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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쿡크다스 Feb 11. 2024

호주 카페 인터뷰, 트라이얼

5번의 인터뷰와 트라이얼

호주에서 일을 구하다보면(특히 카페나 식당) 한국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트라이얼'이라는 과정이 있다. 트라이얼이란 평균 2시간에서 많게는 4시간 까지 무급으로(유급인 경우도 있다) 일을 하면서 가게에 적합한 직원인지 평가를 받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이론적으로 구직자도 트라이얼을 이용해 가게 분위기, 업무 난이도 등을 평가해 최종 입사(?)를 결정할 수 있지만 가게에 유리한 제도다. 사실상 무료로 인력을 사용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지난 글에서 설명했던 구직 방법을 통해 나는 총 6번의 인터뷰와 트라이얼 기회를 얻었다. 아래부터는 시간에 따라 내가 했던 트라이얼과 인터뷰 경험이다.


첫 번째. 트라이얼.

장소 : 사내 카페

트라이얼 시간 : 2시간(오전 10시~오후 12시)


일요일에 보스와 문자로 간략한 자기소개(비자, 호주에 언제 왔는지, 커피 만들 수 있는지)를 했더니 당장 내일(월요일) 트라이얼을 오라고 하길래 이게 웬 기회인가 싶어 수락했다. 다음 날. 회사 내부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인적사항도 적고 관련자의 확인이 있어야 해, 일 하는 직원이 데리러 왔다. 보스에게는 간단히 자기소개했지만 일하는 사람과는 처음 만나는 거라 간략한 인터뷰라도 할 줄 알았는데, 손님 많으니까 당장 커피 만들라는 슈퍼바이저의 지시에 부리나케 앞치마를 두르고 머신 앞에 섰다.


일을 알려주는 사람, 배워야 하는 사람 모두에게 시간이 부족한 근무 환경이었다. 뭔가 알려주거나 뭔가 물어보려고 하면 바로 손님들이 줄을 서는 통에 포스기도 익숙하지 않은 상황에서 주문을 받고 커피 내리기를 한 시간 반. 와중에 엄청난 실수를 했는데, 캔 콜라를 가져온 손님에게 페트병 콜라 가격을 받은 것이다. 포스에 캔 콜라가 없길래 아, 여기는 캔이든 병이든 가격이 같은가 보다 하고 병 콜라 가격을 받았는데 나중에 다시 보니 캔 콜라 가격은 따로 있었다. 영문도 모른 채 돈을 더 낸 손님에게 심심한 사과의 말씀을... 맹세코 계산할 때는 안 보였다 정말로!


거의 반쯤 넋이 나간 채로 일 하고 끝나기 10분 전에는 would you clean up for me?라고 청소용품을 가져다주는데, 이 순간 본능적으로 아주 뽑아 먹을 대로 뽑아 먹는구나 라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이런 곳이라면 엄연히 경력직 그것도 수년간의 경력직을 선호해야 함이 마땅한데 호주에 도착한 지 열흘 된 나에게 당장 트라이얼 해 보라고 한 것을 보니 다음과 같은 상황으로 짐작되었다.


1. 보스가 현장 근무 강도에 대해 전혀 알지 못 함.

2. 트라이얼로 인력 보충. 트라이얼은 보통 무급이니까 바쁜 시간에 사람 불러서 쓰기.

3. 경력자마저 혀를 내두르는 업무 강도로 커피 내릴 줄 알면 초보라도 괜찮다는 분위기.


폭풍 같은 첫 트라이얼 덕분일까 다음에 있을 트라이얼, 면접이 오히려 아무것도 아닐 것처럼 느껴졌다. 돈을 번 건 아니지만 호주에서 일 구하는 첫 단추를 끼웠다는 생각에 뿌듯하기도 했다. 트라이얼이 끝나고 슈퍼바이저가 언제부터 시간 되냐고 묻길래 다음 주부터 가능하지만 사실 다른 카페 면접, 트라이얼이 남아있다고 말했다. 이렇게 솔직해도 되는 건가? 면접 다 보고 연락 달라는 것으로 마무리. 결과적으로는 다른 카페 붙어서 안 간다고 말했다.


두 번째. 인터뷰 및 트라이얼.

장소 : 쇼핑몰 내 키오스크 형태 카페

인터뷰 및 트라이얼 시간 : 약 40분


집에서 버스로 20분 정도 떨어진 쇼핑몰에 있는 카페였다. 프랜차이즈화 된 카페라서 다른 곳 보다 직원을 채용함에 있어서 전문성이 돋보였다. 내 앞 뒤로 면접자가 한 명씩 있었고(당일 많은 면접 일정이 있는 듯했다), 보스와의 간단한 대화(커피 만들 줄 아니?) 이후, 10분 정도 헤드 바리스타를 보조하는 것으로 트라이얼을 했다.


