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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쿡크다스 May 05. 2024

날 좀 내버려 둬.

호주 41 주차(24. 4. 26.~24. 5. 2.)

4월 26일(금)

어제 하루 쉬고 맞이한 금요일은 이상하리만치 체력적으로 더 힘들었다. 하루 쉬었으면 체력 충전했으니 다음 날 기운이 더 나야 하는 거 아닌가, 싶지만 하루 쉬었으니 더 쉬고 싶다는 게 현재 내 체력 상태인 듯했다. 다행히 손님 수가 많지 않았고 근처 학교에서 가게에 진열된 샌드위치의 대부분을 구매해 간 덕분에 마감 두 시간 전부터는 커피도 샌드위치도 팔 게 없었다. 덕분에 코워커와 나는 아주 여유로운 마감 시간을 즐길 수 있었다. 샌드위치 대량 주문이 들어오면 진열 상품 박스에 옮기기만 하면 되지만 이게 은근히 신경이 많이 쓰인다. 보기 좋은 게 맛도 좋다고, 최대한 박스에 예쁘게 담으려다 보니 세 박스 포장하는 데만 해도 시간이 꽤 걸린다. 하지만 우리는 대량 주문을 좋아하는 편으로 매진이 금방 찾아오기 때문에 오후 시간이 한가하기 때문이다. 준비할 시간만 넉넉하다면 단체 주문은 언제나 환영이다.


오후에는 갑작스럽게 러시가 있었는데 사실 손님 수로 봤을 때는 러시가 있을 만한 상황도 아니었다. 문제는 한 손님이 자기도 뭘 원하는지 모르겠다면서 한참을 계산대 앞에서 고민하는 바람에 뒤이어 온 손님들이 줄지어 기다려야 했던 것. 근래에는 러시를 경험해 본 적이 없어서 순간 눈앞이 아득했는데 코워커가 그냥 사람들 기다리게 내버려 두라고 나를 안심시켜 줬다. 러시가 있을 때는 두 팀 주문 먼저 받은 후에 다른 두 팀 주문을 받는 식으로 시간 배분을 하는데, 이게 효과적이라는 것을 오늘 다시 한번 실감했다. 지난번 보스와 매니저가 있을 때는 끊지 않고 모든 주문을 한꺼번에 받는 바람에 처음 주문한 손님이 한참 기다리고, 주문이 꼬이는 등의 불상사가 발생했는데 이번에는 문제없이 러시를 해결할 수 있었다.


저녁으로는 요새 자꾸 국수가 당겨서 김치 삼겹살 비빔국수를 해 먹었고, 남편이 학교에서 좋은 일이 있어 소맥을 먹었다. 소주가 많이 비싸지 않으면 자주 먹을 텐데, 여전히 아쉽다.


4월 27일(토)

주방용품 살 것이 많아 오전에 이케아에 다녀왔다. 작년, 호주에 처음 도착해서 차가 없을 때는 케이마트에 가서 생활용품을 구매했는데, 싼 게 비지떡이라는 말처럼 케이마트에서 구매한 것들은 금방 망가지거나 제대로 그 기능을 하지 못하는 등의 문제를 갖고 있었다. 이케아라고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래도 케이마트보단 이케아 상품이 훨씬 낫다는 게 나와 남편의 공통된 의견이다. 똑같이 생긴 상품이어도 이케아 물건은 적어도 그 기능은 똑바로 하는 데 반해, 케이마트의 상품은 그렇지 못한 경우가 수두룩 빽빽하다 보니, 차를 구매한 이후로 웬만한 생활 용품은 이케아에서 구매하는 편이다. 


이케아에서 목적 달성을 한 후에는 근처에 있는 쇼핑센터로 장을 보러 갔는데, 사람이 너무 많고 우리가 늘 다니는 마트 분위기와 너무 상반 돼 들어가자마자 정신이 나가버렸다. 진열대 사이는 좁은데 사람은 많고, 사람들이 물건 사 가는 속도를 진열하는 속도가 따라가지 못해 온 사방팔방 빈 박스가 널브러져 있었다.  도저히 이곳에서는 여유롭게 물건을 고를 수 없다고 판단해 집 근처로 가서 마저 장을 보기로 했다. 장을 다 보고 나서는 마트에서 구매하지 못 한 기타 생필품을 아마존에서 사기 위해 아마존 프라임에 가입했다. 한국에서는 쿠팡 충성 고객이었는데 해외에 나오니 아마존 충성 고객이 될 것 같다. 우선 한 달 무료라고 하니까 한 달 동안 열심히 써야지. 쿠팡은 멤버십 가격이 최근에 올랐다고 하던데, 내가 한국에 있었다면 오른 가격에 상관없이 멤버십을 그대로 유지했을 것 같다. 그만큼 쿠팡은 편리했으니까. 


저녁으로는 지난 목요일에 마트에서 사 온 돼지고기를 넣고 된장술국을 해 먹었는데 돼지 잡내가 너무 심해서 먹는데 혼났다. 다음부터는 결코 그곳에서 고기를 구매하지 않을 거다. 


