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당시의 여자친구의 어머니께서
나를 집에서 한번 보자고 하셨다.
나는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어머님을 찾아뵈었다.
어머니께서는 둘이 오랫동안 만나온걸
알고 있고 나이도 어느 정도 있으니
지금처럼 가볍게 만나는 것보다는
결혼을 하는 것이 어떻겠냐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자신의 생각은 그렇지만
여자친구의 아버지를 설득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어머님의 이야기를 듣고 여러 가지
감정이 소용돌이쳤다.
여자친구와 함께 하고 싶었지만
초라한 내 모습과 아무런 준비도 없이
가진 것도 없이 결혼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두렵고 무서워 도망치고 싶었다.
하지만 더 이상 도망치고 싶지 않았다.
이대로 두려움에 불안함에 달아나 버린다면
평생 후회로 남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몇 주 후에 아버님을 대면하러 가는 길은
마치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소의 심정이었다.
너무도 무섭고 두려워 당장이라도 도망치고 싶었다.
무슨 일을 하는지 부모님은 무얼 하시는지
가진 것은 무엇이 있는지 학력은 어떻게 되는지
비전은 있는지 무엇 하나도 대답할 수 없었기에
스스로가 너무도 초라했기에 도망치고 싶었지만
맞아 죽으러 가는 심정으로 아버님을 대면했다.
아버님을 만나고 저녁을 먹었다.
밥을 어떻게 먹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밥을 먹는 동안에도 별말씀이 없으셨던 아버님은
식사가 끝난 후 우리들의 이야기는 어머님께
들으셨고 너희 마음이 그렇다면 하루빨리
결혼을 하는 것이 좋겠다고 말씀하셨다.
나는 어떤 준비도 되지 않았지만
그때 그 순간에 결혼을 결심하지 않았다면
어마 평생 혼자 살았을 것 같기도 하다.
그날을 돌이켜 보면 벌거벗은 채로
있는 느낌이었다.
아무것도 없는 부족하고 모자란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부모님 앞에 선다는 게
어쩐지 죄를 지은 것 같은 그래서 너무
떨리고 두려워 벌거벗은 채 서있는 그런 기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