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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a향기와 찬양Lim Jun 27. 2024

지금까지 내게 남아있는 쿨러백~

- B로 시작하는 Bag(가방)

딸내미에게 보내 주었던 고추 장아찌를 다 먹었단다.


"그거 밥도둑이에요. 끼니때마다 그것 덕분에 입맛이 살아나요."

"니가 감칠맛을 아네."


지난해 여름, 지인에게 청양고추를 잔뜩 받은 적이 있다. 우리 부부는 맵찔이*다. 그래서 청양고추를 먹어 본 적이 없지만 쌈장이나 장아찌로 담그면 그나마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청양고추로 고추 장아찌를 듬뿍 담근 후 본가에 가져다 두었다.


중증 환자인 아들 때문에 두 집 살이를 하고 있다. 필요한 것을 한 가지씩 세컨 하우스로 야금야금 들고 오곤 했다. 본가에 있는 대형 냉장고와 김치 냉장고는 거의 비어 있다. 아들의 약이나 활보샘들의 간식거리만 냉장고에 들어있을 뿐이다. 그래서 오래 두고 먹을 것이나 김장 김치 등은 아예 본가에 둔다. 필요할 때마다 조금씩 챙겨 세컨 하우스로 가져오곤 한다.


<그 청양고추로 쌈장을 만들고, 고추 장아찌를 담근 에피소드를 적은 브런치 글이다. >


https://brunch.co.kr/@mrschas/350




딸내미네 못지않게 우리도 고추 장아찌를 즐겨 먹었다. 고추 장아찌는 더 이상 청양 고추 본연의 매운맛을 지니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혀에 닫기만 해도 몸서리쳐지던 매운맛은 거의 사라지고 감칠맛 나는 고추 장아찌로 익었다. 어느덧 세컨 하우스에 있던 고추 장아찌를 다 먹었다. 본가 김치 냉장고에 1년 넘게 묵혀 두었던 고추 장아찌를 가져오려고 쿨러백을 챙겼다. 그 쿨러백을 드는 순간, 일련의 기억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그랬다. 12년 전, 아들이 갑자기 사고를 당하여 사경을 헤맸다. 우리는 집을 떠나 아들이 사고를 만났던 포항에서 지냈다. 원룸을 얻었다. 우리 부부는 일상은 팽개쳐 두고 아들을 간병하는 일에만 매달렸다.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아들 곁에서 간병하는 것이 삶의 전부였다. 삶이 부질없게 여겨졌다. 꿈 많고 잘 나가던 아들이 죽은 자와 같이 병상에 누워 버렸다. 그래서 산다는 것에 배신감이 들었다.


그즈음에 S가 보낸 더치커피를 맛보았다. S는 거의 30년 이상 알고 지내온 지인이다. 당시에 S는 커피콩이라는 카페를 운영하고 있었다. 한 방울씩 떨어뜨려 장시간에 걸쳐 우려내기 때문에  ‘커피의 눈물’이라고 불리는 더치커피를 보내왔었다.


무엇을 먹어도 맛이 없었다. 살고 싶은 마음조차 없을 때였다. 밥은 욱여넣듯이, 마지못해 먹었다. 그러나 S가 보내준 커피를 마시면 묘한 힘이 생겼다. 카페인 때문이었을까? 아무튼 그때 생각했다. 사람들은 기가 막힌 일을 당하면 술을 마시거나 담배를 피우게 되겠다고... 내게는 술이나 담배가 아닌 커피가 그런 역할을 했다. 카페에서 손님들에게 내놓아야 할 커피를 내게로 보내는 일이 결코 쉽지 않았을 텐데... 그 커피는 S가 직접 로스팅하여 한 방울씩 내려받은 것이었다. 어쩌면 우리 가족을 위해 흘린 S의 눈물을 커피로 대신 떨어뜨렸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아, 그때 그 커피는 나의 우울을 달래 주었다. 나뿐만 아니라 아들의 사고 소식을 듣고 달려온 분들께 그 커피는 감로수 같은 것이었다. 우리가 6개월간 포항에 있을 동안 S는 틈틈이 커피를 보내왔었다.


아들이 포항을 떠나 서울로 전원 했을 때도 S는 커피를 챙겨 병문안 왔었다. 우리는 서로 마주 안고 엉엉 울기부터 했다. 할 말이 없었다. 그때 우리가 흘린 눈물은 커피 색깔이었을 것이다.



[각 국의 원두로 정성껏 내려 보내왔던 S의 더치커피]


향긋한 커피로 잔치를 벌입니다.
요즈음 저는 간호사실에 한 병, 병실에 한 병, 커피 나눔을 합니다.
원룸에 두 병, 병실 냉장고에 한 병, 알뜰살뜰하게 나누어 마십니다.
배식차 여사님, 청소하는 여사님, 병문안 오신 분들 모두 다 커피 향에 흠뻑 ㅎㅎㅎ
마치 오병이어 같아요. 오천 명이 먹고 열두 광주리가 남았다잖아요.
가나 혼인 잔치의 포도주 같이 풍성해요. Coffee Kong ~ 감사해요. (2013년 카카오 스토리)

2016년에 딸내미가 결혼했다.

그때 S는 앙증맞은 쿨러백에 커피를 가득 담아왔다. 그 후, 8년의 세월이 지났다. 그러나 그 쿨러백을 돌려주지 못하고 있다. 그 쿨러백이 여전히 내게 남아 있다.


그런데 오늘, 본가에 있던 고추 장아찌 들고 오려고 그 쿨러백을 꺼냈다. S의 다정한 얼굴이 눈앞에 어른거리더니 코 끝이 시큰해졌다. S가 얼마나 간절하게 기도하며 우리와 동행하며 응원했는지 그 마음이 새삼 느껴졌다. 마치 그 쿨러백이 말해주는 것 같았다.


그 후, S는 건강이 좋지 않아 카페를 접었다.

나도 S에게  뭔가를 주고 싶다. 받은 만큼은 아닐지라도 그동안 동행하며 격려해 준 것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때로 커피가 사람을 살리기도 한다는 것을 S가 보내왔던 더치커피를 마시며 알게 되었다.

날을 잡아 S에게 달려가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이 쿨러백 속에 무엇을 담아 S에게 전달할까?


S뿐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이 우리를 격려하고 응원했다. 그래서 우리는 웃음을 잃어버리지 않을 수 있었다. 

내 힘으로만 사는 게 아니었다. 캄캄한 터널 속 같은 와중에, 누군가 잡아주고 밀어주는 힘으로 앞으로 한 걸음씩 나아갈 수 있었다.


나도 힘닿는 대로 누군가를 밀어주리라.



* 맵찔: 맵다와 찌질이를 합쳐서 만든 신조어로, 매운맛에 약한 사람을 칭하는 용어(출처:나무 위키)

#쿨러백  #커피콩  #고추 장아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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