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에게 내려진 재앙
하나님의 허락이 떨어지자 사탄은 바로 행동에 들어갑니다. 그는 욥의 재산과 자녀들을 신속하게 파멸시켜버립니다. 아래 본문을 살펴봅시다.
하루는 욥의 자녀들이 그 맏아들의 집에서 음식을 먹으며 포도주를 마실 때에
사환이 욥에게 와서 아뢰되 소는 밭을 갈고 나귀는 그 곁에서 풀을 먹는데
스바 사람이 갑자기 이르러 그것들을 빼앗고 칼로 종들을 죽였나이다 나만 홀로 피하였으므로 주인께 아뢰러 왔나이다
그가 아직 말하는 동안에 또 한 사람이 와서 아뢰되 하나님의 불이 하늘에서 떨어져서 양과 종들을 살라 버렸나이다 나만 홀로 피하였으므로 주인께 아뢰러 왔나이다
그가 아직 말하는 동안에 또 한 사람이 와서 아뢰되 갈대아 사람이 세 무리를 지어 갑자기 낙타에게 달려들어 그것을 빼앗으며 칼로 종들을 죽였나이다 나만 홀로 피하였으므로 주인께 아뢰러 왔나이다
그가 아직 말하는 동안에 또 한 사람이 와서 아뢰되 주인의 자녀들이 그들의 맏아들의 집에서 음식을 먹으며 포도주를 마시는데
거친 들에서 큰 바람이 와서 집 네 모퉁이를 치매 그 청년들 위에 무너지므로 그들이 죽었나이다 나만 홀로 피하였으므로 주인께 아뢰러 왔나이다 한지라
(1:13-19)
평화롭고 행복하던 어느날, 욥은 사환들로부터 청천벽력같은 소식을 연이어 접하게 됩니다. 스바 사람이 침략해서 소와 나귀를 빼앗고 종들을 죽입니다. 또 갑자기 하늘로부터 불이 떨어져 양과 종들을 살라버립니다. 그리고 갈대아 사람들이 낙타를 빼앗고 종들을 죽입니다. 자신의 공고했던 재산들이 속절없이 무너져버리는 소식을 들으며 욥은 얼마나 놀랐을까요? 그러나 이것이 끝이 아닙니다. 욥의 자녀들이 모여 식사하던 중 갑자기 허리케인이 그 자리를 휩쓸어 모두가 사망해버렸다는 소식이 전해집니다. 욥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의 증거로서 받았던 모든 복들을 단 일곱 절의 서술로 잃어버리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보호하심의 손을 놓으실 때 이런 일들이 벌어진다는 사실이 참으로 섬찟하지 않습니까?
이토록 끔찍한 일을 당한 욥의 반응은 놀랍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저주하기는커녕 '예배'하고 있습니다.
욥이 일어나 겉옷을 찢고 머리털을 밀고 땅에 엎드려 예배하며
이르되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하고
이 모든 일에 욥이 범죄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하지 아니하니라
(1:20-22)
과연 욥은 하나님이 인정하신 사람다웠습니다. 그의 삶은 항상 하나님을 향한 경외로 가득차 있었기에 이런 상황에서도 즉각적인 예배가 가능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이 모든 일을 행하셨음을 인정하면서 "왜 나의 소중한 것들을 가져가셨나요!" 라고 말하지 않고 "이 모든 것들은 원래 하나님의 소유였습니다. 하나님은 여전히 찬송받으실 분이십니다."라고 고백합니다. 하지만 슬프게도 욥의 시련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무대는 다시 천상 회의로 옮겨집니다. 하나님과 사탄의 대화 패턴은 지난번과 유사합니다. 하나님은 사탄에게 "어디서 왔느냐"고 물으시고 사탄은 "땅을 두루 돌아다니다 왔습니다." 라고 대답하지요. 이에 하나님은 다시 욥 이야기를 꺼내며 그에 대한 극찬을 이어가십니다.
여호와께서 사탄에게 이르시되 네가 내 종 욥을 주의하여 보았느냐 그와 같이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가 세상에 없느니라 네가 나를 충동하여 까닭 없이 그를 치게 하였어도 그가 여전히 자기의 온전함을 굳게 지켰느니라
(2:3)
하지만 사탄도 여기서 물러서지 않습니다. 그는 다시 하나님께 이의를 제기합니다.
사탄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이르되 가죽으로 가죽을 바꾸오니 사람이 그의 모든 소유물로 자기의 생명을 바꾸올지라
이제 주의 손을 펴서 그의 뼈와 살을 치소서 그리하시면 틀림없이 주를 향하여 욕하지 않겠나이까
(2:4-5)
'가죽으로 가죽을 바꾸오니'라는 구절에 대해서는 다양한 해석이 있습니다. 가죽은 곧 몸을 가리킨다는 것으로, 욥의 몸을 건드리기 전까지는 진정성을 알 수 없다는 해석이 있고, '가죽으로 가죽을 바꾼다'는 것은 유목민인 베두인족의 등가 거래 용어로서, 욥에게 아직 공정한 테스트가 내려지지 않았다는 해석도 있습니다. 주1) 어떻게 해석되든 사탄의 요지는 이것입니다.
