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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a향기와 찬양Lim Jun 13. 2024

철없던 철순이

- T로 시작하는 Teacher(선생)

내 기억에 가장 선명하게 남아있는 선생님은, 국민학교 5학년 때의 담임이었던 박기천 선생님이다. 박 선생님은 나를 자주 칭찬해 주셨다. 선생님은 나를 야무지고 똑똑한 아이로 보셨다.


철순이

쇠순이

똑순이


박 선생님은 기분에 따라 나의 별명을 다르게 부르셨다.

선생님은 자신의 점심 도시락 셔틀 담당자로 나를 지목하셨다.


박 선생님 댁은 장터에 있었다. 국민학교는 거기서 30분은 더 걸어야 당도하는 곳에 있었다. 사진관을 지나 대서소 옆 집 대문간에 박 선생님의 신혼집이 있었다. 매일 아침 등교 길에 박 선생님 댁에 들러 사모님이 준비하신 도시락을 건네 받았다.


사모님은 얼굴이 백지장처럼 하얬다. 또한 항상 힘이 없어 보였다. 그 사모님의 아련한 눈빛은 슬픔에 젖어 있는 듯했다. 사모님은 말수가 거의 없으셨다. 도시락을 건네받을 때마다 내 눈길은 사모님의 볼록한 배 쪽으로 향했다. 사모님은 임신 중이셨다. 그 사모님은 건너 건너 아는 분이었다. 사모님도 내가 어느 집 딸인지 알고 있었다. 사모님은 내 동기, 형길이의 누나였다. 우리 학교에서 근무하시던 김호길 선생님의 여동생이기도 했다. 박기천 선생님과 김호길 선생님은 처남/매부 지간이었다. 정대 마을에 박 선생님의 처가가 있었다.


박 선생님이 나더러 '철순이'라고 부르시며 도시락 셔틀을 믿고 맡기셨겠지만 그것을 잘해 내자니 내 나름의 고충이 있었다. 다른 애들처럼 아침 먹고 학교에 바로 갈 수 없었다. 새벽부터 일어나 할머니가 끓여 놓으신 갱시기로 요기를 한 후에 소먹이를 하러 가야 했다. 소먹이가 끝나면 집으로 돌아와서 동생들을 챙기고 학교 갈 준비를 했다. 박 선생님은 나의 아침 일상을 전혀 모르셨을 것이다. 그걸 아셨더라면 내게 아침 일거리를 하나 더 안겨 주시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도 철순이라는 선생님의 프레임에 씌어 도시락 셔틀을 야무지게 해냈다. 맡은 일은 제대로 해내고야 마는 근성은 그때도 있었다.


그런데 나는 선생님의 도시락 셔틀을 더이상 하지 않게 됐다. 배가 볼록하고 얼굴이 하얬던 그 사모님이 돌아가셨기 때문이었다.


옥이랑 경자와 함께 학급 대표로 그 사모님의 장례식에 참가했다. 장지에 도착하니 형길이와 우리 반 부반장이었던 태길이도 있었다. 형길이와 태길이의 눈은 얼마나 울었는지 벌겋게 부어 있었다.


학급에서 부의금으로 애들에게 몇 백 원씩 거뒀던 것 같다. 동전을 담은 봉투를 들고 장지가 있던 정대 뒷산으로 갔다. 전능자 같아 보였던 박 선생님이 정신 잃을 정도로 울고 계셨다. 그 옆에서 김호길 선생님도 꺼이꺼이 울고 있었다. 상두꾼들은 뭐라 뭐라 하며 땅속에 내려진 관 위에 흙을 덮었다. 잠시 후에 촉촉한 흙으로 봉분이 만들어졌다. 그 위에 잔디 뗏장을 올린 후에 사람들이 묏등을 밟았다.


우리는 그 모든 장면을 신기한 듯 바라봤다. 서로 말은 하진 않았지만 생전 처음 보는 광경이라 어리둥절했다.


"어이구, 이 꼬맹이들이, 고생 많았네. 이거 가지고 가서 나눠 먹어라."


한 아주머니가 눈에 눈물이 가득한 채로 코를 훌쩍거리며 떡과 고기를 싸주셨다.

우리는 박 선생님께 아무 말도 건네지 못한 채 정대 뒷산을 내려왔다. 잠시 뒤돌아 보니 종이꽃 만발한 상여가 사모님 미소처럼 아른거렸다. 더 이상 사모님을 볼 수 없다고 생각하는 순간, 울컥 눈물이 솟구쳤다.


"사모님, 안녕히 잘 가세요~"


나는 상여를 향하여 손을 흔들었다. 옥이와 경자도 산 쪽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언덕배기에서 형길이와 태길이가 우리를 내려다보며 손을 흔들었다. 눈물이 가려 나무와 사람들과 상여꽃이 한 덩어리가 되어 수채화처럼 번져 보였다. 알 수 없는 슬픔이 가슴께에서 계속 밀고 올라왔다.


차가 다니는 도로가 아닌 지름길로 돌아왔다. 그 길은 정대 마을의 뒷길이었다. 한적한 곳에서 우리는 자리를 잡았다. 장지에서 받아온 떡과 고기를 1/N로 나누기로 했다. 우리는 서로 조금이라도 많은 것을 챙기겠다고 가위, 바위, 보를 하여 이긴 사람이 먼저 무더기를 선택하기로 했다. 손바닥에 침을 뱉어 침점을 쳐 봤다. 그다음은 두 손을 비틀어서 하늘을 향해 손 안을 들여다보는 등 나름대로 이겨 보겠다고 기를 모았다. 가위, 바위, 보라면 자신 있던 내가 이겼다. 내가 좀 더 많은 양의 떡과 고기를 고른 것이 참 기뻤다. 먹을 것이 궁핍했던 시절에 그것을 의기양양하게 들고 집안으로 들어갔다. 가위바위보를 하여 내가 좀 더 많은 것을 들고 왔노라고 할머니께 말했다.


"쯧쯧, 철딱서니 없는 것."


할머니는 떡과 고기를 쳐다보지도 않으시고 나를 경멸하듯 쳐다보셨다. 할머니가 그렇게 말씀하셨지만 내가 왜 철없는 아이인 줄을 그때는 몰랐다.


박 선생님이 나를 철순이라 불러주시며 믿어주셨는데 장례식 떡에 눈이 어두웠던 걸 보면 그때의 나는 철이 없어도 너무 없었다.


한 가정이 무너지고, 한 사람이 이 세상을 떠나가는 기가 막히게 슬픈 날에, 문상을 하고 돌아오다가 떡과 고기를 나누던 내 모습을 생각하면 얼굴이 확확거린다.


다시 박 선생님을 만난다면
그날의 일을 고백하고
용서를 빌고 싶다.
 
철없던 철순이었다고...


[사진:픽사베이]

글에 등장하는 이름은 가명입니다.

#담임선생님  #사모님  #장지  #철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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