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 "약속된 평화"

모든 사람은 언젠가 반드시 죽어서 신 앞에 선다

by 생명의 언어

백 번의 기도보다도, 백 시간의 명상보다도, 천 시간의 묵상보다도, 만 시간의 수행보다도, 더욱 중요한 것은, "찰나의 영접"이다. 골방에 들어가서 10년, 20년을 기도하고 묵상한다 한들, 단 한 번이라도 제대로 진리를 영접하지 않는다면, 그 긴 세월은 다 무용한 것이다. 아니, 무용한 것보다 못하다. "퇴보"한 것이다. 단 한 번, 단 한 번의 "제대로, 온전히, 완전히" 진리를 영접하는 것, 그것이 오직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사람에게는 다음의 네 가지의 절대적인 진리가 있다. 누구도 이를 피해가지 못한다 :


1. 나는 언젠가 반드시 죽을 것이다.

2. 나는 내가 언제 죽을지 알 수 없다.

3. 나는 홀로 태어나서 홀로 죽을 것이다.

4. 누구도 내 삶과 죽음을 대신해주지 못한다.




모든 사람은 언젠가 반드시 죽음을 맞이한다. 그리고 그 죽음의 순간은 당장 오늘이 될 수도 있다. 심지어 다음 순간이 될 수도 있고, 지금 이 글을 쓰고 읽는 곧바로가 될 수도 있다. 죽음은, 인간 존재가 마주한 가장 근원적인 실존의 문제이다. 인류의 수천 년의 철학사와 신학사는 오직 이 죽음만을 온전히 해결하기 위한 것이라고 해도 결코 과장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죽음에 대해서 아무리 철학적으로 글을 쓰고 읽고 사색하고 수행하고 어쩌고 하더라도, 결국 중요한 것은 "온 마음으로, 온 영혼으로, 온 존재 전체로", 이 진리를 절실하게 마주하는 것이다. 내가 언젠가 반드시 죽는다는 것...... 오늘이, 이 순간이 마지막일 수 있다는 것...... 이 지상에서의 마지막 날에, 내가 맞이해야 할 죽음을, 나 이외에 그 누구도 절대 대신해줄 수 없다는 것...... 그리하여, 나는 이 지상에서의 마지막 순간을, 철저히 홀로 맞이할 준비를, 평생을 걸쳐서 해 나가야 한다는 것......


이것을 온전히 받아들인 자는, 완전히 달라진다. 그는 이제 이전과 같지 않다. 그의 정신은 온통 진리에게로 초점이 맞춰진다. 그의 의식은 온전히 신에게로 초점이 맞춰진다. "나는 언젠가 반드시 죽어서, 신 앞에 설 것이다. 그때를 내가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 나는 지금, 죽을 준비가 되었는가? 신 앞에 설 준비가 되었는가?" 그는 이 질문을 세상에서 가장 날카로운 검(劍)으로 벼려내어, 스스로 자기 목을 겨누고, 심장을 겨눈다. 이제 그 어떤 거짓돠 환영도 그를 감히 해치거나 속일 수 없다. 죽음 앞에서 자기를 속이고 세상을 속여봐야 다 부질없는 짓임을 그가 스스로 절실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죽을 준비가 되었는가?" 이 말은즉, "나는 지금 즉시 신을 영접할 준비가 되었는가?" 라는 말과 다르지 않다.




나는, 아버지 앞에 설 준비가 되었는가? 나의 모든 삶의 순간들이 기도가 되며, 나의 모든 걸음들이 묵상이 되며, 나의 모든 숨결들이 오직 찬양이 되어서, 내 삶의 모든 순간마다 내가 내 뜻대로 살지 아니하고, 오직 그분의 기쁘신 뜻대로 살고자 하며, 작고 미약하게나마 선(善)을 사랑하고, 선을 증거하며,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는, 참으로 의롭고도 고귀하신 분의 이름 앞에서 부끄럼이 없도록 그리 살았는가. 그리 살아서, 그것이 나의 습관이 되고, 그것이 나의 마음이 되고, 그것이 나의 존재가 되며, 그것이 나의 영혼을 물들여서, 내가 의식하지 않더라도 모든 순간들을 오직 "그리스도를 사랑하여 아버지 안에 거하는" 삶을 살고 있는가...... 그리하여, 지금 내가 죽더라도, 이제 이 생에서의 사명을 온전히 마치고, 아버지를 영접할 수 있음에 기뻐할 수 있을 것인가. 죽음의 순간이 올 적에, 그것이 공포나 두려움이 아니라, 나를 위하여 예비된 "약속된 평화"임에 기뻐할 수 있을 것인가. 진실로 내가 그리할 수 있을 것인가......


이 "진실(Truth)"이 그의 존재와 영혼(사실 둘은 거의 같은 말이다) 안에서 완전하게 빛을 드리우매, 그는 더 이상 어두움에 속을 수 없을 것이다. 이전과 같이 무지와 망상 속으로 돌아가고 싶어도 그리할 수가 없을 것이다. 그는 더 이상 기도하지 않을 것이다. 삶의 모든 순간마다 기도하기 때문이다. 그는 더 이상 묵상하지 않을 것이다. 삶의 모든 걸음마다 묵상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그는 더 이상 찬양하지 않을 것이다. 그의 존재 전체가 곧 그분의 기쁨이 되는 찬양이기 때문이다. 마침내 그는 더 이상 교회에 가지 않을 것이다. 그가 머무르는 모든 순간마다, 아버지를 사랑하고, 주님을 열망하며, 성령께 충성할 것이므로, 장소가 무용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는 오직 침묵과 고요와 평화 속에서, 끝없이, 끝없이...... "성전(聖殿)" 안으로 침잠해 들어갈 것이다.




바로 그리할 때,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절대적인 해답을 얻게 될 것이다. "아, 오직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기뻐하시는 뜻대로 살아야 하는구나. 그분께서 기뻐하심이, 곧 내가 온전히 그분과 하나되었다는 증거이며, 또한 그분과 하나됨이 곧 '살아서 나라가 임하는 것', 구원 그 자체로구나." 사실, 이런 식의 논리적 추론 자체도 전혀 필요가 없다. 실제로는 단 한 번의 영접으로 모든 것이 열린다. 그는 마음이 힘들 때, 다시 중심으로 되돌아온다 : "오늘이 지상에서의 마지막 날이라면, 이보다 더 기뻐해야지." 그가 이기심과 욕망에 속을 적에, 그는 다시 중심으로 되돌아온다 : "오늘이 지상에서의 마지막 날이라면, 내가 더욱 희생하고 헌신하고 봉사하여야지." 그가 게을러지고 나태해지며 오만해지려 할 때, 그는 자신도 모르게 빛으로 다시 되돌아온다 : "아, 오늘이 지상에서의 나의 마지막 날이라면...... 내가, 기어코, 그럼에도 불구하고, 십자가를 져야지, 나의 십자가를 져야지......" 이제, 그는 삶의 모든 순간마다 어떤 선택과 판단과 결정을 내려야 하는지, 무엇을 말하고 무엇을 말하지 않아야 하는지, 어디로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지를, 모든 것을 다 알게 된다.



영적 성장이란 다른 것이 없다. 오직 하나, 이 하나뿐이다 :


"모든 사람은 언젠가 반드시 죽어서 신 앞에 선다 : 나는 그분을 영접할 준비가, 늘 되어 있는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지상에서의 나의 마지막 날에, "기뻐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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