"욥은 아직 제대로 검증되지 않았습니다. 그의 몸을 직접 쳐 봐야 합니다."
이 제안에도 하나님은 허락을 하십니다. 단 욥의 생명에는 손대지 말라는 제약이 붙습니다. 사탄은 여호와 앞에서 물러가자마자 욥을 쳐버립니다. 그 결과 욥의 몸은 발바닥에서 정수리까지 악창(종기)이 끓어오르게 됩니다. 얼마나 심각했던지 욥은 재 가운데 앉아 질그릇 조각으로 몸을 긁어야 할 정도였습니다. 재산과 자녀와 자신의 몸까지 파탄이 나버린 욥의 인생은 사실상 끝장난 것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여기서 욥의 아내가 등장합니다. 그녀는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이 그래도 자기의 온전함을 굳게 지키느냐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
(2:9)
욥기에서 욥의 아내가 하는 말은 이 한마디뿐입니다. 그녀는 이 한마디의 말 때문에 주석가들로부터 최악의 평가를 받아야만 했습니다. '사탄의 시녀', '제 2의 하와' 등의 호칭이 그녀에게 붙여졌습니다. 주2) 하지만 우리는 잠시 멈춰서서 그녀의 심정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하루아침에 자녀와 재산이 끝장나버리고, 뒤이어 남편마저 최악의 피부병으로 온몸이 뒤덮인 상황에서 그렇게 말하지 않을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요? 이런 점을 생각해 보면 그녀를 향한 주석가들의 평가는 조금 과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어떤 면에서 욥의 아내는 욥에게 최선의 제안을 한 것일수도 있습니다.
"여보, 우리가 믿던 모든 것들은 다 끝장났어요. 이 상황에서 신앙이 무슨 소용인가요? 포기해요. 그냥 우리를 배신한 하나님 욕하고 죽자구요."
그러나 욥은 그녀의 제안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그는 자신의 몸이 산산조각난 이 상황에서도 놀라운 신앙고백을 합니다.
그가 이르되 그대의 말이 한 어리석은 여자의 말 같도다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은즉 화도 받지 아니하겠느냐 하고 이 모든 일에 욥이 입술로 범죄하지 아니하니라
(2:10)
욥은 피조물인 자신의 위치를 망각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의롭게 산 것도 맞고, 그로 인해 수많은 복을 받은 것도 맞지만, 이것들이 자신의 마땅한 권리는 아니라고 고백합니다. 하나님이 주셨기에 언제든 잃어버릴 수 있다는 것이지요. 이 놀라운 신앙고백으로 여호와와 사탄의 승부는 결말이 난 것 같습니다. 욥은 하나님을 욕하지도, 배반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는 이 끔찍한 상황에서 오히려 하나님께 최고의 찬양을 올려드렸습니다.
욥과 같은 끔찍한 일들이 우리에게도 일어납니다. 어제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일들이 오늘 우리를 덮칩니다. 어제 세워놓았던 미래의 계획들이 오늘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휴지조각이 되어버립니다. 하나님 앞에 겸손을 유지하며, 일상의 축복들을 지켜달라고 기도해도 소용이 없는 경우가 있습니다. (바로 욥이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까? 행여나 하나님의 복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게 될까봐 조심하고 또 조심하던 이가 바로 그였습니다)
「하나님이 기도에 침묵하실 때」의 저자인 제럴드 L. 싯처는 어느날 당한 교통사고로 어머니와 아내, 큰 딸을 잃어버립니다. 그는 일상의 축복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늘 하나님께 감사를 올리며 살았고, 심지어 사고를 당했던 그 날 아침에도 운전중 안전을 지켜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래도 사고와 죽음은 이 모든 정성들을 비웃듯 그의 가족들을 휩쓸어버렸습니다. 우리의 인생은 이처럼 갑작스럽고 무섭습니다.