4월 28일(일)

평범한 일요일. 점심으로 참치 양념장을 만들었는데 남편이 맛있게 먹었다. 우연히 본 유튜브 영상 증에 오트밀로 밥을 해 먹는 게 있어서 집에 있는 오트밀로 따라 해 봤다. 진밥처럼 되던데 나는 진밥을 좋아하는 편이고, 양념장에 비벼 먹으니 오트밀 특유의 맛이 안 나서 밥 먹는 것과 큰 차이를 느끼지 못했다. 아침으로 오버나이트 오트밀을 6개월 동안 먹고 물려서 끊은 지 3개월이 다 되어가는데, 남은 오트밀은 밥 하기 귀찮은 날 오트밀 밥으로 대체해서 먹어도 될 것 같다.


이렇게 별다를 것 없이 눈 깜짝할 새에 주말 이틀이 지나갔다.


4월 29일(월)

아침부터 제대로 열받았다. 평소와 다름없이 오픈 준비를 마치고 가게 문을 열었는데, 갑자기 울리는 전화. 지금 당장 직원 한 명을 다른 지점으로 보내라,는 연락이었다. 빼 내면 충원을 해 줘야지. 그럼 누가 대신 오냐, 물으니 돌아오는 대답은 Later on. Later on 같은 소리 하고 있네. 아주 오래전, 벌써 6개월도 더 된 일이지만, 갑자기 코워커가 스케줄 펑크 냈을 때 어디서 듣도 보도 못 한 직원이 와서 하루 종일 스트레스받았던 게 생각나 더 분노했다. 이번에도 그러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잖아?


다른 코워커가 대신 안 오면 일 못 한다, 고 언성을 높이니 그제야 상황이 정리됐다. 다른 지점에서 인력 펑크가 났으면 그 지점에서 해결을 했어야 하는 게 첫 번째 열받은 부분, 인력 충원에 대한 대책도 없이 사람을 일단 보내라는 게 두 번째 열받은 부분, 스케줄 조정을 할 거면 매니저가 해야지 나한테 다른 코워커에게 커버 요청 하라고 한 게 세 번째 열받은 부분. 아침에 오른 혈압으로 하루 종일 하이 텐션을 유지했다.


이번 한 번 만이고 다음에 또 이런 일 생기면 난 일 못 한다고 두 번, 세 번 못을 박은 다음에야 상황이 완전히 종료됐다. 연락받고 한 달음에 달려와 준 코워커에게 너무 미안하고 고마웠다. 자다가 내 전화받고 부리나케 달려와 잠이 덜 깬 얼굴이었는데 얼마나 미안하던지. 하루 더 일 해서 기분 좋다는 코워커의 긍정 마인드 덕분에 나도 하루를 다시 좋은 기운으로 시작했다.


내일은 비가 온다고 한다. 얼마 만에 내리는 비인지. 전통적으로 비가 오는 날은 굉장히 한가해서 벌써부터 기대된다. 얼마나 안 바쁜 하루를 보내게 될까. 신난다.


4월 30일(화)

정말 돌아버리는 줄 알았던 하루다. 보스가 아침부터 오후까지 하루 종일 가게에 상주했던 걸로도 모자라, 제정신이 아닌 손님 한 명이 코워커 기분을 완벽히 망쳐놔서 정신적으로 피폐한 채로 집에 돌아왔다. 비 와서 손님 없을 거라고 기대했던 게 채 하루가 되지 않았는데 예상과 정 반대의 상황이 발생했다.


확실히 날씨 때문에 손님은 적었으나 보스가 가게에 내내 있으니 코워커와 잠시 숨 돌릴 틈 없이 계속해서 무언가를 찾아서 일을 해야만 했다. 할 일이 없는데 할 일을 찾아서 한다는 게, 정말이지 환장할 노릇인 거다. 그리고 손님이 좀 온다 싶으면 보스가 도와준다는 게 더 엉망진창이 되고, 내가 다른 손님 주문 처리하고 있는 걸 뻔히 알고 있으면서(모르나?) 자기 하는 일 도와달라고 하지를 않나. 그런 순간이 많았던 건 아니지만 한 번 발생할 때마다 정신을 흩뜨려 놓는 게 보통이 아니다.


보스야 그렇다 치고 웬 나사 빠진 인간이 왔는데 보스가 나를 붙잡고 하염없이 이것저것 말 하는 바람에 코워커 혼자 상대하다가 완전히 멘탈이 나갔다. 무슨 일인고 하니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고, 묻는 말에 엉뚱한 대답을 하고, 금방이라도 달려들 것 같은 눈빛으로 뚫어져라 쳐다봤다고. 혼자 커피랑 샌드위치 앉아서 잘 먹더니 갑자기 카운터에 있는 보스 앞으로 와서는 보스에게 눈을 고정한 채 샌드위치를 우걱우걱 먹는 모습을 보였다. 다 먹었으면 쓰레기 치워주겠다는 보스의 말에도 가만히 그녀를 주시하다가 갑자기 훽 돌아섰다. 정말 미친놈이 있다면 저런 모습이겠구나 싶어 그가 가게를 떠날 때까지 모두 긴장 상태였다.


