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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쿡크다스 Apr 21. 2024

이스터 1주일 전.

호주 36 주차(24. 3. 22. ~ 24. 3. 28.)

3월 22일(금)

언제나 기분 좋은 금요일이다. 이번 한 주는 보스 대신 매니저가 우리를 힘들게 했지만 버틸만했다. 한 시간 일찍 끝나고 남편과 마트에서 장을 봤다. 이번 주는 닭고기를 가지고 맛있는 요리를 좀 해 보려고 닭고기도 사고 정말 오랜만에 스팸도 샀다. 호주 온 이래로 스팸을 먹은 적이 없는데 한국처럼 인기 식품이 아니라 잘 눈에 띄지 않는 매대에 몇 개 들여놓지 않아 찾는데 애를 먹었다.


저녁으로는 스팸을 넣은 고추장찌개를 해 먹었는데 소주 생각이 절실했다. 내가 사는 곳에서 소주 한 병의 가격은 약 10~12불 사이로 원화로 치면 대략 8,500원~10,000원 사이라고 볼 수 있다. 차마 선뜻 아무렇지 않게 구매하기에는 부담스러운 가격이다. 떠나지 않는 소주에 대한 욕구를 간신히 집어넣고 동네 산책 하면서 동네 강아지들에게 다시 한번 인사하고 돌아왔다.


완연한 가을 날씨 덕분인지 책도 잘 읽히고 공원에서 돗자리 깔고 누워있고 싶은 욕구가 일고 있다. 내일은 저녁에 약속이 있어서 낮에는 남편과 밖에 나가 시간을 보내려고 한다.


3월 23일(토)

푸른 하늘, 시원한 바람, 따스한 햇살. 삼 박자가 잘 맞는 날씨를 두고 집에만 있을 수는 없으니 쇼핑센터에 가서 돗자리를 사서 공원으로 향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큰 나무 그늘 아래나 햇빛 아래에 돗자리를 깔고 저마다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근처 카페에서 커피 두 잔을 사 온 우리도 한 곳에 자리를 잡아 돗자리 위에 누웠다.


바람이 제법 셌지만 누워서 구름 한 점 없이 푸른 하늘을 바라보는 것은 꽤 오랜만의 경험이었다. 가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는 일은 있지만 공원에 누웠던 적은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 한 시간 정도 누워 하늘 구경도 하고 책도 읽다가 배가 너무 고파서 집으로 돌아와 닭곰탕을 해 먹었다. 인스턴트팟의 고압력 덕분에 고기가 부드럽고 육수도 잘 우러나와 몸보신을 제대로 했다. 육수가 꽤 많았는데 남편과 국물 리필하면서 한 솥을 다 해치웠다.


저녁에는 시내에서 페스티벌이 있다고 하길래 코워커와 만나 다녀왔다. 남편도 같이 갈까 했으나 아무래도 코워커가 나와 단 둘이 있는 게 더 편할 것 같아 나 혼자만 다녀오겠다고 했다. 노점에서 맛있는 음식도 사 먹고 사람들 춤추는 것도 구경하고 축제가 끝난 후에는 근처 산책 하면서 인생살이에 대한 이야기도 한참 나눴다. 코워커는 내일 일 해야 하고 밤바람이 생각보다 세서 더 오래 붙잡을 수는 없었다. 남편에게 데리러 와 달라고 부탁해 코워커 바래다주고 집에 왔더니 글쎄 이웃집에서 정말 큰 소리로 음악을 틀고 파티를 하고 있다. 어쩐지 동네 입구부터 차가 많더라. 잠이나 잘 잘 수 있을지 모르겠다.


3월 24일(일)

어젯밤 다행히 너무 피곤해서 시끄러운 파티 소리에도 불구하고 잘 잤다. 오늘 아침은 집 근처 공원에서 돗자리 깔고 누워 시간을 보내다가 한인마트에 가서 김치를 사 오기로 했다. 오전 9시 30분경에 도착한 공원에 벌써 차가 줄을 서 있어 주차할 공간이 없을까 걱정했지만 다행히 주차 자리를 찾아냈다.


