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위 감정 : 감동과 기쁨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

by 생명의 언어

"상위 감정"이라는 말이 세상 어딘가에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이것은 내가 글을 쓸 때 가장 즐겨 사용하는 표현들 중 하나다. 감정에는 위로부터 내려온 감정이 있고, 아래로부터 올라온 감정이 있다. 내가 상위 감정이라 부르는 것은, "하나님께서 내 영혼에 음성을 들려주시는 것"이고, 하위 감정이라 부르는 것은, "집단 무의식의 어두움(두려움, 공포, 불안)이 나를 속이고 기만하는 것"이다. 둘은 명백히 다르다.


대개의 경우, 어두운 감정들, 예컨대 : 두려움, 공포, 불안, 분노, 교만, 아집, 열등감, 죄의식...... 등은 하위 감정이다. 어두움으로 비롯한 생각/감정 중에서 하나님으로 말미암은 것은 하나도 없다. 반면, 밝은 감정들, 예컨대 : 감동, 경외, 경이로움, 기쁨, 열망, 평화, 자유, 현존, 고요...... 등은 하나도 빠짐없이 전부 하나님께로부터 말미암은 것들이다. 그것들에는 특유의 "느낌"이 있어서, 일단 한 번 자각한 이후부터는 오히려 모르기가 어려울 정도다. 어두움에는 어두움 특유의 "낮고 열등하고 거친" 진동수가 있고, 업/까르마/죄의 작용에는 그 특유의 느낌이 있으며, 반대로 임재하심과 역사하심과 상위 감정들과 같은 것들은 빛 특유의 "높고 완전하고 열리는" 진동수가 있다. 그 작용 또한 완전히 다르다. 하위 감정들은 어두움을 증폭시키며 구조를 강화한다. 어두운 원인이 어두운 결과를 낳고, 어두운 결과가 다시 어두운 원인을 강화한다. 이것은 기계적으로 되풀이되는 것이며, 성장은 없다. 제자리 걸음, 내지는 퇴보이다. 그러나 상위 감정들은 빛을 증폭시키며 생명을 "열게" 만든다. 영을 더욱 깊고 충만하게 하며, 혼을 더욱 정화하고 순결하게 한다. 나는 관상기도에 깊이 잠길 때마다 뒤늦게서야 "그분께서 오신 것"을 알았고, 그때마다 내 영혼이 더욱 성숙해짐을 선명히 느낄 수 있었다. 사실, 이것은 세속의 언어로 표현하면 조금 이상하게 들릴 수 있는데, 사람과 일은 별개이지만, 하나님과 역사는 원래 하나이시다. 사람은 부러 일을 해야 일이 이루어지지만, 하나님은 그저 "계시기만" 해도 역사가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그분은 그저 내 곁으로 "오신다." 오셔서는, 한동안 머물다가 가신다. 그러나 단지 그것만으로도 내 영혼은 그분의 "임재"로 말미암아 저절로 움직이고, 변화하고, 성장하고, 꽃을 피운다. 이것은 설명하기가 어려운 고유한 느낌이다. "생명"이 있다. 생명은 곧 하나님이시다. 그리고 그분은 모든 존재와 사건과 현상 속에 계시는데, 나의 의식의 진동수가 특별히 그분과 정렬할 때, 그분의 존재 자체가 곧 실재적인 에너지이자 힘이자 생명이 되어서, 그 자체가 곧 힘이 되고, 힘이 곧 변화를 일으킨다.


나는 지금까지 거의 대부분 "말"로 기도해본 적이 몇 번 없다. 처음에는 그래야만 하는 줄 알고 그렇게 했는데, 매우 어색하고, 낯설고, 부자연스러운 느낌이 있었다. 내 영혼이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것 같은 느낌. 그래서 나는 그냥 내 방식대로 기도와 묵상을 했다. 그게 기도인 줄도 모르고. 내가 기도하는 것은 사실 정해진 "방식"이라는 게 없다. 일상의 순간들 속에서, 유독 순간적으로 "깊어지는" 순간들이 있다. 주로 천천히 운전을 할 때나, 조용한 순간에 앉아 있을 때, 일상 속의 어떤 장면을 볼 때, 종잡을 수가 없다. 그 순간에, 나는 그 장면에게서 "본래 경험하도록 의도된" 시스템의 한계 너머의 무언가를, 나의 영혼으로, 깊이 느낀다. 예를 들어, 나뭇잎 하나, 꽃잎 하나가 떨어지는 것을 보고 그분의 뜻을 문득 깨닫는다. 어떤 사람이 사소한 한 마디를 건네는 것을 보면서, 크게 회개하고 부끄러움을 느낀다. 어떤 사람의 찰나의 눈빛을 마주하면서, 그분의 임재를 경험한다. 고요한 어느 순간에, 영혼이 깊어진다. 깊이 침잠한다. 잠긴다. 유영한다. 내게는 그게 그 자체로 기도였다. 내 영혼이 그분께로 가까워지는 순간. 나의 에고의 수위가 평소보다 더 낮아지고, 그 대신, 나의 영과 영혼이 더욱 스스로의 존재감(그렇다, 그것은 존재"감"이다, 존재, 가 아니다)을 드러낼 때, 그러한 순간들의 깊어짐이 곧 나의 "본체"라는 것을, 영혼은 곧 에너지체라는 말이 어떤 의미인지를, 온전히 이해한다. 그렇게 이해된 것들이 나의 내면의 깊은 곳에 쌓인다. 그렇게 쌓인 것들이 숙성되어지며, 어느 순간에 글이 되기도 하고, 이야기가 되기도 하고, 깨달음이, 지혜가 되기도 한다. 나는 지금껏 자연스럽게 그리해왔다. 어디서 배우지 않았고, 그냥 태어나면서부터 어느 순간에 이리 되어졌다. 마치 봄이 되면 꽃이 피고 여름이 지나 가을이 되면 열매가 맺어지는 것처럼, 그냥 그리 되었다. 그 순간에 깊이 잠길 적에, 나는 그것이 관상기도라는 것을 뒤늦게서야 거의 최근에서야 알았다. 그게 묵상이라는 것도 뒤늦게 알았다. 언어를 묵상하는 것보다 자연을 묵상하는 것이 훨씬 더 그분의 뜻에 직접 가까이 다가설 수 있다는 것도. 그리 "깊어졌던" 영혼의 기억들이 어느 순간 삶 속에서 문득 진리가 되어서 현현하고는 한다. 특히, 에고의 눈으로는 부정하거나 거부하거나 분노하거나 원망하는 등의 하위 감정들에 속을 수밖에 없는 순간들에, "말씀"이 되어서, 내 안에서 현현한다. 그때에, 나는 시련과 고난 한가운데에서, 고통과 슬픔 한가운데에서, 기쁨과 감동과 희생과 감사와 열망이라는 상위 감정이 꽃을 피우는, 말도 안 되는 기적을 목격한다.


