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맛집, The 철판
거북이 그림자도 보지 못한 채, 스노클링 액티비티를 끝냈다. 그래도 시원한 바다를 보며 일상에 끼인 먼지 같았던 걱정을 내려놓고 옥빛 바다를 볼 수 있었다. 뒤끝 작렬한 사람도 아닌데, 케라마 군도에 이르지 못한 채로 바다 한가운데서 먹었던 식사는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오키나와 소울 푸드라던 점심 도시락은 지금까지 먹었던 여행 음식으론 최악이었다. 그러나 염려 없다. 우리에겐 여전히 먹을 일이 많이 있으니. 그날 저녁은 기대되는 메뉴였다. 나하 시내에 있는 '더 철판' 맛집에서 식사를 하기로 했다. 오코노미야끼를 먹게 된단다.
레스토랑은 자그마했다. 예약해 둔 상태라 좋은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철판 바로 곁, '바 체어'에 앉았다. 식사가 시작됐다. 일명 코스요리였다. 뭘 먹었는지 다 기억해 낸다면 천재일 정도다. 무수한 요리가 나오고 또 나왔다. 점심을 부실하게 먹었던 것이 신의 한 수였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가소로울 정도로 적은 양의 가리비 구이가 나오는가 싶더니 갈릭 라이스도 나왔다. 첫 입부터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이어서 그릴 새우와 치즈를 끼얹은 스파이시 프라이드 포테이토가 우리 앞에 놓였다. 어라? 지금껏 먹어 본 적 없는 맛이었다. 새우를 철판에 잘 구우면 세상에 없던 맛이 될 수도 있나 보다. 불 조절, 소스, 셰프의 손놀림이 빚어낸 명품 새우였다. 그 흔한 감자튀김과는 다른 스파이시 프라이드 포테이토 맛은 뭐라고 설명할까? 곁들인 치즈 소스도 한 몫했다. 양식보다 한식을 더 좋아하는 내게도 그 감자튀김은 무한정 먹어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바로 앞에서 요리하는 셰프는 장인임이 분명하다. 허리춤에 끼워둔 수건으로 땀을 계속 닦으면서도 우리를 향한 따뜻한 미소를 잃지 않았다. 우리를 웰컴 한다는 사심 없는 표정은 가히 백만 불이었다. 불 앞에서 요리를 해야 할뿐더러, 손님 바로 앞에서 예술 작품을 완성하듯 요리를 한다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닐 것이다. 요리는 온도가 참 중요하다는 걸 알려주는 듯했다. 둥그런 스텐 뚜껑을 잠시 덮어 요리 재료가 골고루 익도록 조심조심 다루고 있었다. 오래된 노하우로 가장 맛있는 순간을 포착하는 기술을 장착한 셰프인 듯했다. 팔뚝 근육이 그것을 증명해주고 있었다. 매일 몇 팀만 예약받아 정성껏 귀빈 대접을 하는 이 식당은 바쁠 것도, 붐빌 것도 없어 보였다. 그냥 현재의 손님에게 만만디로 서빙하자는 모토인 듯했다.
그다음은 스테이크 타임이었다. 등심으로 만드는 '서로인 스테이크'는 그냥 살살 녹는 맛이었다. 촉촉한 식감, 풍부한 풍미, 더 이상 맛있을 수 없는 맛이었다. 바로 눈앞에서 날 고기를 익히는 과정을 볼 수 있었다. 요리가 완성되자마자 따뜻한 상태로 먹으니 최상의 맛을 즐길 수 있었다. 덜도 아닌, 더도 아닌, 적절한 타이밍에 먹은 스테이크는 한마디로 따봉이었다. 이미 배가 부를 참인데 이어서 치킨 스테이크도 나왔다. 치킨 바비큐나 통닭 전기 구이는 먹어봤지만 치킨 스테이크는 처음이었다. 치킨도 스테이크로 변신하니 일품이었다.
메인 디쉬라고 할까? 드디어 오코노미야끼가 나왔다. 취향대로 구워 먹는다는 뜻인 이 음식을 먹어본 기억이 없다. 기본 재료는 밀가루, 가쓰오부시 우린 물, 채 썬 양배추, 소스(마요네즈 등), 계란 등이고 이외 재료로는 질기지 않은 나물, 고기, 볶음면 등을 추가한다. 더 철판에서 맛본 오코노미야끼는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한국에서도 꼭 다시 먹어보고 싶은 요리다. 검색해 보니 가까운 곳에도 오코노미야끼 맛집이 꽤 있다. 아는 만큼 보인다,라고 하지 않던가? 어쩌면 내가 수없이 지나다녔던 길목에 그런 집이 있을지도 모른다.
이어서 또 거나한 요리가 나왔다. 베이킹 카레였다. 그날 호텔 조식에서도 홈메이드 카레가 있긴 했지만, 그 베이킹 카레는 아주 색달랐다. 집에서도 간간이 카레를 만드는데, 베이킹 카레처럼 만들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부가 별식을 자주 먹으면 집안 식탁이 달라지는 게 맞는 것 같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쉽게 접하는 수프 카레가 아니라 카레 소스를 곁들인 고기 볶음이라 표현하면 될 것 같다.
그 이후에도 몇 가지를 더 먹은 것 같은데 그 코스를 다 기억할 수 없다. 이미 배가 불렀을 것 같은데 새로운 요리가 나올 때마다 입맛이 돋았다. 양을 조금씩 담아주니 맛있다고 느끼며 먹다 보면 어느새 음식이 사라지곤 했다. 빈 접시는 보이가 잽싸게 챙겨갔다.
디저트는 감질날 정도 조금 담겨 나온 아이스크림이었다. 한 낱 아이스크림인데도 대접받는 기분으로 받아먹으니 달콤하기 그지없었다. 일 년에 한두 번 아이스크림을 먹을 정도인데 그날 거기서 일 년 치 먹을 아이스크림을 해치운 셈이다. 식사하는 세 시간 정도 동안 알코올이나 음료는 무료라고 했다. 그래도 벌컥벌컥 마셔댈 수 없었다. 그러면 배불러서 더 이상 코스 요리를 즐길 수 없으니 말이다.
이렇게, 맛있게, 행복하게, 신나게, 즐겁게 먹었으니 음식값은 도대체 얼마나 나올까?
오래전에 워싱턴에서 스테이크 한 끼 값으로 20만 원 넘게 지불했던 적이 있다. 그래서 세 사람이 충분히 먹었으니 가격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었다. 두둥, 드디어 양머리 모양으로 수건을 쓴 보이가 우리 앞에 청구서 트레이를 내밀었다. 아날로그식으로 메모지 종이에 청구액을 적어서 왔다. 에게? 겨우 이 정도라고? 세 명이 먹었는데 15,000엔이었다. 동남아시아가 아닌 일본에서 이 정도 가격이면 괜찮은 거네. 나쁘지 않다.
특히, 오코노미야끼, 합격이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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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여행에
함께 오지 못한 사위가
그날 저녁을 산다고 했다.
고맙다. 사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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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9 ~ 5/22(3박 4일)에 다녀온 '오키나와' 가족 여행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