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날의 기억
추석이라,
기억나는 건 최근 결혼하고 최근 10년 내에는 크게 없는 것 같다.
선물 준비, 음식 준비, 교통체증, 용돈, 인사 등등,
마치 연례행사와 같은 목돈 들어가는 달 정도로 머릿속에 남아있는 걸 보니
정말 멋없다는 생각이 든다.
더 어릴 적으로 거슬러 올라가서 떠올려 보자면,
글쎄, 추석과 관련된 기억이 뭐가 있을까?
아.
자전거와 파란 달이 떠오른다.
체리필터의 달빛 소년에 나온 그 가사처럼
엄청나게 커다랗고 푸른 달을 멍하게 쳐다봤던 기억이 떠오른다.
추석날 자세히 기억나진 않지만,
아마, 지금은 아파트 단지가 빼곡하게 들어서기 전
장미가 공터에서 피던 그 마을에 살 때니,
음, 초등학교 저학년이었던 것 같다.
내 자전거도
복지관 도서관 앞 입구에 세워두었던 걸 누군가 훔쳐 가기 전이었으니,
아마, 2학년이나 3학년쯤 되었던 것 같다.
자세하게는 기억나지 않지만, 아마 부모님은 부부 싸움을 하셨던 것 같고,
어린 나는
그 어스름한 저녁에서 밤으로 가는 그 시간 자전거를 무작정 타고
동네 앞 개천이 있는 대로변 사거리까지 나갔던 것 같다.
그리곤 그 앞 횡단보도 앞에서
자전거를 세우곤 집 쪽을 향해 뒤를 돌아보았고,
이윽고 다닥다닥 붙어있는 낮은 슬레이트 지붕들 위에
엄청나게 커다란 보름달이 떠오르는 걸 보고
깜짝 놀라 한참을 멍하니 바라보았던 기억이 난다.
그 달은 정말 엄청나게 컸었고,
내가 세상에서 본 달 중에 가장 둥그렇고 파랗게 환한 달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달을 보며, 달 속의 크레이터를,
잘 닦지 않아 뿌옇게 흐려진 안경을 손으로 잡곤
안경을 눈동자 가까이 콧잔등 쪽으로 누르며
조금이라도 잘 보기 위해 초점을 잡고 유심히 보려고 애썼고
점점 떠오르며 작아지는 달과
달빛에 비쳐 달처럼 환하게 핀
보도블록 사이 민들레를 구경하다 집으로 돌아갔던,
밤공기 선선하던 그날이 생각해 보면
내 어릴 적 기억나는 추석 저녁 기억이었던 것 같다.
쓰다 보니 유쾌한 기억은 아니었지만,
그날의 파랗고 커다란 달은
꽤나 환상적이고 멋진 어린 날의 추억으로 남아있다고 해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