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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a향기와찬양Lim Jan 26. 2023

세컨 하우스가 필요했다

- 프롤로그

무릇 사람이란 별 것이 다 부러울 수 있다. 아들이 중환자실에 입원중일 때는 일반 병실에 있는 환자들이 얼마나 부러웠는지 모른다. 그들은 적어도 위·중증 환자는 아니기 때문에 일반 병실에 있을 테니까...


아들은 인지가 없을뿐더러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중증 환자다. 기약 없이 요양병원에 입원해 있어야 했다. 그래서 명절에 자택으로 외출하는 환자가 참 부러웠다. 아들이 입원한 지 3년 차 되던 해부터는 그것이 더 이상 부럽지 않았다. 왜냐하면 아들도 외출을 할 정도의 상태가 되었다. 그것은 아들의 바이탈이 안정적이라는 의미였다. 위급한 상황이 긴급하게 닥치는 환자는 아니었다. 병원 측에서 2박 3일간 외출을 해도 된다는 허락을 했다. 정말 기분이 좋았다. 그러나 명절에 환자를 챙겨서 자택으로 외출하는 것은 생각보다 쉬운 일은 아니었다. 환자를 이송할 수 있도록 다 세팅해 놓고 장콜(이름하여 장애인 콜택시)을 부를라 치면 대기 순번이 어마했다. 그래도 병원을 잠시 떠날 수 있다는 것만으로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었다. 환자복만 입고 지내던 아들에게 사복 재킷을 덧입혀 보았을 때 마음이 설렜다. 장콜로 이동 중인 아들이 차창 밖을 내다보는 모습을 보니 심쿵했다. 그의 동공에 무엇이 보이는지는 알 수 없지만 항상 병실에 있던 아들에게 바깥세상을 보여주는 부모의 마음은 좋기만 했다. 


아들은 만 6년 간 병원에 입원해 있었다. 그런데 입원한 지 만 7년이 되면 운동 치료를 더 이상 받을 수 없는 규정이 있었다. 보험 혜택을 받을 수 없는 비급여로 운동 치료를 받아야 했다. 그래서 아들은 그야말로 온종일 침상에만 누워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병원비와 간병비는 최소한 매월 500만 원씩 지출되었다. 그래서 우리 부부는 일생일대의 결단이며 모험을 시도했다. 아들을 집으로 데려오기로 한 것이다. 아들은 한순간의 사고로 뇌병변 1급 장애인이라는 판정을 받았다. 입원하지 않고 재택 중인 장애인에게는 복지 바우처 제도의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 재택 중인 환자에게 활동보조사가 배치되고 매월 한 차례씩 간호 혜택도 받을 수 있다고 했다.


- 집을 병원처럼 만들자!

- 필요한 모든 운동 기구를 집에 세팅하고 의료용품 등을 구비하자!

아들을 퇴원시켜서 집으로 데려오자!


그렇게 한다면, 


- 한 병실에 보호자를 포함하여 20명 정도가 함께 지내는 북새통을 더 이상 겪지 않아도 된다.   

매일 병원을 나가보는 일을 하지 않아도 된다. 

간병인이 일주일에 한 번 외출할 때 우리가 하룻밤을 병원에서 지새우지 않아도 된다.

간병비와 병원비 등으로 매월 500만 원씩 지출하지 않아도 된다.


2012년 11월에 자전거 사고로 심하게 다친 아들은 여러 번의 수술을 한 후에 병원생활을 시작했다. 그 후 아들은 여러 병원을 옮겨 다니며(한 병원에 오래 입원할 수 없는 규칙이 있음) 재활 치료를 받다가 2018년 11월에 집으로 돌아왔다. 그때부터 우리 집은 아들의 입원실이 되었다.


퇴원 후 보름간은 남편이 24시간 내내 아들의 간병에 매달렸다. 그래도 좋았다. 장단점을 체크해 보는 '어골도'를 그려보니 좋은 점이 더 많았다. 그래서 나는 힘든 줄도 모르고 매일 아침마다 혼자서 아들을 목욕시킨 후에 출근했다. 한 시간 정도 아들을 목욕시키고 나면 아들은 개운해지겠지만 내 몸은 땀범벅이 되곤 했다.


그 해 12월부터는 하루에 8시간을 근무하는 활동보조사가 배치되었다. 우리에게는 우렁각시 같이 귀한 도움의 손길이었다. 그 덕택에 우리는 숨을 고를 수 있는 틈이 생겼다.


그 이후에도 시(市)에서 추가로 바우처 포인트를 더 제공해 주는 제도가 있어서 서류를 갖추어 신청했다. 그로부터 약 1년 후에는 일주일에 4일 밤(저녁 10시~아침 6시까지)을 활동 보조사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낮에 근무하는 활동보조사의 남편이 밤 근무 담당자로 배치되었다. 우리는 그 부부와 한 집에서 불편한 동거를 해야 할 판이었다. 그래서 서둘러서 밤에 잠만 잘 수 있을 만한 집을 찾아 나섰다. 설령 우리 집에서 나가 다른 데서 잠을 자더라도 우리는 룰루랄라 정말 신이 났다.


"3한 4온"


우리는 그 상황을 그렇게 일컬었다. 일주일에 3일 밤은 우리가 간병을 하고 4일 밤 활동보조사가 아들을 돌봤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삼한사온 같은 느낌이 들었다. 


바야흐로 우리에게 세컨 하우스가 필요했다.


[사진출처: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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