앓아 보니 몸이 아니라 마음이 아픈 거였더라
역절풍(歷節風)
'류마티스' 는 '흐르다'라는 그리스어에서 따온 말로 나쁜 기운이 흘러 병을 만든다는 뜻이며, 한의학에서는 백호역절풍(白虎歷節風)으로 불리어 왔다. '호' 호랑이에게 물린 듯 참을 수 없을 만큼 아프고, 그 통증이 '풍' 바람과 같이 전신을 이동하며 움직이기 때문이다. (출처 네이버 검색 요약)
아무래도 병의 이름은 처음 그 병을 앓은 사람이 짓는 모양이다.
예전에 '이따이이따이병'(일본 도야마현에서 발생했던 카드뮴에 의한 공해병)이라는 병을 보고 이름이 정말 정직하군, 했다. 일본어로 이따이는 '아프다'라는 뜻인데 결국 '아파 아파 병'인 것이다. 얼마나 고통스러웠으면 병 이름을 아프다로(심지어 두 번이나 반복해서!) 지었을까 싶었다.
어느 날 갑자기 내게 류마티스 관절염이 왔다. 이 병도 이따이이따이병처럼 정직한 이름이었다. 이름의 그리스어 의미 그대로, 그야말로 '흐르는' 병인 것이다. 나쁜 기운이 전신을 돌며 여기저기 아픈 곳을 만들고 그 염증은 관절 연골 부위를 녹이고 파괴한다. 한의학에서는 뭐라 부르나 봤더니 '역절풍'이라 부르더라. 역시 통증이 이리저리 움직이며 전신을 고통스럽게 만든다는 뜻이다. 류마티스의 한 종류인 통풍은 특히 '바람만 스쳐도 아픈 병'으로 많이 불리고 있다.
이건 아파본 사람이 아니라면 모를 심정이라, 분명 처음으로 아팠던 사람이 원인 모를 고통을 부를 말이 없어 '우씨 겁나게 아프네 병'으로 부르자고 한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앓아 보니, 바람이 스쳐서 아픈 곳은 몸을 말하는 것이 아니었다. 마음이었다.
오랜 병엔 효자 없다던데, 투병기간이 길어지니 자식이 날 버리길 기다릴 필요 없이 이미 환자 스스로 자신의 몸을 버리고 싶은 심정이 되었다. 아픈 몸에 긍정적인 정신을 가지라는 것은 뿌리가 썩은 나무가 잎은 푸르기를 바라는 것과 같다. 몸이 아프면 마음에 우울함이 기우는 것이 정상일 것이다.
하여 약 9년간 염증과의 싸움을 해오다 보니 가장 늘어난 것은 다름 아닌 감수성이었다.
마음을 슬쩍 건드리는 노래에도, 풍경에도,
그래,
그냥 지나가는 한줄기 바람에도
마음이 흔들려 눈물이 고였다.
바람이 쓰다듬어 주던 날
그날도 평소와 다를 바 없던 날이었다. 병 상태는 좋지 못했다. 손가락 관절 이곳저곳에 염증이 자꾸 생겨서 그림을 그리지 못했다. 타자 치는 것도 손에 무리가 가니 글쓰기조차 하기 어려웠다. 작업을 하지 못하는 작가는 뭐라고 불러야 할까? 자꾸만 머릿속엔 표현하고 싶은 이야기들이 샘솟는데 그저 손을 놓고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아침마다 산책하는 동네 길에는 예쁜 호수공원이 하나 있는데, 산을 마주 보고 있어 바람길을 따라 바람이 잘 부는 곳이다. 나무와 호수가 보이는 벤치에 앉아 바람을 슬슬 맞고 있으면 상쾌해서 정말 좋아하는 곳. 아침에 이곳을 산책하는데... 그날따라, 바람이 내 마음을 쓰다듬어 주는 것처럼 느껴졌다.
꼭 말을 거는 것 같았다. 그 마음 다 알아.
그 순간 소나기가 내렸다. 누구에게 한마디 꺼내지 못하고 혼자 물을 잔뜩 머금었던 무거운 마음은 그 부드러운 위로에 서러움을 쏟아냈다. 그렇게 한참을 서성이다가 진정하고 집에 왔더란다.
바람만 스쳐도 아픈 병,
바람만 스쳐도 '마음이' 아픈 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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