주께서 그와 그의 집과 그의 모든 소유물을 울타리로 두르심 때문이 아니니이까
(1:10)
사탄은 하나님이 욥을 두르신 일상의 복들을 '울타리'로 비유합니다. 「박영선의 욥기 강해」에서 박영선 목사는 이 울타리에 대해 영감어린 메시지를 전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둘러주신 울타리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가족의 건강, 안정적인 직장과 수입, 사회적인 관계, 기본적인 생활을 가능케 해주는 의식주.... 우리는 이것들의 귀함에 대해 인식할 때마다 감사의 기도를 드립니다. 밥상 앞에 앉을 때마다 감사하다는 고백을 올립니다. 교회 구역모임에서 기도제목을 나눌 때마다 자녀들을 위한 간구가 빠지지 않습니다. 동시에 우리는 늘 이런 든든한 울타리 안에서 신앙생활 하기를 원합니다. 그 울타리가 견고한 상태에서 신앙이 성장하는 것이 이상적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어떻게 하십니까? 그 울타리를 부수십니다. 이리들이 넘어와 양들을 유린하고 도적들이 재산을 탈취해갑니다. '이것만은 제발'이라고 여기던 것들을 몰수당하며, 최후의 보루마저 빼앗겨버립니다. 주3)
혼이 빠져나가는 듯한 일들을 겪는 가운데 우리는 하나의 진실을 발견하게 되는데 그것은, 울타리 밖에도 하나님이 계시더라는 사실입니다. 울타리 안에서 살 때는 울타리 밖의 세상을 상상도 할 수 없었습니다. 거기에는 하나님이 안 계시는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모든 것이 끝장나 버리고 내가 쫄딱 망해버린 그 순간에 우리가 발견하는 사실은, 그곳에도 하나님이 여전히 계시더라는 것입니다. 거기서는 살 수 없을 줄 알았는데 기도의 응답이 있더라는 말이지요.
예레미야 선지자는, 포로로 바벨론에 끌려간 유다 백성들이 혼란스러워하고 있을 때 "거기서 정착하라"는 메시지를 전합니다. 성전도, 제사도 없는 이방 땅에서 과연 남은 평생을 살 수 있을까? 라는 백성의 불안에, 선지자는 하나님의 약속을 분명하게 전달합니다.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며 와서 내게 기도하면 내가 너희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
(예레미야 29:12-13)
무슨 말입니까? 성전도, 예배도 없는 바벨론 땅이지만, 그곳에서도 하나님은 여전히 백성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시며 그들을 만나 주신다는 의미이지요. 하나님은 우리가 생각하는 울타리 안에 갇혀 계시는 분이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는 그 울타리를 나가야만 새로운 하나님을 알 수 있습니다.
주님을 더욱 알기 원하네
나 주님을 더욱 알기 원하네
내 마음 다해
내 평생의 소원 내 주님 한 분만
간절히 알기 원하네 주4)
이 찬양을 아시나요? 우리는 찬양할 때 하나님을 더 많이 알기 원한다는 간구를 많이 합니다. 그러나 어떻게 하나님을 알게 될까요? 말씀을 열심히 보는 방법도 있을 것이고, 기도를 열심히 하는 것도 분명히 좋은 방법일 것입니다. 그러나 뼈에 사무치게 그분을 알고 온 몸으로 그 인격을 느끼게되는 방법은 부수어진 울타리 밖으로 우리의 인생이 내동댕이쳐지는 것이겠지요. 물론 이 모든 것은 우리가 원해서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알고 싶다고 이런 일들을 구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그 상황에 던져진 이후, 거기서 만나는 하나님은 우리가 이전에 알고 있던 하나님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신 분일 것입니다.
2강을 마무리하겠습니다. 1장, 2장에서 우리가 살펴본 본문 중, 우리는 알지만 욥과 욥의 아내(그리고 그의 친구들)가 모르는 사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무엇일까요? 바로 천상회의의 내용입니다. 우리는 마치 연극을 보듯이 이 장면을 긴장 가운데 관람하고 있습니다. 무대의 장이 바뀌며 천상회의가 열릴 때, 욥은 그 상황을 전혀 알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욥기를 읽는 우리들은 그 내용을(정확히는 그 일부를) 보았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욥은 모르게 하시고 우리들은 알게 하신 내용이 있다는 것이지요.
첫째, 모든 고난이 죄에서 기인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욥은 천상회의에서 하나님의 입을 통해 '순전하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그는 죄가 있어 고난받은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 세상 그 누구보다 의로웠기에 고난을 받았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바로 무죄한 고난은 존재한다는 말이겠지요.
둘째, 이 고난은 욥으로 하여금 삶의 실수를 깨닫게 하거나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드려는 훈련 과정도 아니었습니다. 우리가 흔히 어려운 상황을 만날 때 하나님의 다루심과 빚으심을 생각하게 되는데, 욥의 경우는 이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러므로 연단의 목적이 아닌 고난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셋째, 고난은 우리가 아는 것 이상의 목적이 있습니다. 욥이 천상회의의 내용을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요? 그는 무의식적으로 하나님께 쓰임받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이것은 미스테리입니다. 이 사실은 우리로 하여금 고난의 원인을 쉽게 결론내리지 말것을 권면합니다.
여러 내용을 논했지만 2강에서는 위 세 가지만 분명히 하면 충분합니다. 그것이 욥기 전체를 이해하는 핵심 중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주
1) 하경택, 「질문과 응답으로서 욥기 연구」(한국성서학연구소) p.107
2) 하경택, 「질문과 응답으로서 욥기 연구」(한국성서학연구소), p.110
3) 박영선, 「박영선의 욥기 강해」(무근검), 02 하나님의 일하심 中
4) 어노인팅 7집 수록곡, “주님을 더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