문제는 그가 온 것이 오늘이 처음이 아니고 오늘 포함 주 1회, 3주 동안 꾸준히 가게에 오고 있다. 처음부터 인상착의, 말투, 행동이 평범하지 않아 기억에 남았다. 장담하건대 무조건 마약 하는 사람일 거다. 허우대는 멀쩡한 인간이 공격적인 언행 및 행동을 금방이라도 터뜨리기 직전인 데다 누가 봐도 비 정상적인 행동을 하고 있다면 마약 중독이 아닐 수 없다. 한국이었으면 경찰에 신고라도 하는데 호주 경찰은 생명에 위협이 없다면 출동을 안 한다고 해서 고민된다. 다음에 또 찾아오고 매니저, 보스가 없다면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아, 오늘 너무 사람 사이에서 힘들었다. 생각 그만하고 싶다. 일단 자자. 자고 일어나서 다른 사람들과 머리를 맞대고 앞으로의 일을 고민해 보자.


5월 1일(수)

벌써 5월이네. 시간 참 빠르다. 어제부터 비가 오는 날씨 덕분에 가게를 찾는 사람이 적어서 하루 종일 한가했다. 이른 아침 가게에 들른 보스도 10분 만에 자리를 떠서 마음까지 편했던 하루.


어제 찾아온 이상한 손님에 대해 코워커에게 공유하고 인상착의를 알려줬다. 그 사람이 다시 찾아오면 당연히 놀라겠지만 알고 놀라는 것과 모르고 놀라는 것은 다르니까. 코워커도 일 한지 6개월이 다 되어가는데 그간 많은 손님을 봐 왔지만 그런 사람은 처음이라며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무섭다고 했다. 그냥 이렇게 넘어갔으면 좋았을 텐데.. 마감 청소 중에 코워커가 나에게 부리나케 달려오더니 그 사람을 봤다고 했다. 코워커가 걸레질하는 도중에 유리창을 두드리는 소리가 나서 쳐다보니 그 사람이 밖에서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제스처와 함께 미소를 짓고는 떠났다는 것이다. 아침에 내게 들은 인상착의와 똑같아한눈에 알아봤다고 한다. 가게에 들어온 것은 아니니까 다행이긴 하지만 우리에게 너무 많은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다음 만남이 없기만을 바랄 뿐이다.


집에 돌아와 저녁 먹고는 남편을 데리러 오랜만에 밤 운전을 해 학교로 갔다. 저녁 도시락을 놓고 가 아무것도 못 먹었다고 해서 돌아오는 길에 먹을 수 있게 크로와상을 하나 싸 갔다. 나는 오랜만에 남편을 조수석에 태우고 운전하고, 남편은 오랜만에 내가 운전하는 차를 탔는데 내 운전 습관이 많이 바뀐 것 같다고 한다. 아무래도 출근할 때 마음이 급하다 보니 급가속을 이전보다 많이 하게 된 게 남편도 느껴지나 보다. 언제나 느끼지만 운전은 어렵다. 자나 깨나 운전 조심.


5월 2일(목)

멘탈 나간 날, 이 한 마디로 오늘 하루를 정리할 수 있다. 아침에 한 시간, 오후에 한 시간 보스가 와서 멘탈을 탈탈 털어갔다. 오죽했으면 마감 시간에 들린 매니저 붙잡고 하소연을 했을까. 하는 것 마다마다 트집 잡고, 하라는 대로 했는데 그게 아니라며 다시 바꾸는 통에 똑같은 일을 수도 없이 반복한 기분이다. 내가 매니저도 아닌데 매니저 이상의 태도를 요구하고 있으니 환장할 노릇이다. 돈을 더 주시던가 그럼. 코워커들과 항상 하는 말이지만 minimum wage, minimum effort다. 지각 안 하고, 하라는 대로 성실히 일 하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그런데 보스는 비즈니스 발전을 위한 궁리를 우리 보고 하라고 한다. 그것은 당신의 몫이 아닐는지..?


오래 일한 직원들에게 주인 의식을 바랄 순 있지만 강요는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어디까지나 보스가 그 가게의 주인이니까 주인의 역할은 보스가 해야 하는 것이 맞다. 나에게 보스와 같은 자세를 강요하면 안 되지. 음료, 샌드위치 메뉴를 내가 왜 개발해야 하며, 하루 매출이 안 나오는 이유를 내가 왜 고민해야 하는지 모를 일이다. 일련의 이야기를 횡설수설 얘기하니 매니저가 최대한 나를 달랬지만 사실 그도 해줄 수 있는 게 없다. 보스를 가게에 못 오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 역시 보스를 무서워하기 때문에 나의 마음에 공감해 주고 대처 방법을 알려주는 것이 전부다. 그래도 털어놓으니 속이라도 후련하네.


남편은 남편대로 학교에서 속상한 일이 있고, 나는 나대로 보스 때문에 힘들고 오늘은 둘 다 이렇게 힘든 날인가 보다. 맛있는 저녁이나 먹고 운동하고 일찍 자는 게 최고의 위로이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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