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 조직의 규칙을 깨닫게 된 순간.
약속의 시간 12시
야간 애견 비밀 결사 모임의 건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그들은 공원에 산책하면 흔히 볼 수 있는,
누구나 산책을 하며 들고 다니는 스마트폰 하나 손에 없었던 것 같다.
그 모임에서는,
아무도 밴드나 톡 방이나 커뮤니티 방을 개설하지 않는다.
비밀 결사 모임인 만큼 철저하게 익명이 보장된다.
최근에 텔레그램 방의 캡처가 언론에 노출되는 등 텔레그램의 보안 또한 믿을 수 없다고 생각했는지
비밀 결사 조직의 대표적 메신저로 불리는 텔레그램 모임 방도 없다.
철저히 그들끼리 모이는 폐쇄적인 비밀결사 모임인 것이다.
이 모임을 발견하게 된 건 우연히
야간에 인적이 드문 공원을 달리면서 알게 되었다.
정확한 모임 시간은 아직도 정확히 모른다.
어떤 특정 요일 인지는 알 수 없지만
불특정 한 요일 24시, 밤 12시쯤 되면 그들이 나타난다.
이 공원 산책로는 광장을 중심으로 공원으로 진입하는 길이 세 군데 정도 있고,
한 군데는 주택가, 두 군데는 대로변과 인접한 각 공원의 끝에서 진입할 수 있는 진입로로 구성되어 있어
어디서 공원으로 들어오는지 대충은 알 수 있는데,
이들은 정말 어디서 나타났는지 모를 정도로 어느새 산책로에
자연 발생한 것인 마냥 "생겨나 있다."
그렇게 그들은 철저하게 비밀에 싸여있다.
하나씩 둘씩 나타나 산책을 시키는 척하며 그들의 행동은 시작된다.
표면적으로는 그들이 데려온 애견들을 산책하는 척하며 그들의 모임을 시작하는 것으로 보인다.
푸들, 믹스견, 시츄, 그리고 이름은 모르는 사냥견까지,
각자 독특한, 각자 제각각의 색깔과 크기가 다른 견종을
코드네임 대신으로 사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사실 이 비밀 모임의 정체를 알게 된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그저 야밤에 공원 산책로를 달리는 내 경로 상 불특정 하게 출연하여
나의 러닝을 방해하지만 않았더라면 그 모임에 대한 관심조차 두지 않았을 것이다.
그들은 태연하게,
그리고 우연을 가장해 공원의 산책로를 돌기 시작하면서 점차 무리를 형성하기 시작한다.
마치 태양을 중심으로
수성 금성 지구 화성 등등이
제각각 제각각 다른 속도로 태양 주위를 돌다가
어느 순간 그 속도를 맞추어 함께 일직선으로 대형이 맞춰지는 그런 순간처럼 말이다.
나도 그들의 정체를 너무 궁금해하거나
호기심을 보였다가는 위험에 빠질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그들보다 속도를 더 빨리하여 러닝 하면서 지나치며 궁금증을 키워보고자 했지만,
그들의 동선과 겹쳐지는, 내가 그 무리를 추월하는 순간에만 몇 번 관찰할 수 있을 뿐이었다.
정말 이상한 건,
아무 대화도 하지 않고,
누구도 입을 여는 사람이 없다.
그저 개를 목줄에 끌고 산책을 할 뿐.
'어쩌면 이 비밀 조직의 우두머리는 인간이 아니라 개들이었는지도 모른다.'
라고 생각하며
세 번째 바퀴 째 공원의 산책로를 달리며 그 무리를 추월하며 관찰하려는 순간!
검은색 셰퍼드,
자칼처럼 생긴 녀석의 목줄이 어느새 풀려 있었고
녀석이 혼자 가만히 그 산책 무리를 떠나보내고 산책로 중앙에 시꺼멓게 서 있다.
본능적으로 약간 위험하다는 느낌을 받은 나는
산책로에 우두커니 서있는 녀석을 피하면서
우회로로 달려 나가며,
곁눈질로 녀석을 잠깐 응시한다.
녀석은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마치 내가 그 무리의 존재를 알아차렸는지 아닌지 확인하려고 하듯이,
혹은 내게 더 이상은 알려고 하지 말라고 경고를 하듯이 말이다.
난 도망칠 수밖에 없었고,
찝찝한 기분만 남긴 채 야간 러닝은 조기에 종료해버리고 말았다.