공원 한 바퀴 돌다 양지바른 곳에 돗자리를 깔고 누워 어제처럼 책을 읽었고, 은은하게 풍겨오는 풀 냄새와 푸른 하늘을 보며 내가 자연을 만끽하고 있음을 느꼈다. 바람이 세게 부니 구름이 빠르게 지나가는 모습도 구경할 수 있었고, 바람에 나무가 흔들리며 그 그림자도 같이 흔들리는 덕에 얼굴에 햇빛이 들어왔다 나갔다 했다. 바람은 제법 차갑고 셌지만 햇빛이 그 쯤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내 몸을 따뜻하게 데워줬다.


두 시간 정도 누워있었을까, 배도 고프고 더 늦기 전에 김치를 사러 가야 해서 자리를 정리했다. 더 늦게까지 있고 싶었는데 그건 다음을 기약하기로. 점심 먹은 후에는 청소하고 일찍 저녁 먹으면서 시간을 보냈다. 이번 주말은 야외활동이 많았다. 공원에 누워있는 게 전부였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더 추워지기 전에 돗자리 들고 공원 투어를 해 볼까 한다.


3월 25일(월)

토요일, 일요일 기분 좋게 보내고 맞이한 월요일. 아침에 보스가 왔는데 오늘은 기분이 좋아 보였고 음료 두 잔만 가져갔다. 매니저는 어김없이 와서 잔소리하고 다른 지점에 물건이 없다면서 가게에 있던 재고 이것저것을 가져가는 바람에 급하게 물건 발주를 해야 했다. 이런 일이 있었던 것 치고는 정신없던 하루는 아니었고 한 가지 기분 좋은 일이 있었다면 드디어 새로운 제빙기가 도착했다는 것이다. 한창 필요할 때는 안 갖다 주더니 날씨가 쌀쌀해지니 제빙기를 갖다 준 다니. 늘 얼음 사다 주던 셰프랑 혀를 끌끌 찼다.


집에 와서 저녁 먹고 운동하고 책 읽고 어떤 책 빌릴까 고민하는 와중에 남편이 많은 이북을 보유하고 있는 전자도서관 회원이라 선택지가 대폭 늘어서 행복했다. 더 이상 읽을거리가 없어 고민하고 있었는데 무려 천 삼백 권이 넘는 소설을 이북으로 빌릴 수 있게 돼서 좋다. 고민 없이 이것도 읽고 저것도 읽어봐야지.


3월 26일(화)

수년 전에 친구 생일 즈음 해외에 있었는데 그 해에 친구 생일을 까먹어서 석고대죄하는 음성 메시지를 여럿 보냈다. 그리고 올해, 그녀의 생일을 다시 한번 깜빡하고 오늘에서야 떠올려버렸다. 음성메시지는 아니지만 사죄하는 의미의 카톡을 수차례 보내고 어서 나에게 선물을 뜯어가라고 했다. 하필 그녀의 생일을 잊은 두 번의 경험이 모두 내가 해외에 있을 때라니.. 해외 나오면서 캘린더를 바꿨는데 기존 등록 정보가 반영이 안 된 것 같다.


개인적인 해프닝은 이렇고 오늘 마감 전에 매니저가 와서 제빙기를 설치하고 갔다. 사실 바쁘지 않아서 일찍 문 닫고 우리끼리 마감 청소에 집중하려고 했는데 매니저가 갑자기 방문해서 뭐 하나 우리 계획대로 할 수 있었던 게 없었다. 그렇지만 제빙기 설치 했으니 더 이상 얼음으로 스트레스받을 일은 없게 돼 좋다.


어제 남편의 도움으로 읽고 싶은 책을 잔뜩 빌릴 수 있게 돼 무라카미 하루키 작가의 데뷔작을 빌려 한 시간 만에 완독 했다. 그다음 책도 얼른 읽어야지.


