력을 가지고 있었다. 치열하게 삶을 살아오신 분이었다. 결국 내가 상상했던 분과는 일 퍼센트도 일치하지 않는 분이었다. 녹수님은 수능, 언어 능력의 달인이었을 테니 나의 브런치 글을 단번에 분석하고, 어법상, 맥락상, 내용상 적절하지 않은 것을 느낌만으로도 간파할 수 있는 분이었다. 갑자기 등 뒤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브런치 글에 대하여 더욱 정성을 기울이고 각고 조탁의 시간을 가지면서 발행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결국 구독자 한 분 한 분은 응원자인 동시에 마스터의 눈을 부릅뜨고 내 글을 감시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글에 대한 생각이 많이 달라지고 더욱 긴장하게 되었다.
글이 발행되면 잠시 후 부터, 띠릉띠릉 '라이킷'소리가 들려온다. 나는 여태껏 다른 분들의 글을 읽은 후에 '라이킷'을 눌러본 적이 없었다. 게다가 어떤 작가에게도 '구독하기'를 누른 적이 없었다. 한 번은 내게 구독을 누르신 분이 나의 이기적인 이런 태도에 실망을 했는지 어느 날 구독하기를 해제하기까지 했었다.
돈이 들거나 포인트가 날아가는 것도 아니지만 다른 어떤 분의 글에 쉽사리 '라이킷'이란 것을 클릭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내 글이 발행될 때마다 '라이킷'을 눌렀던 분들은, 내 글에 대한 공감을 넘어서서 내 인생에 응원의 깃발을 흔들고 있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었다. 내가 받는 '라이킷'이나 '구독하기'에 대해서 겸허한 자세를 가지기로 했다. 그래서 내게 라이킷을 누른 작가님들의 글을 훑어보고 끌리는 제목을 누른 후에 글을 읽고 '라이킷'을 누르기 시작했다. 이게 최소한의 매너라고 생각한다.
브런치를 통하여 나의 옹졸한 인성이 드러나고 말았다. 이렇게는 살지 말자. 이제 이후로는 나의 구독자님과 라이킷을 클릭해 주신 분들을 추앙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늘 나의 글에 대하여 진심 어린 조언을 아끼지 않는 대구의 그 지인과 <별꽃 자리>에서 만난 나의 구독자 ,녹수님을 존경합니다. 다시 만날 때까지 절망하지 않은 모습으로 파이팅해요. 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