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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쿡크다스 Apr 21. 2024

노동절을 제대로 즐겨보자.

호주 33 주차(24. 3. 1. ~ 24. 3. 7.)

3월 1일(금)

한국에서 있었다면 공휴일이었을 삼일절인데 호주에 있어서 어제와 같은 평범한 하루의 시작이었다. 금요일은 다른 요일에 비해 기분도 좋고 기운도 많이 나는 편인데 아마 한 주의 끝이기 때문일 것이다. 오늘은 저녁 시간에 남편 학교에서 하는 파티에 가기로 해 늦은 오후에 학교로 출발했는데, 다음 주 월요일이 노동절(?) 즉, 공휴일이라 다들 여행을 가는 건지 평소라면 막히지 않았을 도로가 차로 꽉 막혀서 놀랐다. 20분 이면 도착 할 곳에 두 배 이상의 시간이 걸려 도착해 술, 음식을 주문해 함께 나눠 먹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한참 나누다 집으로 돌아왔다. 세 시간 정도 파티에 있었는데 녹초가 된 나와는 달리 이제 파티가 시작이라는 듯 늦은 밤이 되니 더 많은 학생들이 파티장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아직 19살, 20살 밖에 되지 않은 친구들이라 늦은 밤에도 기운이 넘치나 보다, 나도 저럴 때가 있었지, 따위의 과거 회상을 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어쩐 일인지 하늘에 달이 보이지 않아 밤하늘이 다른 날에 비해 더 캄캄해 별이 더 잘 보였다. 별 사진을 남기고 싶어 휴대폰으로 별 사진 찍는 법을 알아내 사진을 찍었는데 생각보다 결과물이 잘 나왔다. 호주에 살면서 누리는 좋은 점들 중 하나가 맑은 밤하늘에 수많은 별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별 명소도 있을 정도이니 호주 하늘이 얼마나 맑은지 짐작할 수 있다. 평소보다 훨씬 늦은 시간에 씻고 잠을 자려고 하니 신체 리듬이 깨진 건지 잠이 잘 오려고 하지 않는다...


 3월 2일(토)

어젯밤늦게 잠든 탓에 평소보다 늦게 일어났다. 오늘은 남편과 이케아에 다녀왔는데 필요한 물건 몇 가지를 사 왔다. 남편과 나는 케이마트에서 구매한 물병을 들고 다녔는데 이것들이 처음에는 멀쩡하더니 얼마 되지 않아 물을 마실 때 물이 줄줄 새 턱과 상의를 다 적셨다. 물병뿐만 아니라 케이마트에서 산 대부분의 물건은 그리 오래가지 못해 케이마트에 대한 신뢰가 바닥을 친 상태에서 우리에게 남은 희망은 이케아였다. 이케아에게 실례가 되는 표현이지만 고급 버전 케이마트라고 감히 표현할 수 있겠다. 가격과 품질 부분에서 케이마트보다 상위 호환이기 때문이다. 아무튼 이케아에 가서 남편이 그렇게 필요로 하던 물병과 화장실 청소용품 등을 구매하고 집으로 가려는데, 선선하고 맑은 날씨가 이대로 집에 가기에는 너무 아쉬운 마음을 불어넣었다.


마침 커피 한 잔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커피 한 잔 사서 캥거루 공원에 가서 산책하며 오랜만에 캥거루 구경을 하기로 했다. 캥거루 공원은 호주에 도착한 지 며칠 되지 않았을 때 다녀왔는데, 겨울이라 추운 날씨에 비바람이 몰아쳐 산책도, 캥거루 구경도 여유 있게 하지 못해 아쉬움이 있었다. 커피 한 잔 손에 쥐고 산책하는 동안 캥거루가 보이지 않아 이대로 못 보고 돌아가는 건가, 했지만 저 멀리 사람 몇몇이 모여있는 것을 발견하고 그곳에 캥거루가 있을 거라고 확신에 차 다가갔다. 아니나 다를까 5마리의 캥거루가 저마다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는데, 우리가 합류하자 캥거루 수 보다 사람 수가 많아져서 그런 건지 캥거루 모두가 하던 일을 멈추고 사람 쪽을 가만히 주시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이 마치 미어캣 같아 귀엽기도 했지만 캥거루를 생각보다 위험한 동물이라는 것을 깨닫고 그들의 경계심을 풀어주기 위해 사람 무리와 조금 떨어졌다. 한 번에 5마리의 캥거루를 보는 것은 처음이라 동영상 촬영을 하고 있는데 무리 중 한 마리의 캥거루가 껑충껑충 뛰어 그 모습을 카메라에 담을 수 있었다. 캥거루가 뛰는 걸 늘 영상 매체를 통해 보다가 눈앞에서 보는 건 처음이라 정말 신기했고, 저 동물이 각 잡고 제대로 뛰면 따라 잡힐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캥거루와의 즐거운 시간을 뒤로하고 집으로 돌아와 늦은 오후는 여유 있게 보냈다. 지난주는 주말 하루하루가 길게 느껴졌는데 늦게 일어나서 그런지 오늘은 유독 짧게 느껴졌다. 내일은 집에 있는 김치를 다 먹어서 한인 마트에 갈 예정이다.


