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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a향기와 찬양Lim Mar 30. 2023

인생 대본을 미리 볼 수 없잖은가?

- 아들을 생각하면 쉽게 잠들 수 없어요

내게는 남다른 걱정이 있다. 11년째 중증 환자로 누워있는 아들 때문이다. 아들은 자기가 스스로 해낼 수 있는 것이라곤 없다. 일순간의 사고로 말미암아 준수한 청년이었던 아들이 하루아침에 그렇게 되고 말았다. 그래서 나는 아들을 끝까지 잘 돌볼 수 있을지 걱정이 된다.


아들은 자기가 하는 일이라고는 고작 숨 쉬고 하품하는 정도뿐이다. 그래서 우리 부부를 포함하여

11명의 손길이 아들을 돌보고 있다.

그런 아들을 남겨 두고 혹시 우리가 먼저 세상을 떠나면 어쩌지? 이런 걱정이 문득문득 들곤 한다.

그렇다고 아들이 먼저 떠나는 것도 우리는 상상하기 싫다.


사고 난 지 몇 개월이 지났을 때 한 지인이 나를 위로한다고 했던 말이 지금도 가슴에 맺혀있다.


"저렇게 살아갈 바에는 차라리 가는 게 나은데... 서로 고생하지 않고 그게 나을 텐데..."


그건 가장 합리적이고 일반적인 생각일 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소리를 듣는 순간 나는 가슴이 콱 막혔다. 부모는 자식을 포기할 수 없다. 비록 내가 힘들고, 가슴 아파도 아들이 끝까지 우리와 지냈으면 하는 게 진심이었다. 0.1%의 가능성이라도 희망이라고 여기고 그것을 부여잡고 싶은 심정이다.


그런데 나를 위로했던 그 지인의 아들이 며칠 후에 계단에서 굴러 세상을 떠났다. 공교로운 일이었다. 소름이 돋았다. 도저히 그 장례식장에 가볼 수 없었다. 아픔이 아픔을 위로할 수는 없을 것 같았다. 그분이 평생 어떻게 살아가실지 짐작이 되어 가슴이 아프다.


그렇다고 아들과 한 날 한시에 이 세상을 떠날 수있는 것도 아니다.


이번 학기가 끝나면 나는 정년 퇴임을 한다. 그래서 딸 내외와 4박 5일 정도 해외여행을 하자고 약속해 두었다. 그런데 갑자기 별스런 걱정이 들었다.


'혹시 우리 가족이 모두가 무슨 사고를 당한다면 저 아들을 누가 돌보지?'


이런 걱정이 스멀스멀 올라오니 잠이 오지 않았다.


아들을 병상에 뉘어 두었지만 우리는 잠자고 식사도 한다.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일상을 헤쳐나가고 있다. 이게 답인 듯하다.


아들의 사고 후에 트라우마를 안고 신경정신과에 다닌 적이 있다.  

담당 의사 선생님이 내게 해주신 말이 있다.


"우리 몸에 고혈압이 오면 혈압약을 먹으며 지내듯이 가정이라는 곳에 그런 병이 생겼다고 여기고 아들을 품고 사셔야 합니다. 일상을 잘 이어가세요."


일상이 마치 모래주머니를 묶고 걷는 것처럼 힘들고 지치지만 그 정신과 의사의 말을 마음에 새기고 살아가고 있다. 등산을 할 때 정상을 바라보고 걸으면 지레 지친다. 한 걸음씩 올라가다 보면 우리는 어느덧 정상에 가 있게 된다. 아들을 품고 가는 삶도 그렇다고 본다. 하루하루, 한 달 한 달 걸어가다 보면 삶의 종착역에 당도해 있을 것 같다.


어김없이 올해도 봄이 왔다. 다 죽어 말라비틀어졌던 나무에도 꽃이 피고 잎이 무성하다. 캄캄한 밤이 지나면 새 날이 밝아온다. 아들과 걷는 우리의 인생대본을 미리 볼 수는 없지 않은가? 아들에게도 놀라운 기적이 임하지 않을까? 설령 그렇지 않다 해도 아들이 지금 우리 곁에 있어서 참 좋다.


그래서 도도히 흐르는 물처럼 묵묵히 살아가고 싶다. 11년 동안 걸어왔던 그 속도, 그 모습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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