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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a향기와 찬양Lim Jun 20. 2024

아무래도 내가 너무 했네

- T로 시작하는 Tree(나무)

나무는 내게 꽤 의미가 있는 것이다. 나무는 일단 땔감이었다. 또한 그늘이며 놀이터였다.




연탄이 나오기 전까지만 해도 땔감 나무를 하러 산으로 무던히 다녔다. 나무에 붙어서 말라죽은 가지인 삭정이가 땔감으로 제격이었다. 썩은 나무그루인 고자빠기로 군불을 지폈다. 불쏘시개로 사용되던 솔가리를 솔갈비라고도 했다.


동생들은 주로 앞산 소나무 밑에서 솔갈비를 긁어 왔다. 솔갈비가 없을 때는 하다못해 마른 잔디라도 갈고리로 긁어 오곤 했다. 갈고리는 대나무로 만들었는데 세월이 좀 흐른 후에는 철근 갈고리도 나왔다.


동생들과 달리 우리는 삭정이를 낫으로 후려쳐 그것을 다발로 만들어 머리에 이고 왔다. 때로는 고자빠기를 캔 다음에 삭정이 다발 속에 집어넣어 단을 묶었다. 그렇게 해 온 나무를 보면 할머니의 얼굴은 환해지셨다. 할머니는 불이 마디고 오래 타는 고자빠기를 좋아하셨다.


"나무를 제대로 해 왔네, 한참 불을 때겠구나."

"좋은 나무 해 왔네. 상일꾼이구만"

"큰 머슴 하나 몫을 하네."


나무를 많이 해 오거나 농사일을 잘하면 칭찬을 받았다.




한 겨울에 나무를 하다 보면 목이 말랐다. 그럴 때 낫으로 얼음을 깨 우두둑 우두둑 깨물어 먹었다. 낫으로 얼음을 깰라치면 낫이 미끄러지곤 했다. 그게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그럴 때 여지없이 기수가 다가와 얼음을 깨주곤 했다. 그러면 우리는 그 조각을 입 속에 가득 넣었다.

 

"기수, 니가 언제 왔어?"


기수는 동에 번쩍, 서에 번쩍, 내가 있는 곳이면 바람처럼 나타났다. 그런 기수가 딱 싫었다. 거머리를 털어내듯 기수를 따돌리고 싶었다.

번은 멍지마을 뒤에 있는 '먼산'이란 곳으로 나무하러 갔다. 숙이가 한사코 거기 가자고 우겼다.


"거기 가면 진짜 좋은 나무가 많대."


일벌레 숙이의 말은 믿을 만했다. 그래서 우리 조무래기들은 나무를 많이 해 올 욕심으로 먼산으로 갔다. 처음 가 본 곳이라 무서웠다. 나무하기도 전에 길섶에서 토끼 한 마리를 발견했다.


"내가 찜했어. 토끼다. 이거 가져가야지"

"죽었잖아."

"그래도 삶아 먹으면 되겠지."


바로 그때, 기수가 나타났다. 기수가 낫으로 토끼 시체를 건드려 홱 뒤집었다.


"산짐승이 속은 다 파 먹고 가죽만 남았네."

"그래?"

"대신 이거 가져가. 너네 엄마가 좋아하실걸."

"뭔데?"

"꿩이야."


기수는 토끼 대신 꿩을 내게 건네줬다. 꿩이 뭐 대순가? 그래도 나는 기수가 싫었다.




요즘도 등산하다가 솔갈비를 보거나 삭정이나 고자빠기를 보면,

 

"아, 저거, 진짜 귀했던 건데... 애들은 저걸 놔두고 지금 다 어디에 있을까? 아깝다."

"아, 저 탐진 솔갈비를 놔두다니."


'기수는 어떻게 지낼까?'


라며 추억에 젖곤 한다. 그토록 귀찮게 여겼던 기수 생각이 났다.




마을 어귀에 큰 나무가 있었다. 느티나무인지 버드나무인지 잘 모른다. 우리 마을 이름이 유판마을인 것을 보면 아무래도 버드나무일 듯하다. 그 나무는 네댓 아름드리였다. 나무가 매우 컸기 때문에 나무 밑에 있던 논에게는 그늘막 역할을 했다. 우리는 그 나무를 '둥천나무'라고 불렀다. 나무를 중심으로 둥그런 벤치처럼 콘크리트로 만들었다. 그곳에 걸터앉아 놀기도 하고 더러는 낮잠을 자기도 했다. 둥천나무 그늘 밑은 마을 사람들의 쉼터였다.


둥천에서 조무래기들은 학교놀이, 소꿉놀이를 했다. 남자애들은 꼬누를 두거나 제기차기 등을 했다. 우리는 비석치기, 공기놀이, 그리고 구슬치기도 했다. 오징어 놀이도 빼놓을 수 없다. 술래잡기나 말타기도 했다. 말타기를 할 때, 맨 앞사람은 둥천나무를 부여잡았다.


놀이가 무궁무진했지만 그것마저 시들해지면 우리는 나무 타기를 했다. 나는 남자애들보다 나무를 잘 탔다. 그날, 나는 아주 높은 곳까지 올라갔다. 나뭇가지는 끝으로 가면서 가늘어진다. 그걸 살살 잘 밟아 끄트머리에서 땅으로 내려오는 것이 나무 타기의 기술이라면 기술이었다. 그런데 그날, 내가 올라 탄 나뭇가지가 우지직 소리를 냈다.


"엄마야!"


그 가지가 부러지면 나는 둥천나무 아래로 흐르는 개울에 떨어진다. 나뭇가지를 잘못 골랐다. 간이 콩알만 해졌다. 그때였다.


"이거 잡어, 이거."


기수였다. 언제 들고 왔는지 자기 할머니 작대기를 들고 와서 내게 내밀었다. 기수는 아마 나만 쳐다보고 있었나 보다. 다른 때 같았으면, "됐거든."이라고 했을 것이다. 그러나 개울에 떨어져 다치거나 망신을 당하지 않으려면 기수가 내민 작대기를 잡아야만 했다. 급하니 어쩔 수 없었다. 기수 덕택으로 나무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그 이후 기수가 법대를 나와 고시 공부를 한다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 난곡동 고시촌에서 평생 고시 공부만 하다가 정신이 이상해졌다는 얘기도 얼핏 들었다.

지금 생각하면 어릴 때 기수한테 너무 쌀쌀맞게 굴었던 것 같다.

기수는 지금 어디에서 살고 있을까?

기수를 한 번이라도 만날 수 있을는지...


그런 날이 온다면
쌀쌀맞게 대해서 미안했다며
손을 내밀고 싶다.



 사용된 이름은 모두 가명입니다.


[사진: 픽사베이]

#느티나무  #버드나무  #솔갈비  #솔가리 #삭정이 #고자빼기  #나무타기 #둥천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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