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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쿡크다스 Feb 11. 2024

매일 만나는 단골손님들

이번에는 우리 가게 단골손님들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보려고 한다. 지난 글에서 몇몇 진상 손님에 대한 이야기를 풀었는데 그런 손님은 인상이 강렬할 뿐 정말 소수에 불과하다. 대부분의 손님은 무난하거나 좋은 사람들로, 진상 손님으로 인해 헝클어진 마음을 다 잡게 해주기도 한다.


동네 장사를 하는 우리 가게에는 단골손님이 꽤 많은 편이라 이 사람들의 취향을 언제 다 외우나, 싶었지만 주 5일 풀타임으로 일 하니 2주 만에 모두의 옵션을 파악할 수 있었다. 이상적인 단골손님과 가게 직원의 모습(small talk, 사담 나누기 등..)보다는 손님의 바쁜 출근길에 방해가 되지 않게 커피를 빨리 만들어 내어 주는 흡사 자판기에 가까운 모습이지만 이건 이 나름대로 재미있다. 타임어택 미션 하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 


1. 맞은편 회사에서 매일 4명, 많게는 6명씩 무리 지어 오는 손님들이 있다. 매니저의 지시로 회사 손님들에게는 10% 할인을 적용하는데 아마 이 때문에 우리 가게에서 늘 커피를 먹는 듯했다. 처음에는 누가 누군지 헷갈려 주문을 받을 때 A의 옵션을 B에게 주는 등 실수가 있었다. 뿐만 아니라 10% 할인 적용을 깜빡할 때도 있었는데 손님들은 전혀 개의치 않아 한다. 다정하게 인사를 건네는 편은 아니지만 나 포함 코워커가 하는 작은 실수에 언제나 괜찮다고 한다. 아몬드 플랫 화이트, 저지방 우유 플랫 화이트 등 늘 따뜻한 커피를 주문하다가 최근 여름이 되어서는 아이스라테를 자주 시켜 먹는다.


2. 아침 9시까지는 도넛과 커피를 프로모션가로 싸게 판매한다. 그렇지만 이른 아침부터 도넛을 원하는 손님은 많지 않아 프로모션을 이용하는 손님은 거의 없는 편인데 꾸준히 프로모션 시작부터 지금까지 일주일에 두 번 도넛과 커피를 픽업하는 손님이 있다. 늦어도 8시 59분에는 오는 손님이 지난번에는 9시 15분쯤 오더니 '늦어서 프로모션 안 되겠지?'라고 아쉬워하는 표정이길래 아주 잠깐 고민하다 프로모션을 적용해 주었다. 유일 무이한 프로모션 이용 손님에게 야박하게 굴 수는 없으니까. 


3. 올 때마다 small long macchiato를 주문하는 이 손님은 굿모닝, 땡큐 말고는 한 마디도 하지 않는다. 무례한 손님이 아니라 우리 가게의 오랜 단골이라 나 포함 모든 코워커가 창 밖 너머로 손님이 보이는 순간부터 그의 커피를 만들기 시작해 손님이 가게 안으로 들어와 결제를 마침과 동시에 커피가 완성된다. 어쩌면 우리가 손님이 다른 말을 할 시간을 주지 않는 것일지도..


4. 점심시간에 늘 샌드위치를 사 먹으러 오는 젊은 남자 손님이 있다. 이 손님은 근처 공사 현장에서 일하는데 점심시간을 우리 가게에서 보내다가 돌아간다. 주 5일 내내 오는 경우도 있는데 올 때마다 매일 똑같은 샌드위치를 먹는다. 아무리 맛있고 좋아하는 음식이라고 해도 매일 먹으면 질릴 법도 한데 내가 이곳에서 일한 지난 6개월 동안 단 한 번도 다른 메뉴를 먹은 적이 없다. 혹시 옵션을 바꾸고 싶은데 미리 그 메뉴로 계산 준비까지 맞춰놔서 말을 못 하는 건 아니겠지. 


5. 소이 플랫화이트, 시나몬 번, 치킨 샌드위치를 아침 식사로 먹고 가는 손님이 있다. 주 1회 방문하는 손님이라 외울만하면 까먹다가 최근에 드디어 외웠다. '이거 이거 이거 맞지?'라고 먼저 얘기했더니 그걸 어떻게 외웠냐며 정말 좋아했다. 늘 책과 함께 오는 손님이라 독서에 방해가 되지 않게 잔잔한 재즈 음악을 틀어 놓는다.


6. 거의 오픈과 동시에 오는 연세 지긋한 할머니 손님이 있다. 소이 플랫화이트를 주문하고 가지고 온 잡지를 읽으며 커피를 마시다 조용히 돌아간다. 오전에는 샌드위치 준비하느라 주방과 홀을 왔다 갔다 하다 보니 손님이 가는 모습은 거의 못 본다. 


최근 호주는 크리스마스부터 신년까지 약 2주 간의 긴 연휴로 단골손님들의 규칙적인 방문이 줄었다. 가까운 친구 사이는 아니지만 매일 같이 보던 사람들을 못 보니 아쉬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이제 긴 휴가가 끝나고 일상 복귀가 코 앞이니 조만간 우리 가게의 아침이 단골손님들로 바쁘게 북적이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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