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장 영양식
지난 9월 16일, 인천 지역에는 게릴라성 호우가 들이부었다.
남편은 하필 그날, 아들의 주식(主食)인 환자용 경장 영양식을 구하기 위해 8군데 약국 문을 두드렸다.
환자나 보호자가 약국에 경장 영양식 재고량을 확인한 후 의사 처방을 받아야 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원래는 처방전을 들고 가면 어느 약국에서나 구할 수 있어야 하는 게 맞지만 요즘은 사정이 그렇지가 않다. 겨우 한 군데서 12일 정도의 아들 식량을 구해 택시를 타는데, 비는 억수 같이 쏟아지고 남편의 마음에도 비가 내렸다.
아들이 자전거 사고를 당해 중증 환자로 누워 지낸 지 13년이 되었다.
6년 간은 병원에 입원해 있었다. 이후 재활 운동 치료 부분에서 더 이상 급여 혜택을 받을 수 없다는 규정 때문에 집으로 옮겨와 재택 돌봄 중이다. 집에서 돌본 지도 7년이 지나가고 있다.
아들은 입으로 물 한 모금도 마시지 못한다. 그의 식사는 위루줄을 통해 투여하는 환자용 경장 영양식이다. 아들은 입에 먹을 것을 넣어주면 오물거리며 넘기긴 한다. 그러나 연하(삼킴) 장애가 있으니 기도로 넘어갈 위험이 다분하다.
그래서 음식을 입으로는 일절 먹이지 않는다. 아들은 틈만 나면 입을 쩝쩝거리고 다리를 부들부들 떨며 몸을 비튼다. 그건 배고프다는 표시다. 아들이 유일하게 자신의 의사를 표현할 수 있는 것은 배고프다는 시늉을 하는 것이다. 그걸 지켜보는 부모 마음은 말로 표현할 길이 없을 정도로 찢어진다.
아들이 병원에 입원해 있던 6년 동안은 뉴케어, 메디푸드 등 국산 경장 영양식을 제공받았다. 그런데 아들을 집으로 옮겨온 후부터 아들의 식사를 우리가 직접 구입해야 했다. 그때부터 아들 식사를 독일제 '하모닐란'으로 변경했다. 품질도 좋은 데다가 의사 처방을 받으면 건강보험 혜택이 적용됐다. 그러니 하모닐란을 아들의 주식으로 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그런데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시작되자 하모닐란 수급에 큰 차질이 빚어졌다. 그러다 보니 또 다른 경장 영양식인 일본산 '엔커버'로 수요자들이 몰렸다. 풍선 효과로 엔커버마저 덩달아 품귀 현상을 빚고 있다. 하모닐란을 구할 수 없게 된 지 꽤 됐고 엔커버 마저 구하기가 쉽지 않다.
아들의 환자용 경장 영양식을 구하려고 신경이 곤두서 있다. 그것 때문에 우리는 몇 년간 밤잠을 설치는 등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배고파해도 먹이지 못하면 부모 마음이 아픈데, 그걸 구하기조차 힘드니 속이 더욱 상한다.
지금도 한 끼는 비급여 국산 제품, 메디푸드를 구입해 엔커버와 병행해서 먹이고 있다. 공급 물량이 부족하다 보니 최악의 상황에는 비급여 국산 경장 영양식을 구해야 할지도 모른다. 하루 이틀 먹일 간식이 아니라 주식(主食)이니 비용이 무척 부담이 된다.
건강보험 적용이 되는 하모닐란의 경우 200ml 기준 1포당 약 2,500원인데, 보험 적용이 될 경우 본인 부담금은 5%로, 비용이 크게 줄어든다. 더구나 기초 의료 수급자인 아들은 비용을 감면받고 있어 큰 도움이 된다. 반면 비급여 제품인 메디푸드는 200ml 기준 약 1,800원이다. 35세 아들이 한 달 동안 먹는 양으로 계산하면(200ml 기준으로 하루에 6.5포, 한 달 합산, 195포) 하모닐란은 비용이 들지 않는 반면, 비급여 제품만 이용할 땐 월 35만 원 정도의 비용이 발생하게 된다.
관련 문제를 다룬 <서울신문> 지난해 4월 27일 자 보도를 보면, 뉴케어는 의약품이 아닌 식품으로 분류되어 있어 건강보험 적용이 불가능하다고 한다. 기사에 인용된 식약처 관계자 말에 따르면 "뉴케어 제품의 경우 전문 의약품으로 인정받기 위한 임상 실험 등의 절차를 거치지 않았기" 때문에 "의약품 신청 여부는 제약사가 결정해야 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일선에서 이토록 수급 불안정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 관계 당국이 알고 있을까? 중동 전쟁이 안정될 때까지라도 한시적으로 조치를 취해 주면 좋겠다. 환자를 돌보는 어려움으로 지친 보호자가 환자의 주식(主食)을 구하느라 동분서주하며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것은 이중 고통이다.
장기간, 무려 13년 동안
생때같은 아들을 병상에 올리고 사는 일은
사람이 견딜 고통의 한계를 넘은 것이다.
그런데다 설상가상으로
경장영양식 구하는데 신경을 곤두서야 하니
상처에 소금을 끼얹는 것처럼
쓰리고 아프다.
▲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도 탑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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