3월 27일(수)

이번 주 금요일부터 호주에서는 부활절을 기념한 공휴일이 다음 주 월요일까지 계속되는데, 하루 이틀 정도 휴가 쓰고 다들 놀러 간 건지 오늘 하루 정말 조용했다. 매일 바쁘면 너무 지치니 이런 날도 있어야지. 퇴근할 때는 그 맛이 늘 궁금했으나 시도는 해 보지 않았던 아보카도 샌드위치를 챙겨 집에서 저녁으로 대신했다. 수요일 저녁은 남편의 저녁 수업 때문에 저녁 시간에 혼자 있어야 하므로 요리하기가 귀찮았기 때문이다. 샌드위치는 생각보다 맛있었으나 한 번 경험해 본 것으로 충분한 맛이었다. 신선한 야채의 맛이 좋지만 매일 먹을 정도는 아니랄까. 어쩌다 한 번은 생각날 것 같다.


금요일부터 가게 문을 닫기 때문에 내일 하루만 일 하면 된다. 다음 급여는 굉장히 부족하게 받을 것 같지만 4일 연속으로 쉴 수 있어서 좋다. 쉬는 동안 여기저기 많이 다녀와야지


3월 28일(목)

근 2주 만에 아침부터 바빴다. 아마 내일부터 시작되는 공휴일로 많은 사람이 여유가 생긴 건지 동네 할머니, 할아버지 손님이 많이 찾아왔다. 오후에는 장 보고 집에 와서 한 해변 선셋 마켓에 남편, 코워커와 셋이 놀러 갔다. 선셋 마켓이 목요일마다 열리기 때문에 다음 날 일찍 출근해야 하는 부담 때문에 그동안 가지 못 하다가 마침 내일 모두가 쉬는 날이니 지금이 기회다,는 마음으로 다녀왔다.


그런데 모두가 같은 생각을 했던 건지 평소였다면 널널했을 주차장이 이미 만차였다. 돌아 나와서 다른 주차장을 찾아보자며 한 바퀴 도는데 마침 한 차가 자리를 비웠고 운 좋게 그 자리를 우리가 차지할 수 있었다. 올해 운 다 썼다고 해도 좋았을 만큼이었다. 늘 해 질 녘쯤에 사람으로 가득 찬 해변이지만 오늘만큼은 더 많이 붐볐다. 다 같이 앉아서 노을 구경하고 푸드트럭을 돌아보며 각자 먹을 것을 사서 돗자리 깔고 먹기로 했다. 나와 남편은 팟타이와 오징어 튀김을 코워커는 화덕 피자를 선택했는데 우리 음식이 더 빨리 나와서 코워커와 같이 피자를 기다렸다. 코워커 주문 번호가 89번이었는데 87, 88까지 연속으로 잘 부르더니 갑자기 번호를 안 부르는 바람에 코워커가 약간 불안해하는 모습이 너무 웃겼다. 무사히 음식을 받아 잔디밭에 앉아 바닷바람을 맞으며 음식을 나눠먹고 한 시간가량 이야기를 나눴다. 바닷바람이 점점 세고 차가워지는 통에 한 시간 만에 돗자리를 접어야 했지만 맛있는 음식을 즐기고 셋이서 재미있게 놀아서 아쉽지 않았다.


오늘 느낀 것이 있다면 푸드트럭에서 먹는 것 갖고 장난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팟타이가 조금 비싼 편이었는데 음식을 받았을 때 전혀 그 돈이 아깝지 않았을 정도로 양도 많고 맛도 좋았으며 그것은 피자도 마찬가지였다. 한국에서 간혹 바가지가 잔뜩 써진 축제 음식이 있는데 그것과 비교했을 때 오늘의 푸드트럭은 훌륭했다고 할 수 있다.


차가운 바닷바람 잔뜩 맞고 따뜻한 이불속에 있으니 잠이 쏟아진다. 내일은 늦잠 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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