하나님은 보이는 분이 아니시다. 그러므로 보이는 것들을 기준해서는 그분을 만나뵐 수 없다. 오직 보이지 않는 것으로서만, 보이지 않는 분을 만나뵐 수 있다. 이것은 간단한 이치이지만, 매우 깨닫기 어려운 것이기도 하다. 보이는 것이란, 결국 언어, 지식, 관념이다. "생각"으로 하나님을 만나려 하는 것이다. 그러나 생각이라는 것은, 관념이라는 것은, 매우 거칠고 투박하고 열등하고 불완전하고 불안정하고 불확실한 에너지여서, 하나님의 "높고 완전하고 영원하신" 빛과 정렬되기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물론 어쩌다 한 번씩 가능은 하다, 가뭄에 콩 나듯이; 소위 '긍정적 생각'이라는 게 그것이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것은 내 마음인데, 이때 마음은 생각, 감정이 아니라, "의도"를 말한다. 예컨대, 산책을 할 때, 나의 의도가 그저 "운동(육체적 건강 등의 목표를 효율적으로 달성하는 것)"에 맞춰져 있다면, 산책길에서 만나는 모든 것들은 그저 불필요한 부수적 요소에 불과해진다. 당연하겠지만 거기에 임재는 없다. 그러나 산책을 할 때, 나의 의도가 "고요, 평온, 현존" 등의 상위 감정(그것은 물론 '찾아오시는' 것이다)들에 몰입하고 있다면, 산책길에서 만난 모든 것들, 나뭇잎들의 연녹색 빛과, 흔들림과, 햇빛의 부서짐과, 바람결의 모든 것들은 그분과의 만남이 된다. 그 "만남"의 증거가 곧 상위 감정들이다. 언어로는 더 이상 설명할 수 없는 것, 몰입, 경건함, 고요함, 평화, 자유, 해방감, 기쁨, 감사, 그러한 것들...... 그 모든 것들이 뒤섞여서 그 순간에 나를 깊어지게 하는 그것들. 내 마음에 "깊어짐"이 찾아올 적에, 그것은 내가 일으킨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내게로 "찾아오신" 순간이시다. 나는 참으로 감사하게도 영적 재능과 자질과 지혜를 타고나도록 허락하신 바, 이러한 순간들에 대해서 나누고 공유하고 증언하는일을 나의 사명으로 삼는다. 영성을 나눌 때, 공유할 때, 영적인 일을 할 때, 이렇게 글을 쓸 때, 나는 살아 있음을 느낀다. "기쁨"을, 그분께서 기뻐하신다는 기쁨을...... 느낀다. "느낀다"는 말은 사실 뭔가 좀 부족하다. 기쁨이, 그 순간, "거기에 있다."


나는 기도하지 않는다. 모든 순간마다 나는 그저 깊어질 뿐이다. 얕아지는 순간마저도 깊어짐을 예비하는 것으로 이해한다. 삶의 모든 순간들이 깊어진다. 삶의 모든 순간들이 성령의 인도하심 하에 있다. 내가 몰입할 때, 더 이상 성과 속을 구별치 않고, 일상 전체로써 그저 함께할 때, 그분이 계시든 계시지 않든, 그 자체로 오직 나의 정신과 의식과 내면이 그분께로 온전히 몰입할 때, 그러한 순간들이 축적되면서 나의 영을 더욱 그분께로 정렬하게 하며, 정렬이 깊어질수록 음성을 듣는 감각과 느낌들도 깊어져 간다. 그리되매, 어느 순간에 놀라운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내 것이 아닌 언어들이 내 손에서 흘러나오며, 내가 절대로 알 수 없는 비밀들이 나의 입에서 흘러나오기 시작한다. 그러므로 결국, 사람은 깊어져야 한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영혼이 매 순간 깊어지는 것을 사랑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깊어질 적에, 상위 감정들이 찾아오신다. 그렇다, 그것은 찾아"오시는" 것이다. 그리 오시는 분께 익숙해져야 한다. 그래야, "하나님이 찾아오시는" 것을, 찾아오셔서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를, 들을 귀가 열리니.


감동과 기쁨 : 그것은 나의 영혼이 하나님께로 가장 가까워져서는, 그분의 품에 기대어, 그분의 심장 소리를 듣고, 그분의 숨결을 느끼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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