마침 손님 주문이 연달아 4건이 있어서 헤드 바리스타가 샷을 뽑고 내가 옆에서 우유 스팀을 하면서 트라이얼은 쉽게 마무리. 한국에서 쓰던 머신과 달라 처음에 잠시 헤맸는데 그래도 두 번, 세 번 째는 적응 해서 괜찮았다. 트라이얼 끝나고 잠시 대기 후, 보스와 다시 대화(비자 종류, 다른 지점에서 근무하고 싶은지, 하게 될 일)

궁금한 게 있냐고 물어보는데 궁금한 게 없어서 대화 마무리 하기 참 힘들었다. 급여, 로스터 등등 궁금한 게 많지만 어차피 정해진 규정대로 할 테고 아직 합격하지 않은 내게 보스가 말해줄 이유는 없으니까. 물어봐도 영양가 있는 대답은 들을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다음 날 오전에 합격 문자가 왔는데, 여기도 결국 안 간다고 했다.


세 번째. 인터뷰.

장소 : 동네 카페

인터뷰 시간 : 약 30분


버스로 40분 정도 떨어진 곳이라 갈까 말까 고민했지만 이 모든 게 다 경험이라고 생각하고 무거운 몸을 이끈 채 갔다. 도착한 카페는 마침 손님이 없었다. 그래서 매니저(처음에는 사장인 줄 알았다)와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었다. 이력서 전해주고 커피 만들 줄 아냐 그래서 만들 줄 안다고 했더니 카푸치노 좀 만들어 달라고 했다. 나 마실 거 뽑으라고 잘못 알아들어서 정성 들여 만들었더니 가져가서 주방에 있는 사람을 주더라.. 혼자 민망했다. 카푸치노 뽑고 났더니 손님이 들어왔고 손님이 주문한 롱맥(근데 이제, 우유를 가득 채운)까지 만들었다. 이론으로는 롱맥이 뭔지 알고 있지만 만들어 본 적은 없어서 솔직하게 잘 모르겠다고 얘기했더니, 거품 최대한 내지 말고 플랫화이트처럼 만들라길래 만들어 손님께 서빙까지 완료.


손님이 가고 나서 나 먹을 거 만들라길래 우유 스팀 치고 남은 거 대충 부어서 갖고 자리에 앉아 다시 대화했다. 비자는 뭐니, 트라이얼은 언제 올 수 있니, 그전에 경력은 얼마나 있니 등 이야기를 나누고 금요일에 트라이얼 하자며 면접은 마무리 됐다.


네 번째. 인터뷰.

장소 : 쇼핑몰 내 키오스크 형태 카페

인터뷰 시간 : 약 10분


집에서 20분 정도 떨어진 거리에 있는데 기차로 환승해야 돼서 다니게 되면 번거롭겠다, 싶었다. 손님이 많이 없는 쇼핑몰이라 카페에도 손님이 없었고, 보스가 노트까지 들고 있길래 면접이 좀 길어질 줄 알았다. 나의 신상에 대한 인터뷰(이름, 나이, 사는 곳, 얼마나 걸리는지)와 커피에 대한 대화(플랫화이트와 라테의 차이 등). 자신의 카페와 커피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고 느꼈고 초보든 경력자든 자신은 상관없다고 했다. 그런데 트라이얼을 4시간 해야 된다고. 본인이 예전에 트라이얼 없이 사람 뽑은 적이 있는데 정말 disaster였다고 했다. zero pay를 너무 강조해서 말하길래 어지간히 돈 주기 싫은가 보다 싶었다.


이 트라이얼이라는 제도가 참 생소하다. 직원이 일을 잘할 수 있는지, 직원은 이런 분위기에서 내가 일 할 수 있는지를 파악하는 좋은 시간이라는 것을 머리로는 이해한다. 그 시간이라 함은 절대적인 기준은 없으나 통상적으로 1시간~2시간이 보통이지만 4시간은 한 사람을 파악하는 것 이상으로 그 사람의 노동력을 바라는 느낌이다. 그것도 zero pay라고 하니 더더욱.  내일 트라이얼 했으면 좋겠다고 했는데 아무리 일자리가 급해도 4시간 트라이얼까지 감내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리고 면접 중에 급여를 얼마 받고 싶냐고 물어보는 게 독특했다. 나는 호주에서의 경력이 없기 때문에 법정 최저 시급만 받으면 된다고 생각했고, 법에 있는 최저 시급만큼 받겠다고 했다. 질문의 의도가 무엇인지는 모르겠으나 어차피 내가 부른 값 쳐주지 않을 거라면 입만 아픈 질문이었다고 생각한다.


