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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쿡크다스 Apr 21. 2024

집에 누구를 초대한 건 처음이라.

호주 31 주차(24. 2. 16. ~ 24. 2. 22.)

2월 16일(금)

어제 아팠던 코워커가 다행히 회복한 모습으로 출근했다. 어제 하루 종일 자고 죽 해 먹었더니 훨씬 나아졌다고 하지만 혹시 모르니 계속 조심하라고 하고 최대한 힘든 일은 하지 않도록 했다. 오전에는 손님이 별로 없어서 세 명이서 각자 나라 언어로 서로의 이름을 써주면서 놀았다. 다들 이름에 이응'ㅇ'이 많이 들어가고 받침이 없어서 둥글둥글한 귀여운 모양새로 코워커들이 꽤나 마음에 들어 했다.


퇴근하고 저녁 먹고 쉬는데 문득 이대로 저녁 시간을 보내기에 아쉽다는 느낌에 해변으로 석양을 보러 가기로 했다. 집 근처에 사는 코워커에게 함께 할지 물어보니 좋다고 하길래 픽업해서 해변에 도착, 석양을 보고 한참을 떠들다가 근처 펍에 가서 칵테일 한 잔씩 했다. 바쁜 건지 주문이 꼬인 건지 나와 남편의 칵테일 나오는 데만 20분이 걸렸는데, 코워커가 너무 오래 걸린다며 몇 번을 바에 가서 언제 나오냐고 재촉했다. 나랑 남편은 소심쟁이라 남 재촉하는 거 잘 못 하는데 코워커가 대신해줘서 고마웠다. 달달한 칵테일과 음악을 즐기고 내일 출근해야 할 코워커를 위해 아쉽지만 한 시간 만에 펍을 나섰다. 회식 제외하고 개인적으로 펍에 온 건 처음이라 더 즐거웠다.


갑작스러운 만남 제안에도 흔쾌히 응해준 코워커에게 몇 번이고 고맙다는 인사를 전하고 이제 자야겠다.


2월 17일(토)

전 날 밤늦은 귀가로 늦잠을 잤다. 이번 주는 특별히 갈 데가 없어서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는 동네 카페에 다녀오는 것으로 나들이를 대신했다. 늘 지나가면서 눈여겨보았던 카페였는데 손님이 많은 편에 야외 좌석도 있어서 한 번쯤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던 찰나였다.


주문을 마치고 야외 좌석에 앉았는데 옆 테이블에 까만 새끼 강아지를 데리고 온 중년의 부부가 식사 중이었다. 테이블 밑으로 보이는 강아지에게 눈을 뗄 수가 없어서 계속 힐끔힐끔 쳐다봤다. 차마 강아지가 너무 예쁘다고, 쓰다듬어도 되냐고 먼저 말을 걸 용기가 나지 않아서. 식사를 마친 부부가 일어나 나가려고 강아지를 안아 들었고 강아지를 보고 있는 내 표정을 봤는지, '우리 강아지 예쁘지, 태어난 지 3달 반 됐어'라고 먼저 말을 걸어왔다. 자연스럽게 대화에 참여하며 강아지를 쓰다듬는데 세상에 아기 강아지라 그런지 털이 정말 보드라웠다. 내 손에 자기 손도 올려서 오랜만에 강아지 손도 잡아보고... 짧은 순간이었지만 정말 행복했다.


아, 슬프게도 커피는 정말 맛이 없었다. 호주 와서 먹은 플랫화이트 중에 최하위권에 속하는 수준이다. 남편도 아이스라테 정말 맛없었다고... 다시 방문할 일은 없을 것 같다.


2월 18일(일)

하루 종일 너무 더웠다. 이렇게 더울 수 있나 싶을 정도로 에어컨을 아침부터 틀었음에도 에어컨이 없는 공간으로 나오면 땀에 젖을 정도였다. 더워서 어디 나갈 엄두도 나지 않고 평소처럼 조용히 청소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남편은 다음 주 화요일에 학기 시작 전 오리엔테이션에 참석해야 한다는데 저녁 늦은 시간까지 학교에 있어야 해서 코워커를 집에 초대해서 함께 저녁을 먹을까 생각 중이다. 다행히 한국 음식을 좋아한다고 해서 비빔밥을 하려고 하는데 우선 화요일 저녁에 시간 되는지부터 물어봐야지.


2월 19일(월)

시간이 참 빠르다. 벌써 2월도 며칠 남지 않는 걸 보니. 월요일은 전통적으로 많이 바쁘지 않은 날이라서 평범하게 시간을 보냈다. 흐린데 더운 묘한 날씨였지만 가게 문 꼭 잠그고 에어컨 바람을 쐬니 괜찮았다. 그래도 설거지하러 주방 들어가면 너무 더워서 땀을 흠뻑 흘린다.


코워커에게 내일 시간 되면 우리 집에서 같이 저녁 먹자고 했더니 좋다고 했다. 자긴 어차피 수요일에 쉬니까 부담 없다고. 그냥 와서 밥 먹고 재밌는 거 보고 떠들자고 했는데 뭘 사가면 되냐고 묻길래 오렌지 주스면 충분하다고 했다.


누굴 집에 초대하는 건 처음인 데다 남편을 제외하고 다른 사람에게 식사를 대접하는 것도 오랜만이다. 과연 코워커가 내가 만든 비빔밥을 좋아할지.. 입맛에 맞았으면 좋겠다.


