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에게 있어서 임신과 출산은 평생 잊을 수가 없는 과정이다. 특히 이방인으로 다른 나라에서 그 과정을 겪는다는 어색함은 정서와 문화의 이질감으로 더 심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걱정했던 것 과는 달리 난 너무나 편안했다.
무엇보다 생명의 소중함을 진심으로 마음으로부터 축복해 주고 날 소중하게 해 준다는 느낌을 매번 받게 했다. 임신을 한 것 같다고 첫 발걸음을 디뎠던 동네 병원에서 검사를 하고 진심으로 간호사 할머니께서 축하한다고 손을 잡아 주시던 그때부터 내 맘은 편안했던 것 같다.
임신
영국에서는 임신과 출산까지 국가에서 책임지고 보호해 주는 기분이 든다.
임신을 하게 되면 곧바로 midwife(조산사)와 연결을 해 주고 8주 즈음되면 첫 미팅을 하게 된다.
한 시간 이상의 미팅은 나의 몸 상태부터 체크를 시작해서 내가 살고 있는 환경과 나의 보호자(남편)의 모든 상황들, 종교 여부, 심지어 배우자가 임신 사실을 알고 있는지 축복해 주는지 폭력적이지 않는지까지 체크한다. 그리고 집에서 아이를 키울 수 있는 환경과 여건이 되는지 모든 부분들을 체크하게 된다. 임신부터 출산 후 1년까지는 모든 백신과 약 처방 그리고 치과비용까지 국가로부터 무료 혜택을 받게 된다. 물론 임신과 출산 비용은 당연 무료이다.
한국에서 출산을 한 적은 없지만 한국의 지인과 가족을 통해서 들은 것과 비교하면 무엇보다 영국에서는 산모와 아이 중심이었다는 것이다.
출산
영국에서는 한국병원에서당연하다고 생각하고 해 버리는 회음부 절개, 제모, 관장이 없다. 이 부분은 산모에게 수치심과 굴욕을 느끼게 한다고 들었다. 물론 여기에서도 산모가 원하면 해 준다고 듣긴 했다.
모든 건 그냥 자연적으로 물이 흘러가는 데로.
분만 과정도 음악이 흘러나오는(물론 나중에는 들리지도 않지만) 아늑한 공간에서 가족들과 함께 진통을 하고 함께 출산을 하게 된다.
출생은 아이에게도 정신적 육체적 쇼크를 준다.
엄마의 자궁수축으로 아이 또한 많은 아픔을 엄마와 마찬가지로 받게 된다.
그래서 아이가 태어나면 제일 먼저 만사를 제쳐두고 피가 묻은 아이를 대강 닦고 엄마의 품에 먼저 안긴다. 거의 두어 시간은 안기어 있었던 거 같다. 아이에게 영양을 공급했던 태반도 금방 치우지 않는다. 탯줄 처리도 급하게 하지 않는다.
갓 태어난 아이를 위해 무엇보다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은 엄마와의 유대감이다.
출산의 과정은 정말 하늘이 노랗게 변하도록 힘들었는데 배 안에 있던 아이와의 첫 만남은 묘한 기분을 들게 한다. 그리고 한참 동안 안겨서 엄마의 심장 박동 소리를 들으며 아이 또한 편안하게 엄마의 품을 마음껏 느낀다.
그리고 그 시간만큼은 주위에서도 큰 소리를 내거나 요란을 떨지 않도록 했다.
얼마나 무서웠을까...
깜깜한 엄마의 뱃속에서 간간히 바깥소리만 듣다가 갑자기 모든 환경이 바뀌어 버리는 순간, 나 혼자 살기 위해 발버둥 쳐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이 세상에 태어난 것 자체가 울음으로밖에 표현하지 못하는 아이에게는 이 어리둥절한 상황들이 얼마나 두려울까. 그러니 이때 그나마 가장 가까웠던 엄마의 품과 엄마의 목소리를 첫 만남에서 아주 잘 느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
이 진정한 유대감이야 말로 나중에 성장해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바로 이때 엄마와의 첫 긴밀한 만남에서 생기는 것이라 생각한다.
실제로 출산직 후 아이가 피부 접촉을 통해 엄마와의 교감을 하면서 모유 수유를 하게 되면 그렇지 않은 아이들과 비교해 조화로운 발달을 하게 된다고 한다.
그리고 부모와 교감을 가지지 못해 출산 후 트라우마를 겪게 된 아이는 몸 전체에 연결된 뉴런에 방해를 받게 되어서 아기의 성장 발달 조화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연구도 있다.
그래서 태어나자마자 엄마에게 안겨서 최소 두어 시간은 아무의 방해도 받지 않고 엄마의 품에서 편안함을 느끼는 부분이 아주 중요하다. 실제로 아이는 태아 시절의 기억을 가지고 있다는 연구 결과들도 있다.
서로 다른 문화들(집 안에서의 신발 문화)
영국에서 아이를 출산하게 되면 며칠 후부터 HEATH VISTER 가 직접 산모의 집에 방문을 정기적으로 하게 된다. 그때 산모의 고민이나 어려운 점, 아이 상태와 몸무게, 키 체크, 산모의 몸 상태 등등 모든 부분들이 괜찮은지 아주 자세히 체크를 해 주러 오신다.
산모가 우울증이 있는지 앞으로 아이를 돌봄에 있어서 어려움은 없는지, 수유 방법에 어려운 점이 없는지 여러 가지를 상담해 주시고 체크해 주셨다.