3월 3일(일)

오늘 오전에는 한인마트에 다녀와 김치를 비롯해 먹고 싶었던 불닭볶음면 등 많은 식량을 구매해 행복했다. 한국에서도 가끔 불닭볶음면을 사 먹곤 했는데 호주 와서는 값이 비싸기도 하고 너무 자극적인 음식은 피하자는 생각에 그동안 사 먹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마트에 진열되어 있는 불닭볶음면을 보는 순간 구매하고 싶은 욕구를 억누를 수 없었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불닭볶음면을 먹을 생각에 신이 나 있었다. 결국 오자마자 불닭볶음면을 끓여 먹고 맛있다,를 연신 남발하면서 금세 한 그릇을 해치웠다. 기분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한국에서 먹던 불닭볶음면 보다 덜 매운 느낌으로, 한국에서는 먹으면 그래도 맵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번에는 그냥 입술이 화끈한 정도라 조금 아쉬웠다. 그래도 그 맛을 느낀 것에 만족한다.


오후에는 할 게 없어서 낮잠을 깊이 자고 일어났는데 두통이 너무 심해 힘들었다. 너무 안 움직여서 그런 거라 생각해서 저녁 먹고 운동까지 했는데 샤워하는 동안 두통은 점점 더 심해지기만 해 결국 샤워가 끝나고 저녁 먹었던 것을 게워냈다. 한 차례 토 하고 나니 두통은 조금 나아진 것 같은데 푹 자고 일어나야 완전히 회복할 수 있을 것 같다. 


3월 4일(월)

오늘은 노동절이라 쉬는 날이다. 코워커는 돈 많이 벌게 공휴일에도 일 했으면 좋겠다고 하지만 나는 극구 사양으로, 한국에서든 호주에서든 돈 안 벌고 쉬는 게 나에게는 최고다. 다행히 어제에 비해서는 컨디션이 조금 나아져서 예정된 점심 약속에 차질 없이 참석할 수 있게 됐다. 빈손으로 갈 수 없기 때문에 오전에 큰 쇼핑센터에 가서 차(tea)를 비롯해 간식과 선물을 사 들고 약속 장소에 도착했다. 어제 한인마트에서 장 보면서 김밥 김을 사서 김밥을 쌀까 고민하다가 손이 너무 가니까 다음에 하자며 구매하지 않았는데, 점심 식사로 무려 집 김밥을 대접받았다. 이런 우연이! 가뜩이나 먹고 싶었던 김밥이었기에 정말 맛있게 먹었다.


점심 후에는 후식으로 우리가 사 간 간식과 차를 먹으며 한참 동안 재미있는 이야기를 나눴고 늦은 오후가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왔다. 오늘 집에는 반가운 손님이 도착해 있었는데 바로 식기세척기다. 한국에서 쓰던 식기세척기는 호주로 오기 전에 당근마켓에서 처분했는데, 남편과 내가 두고두고 아쉬워 한 가전제품 중 하나였기에 결국 참다 참다 비슷한 모델로 구매했다. 예정보다 빨리 식기세척기가 도착해 급하게 근처 마트에서 식기세척기 전용 세제를 구매했고, 집에 와서 남편이 저녁 먹으며 나온 그릇을 식기세척기에 돌렸다. 재작년에 식기세척기 처음 구매했을 때 생각도 나고, 한국에서의 삶도 생각났다. 가끔씩 최신 가전 기기들로 채워졌던 우리의 한국 집이 그리울 때가 종종 생긴다. 


이제 남편의 설거지 노동은 끝났다. 식세기가 우리 가정에 다시 합류했으니 나도 요리할 때 조금 더 여유 있게 숟가락, 그릇 사용해야지.


3월 5일(화)

아, 겨우 3일 만에 출근하는 건데 어찌나 일 하러 가기가 싫던지. 3일간의 휴식이 너무 짧게 느껴진 탓인 것 같다. 지난주 장을 많이 안 봐서 그런지 집에 먹을 게 없어서 오늘 장을 보러 가기로 했는데, 오전 수업이 끝난 남편이 몸이 좋지 않아 도서관 의자에 누워있다시피 하다가 집으로 돌아왔다는 연락을 보내와 일을 마치고 집으로 바로 달려갔다.


