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립고, 그립고, 늘 그립다
아들에게 햇살을 쪼여주고 싶다. 그게 뭐 어려운 거라고? 그러나 나는 그걸 못하고 있다. 그게 우리에게는 간단한 일이 아니다.
아들이 지내는 아파트는 판상형, 정남향이라 온종일 빛이 들어온다. 그러나 나는 아들에게 바깥공기를 마시게 하고 햇빛 아래서 '비타민 D'를 섭취하도록 하고 싶다. 이 소소한 소원의 항구가 어찌나 멀리 있는지...
누구나 값없이 쪼일 수 있는 햇살을 아들은 11년째 누리지 못하고 있다. 그러잖아도 피부 빛깔이 하얀 편인 아들은 병상 생활로 인하여 더욱 희다. 그래서 요즘은 구릿빛 얼굴을 가진 자가 부럽다. 햇빛에 적당히 그을린 얼굴이 좋아 보인다.
그립고, 그립고, 늘 그립다.
아들이 늘 보고 싶다. 아들 곁에서도 아들에 대한 그리움이 조금도 잦아들지 않는다.
아들의 곁은 떠난 학교에서나 세컨 하우스에서도 나는 아들이 보고 싶다. 내 맘 속에는 아들에 대한 그리움이 주단처럼 깔려 있다. 천만 번 더 불렀으나 아들은 단 한마디의 말이 없다. 사랑한다고 그토록 말했지만 아들은 여전히 묵묵부답이다. 아들은 단 한 번도 반응해 주지 않았다. 어차피 아들을 향한 내 사랑은 짝사랑이다. 무심한 듯해도 상관없다. 그런 것으로 흔들릴 내 사랑이 아니다.
언제라도 아들을 보면 반갑고 짠하다. 아들의 손을 잡아도 좋고 아들의 눈을 바라보아도 좋다. 하지만 아들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하나님의 사랑이 내게로 온 듯하다. 아들을 향한 무조건적인 사랑이 바로 하나님 사랑이 아니던가? 내 속에 이렇게 진한 사랑이 있는 줄 몰랐다. 내 속에 이렇게 사그라들지 않는 사랑이 있을 줄 몰랐다. 옹달샘 같은 사랑이다. 퍼내도 퍼내도 줄어들지 않는 사랑이다.
아들은 이 사랑을 느낄까? 꽃이나 동물도 그런 사랑을 안다던데... 유아도 그런 걸 느낀다는데... 아들은 어미의 이 간절한 그리움을 알까? 오늘도 아들의 곁에서 아들을 그리워한다. 앞으로도 내내 아들을 그리워하며 살 것 같다.
[커버 사진] 아들이 요양 병원에서 지낼 때 간병인이 이따금씩 병원 옆 공원으로 나가 일광욕을 시켜준 적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