다섯 번 째. 트라이얼.

장소 : 수요일에 면접 본 카페

트라이얼 : 8시 ~ 11시(3시간)


결론부터 말하자면 트라이얼 3시간도 돈 받고 이곳에서 일하기로 했다. 이 날 아침에 정말 추워서 히트텍 껴 입고 그걸로도 모자라 목도리까지 두르고 출근했다. 도착하니 지난 면접 때는 못 본 직원이 있었고, 점장이 말을 해 둔 건지 내 이름을 알고 있었다.


런치 때 샌드위치도 파는 곳이라 재료 손질 및 준비로 바빠 보였는데 틈틈이 카페 기기, 물건 위치에 대해 잘 알려줬고 주문받을 때도 옆에서 포스기 사용법을 자세히 알려줬다. 잘 알려준 덕분에 이후에는 혼자서 주문도 받을 수 있었다. 물론 버벅대긴 했지만. 월요일 사내 카페에서 했던 트라이얼과는 달리 조금 여유가 있는 환경에서 하나하나 배울 수 있어서 좋았다. 사실 트라이얼이라고 해서 2시간 정도하고 집에 갈 줄 알았는데 면접 봤던 매니저가 한 시간 정도 더 일 할 수 있냐고 해서 그러겠다고 하고 3시간을 꽉 채웠다. 그리곤 다음 주 월요일부터 일 시작할 수 있겠냐고 물어봐서 수락. 근무 일지에 오늘 트라이얼 한 3시간도 기록하라고 했다. If you're happy with that, I'm happy too. 라면서. 안 할 이유 없지!


여섯 번째. 트라이얼.

장소 : 빵집

트라이얼 : 6시~7시(1시간)


Indeed로 지원한 빵집에서 Sandwich maker 해 볼 생각 있냐고 전화가 왔다. 이미 다른 카페에서 일하기로 했고 Shift가 고정이 아니라 어떤 요일에 일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고 말 하니 자기는 1주 전에 2주 치 로스터를 알려줄 거니까 일정 맞추는 데는 어렵지 않을 거라고 했다. 우선 수요일에 쉰다고 하니 아침 일찍 트라이얼 함께 해 보자고 했다. 30분~1시간 정도 걸릴 거라면서.


졸린 눈을 비비고 30분을 걸어 도착해 트라이얼을 시작했다. 트라이얼이라고 해도 대단한 건 아니고, 사장이 샌드위치 만드는 것을 보고 따라 만들면 되는 것이었다. 분명 내가 만든 게 마음에 안 든 것 같은데 차마 나쁘게 말은 할 수 없고 계속 Not bad라고만 했다. 남편에게 말 하니 박장대소. 사람이 급한 자리라서 다른 카페와 시간만 맞출 수 있다면 출근했으면 좋겠다고 했지만 어느 한쪽이 편의를 봐줘야 하는 상황이 그려져 못 다니겠다고 했다. 세컨드 잡을 하고 싶지만 섣부르게 시작했다가 양쪽에서 균형을 못 맞출 수도 있으니 세컨드 잡은 잠시 보류하기로 했다. 좋은 기회가 될 것 같았지만 이곳과는 여기까지만 인연인 것으로.


트라이얼을 마치고 가게에서 고용 의사가 있다면 그 자리에서 출근일을 확정하거나 하루 이틀 내에 연락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고용 의사가 없으면 대부분 연락 하지 않는데 이 경우 담당자에게 문자를 보내 다시 한 번 자신을 어필하는 사람도 있다. 내 코워커가 그랬다. 은근히 잘 통하는 방법인 것 같다.


생소한 트라이얼 제도에 기 죽지 말자. 호주 카페에서 일 하는 사람이라면 모두 트라이얼을 한 번쯤은 해 보았기 때문에 구직자가 어떤 마음으로 트라이얼에 임하는지 충분히 알고 있다. 알고있음에도 불구하고 처음부터 눈치주는 곳이라면 그 자리에서 마음 정리하는 편이 낫다. 그런 곳은 일 하더라도 똑같은 어려움으로 고생한다. 실수하더라도 괜찮다. '쟤도 지금은 잘 하지만 처음엔 잘 못했겠지.'라고 생각하며 당당하게 트라이얼을 이겨내자.


한국에서부터 시작 된 호주 카페 구직 과정은 여기까지이다. 다음 장 부터는 내가 카페에서 일 하면서 겪었던 재미있는 이야기로 호주 현지 카페 분위기에 대해 공유하고자 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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