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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쿡크다스 Apr 21. 2024

갑자기 변경된 스케줄에 나는 화가 난다.

호주 38 주차(24. 4. 5. ~ 24. 4. 11.)

4월 5일(금)

갑자기 바뀐 로스터 때문에 오늘 최소 인원만 일 하게 됐다. 매주 금요일은 마감 안 하고 일찍 퇴근하는 날이었는데 아쉽게도 이번 주는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마감까지 맡게 됐다.


이스터와 학교 방학이 겹쳐 많은 사람이 장기 여행을 떠난 덕분에 이번 주 많이 한가했지만 금요일은 금요일인 건지, 요 며칠 조용하던 것과 정반대로 손님이 바글바글했다. 점심 시간에는 식사하고 가겠다는 손님들이 많아 접시와 컵이 부족할 정도였다. 마감 한 시간 전에 커피를 제외하고 모든 게 동이 나는 바람에 마지막 한 시간은 마감에만 온전히 집중할 수 있었다.


장 보고 저녁으로는 유튜브에서 본 된장술국을 만들어 소주에 곁들여 먹었다. 소주잔이 없어서 큰 유리잔에 따라 마시는데 소주 먹는 맛이 안 난다. 샷 글라스라도 사서 소주잔처럼 마셔야 하나. 내일은 별 일정 없으면 시내에서 하는 축제에 가서 저녁 먹을까 한다.


4월 6일(토)

코워커가 저녁에 축제 갈 거면 같이 가자 그래서 저녁에 만나기로 하고, 오전에는 바닷가 근처 공원으로 가서 잔디밭에 누워있다 왔다. 책 한 권 다 읽고 가을바람맞고 있으니 커피가 먹고 싶어 근처 카페에 가 노상에 앉아 커피 한 잔 했는데, 옆 테이블에서 데리고 온 퍼그가 너무 귀여웠다. 어렸을 땐 말티즈, 푸들처럼 누가 봐도 예쁜 강아지만 좋아했는데 요즘은 퍼그처럼 못생겼지만 귀여운 강아지도 좋다. 하긴, 모든 강아지는 다 사랑스럽다.


저녁 시간에 도착한 축제는 사람이 너무 많았다. 모두 먹고 싶은 게 달라서 각자 사서 만나기로 했는데, 내가 골랐던 메뉴가 내 앞에 10여 명의 손님을 앞두고 매진 돼 버려 남편에게 합류했다. 아쉽지만 다음을 기약해야지. 남편이 고른 메뉴는 피자였는데, 주문하는데만 20여분을 주문하고 피자 받기까지 15분을 기다려 거의 40분 가까이 걸려 저녁을 먹을 수 있었다. 잔디밭에 앉아 한참 먹고 불꽃놀이까지 보고 집으로 무사 귀가. 너무 피곤하다.


4월 7일(일)

아무것도 안 했다. 어제 밤늦게까지 논 게 피곤했던 것 같다. 아침에 부지런히 청소하고 만화 보고 책 읽다가 하루다 다 간 듯하다.


아 참, 지난주 안 바빴다고 로스터가 대폭 변경됐다. 매일 최소인원으로 근무하라고 해서 한숨이 나온다. 이렇게 된 이상, 나도 하루하루 안 바쁘기를 진심으로 바랄 거다.


4월 8일(월)

작은 해프닝이 있었던 아침. 평소라면 도착했어야 할 코워커가 도착하지 않아 전화했더니 자기는 7시 30분부터 쉬프트 시작이라고 한다. 늦잠 자는 줄 알고 다른 사람한테 연락해야 하나 짧은 순간에 많은 생각을 했다. 그나저나 얘가 30분 늦게 시작하면 아침에 30분은 나 혼자서 일 하라는 건데 최악이다 정말.


로스터를 다시 보니 이번 주 내내 오픈 30분 동안 혼자 있아야 함을 확인했다. 순간 화가 치밀어 전화를 하네 마네 하다가, 코워커가 이번 한 주 로스터 대로 한 다음에 말을 해야 더 설득력 있지 않겠냐는 의견을 줘서 이번 주 한 번 참아보기로 했다.


지난주 수요일부터 커피 머신이 됐다 안 됐다 하길래 매니저에게 말했더니 월요일에 수리 기사가 올 거라고 했지만, 그 수리기사는 바로 매니저였다. 아침에 와서 별 것 하지도 않았는데 멀쩡히 잘 되길래 우리만 이상한 사람이 됐다. 기계가 가끔 이러지 않냐는 매니저의 말에 다음에 또 그러면 만국 공통 해경방법인 두들겨 패는 걸로 해결해 보겠다고 했다.