2월 20일(화)

지난주부터 컨디션이 좋지 않았던 한 코워커가 아직도 배가 살살 아프다길래 식사 뭐로 하냐고 했더니 세상에, 주말에 매운 음식 먹었다고 한다. 그러니 배가 아프지! 다 나을 때까지 따뜻한 음식 먹으라고 잔소리를 엄청 하고 무난하게 가게 일을 마쳤다.


퇴근해서는 마음이 급했는데 주유도 해야 하고 코워커가 오기 전에 나물 반찬두 가지를 완성해야 했기 때문이다. 거기다 소고기 볶음 고추장까지! 조금 쉬다가 하려고 했는데 코워커가 약속 시간보다 일찍 올 것을 생각하니 미리 준비하지 않으면 늦을 것 같아서 부랴부랴 옷 갈아입고 요리를 시작했다. 다행히 코워커가 오기 전에 설거지, 부엌 청소까지 마치고 집이 깨끗한 상태로 그녀를 마중 나갈 수 있었다.


다진 마늘을 너무 많이 넣었나 싶었는데 다행히 그녀는 밥을 잘 먹었다. 소고기 볶음 고추장은 처음 맛본다고 했는데 입맛에 맞았는지 매운 거를 잘 못 먹는 애가 두 스푼이나 고추장을 퍼 갔다. 내가 해 준 음식 잘 먹으니까 기분이 좋았다. 저녁 먹고는 2차전으로 과자랑 음료수 먹었는데 오렌지 주스만 있으면 충분하다니까 과자, 초콜릿, 주스 3개를 사 와서 당황했다. 밥 한다고 데리러 가지도 못 했는데 더운 날 무겁게 들고 왔을 거 생각하니 미안했다. 다음에 올 때는 제발 아무것도 사 오지 말라고 신신당부하면서 과자에 음료수 먹으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떠들었다.


늦은 밤 집에 데려다주고 나니 잘 시간을 훌쩍 넘었다. 나는 내일을 위해 빨리 씻고 자야지.


2월 21일(수)

남편이 오늘 차를 써야 한다고 해서 가게까지 바래다줬다. 차 사고 한 달 정도는 남편이 차를 가지고 학교에 가느라 나를 데려다주고 데리러 오곤 했는데, 그 후부터는 기름 값 및 시간 절약을 위해 내가 운전하고 다녀서 남편이 나를 바래다주는 건 오랜만이었다.


우리 가게 커피 맛있다고 자주 말 했는데 남편이 오늘 한 번 맛보고 싶다길래 가게 가서 커피 세팅하자마자 라테 만들어서 갖다 줬다. 남편은 라테를 자주 마시지 않기 때문에 정말 맛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지난 주말에 다녀온 카페보다는 맛있다는 평가를 했다. 내가 정성스럽게 내렸으니 당연히 맛있겠지. 남편 덕분에 가게는 오픈 전부터 5불의 매출을 올렸다.


오픈 준비 마치고 보스가 갑자기 가게에 찾아와 일동 긴장 상태였지만 다행히 커피만 갖고 가서 한 시름 놓았다. 보스만 오면 다들 주방에 옹기종기 모여있는 게 정말 웃기다. 어떻게든 마주치지 않으려는 노력이 아주 가상하다. 보스가 방문했던 거 제외하면 특별할 거 없었던 하루였다.


퇴근 후에는 남편과 같이 장 보고 집에 와서 닭다리 살로 간장 양념 요리를 했는데, 남편이 호주 와서 먹었던 저녁 식사 중에 가장 맛있었다는 극찬을 했다. 남편은 리액션이 큰 사람이 아니라 맛있는 걸 먹어도 그냥 맛있다, 고 말하는 게 전부인 사람인데 가장 맛있는 저녁 식사였다는 표현을 할 정도였다니. 사실 내 입맛에도 아주 맛있기는 했다.


그동안 너무 더운 데다 저녁 약속이 종종 있어서 못(?) 안(?) 했던 운동을 오늘 다시 시작했다. 내일 근육통이 두렵다..


2월 22일(목)

아침 준비 마쳤는데 보스가 이른 시간에 방문해 신 메뉴에 대한 열정을 다시 한번 보여주고 떠났다. 그래도 생각보다 빨리 자리를 떠서 우리 모두 안심했다. 그 외에 있었던 일을 꼽자면... 손바닥 만한 바퀴벌레가 벽에 붙어있었다는 것. 진짜 기절하는 줄 알았다. 안 그래도 어제 꿈에서 가게에 바퀴벌레가 엄청 많이 나오는 꿈을 꿨는데, 꿈이 현실이 된 걸까?


지난 3일 동안 통 틀어서 가장 매출이 많은 날이었지만 생각보다 힘들지 않았다. 점심시간 러시 없이 사람들이 일정한 간격으로 꾸준히 방문해서 그런가 보다. 기운이 덜 빠진 상태로 집에 와서 저녁도 맛있게 먹고 운동까지 마쳤다. 어제 오랜만에 운동한 것의 여파로 근육통이 상당히 심해 운동하는 데 참 힘들었다. 내일은 이번 주의 마지막 근무일이다. 힘내서 한 주 잘 마무리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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