침대에 웅크리고 누워있는 남편 이마에 손을 갖다 대니 열이 좀 있어 오늘 외출은 무리일 거라고 생각했다. 강의실에서 불어오는 에어컨 바람이 너무 센 건지 손이 시릴 정도로 춥다고 했는데 아마 그 때문에 열을 동반한 두통이 생긴 것 같았다. 약을 먹어야 하니까 집에 있는 것들로 급하게 죽을 만들고 일찍 밥 먹고 쉬게 두었다. 약 기운이 금방 돌 법도 한데 열이 한참 동안 내려가지 않아 걱정이다. 자기 전에는 괜찮아지려나. 감기든 몸살이든 잠을 푹 자야 낫는다. 자기 전에 약 하나 더 먹이고 재워야겠다.


3월 6일(수)

아침에 일어난 남편은 개운하지는 않지만 전 날 보다는 컨디션이 좋아진 것 같다고 했다. 어제 장을 못 봐서 집에 정말 먹을 게 없어 아침을 간신히 해결했다. 오늘은 차 정기 점검이 있는 날이라 장을 못 봤는데 당장 내일 아침에 먹을 게 없어서 큰일이다.


한국에서는 차 정기점검이라고 해도 한 시간이면 끝났던 것 같은데 여기는 시스템이 다른 건지 맡기고 두 시간 반 정도 걸렸다고 한다. 당초 계획대로라면 점검이 끝나고 남편이 나를 데리러 오는 것이었는데 그것이 불가능 한 바람에 나는 아주 오랜만에 버스를 타고 퇴근했다. 차를 사고 난 이후로 출퇴근 할 때 버스를 탄 기억이 없는데, 오랜만에 버스를 타니 일을 시작한 지 며칠 안 되었을 때가 떠올랐다. 그때는 추워서 덜덜 떨면서 새벽에 출근하고 오후에는 우중충한 날씨에 비 맞으며 퇴근했는데, 그게 벌써 7개월 전 일이 되었다. 새삼 시간 빠르네.


한 시간 걸려서 퇴근하니 너무 지쳐서 집에 오자마자 저녁을 먹었다. 남편은 오늘 밤늦게까지 수업이 있는 날이라 한참 뒤에나 집에 오기 때문에 혼자 저녁 해결하고 운동에 샤워까지 모두 마쳤다. 오늘은 일찍 잠을 자 볼까. 요 며칠 꽤 피곤하다.


3월 7일(목)

오전 내내 분위기가 좋았다. 보스가 오기 전 까지는. 어찌나 컴플레인이 많은지 코워커들과 정말 학을 뗄 정도로 정신이 산만하게 힘들었다. 우리끼리 있을 때는 시간이 참 잘 가는데 보스가 있을 때는 시간이 참 안 간다. 다행인 것은 요 며칠 바쁜 건지 가게에 오래 머물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늘도 잔소리 한참 퍼붓고 커피 챙겨서 금방 자리를 떠서 한시름 놓았다.


보스는 요식업 외에도 뷰티 쪽 사업체도 여럿 갖고 있는 아주 바쁜 비즈니스 우먼이다. 바쁘게 살고 혼자서 여럿 사업체를 운영하는 모습이 감탄스러울 때가 있는데, 가끔 이해할 수 없는 면도 있다. 가게에 올 때마다 매번 이것저것 지적을 많이 하는데 문제는 지적할 때마다 그 내용이 다르다는 것이다. 특별한 기준 없이 이렇게 하라고 해서 따라 하면, 다음에 와서 왜 그렇게 하냐고 묻는데 그럴 때면 할 말이 없다. 고작 일주일 사이에 원하는 방향이 달라지기도 하니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우리끼리도 늘 힘들다고 이야기한다.


1월 중순쯤에 새로 온 코워커는 처음에 다른 사람들이 보스에 대해 구시렁대는 걸 듣고만 있더니 어느 순간부터 본인이 더 열정적으로 보스의 갈팡질팡하는 컴플레인에 반응하고 있다. 어찌 보면 가게 실상에 대해서는 우리가 세세하게 더 잘 알고 있으니 그냥 우리 중심을 지키되 보스가 지적하는 부분은 최대한 바로 반영하기로 했다.


오후에는 장 보고 집에 돌아왔는데 갑작스러운 정전에 당황했으나 금세 전기가 돌아왔다. 다행히 저녁 식사 준비를 다 끝내고 정전 돼 요리를 무사히 미칠 수 있었다. 살다 살다 예고 없는 정전은 처음 겪는데 호주 와서 정말 다양한 경험을 한다. 내일은 한 주의 마지막 근무일이다. 마지막 힘내서 일하고 주말 푹 쉬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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