월요일은 원래 안 바쁜 날이지만 오늘 유독 조용했다. 크리스마스 이후로 이렇게 조용했던 날이 있었던가. 아무리 이스터에 학교 방학이 겹쳤다고는 하지만 길가에 사람이 하나도 없을 정도이다. 바쁘든 안 바쁘든 깊게 생각하지 않기로 한다.


4월 9일(화)

오늘은 큰 손 손님들이 많았다. 혼자서 100불 가까이 주문하는 손님이 있어서 매출은 어제보다 훨씬 좋았다. 한 명 한 명 자잘하게 상대하는 것보다 한 명이 크게 구매하는 게 체력적으로는 덜 힘들다.


오전에는 코워커랑 둘이서 웃느라 바빴는데, 나는 내가 요새 보는 만화 얘기를 코워커는 최근에 봤다는 한국 드라마 얘기를 하면서 좋아하는 캐릭터, 배우 얘기하면서 초 흥분 상태가 됐던 것이다. 하도 웃어서 목에 가래가 낄 정도였다. 손님이 없는 시간에는 이렇게 웃고 떠들며 시간 보낼 때 너무 재미있다.


요즘 날씨가 많이 시원해서 오후에 퇴근할 때 창문 열고 운전하면 너무 좋다. 지난주까지는 퇴근길 햇살이 뜨거워 에어컨을 트는 날도 있었는데, 이젠 완연한 가을인가 보다.


4월 10일(수)

별거 없이 안 바쁘고 조용했던 날이다. 신상 도넛이 나왔는데 남아서 집에 가져와 대충 저녁으로 먹었다. 매주 수요일은 남편이 늦게 학교 수업에 가는 날이라 나만의 시간이 생긴달까. 남편은 매일 학교 가는 게 아니기 때문에 내가 일 하러 나가있는 동안 혼자만의 시간이 있지만, 나는 집에 있을 때는 항상 남편과 함께라 집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보낸 적이 많지 않다.


혼자만의 시간에 내가 하는 것은 주로 밀린 만화 몰아보기. 남편이 있을 때는 스피커로 크게 만화를 틀어놓을 수 없지만 혼자 있을 때라면 이어폰 끼지 않고 원하는 만큼 큰 소리로 만화를 볼 수 있어서 좋다. 만화 하나를 다 끝내서 다른 만화를 좀 볼까 하는데 마땅히 당기는 게 없어서 봤던 것 또 보는 중이다. 끌리는 만화가 없단 말이지..


4월 11일(목)

요 며칠 알람이 울리기 30분 전부터 잠에서 깬다. 일찍 자기 때문에 알람 전 기상이 피곤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더 잘 수 있는데 못 잤다는 억울함이 든다. 오늘 아침은 유독 바빴는데 배달이 제시간에 안 온 탓이 크다. 요 며칠 매 새벽마다 보스가 메인 키친에서 신 메뉴도 만들고 이것저것 변화를 시도하는 것 같은데, 그건 그거고 평소 하던 일은 평소대로 잘해야 하는 거 아닌지.. 피해를 보는 게 내가 일 하는 지점뿐이 아니라는 것에 위안을 삼는다. 나는 아침 듀티를 빨리 끝내고 러시 오기 전에 편하게 쉬자는 주의인데 배달이 늦으면 내 쉴 시간이 줄어든다. 그렇게 놔둘 수는 없지. 전력으로 아침 듀티를 해치우고 평소와 크게 다르지 않을 시간에 편히 쉴 수 있었다.


그렇게 생각했는데 10시 30분부터 러시가 시작되더니 마감 직전까지 손님이 들이닥쳐서 제대로 쉴 수가 없었다. 다행인 것은 커피와 디저트 매진. 마감 때 할 일이 없어서 좋았달까, 오히려 마감 시간이 더 여유로웠다. 오랜만에 바빠서 역대급 매출을 찍었는데 최소 인원만 근무한지라 체력적으로 힘듦이 느껴졌다. 근 2주 동안 바쁘지 않았던 것에 익숙해졌던 것 같다. 한창 안 바쁠 때도 많은 인원이 근무했으니 힘들 게 하나도 없었지.


집에 와서 평소라면 안 잤을 낮잠까지 잘 뻔한 데다 너무 힘드니 밥 먹을 생각도 안 나서 대충 초콜릿 머핀 하나만 먹었다. 체력이 달리니 고당음식이 당기는 듯했다. 내일은 오전만 일 하고 퇴근이다. 길었던 한 주의 끝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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