매주 정기적으로 10회 정도 방문을 오셨던 것 같다.
그중 매 번 애매했던 부분들 중 하나가 신발을 신고 집에 들어오는 문화였다.
한 번은 집에서 왜 신발을 신냐고 내가 솔직하게 영국친구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집에 방문했을 때 신발을 벗어달라는 요구를 받으면 어떤 기분이 드는지도..
그때 그 친구가 이렇게 말을 해 주었다. 본인은 나와 우리 집의 문화 차이를 아니 항상 본인 슬리퍼를 들고 집에 놀러 오지만, 낯선 사람한테서 처음 그 요구를 들으면 신경이 쓰이는 부분은 어쩔 수 없다고.
내가 외투를 입고 있는데 안에 옷 상태도 별로이고 딱히 벗기가 싫은데 상대방이 외투를 벗어달라고 하는 기분이랄까, 신발 속 양말 상태가 안 좋을 수도 있고 냄새가 날 수도 있는데 벗으라 할 때 조금 당황스러울 수도 있다고. 머리를 안 감아서 떡 진 상태라 모자를 쓰고 있는데 모자를 집 안에서 벗어달라고 하는 기분도 든다고. 이러한 여러 가지 상황으로 이해를 시켜주려고 했고 난 이해를 해 보려고 했다.
그래도 모자와 외투를 더러운 신발과 같이 비유를 하는 건 이해가 안 되었지만 어떤 기분인지의 뉘앙스는 어느 정도 이해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HEATH VISTER가 집에 오셨을 때 보통 신발을 벗어달라는 양해를 구하지 않으면 아이와 지내고 있는 2층 방까지 신발을 신고 오시는데 정중하게 2층은 신발을 벗고 올라와 달라고 부탁을 했다. 그리고 그 다음부터는 우리 집에 오실 때는 어련히 신발을 알아서 벗어 주셨다.
하지만 다른 이유로 그때가 되면 온 가족들이 분주해진다.
난 그때 안방 침실은 사실 그대로 비워두고 친정 엄마의 산후조리법 아이디어에 따라 다른 빈 방에 전기장판을 깔고 바닥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아이를 낳고 몸이 망가진 상태에서 푹신한 침대 생활을 하면 허리가 망가진다고도 하시고 산모는 무조건 바닥이 따뜻한 곳에서 생활해야 하는데 한국처럼 바닥이 따뜻한 온돌식 구조가 아니니 어쩔 수 없이 전기장판을 깔아 두고 바닥에서 지냈던 것이다.
그러다가 HEALTH VISTER 가 문을 두드리면 재빨리 아기와 함께 안방 침대에 가서 우아하게? 누워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기다리곤 했다.
지금 생각해도 그 상황이 웃기지만.
사실 다른 방에는 널브러진 이부자리와 여기저기 뒹굴고 있는 기저귀 등등 난리였는데 그 바닥 생활 모습을 그대로 보였다가는 괜히 서양사람들에겐 이해하기 힘든 모습이었을 것이다. 심지어 맞지 않는 힘든 환경과 상황 속에서 아이를 키운다고 잘못 이해를 하시고 방문 후 쓸데없는 리포터가 들어갈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아기 침대를 어른 침대 옆에 둔 완벽히 청소된 안방을 따로 항상 준비해 둔 그때가 지금 생각해도 너무나 웃긴다.
한국과 영국의 다른 출산 문화 중 가장 중요한 부분은 임신부터 한 생명이 탄생을 하고 산모가 그 생명을 돌볼 수 있다고 생각될 때까지 나라에서 보호하고 관리를 받는 느낌이었다.
한국에서는 아기가 태어나면 아기를 깨끗이 목욕시키고 산모의 배나 가슴 위에 살짝 안겨 준 뒤 아기는 신생아실로 산모는 입원실로 이동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리고 며칠 뒤 퇴원을 하는데 영국에서는 태어나서부터 퇴원할 때까지 엄마와 아기는 함께 하게 된다.
병원에 지내는 동안 midwife는 모유 수유를 하는 방법들을 같이 도와주시기도 하고 밤에 아기가 많이 울면 함께 봐주시기도 하셨다. 물론 임신 때부터 내가 힘들게 산통을 겪을 때도 나와 함께 해 주셨다. 그리고 퇴원하기 전에는 아기를 어떻게 씻기고 닦이고 입히는지, 물 온도는 어떻게 측정해야 하는지 아주 자세하게 알려주시면서 함께 목욕시키시며 알려주셨다.
그 모습을 남편이 영상으로 남긴걸 한국 가족들이 보고 놀라셨던 게 기억난다. 병원에서 이런 것도 다 가르쳐 주냐고.
난 그때 "그럼 아기 목욕시키는 건 초보 엄마들은 어디서 배워?" 하고 진심으로 의아해했었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영국의 의료시스템에 대해 앞에서도 설명을 했지만 영국은 무상의료시스템이다.
심지어 아기가 태어나면 그때부터 성인이 되는 만 18세까지 국가에서는 milk money(양육 보조금)를 매달 영국에 있는 모든 아이들에게 주게 된다.
한 생명이 생기고 탄생하고 자라나는 신비함과 축복.
이 부분을 진심으로 축하해주고 소중히 여기고 마지막까지 함께 해 주는 부분은 참 감사한 부분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