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들 키우는 거, 할 만 해.
전편 요약: 집값과 류마티스 관절염으로 부모님이랑 살고 있는 30쓰 이야기입니다.
고등학생 시절 가정선생님께서 하신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결혼과 출산에 대한 수업 중이었는데, 자식 키우기 어렵지 않냐는 학생들의 질문에 '할 만하다'라고 대답하시더군요. 그리고 이렇게 덧붙이셨습니다. "한 30년 정도 열심히 키우면, 그다음부터는."이라고요.
몇 해 전 아버지께서 정년퇴직을 하셨습니다. 저보다 훨씬 젊은 나이 때부터 돈을 버셨으니 최소 4~50년가량은 일을 하신 셈입니다. 만약 두 분이 자식을 키우지 않고 번 돈을 그대로 저축했다고 한다면, 과거 은행 금리를 생각해 보았을 때 단순 저축만 하더라도 꽤나 큰 금액을 모을 수 있는 시간이었을 겁니다.
그 돈은 은퇴 후 투자금이 될 수도 있고, 여행을 다니거나 여유로운 생활을 하는 데에 쓰일 수도 있었겠죠. 하지만 30년이 넘는 자식 농사로 인해 평생 일하시고도 노력에 비해 편안치 못하게 사셔야 했습니다. 그동안 제게 들인 돈을 다른 곳에 투자하셨다면 얻을 수 있었을 이익만큼의 효용성이 저라는 결과물에 있을까 생각해 보면, 전혀 아닐 것 같습니다. 30년을 키워주신 지금도 저는 부모님을 챙겨드리기는커녕 제 앞가림하기에도 급급하니까요. 게다가 그동안 건강 문제나 가치관 차이로 속 썩여드린 걸 생각하면 이만한 마이너스 투자도 없습니다.
때문에 전 부모님께 늘 미안했습니다. 그래서 종종 장난처럼 결혼 이후 맘고생을 많이 하셨던 엄마께 만약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결혼 안 해도 된다, 그리고 나도 낳지 말라고 이야기하곤 했습니다. 자유롭게 사시길 바랐거든요. 엄마뿐만 아니라 아빠도 한때는 나름의 반짝이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나 같은 족쇄는 처음부터 모른 채로 훨훨 날며 살라고 말해주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엄마가 그러시더라고요.
"괜찮아, 그냥 행복하게만 살아. 자유롭게,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우리가 뭐든 다 도와줄게."
그때 느꼈습니다. 정말 죄송해야 할 건 건강 문제로 걱정 끼쳐드렸던 것 말고, 부모님이 온 생을 다해 키워낸 제 몸뚱이를, 아프다고 스스로 미워하고 있었다는 일이라는 걸요. 저도 그동안 절 사랑해 보려 노력했지만 자기 자신을 자꾸만 아프게 만드는 몸을, 그래서 항상 주변에 폐만 끼치게 만드는 제 자신을 받아들이기란 너무 어려웠거든요. 하지만 그러면 안 되는 거였습니다. 정말로 가족들을 생각한다면, 조용히 사라져 주는 것이 아니라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했습니다.
그때부터 마음을 강하게 먹고 살아가기로 했습니다. 이제 우리는 서로를 지탱하는 지팡이가 되어주고 있습니다. 제가 병을 극복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가족들에겐 힘이 되고, 또 제가 좀 못나더라도 버려지지 않을 거라는 그 마음이 저를 버티게 해 줍니다. 그렇게 튼튼하고 강한 마음으로, 앞으로 힘들고 아프더라도 견뎌서 기어코 살아내야겠죠.
엄마 아빠,
아픈 자식이라 미안하지만, 미안해하지 않을 거야.
대신 미안한 만큼 더 단단해질게.
그래서 더 당당하게 살게.
최선을 다해서 행복하게 살게.
앞으론 아빠 대신 운전도 더 잘할 거고,
필요할 땐 엄마 아빠가 기댈 수 있는 든든한 등이 될 거야.
그렇게 튼튼하게 살 거야
나 걱정하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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