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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원이 끝이 아니었다

- 설사가 멈추지 않았다

by Cha향기

▮ 퇴원약이 한 보따리였다.

구급차를 이용하여 집에 도착했다. 마치 먼 여행을 다녀온 것 같았다. 모든 게 서먹하고 어색했다. 구급차에서 내려놓은 짐이 거실 가득 널브러졌다. 그 짐을 정리할 자가 누가일까? 보나 마나 내가 할 일이다. 그런데 집에 오니 다리에 힘이 풀렸다.


입원환자는 완치된 상태로 퇴원하는 게 아니다. 그러다 보니 퇴원 이후에 연이어 복용해야 할 약이 한 보따리였다. 유산균, 항생제, 설사약 현탁액, 기존 약(13년째 먹는) 등등. 약만 먹어도 배가 부르겠다. 게다가 약을 먹이는 타이밍이 제 각각이다. 식전에 유산균, 식사 한지 2시간 후에 현탁액, 아침저녁으로 항생제, 식후 30분에 기존에 먹던 약, 등등. 이렇게 복잡한 약 복용에 관한 것을 말로 전달하면 오류가 발생할 것 같아서 활보쌤들을 위해 '알림'으로 적어 두었다. 아들을 돌보는 손길이 여러 명이니 아일랜드 식탁 위에 올려둔 미니 화이트보드에 중요한 알림을 적어 둔다. 그리고 활보쌤들끼리 교대할 때마다 그다음 분에게 환자의 상태와 중요한 공지 사항 등을 전달한다.


▮ 홍시가 좋다던데...

그 많은 약을 먹여도 설사가 멈출 기미를 보이질 않았다. "홍시가 좋다던데..." 남편이 꺼낸 말이다. 홍시의 효능을 검색해 봤다. 효과가 있을 것 같았다.

"설사약 현탁액을 먹이니 설사를 더 하는 것 같아. 효과가 없잖아."라고 남편은 한 술 더 떴다. 남편은 이어서, "이것도 보라고. 항생제 부작용에 '설사를 할 수 있다'라고 적혀있잖아."라며 항생제, 설사약 현탁액은 물론 유산균마저 먹이지 말자고 했다.

나도 그냥 그래야 할 것 같았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홍시를 먹여보기로 했다.

홍시를 촘촘한 체에 걸렀다. 그렇게 만든 홍시 즙을 위루관을 통해 아들에게 먹였다. 그랬더니 설사가 다소 잡히는 듯했다. 그렇게 설사와 씨름하며 한 주간이 지났다. 퇴원을 했지만 나는 세컨 하우스에서 쉴 수도 없었다.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 아들이 있는 본가에서 비상근무했다. 그래도 아들이 입원해 있었을 때보다는 나았다.


▮ 엉덩이가 짓무르기 시작했다.

입원 동안에 욕창이 생기지 않게 하려고 무척 애썼다. 병원 측에서도 하트 모양 메디폼을 엉덩이에 부쳐주긴 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설사를 하면 응가가 묻게 되니 그 메디폼을 떼어서 버려야만 했다.


그 상황에서는 '막고 푸는 수'밖에 없었다. 틈틈이 체위 변경을 해주고 엉덩이와 등짝에 바람을 쐬어주는 게 상책이다. 그런데 바람을 부쳐줄 부채가 없었다. 집에는 부채가 여러 개 있는데...

'안되면 되게 하고, 없으면 대체할 것이라도 찾아봐야지.'


그런 생각을 하며 어슬렁어슬렁 간호사실 앞으로 갔다. 데스크에 병실 입원 주의사항을 알리는 여러 종류의 리플릿이 꽂혀 있었다. 옳다구나, 바로 그거였다. 리플릿을 펼친 후에 반으로 접었다. 임시변통으로 그것으로 부채를 대신할 수 있었다. 그 리플릿으로 만든 부채로 아들의 엉덩이를 시도 때도 없이 부쳤다. 그게 효과가 있었는지 아들은 퇴원 때까지 엉덩이가 뽀송뽀송했다. 그토록 설사를 자주 했는데도. 또한 욕창도 생기지 않았다. 밤낮없이 신경 쓰며 간병했던 보람이 있었다.


그런데 퇴원하고 며칠 후에 엉덩이 전체가 벌겠다. 잦은 설사로 엉덩이 살이 짓물렀다. 쓰라릴 것 같았다. 엎친데 겹쳤다. 설사에다 이제 엉덩이 발진까지... 아들은 지칠 대로 지쳐갔다. 당연히 우리도 녹다운 직전이었다.


남편이 피부과에 갔다. 엉덩이를 찍은 사진을 보이며 자초지종을 말한 후에 바르는 연고를 처방받았다. 그러나 쉽사리 짓무름이 낫지 않았다. 설사가 멈춰야 그것이 낫든가 말든가 할 것 아닌가?


물티슈부터 치웠다. 물티슈를 사용해 보면 거품이 난다. 세정제가 함유되어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물티슈는 방부제, 산도 조절제, 보습제, 향료 등이 섞여 있어서 짓무른 피부에는 해로울 게 뻔했다. 그래서 깔개를 여러 조각으로 자른 후에 정수기 물을 뿌려 임시 물티슈로 만들어서 밀폐 용기에 담았다.


병원에서 고안해 낸 아이디어인, '깔개를 여러 장 겹쳐 엉덩이 밑에 깔아 두기'를 했다. 그런데 엉덩이가 짓물러 있으니 깔개의 부직포가 피부에 유해할 것 같았다. 그래서 순면으로 깔개 1/2 크기의 깔개 커버를 여러 장 만들었다. 커버를 씌운 반쪽 짜리 깔개를 엉덩이 닿는 부분에 깔아주기 위해서였다. 그걸 만들겠다고 부지런히 미싱질을 했다. 그 깔개 커버는 하얀색 옥양목 대신에 유색 순면으로 만들었다. 반쪽 짜리 깔개는 일종의 팬티인 셈이다. 그 커버에 응가가 묻으면 애벌빨래를 한 후에 푹푹 삶았다. 그래야 소독이 된다.


이런 일까지 하게 되다니, 인생이 만만치 않다. 나는 원래 꼼꼼하거나 까다로운 사람이 아닌데 아들을 돌보는 일에 있어서는 할 수 있는 것은 다 하게 된다. 점점 깐깐해진다. 아들의 건강을 위한 일이라.


▮ 쓰레기봉투를 들고 버스를 탈 뻔했다.

퇴원 이후 한 주간을 그렇게 보내고 나니 몸도 쑤시고 정신도 몽롱했다. 그러다가 쓰레기봉투를 들고 버스를 타려고 한 적도 있다. 그 에피소드를 담은 쓰레기봉투를 든 채로 버스를 탄다고?라는 브런치 글이 발행됐다.


아들 돌봄은 멈출 수 없는 일이다. 시동을 계속 걸어둔 채 앞으로 가는 차량 운행과 같다. 되돌아갈 수도, 옆으로 빠질 수도 없다. 포기할 수는 더욱 없다. 옆도, 뒤도 돌아보지 않고 오직 한 길, 앞으로만 가야 한다. 직진만 해야 하는 인생 도로에서 간병 운행 중이다.



가래가 많이 줄어들긴 했지만 입원 전과 비교하면 석션하는 횟수가 많아졌다. 그래서 식염수를 더 준비해 두어야 한다. 대체적으로 20개 정도의 여분을 미리 챙겨두는 편이다. 아쉽게도 의료용품은 인터넷 구매가 안 된다. 반드시 약국에서 사야 한다. 캐리어를 끌고 약국에 직접 가서 한 박스씩 사다 나른다. 1,000ml짜리 10개 들이 박스다.


"어, 요즘 부쩍 식염수를 자주 사시네요?" 단골 약국 약사의 말이다.

"아, 네에, 가래라고는 없던 녀석이었는데, 이번에 감기에 걸리더니 된통 고생을 하네요. 식염수, 감당이 불감당입니다." 나는 겸연쩍게 웃으며 말했다. 식염수를 1년에 몇 번 정도만 사곤 했는데, 그즈음에는 일주일이 멀다 하고 식염수를 사러 약국에 갔었다.


설상가상(雪上加霜), 엎친 데 덮친 격인 그 상황이
쉽게 끝나지 않을 낌새다.

지금 돌아보니,
아직 5부 능선도 넘지 못한 지점이다.


[대문사진: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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